악마가 나타나도 공무원이 잡는다?!
<체인소맨> 시리즈를 보았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반려견처럼 키우던 악마의 심장을 이식받고 살아난 주인공 ‘덴지‘가 가슴의 줄을 당기면 ’체인소‘(전기톱)로 변신해 악마와 싸운다는, 황당하지만 흥미로운 설정의 만화입니다. 악마에게 잡아먹히거나 이성을 뺏기지 않고 악마와 합쳐진 ’덴지’의 존재를 신기하게 생각한 공안(악마와 싸우는 공적 기관)의 간부 마키마는 덴지를 공안 소속의 데블 헌터로 영입할 것을 제안하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렇게 혼란한 세계관에서도 공적 시스템은 존재합니다. 마치 <에반게리온> 시리즈에서 사도들을 물리치기 위해 네르프라는 조직이 존재했듯, 여기서는 악마들을 물리치기 위해 공안이라는 조직이 존재합니다. 공안은 악마 처단에 대해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간부 마키마는 여려보이는 외모와 다르게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조직 내에서의 권한도 막강합니다. 특정 지역에 악마가 나타나면 공적 시스템인 공안 소속의 데블헌터들이 움직이고, 이들에 대한 인사권, 때로는 처벌과 포상 등에 관여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한 지부에서 처리하기 어려울 경우 다른 지부에 도움을 청하기도 하며 지부 간 인적 교류 및 정보 교환도 이루어집니다. 하나의 유기체적 시스템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사회가 패닉에 빠지지 않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물론 공적 시스템이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체인소맨>에서 일반적 기준에서 벗어난 덴지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실험체이자 이용할 가치가 있는 존재로만 여길 뿐입니다. 시스템 안에 편입되지 않는 사람에게는 가차없고,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정보의 공개를 제한하고 때로는 왜곡해서 전달하기도 합니다. 시스템 위로 올라가는 간부, 권력을 가진 자들을 우선하고 때로는 일반인의 희생도 불사합니다. 덴지는 시스템의 부조리함에 저항하거나 의문을 품는 인물이 아니라 본능에 충실한 인물로 그려지지만, 언젠가 덴지가 시스템이 자신의 본능을 제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크게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공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양쪽의 균형이 맞아야 합니다. 시스템 최상위에서 권력을 많이 가진 자일수록 더욱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시스템 하단에 있는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희생하도록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시스템 하단에 있는 사람들은 시스템이 그저 잘 작동하겠거니, 라는 안일한 생각보다 비판적인 시각에서 시스템을 바라볼 수 있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어느 한 사람의 재능이나 희생에만 의존하지 않는, 더욱 튼튼하고 신뢰로운 공적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