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울리고, 기적을 일으키는 한 소년의 성장기
(*주의! 이 리뷰에는 다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리뷰를 읽기 전, 미리 확인 부탁드립니다.)
기찻길은 있지만, 기차역은 없는 한 시골마을. 그 마을에 살고 있는, 우주를 좋아하는 준경의 소원은 마을에 기차역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의 간절한 마음에 대해서는 학교 선생님도, 마을 사람들도, 기관사들도 모두 알고 있기에 한 마음으로 그를 응원합니다.
기차역을 만들어 달라는 내용으로 대통령에게 54번째의 편지를 부쳤지만 아무런 답신을 받지 못하는 준경. 그의 비범함을 알아본 자칭 뮤-즈 라희는 준경의 편지를 도와준다는 핑계로 사심(?)을 채우죠. 맞춤법이 틀리면 델리케이트한(?) 편지의 내용을 잘 전달할 수 없다며 맞춤법 과외를 자청하고, 수학에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준경이의 능력을 활용해 대통령배 수학경시대회에 참여하여 대통령을 직접 만나자는 아이디어를 내고, 청와대로 직접 찾아가자는 아이디어를 내어 용기있게 버스를 타지만 번번히 실패하는데...
아직까지 기차역 타령하는 것이 제정신이냐고 화를 내는 기관사 아버지에게 반항하며 누나 보경과 마을에 남아 기차역을 세우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준경. 준경이의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드디어 기차역 설립 허가가 떨어지는데 88올림픽을 앞둔 시점에서 언제 예산이 확보될 지 모르는 상황. 포기하려는 준경에게 라희는 직접 기차역을 지으면 될 것 아니냐며 해답을 제시하고…!
마을사람들의 십시일반 노력으로 기차역이 완성됩니다. 그리고 준경이가 우주를 좋아하고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아는 선생님과 라희는 준경이가 기차역을 세우는 것에만 관심을 쏟지 말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 줍니다. 그런데 준경이는 엄청난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선뜻 하겠다고 나서지 않죠. 오랜 꿈인 기차역도 세워졌는데, 단순히 주어진 기회에 합격할 자신이 없어서라고 치부하기에는 준경이의 태도가 이상하기만 합니다.
왜 좋은 기회를 잡지 않냐며 안타까워하는 누나 보경. 항상 투닥거리지만 그래도 누나에게 싫은 소리 한번 안 하던 준경은 비로소 숨겨온 속마음을 드러내며 싸웁니다. 준경이가 왜 집을 떠나지 않으려 하는건지, 왜 기차역을 만들려고 했는지 진실이 밝혀지고... 항상 무뚝뚝했던 아버지 태윤은 집에 들렀다가 우연히 그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본인의 꿈을 포기하려는 준경이에게 아버지로써 해줄 수 있는 일을 해 주리라 다짐합니다.
처음으로 아버지와 진정한 대화를 나누는 준경. 아버지는 준경이에게 왜 무뚝뚝하게 대했는지 솔직하게 말합니다. 준경이도 아버지에게 비로소 속마음을 털어놓고 아버지가 살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건넵니다. 사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진심어린 대화였기에 서로에 대한 오해는 눈 녹듯 풀리죠.
마음의 짐을 털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가 된 준경은 비로소 본인의 꿈을 찾아 떠날 수 있게 됩니다.
영화의 한줄 스토리는 기차역을 만들려는 한 소년의 이야기이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는 한 소년의 성장과 그를 돕는 주변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공 준경은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결핍에 가득 찬 소년입니다. 엄마의 부재와 그로 인한 아버지의 미성숙한 사랑 표현이 그를 더욱 위축되게 만듭니다.
누나와 주변 마을사람들, 그리고 라희가 그의 결핍을 어느 정도 채워주지만, 준경은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끝없이 의심하고 힘들어합니다. 기차역을 만드는 것은 그를 보살펴 주는 마을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 라는 목적도 있었지만 사실 그것은 그의 결핍을 보상받을 수 있고 존재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준경은 기차역을 만들지 않고서는 집을 떠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꿈을 이룰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와도 내가 과연 이 기회를 누릴 만한 가치가 있을까 의심합니다. 어릴 때 많은 일들을 겪었기에 스스로를 온전히 사랑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준경 옆에는 항상 밝고 긍정적인 태도로 준경의 속마음을 읽어주는 라희가 있었고, 엄마의 부재를 메워주는 누나 보경의 헌신적인 사랑이 있었으며, 무뚝뚝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준경을 아끼는 아버지 태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준경이 소중하게 간직하는 꿈을 이룰 수 있게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선생님, 기차역을 만드는 데 온 힘을 다해 돕는 마을 사람들 등 주변 사람들이 모두 따뜻하게 그를 응원하고 지지해 주었습니다. 그렇기에 준경은 결국 스스로를 얽매고 있던 속박에서 벗어나 어려운 현실에 포기하고 좌절했던 어린 시절을 떠나보내고 자신의 발로 집을 직접 나서서 더 넓은 세상으로 꿈을 이루기 위한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태윤과 준경의 대화를 보면서, 오은영 박사님의 조언이 떠올랐습니다. 사실 부모자식간의 오해는 가끔은 서로를 너무 배려하고 사랑할 때 생기곤 합니다.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숨기고 그 상처를 속으로만 삼켜야 했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상처를 건드릴까 봐 조심스러워서 솔직한 대화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었던 아들. 그리고 결국 이들을 치유한 것은 서로 숨김없이 진심을 표현하는 대화의 과정이었습니다. 사랑한다고, 너를 잃을까 봐 무서웠다고, 죄책감 가질 필요 없다고 말하는 이 과정 속에서 그동안 쌓였던 오해와 진실이 드러날 수 있었던 것이죠. 자신의 상처를 보여주는 것은 어렵고 힘든 과정이지만, 그러한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야말로 성장의 지표가 아닐까 싶습니다.
누군가는 영화를 보고 현실은 녹록치 않다며 삐딱한 시선으로 평가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팍팍한 현실에서 상처받은 이들이 영화를 보고 치유받거나 대리만족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지만 그려진 모습이 좀 더 더 아름다울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내 주변에 나를 응원해주고 아껴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랑이 나를 한결 더 성장시키고 세상 밖으로 나갈 용기를 준다는 사실을 이 세상의 모든 상처받은 준경이들이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