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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은넷 Mar 01. 2022

왜 나는 게임에 중독이 되었었는가

중학교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학교폭력의 피해자면서 전교 230명 중 228등이라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하는 학생이었다. 집에 돌아가면 남동생이 3명 있었고 걸핏하면 욕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부친이 있었다. 난 절대 사람을 함부로 믿지 않는데, 초등학교 때 가장 친했던 친구라고 생각했던 애가 중학교 진학 후 일진 그룹에 들어가더니 나를 타겟 삼아 괴롭히는 배신을 당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3년 내내 일진 애들한테 당하다 중3때는 너무 얻어 맞아 병원에 입원까지 한 적이 있었다. 못 배운 나의 부모는 아무런 찍소리도 하지 못했고, 당시 일진의 리더 아버지가 대전에서 이름을 날리는 정치권(민주당) 사람이라 사건이 그대로 묻혀버렸다. (나는 이 때의 경험으로 586세대 민주팔이 정치인들을 극도로 혐오한다. 일종의 편견이자 일반화의 오류지만 도저히 그 민주팔이 민주당 의원을 용서 할 수 없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인데 15년 전만 해도 스마트폰도 없었고, 학교 폭력 가해자가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분위기도 없어 저게 가능했다.


내가 4수를 해가며 기를 쓰고 명문대학에 입학한 이유도 이 때 형성된 결핍 때문이었다. 다시는 평생 무시 당하지 않겠다는 마음, 성공해서 학교폭력 가해자들 다 쓸어버리겠다는 마음. 이런 분노가 나를 공부하도록 이끌었다. 그런데 내가 처음부터 공부를 잘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엄청난 시행착오들을 많이 겪었다. 오늘은 이런 시행착오 중 내가 겪었던 ‘게임 중독’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는 것이 있다. 노답 인생을 살면 어마무시한 의지력이 생겨 무엇이든 다 잘하겠지?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물론, 노답 인생은 원대한 꿈을 꾸게하는 동기부여의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 왜 영화 <기생충>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주인공의 아들이 대저택에 사는 꿈을 꾸며 끝나지 않던가. 온실 속의 화초에서 자란 사람보다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성공에 대한 집념도, 야망도 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걸 해내가는 과정은 전혀 다른 영역이다. 인간의 행동은 절대 의지로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외롭고 척박한 환경은 한 사람의 내면에 잘못된 습관과 감정을 심어줘 의지와는 정반대로 타락해버릴 가능성을 높인다. 다시 내 얘기를 해보자면, 나는 어릴 적 집이 가난해 제대로 된 컴퓨터가 없었다. (고물상에서 주워온게 있긴 했으나 골동품 수준) 집에만 돌아가면 너무 심심해 미칠 것 같았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었고, 외롭고 힘든 시간을 소설에 빠져 잊고는 했었다. 그런데 이런 환경에 변화가 오는 사건이 하나 생긴다.


바로 2006년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삼성X 파일 사건으로 구속되어 버린 것이다. 지방의 이름 없는 중학생과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 회장하고 무슨 상관이람?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삼성의 총수가 일으킨 나비효과는 생각보다 컸다.

위 기사와 같이 삼성은 이건희의 사면을 전제로 8000억원이라는 돈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발표한다. 그리고 이 금액 중 일부가 [전국의 기초생활수급자 중학생들에게 무료로 컴퓨터 배포]라는 공헌 사업에 사용이 된다. 그렇게 해서 내가 가지게 된 컴퓨터가 삼성전자의 매직스테이션이다.

본체가 대충 이렇게 생긴 녀석이었는데, 당시 시가 200만원 상당의 큰 금액을 가진 컴퓨터더랬다. CPU가 뭐였는지도 기억난다. 인텔 코어2듀오로 최고 좋은 프로세서였다. 살아가면서 잊히지 않는 날이 몇 개 있는데 삼성전자 직원이 찾아와 이 컴퓨터를 설치해주던 날도 그 중 하나다. 이건희 사면시키겠다고 전국의 수 많은 가난한 학생들에게 컴퓨터를 뿌렸던 삼성. 그리고 이 컴퓨터로 인해 나는 게임 중독에 빠져버린다.


기존에 고물상에서 주워 온 느려터진 586 컴퓨터로는 게임 하나 작동되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책이나 읽었는데, 이 컴퓨터는 당시 최신 윈도우 XP 운영체제에 팬티엄도 아닌 무려 코어2DUO라는 어마무시한 CPU를 탑제한 것이었더랬다. 지금은 이름조차 잊혀졌지만 당시만 해도 와레즈라 불리는 사이트들이 있었다. 어둠의 경로에서 유료 게임들을 해킹해서 무료로 배포하는 사이트였는데 그곳에 접속해서 온갖 게임이란 게임은 다 다운 받았다. [심시티] , [롤러코스터 타이쿤] , [디아블로2] , [스타크래프트] 등등.


학교에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었고, 집에서조차 외로웠던 내가 게임을 하는 순간만큼은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책에서는 절대 느끼지 못하는 엄청난 몰입감. 현실의 모든 고통과 왕따를 당하는 설움도 게임 속 세계에서는 잊을 수 있었다. 나중에는 [건즈]라고 하는 온라인게임에 푹 빠졌었는데 레벨이 오르고 실력이 오름에 따라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았다. 인생에서는 아무것도 가진게없던 내가 이곳에서는 고수로 인정을 받았다. 이 느낌이 주는 중독성이 엄청나 새벽에는 신문 배달알바를 하고, 학교 가서는 잠 자거나 괴롭힘 당하고, 다시 집에 오면 밤새도록 건즈를 하는 그런 생활을 반복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한 후, 교육학 수업에서 교수님께 유명한 논문 하나를 소개받은 적이 있다.


1981년 캐나다의 심리학자 브루스 K 알렉산더가 진행한 쥐 공원(rat park)이라는 연구가 그것이다. 우리는 흔히 아편 / 모르핀 / 코카인 같은 마약에 중독되는 이유를 ‘마약 자체의 성분’ 때문이라 생각한다. 엄청난 중독성을 일으키는 그 내부의 성분이 사람들이 한번이라도 마약에 손대는 순간 다시는 헤어나오지 못할 수렁에 빠뜨린다. 이것이 보통의 인식이다.


하지만 쥐공원 논문에서 밝힌 결과는 충격적이다. 이 심리학자는 쥐를 두 부류로 나누어 한 그룹은 독방에서 외롭게 혼자 지내도록 했고, 한 그룹은 다른 쥐들과 어울리며 행복하게 공원(rat park)에서 지내도록 했다. 그리고 쥐들에게 물을 줬다. 이 때도 주입구를 2개를 둬 한 웅덩이에는 평범한 물, 다른 웅덩이에는 모르핀이라는 마약을 섞은 물이 나오도록 했다. 다른 쥐들과 행복하게 어울리는 외롭지 않은 rat park(쥐 공원)에 사는 쥐들은 평범한 물과 모르핀이 섞인 물을 각각 먹어본 뒤, 오히려 모르핀이 섞인 물을 거부하고 계속해서 평범한 물이 있는 웅덩이만 찾아갔다.


그러나 좁은 독방에 혼자 외롭게 고립된 쥐들은 평범한 물은 쳐다도 안보고, 계속해서 모르핀이 있는 물을 찾아갔다. 이 쥐들은 가면 갈수록 모르핀에 중독이 됐고 물이 없어도 계속해서 물을 찾는 심각한 금단증세까지 보였다. 놀라운 것은 이런 중독된 쥐를 행복한 rat park에 놓았더니 머지 않아 중독 증세가 치유되었다는 것이다.


이 논문이 시사하는 바는 충격적이다. 우리들이 어떤 중독에 빠지는 것. 그것에 게임 중독이든, 스마트폰 중독이든, SNS 중독이든 간에 어떤 도피처로서 작용하는 중독은 사실 그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외로움과 고립감 때문에 그렇다는 것. 낮은 자존감을 가지며 인생 답답한 느낌을 받으면 이런 중독이 야기된다는 것이다.


2010년도에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 [고도비만은 가난을 먹고 자란다] 편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우리들의 상식과는 다르게 세상에는 부유할수록 마르고 가난할수록 비만이 되는 통계가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학자들은 도대체 어째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일까 분석을 해봤다. 그 결과 가난할수록 삶이 팍팍하니깐, 외로우니깐. 이 때 받는 스트레스를 음식을 먹으면서 풀어버리는 ‘음식 중독’에 빠져 그렇다는 결론이 나왔다.


내가 중학교 때 1년 간 게임 중독에 빠져 지냈었던 이유. 그것은 아무도 내 주위에 없으니깐, 너무 외롭고 힘드니깐. 쥐 공원의 고립당한 쥐처럼 모르핀에라도 빠져지내야 했기에 그랬던 것이다. 나는 그 모르핀이 게임이었던것이고. 누군가는 게임이 아닌 무언가일 수 있다.


너무 슬픈 현상이다. 혹시라도 주변의 누군가가 어떤 것이든 중독에 빠져있다면 rat park 실험을 떠올리자.  사람의 겉은 멀쩡해보여도 속은 엄청난 외로움에 타들어가고 있다.


원문 출처 : https://m.blog.naver.com/no5100/2224713221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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