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이라는 용어가 있다. 몇년 전 한국 사회에서 크게 유행을 한 단어로 인터넷만 틀면 성공했다는 교수, 저명인사들이 “자신감 말고 자존감을 키우세요” 라는 이런 소리를 해댔다. 그런데 이게 얼마나 황당한 소리냐면 이걸 들은 수 많은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그래 자존감을 키우겠어!’라고 결심해도 결국 집에 돌아와 혼자 있거나, 다른 사람들과 만나 갈등을 겪게 되면 결심과 상관없이 말짱도루묵이 되었다는 것이랬다. 아니..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을 알려줘야지 이런 개뼉다구 같은 추상적인 말을 하면 어디다 써먹으라는 것인가?
이 말을 하는 사람들 자체가 과연 자존감이 있을까? 만약에 있다고 한다면, 자신들이 그걸 키웠던 방법을 현대 정신의학을 인용하며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하게 알려줘야지 왜 추상적으로만 ‘자존감이 중요해. 이걸 키워’ 라고만 말을 하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지들 멋져보이려고 마케팅 용어로 사용한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어떻게하든 자존감이 박살나는 상황을 한 번 예시로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든 무조건 자존감 박살나는 실험)
중국의 명문대 중 한 곳인 절강대학교에서 진행한 실험이다. 상상을 하면서 읽어보자. 내용은 이렇다.
연구팀이 무작위로 여러 학생들을 모집했다. 그리고 이 학생들을 두 개의 그룹으로 쪼갰다. 먼저, 첫번째 조의 학생들에겐 80장의 100위안 (100위안은 한국 돈 18,000원. 곱하기 80이니 받은 돈은 144만원) 지폐를 주었다. 그리고 다른 조에는 지폐와 크기가 똑같은 흰색 종이 80장을 주었다.
그리고 각 그룹 안에서 3명씩 짝을 지어주었다. 이 때, 실제 2명은 연구팀에서 미리 섭외한 연기자들이었다. 3명 중 단 1명만이 진짜로 실험에 참여하는 학생이었다. 이들은 디지털 오락기를 이용해 서로 공을 주고 받는 게임을 했다. 셋이서 서로 공을 잘 주고 받다가 어느 순간 연구팀에서 섭외한 연기자들이 실제 실험자를 제외하고 자기들끼리만 공을 주고 받았다. 처음만 해도 곧 나에게 공을 주겠지 싶었던 실험 학생은 계속해서 공이 자기한테 오지 않자 내가 지금 왕따를 당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학생의 머리에는 뇌파 측정 장치가 붙어 있었는데 검사를 해보니 실제 신체가 당하는 고통과 똑같은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어마무시한 외로움, 자신감 하락, 소외감, 당황스러움 등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 때 유행했던 자존감 이론에 따르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도 어떠한 영향,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받지 않아야 한다.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뇌 기능에 장애가 있지 않는 이상 99.9999%의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 처하면 당연히 고통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외롭고, 소외되었다는 감정을 느낀다. 인간이기에 당연하다.
그런데도 자존감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는 사람들은 무책임한 말을 하는 것이다. 실험실 상황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모두 이런 비슷한 경험이 하나쯤 있다. 직장생활에서 남에게 뒷담화 까이는 경우, 친했다고 생각한 친구가 알고보니 나를 욕하고 있었던 경우, 상사에게 인격모독을 당하는 경우, 사소하게는 오랜만에 카톡을 켰는데 아무한테도 메시지가 오지 않았었던 경우나 어릴 적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들이 같이 노는 것에 껴주지 않았던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맞딱드려야 하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이런 고통과 소외감은 자주 등장한다. 자존감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해결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고통을 줄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우리가 외로움이나 소외감이라는 감정을 덜 느끼게 될까? 자존감 같은 추상적인 이야기 말고 과학적이고 현실 가능한 방법은 없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다시 실험으로 돌아가보자. 위 실험의 초반을 보면, 100위안 짜리 지폐 80장을 준 그룹과 흰색 종이 80장을 준 그룹이 나뉘어진다. 둘 그룹 모두에게 똑같이 왕따시키기를 시행했는데 뚜껑을 따보니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평범한 흰 종이를 받은 그룹의 학생들은 ‘엄청난 등급의 고통, 소외감, 외로움, 자신감 하락’을 겪은 반면 지폐를 받은 그룹은 이런 감정과 고통이 현격하게 낮았던 것이다. 이를 쉽게 비유하자면, 여러분들이 저 왕따당하는 실험에 참여하는데 5만원 짜리 지폐 80장을 받고 이걸 손에 들고 실험에 참가했다고 생각해보라. 그냥 상상만 해도 고통이 경감 될 것 같지 않은가? 누가 나를 욕하던, 왕따시키던 상관없이 내 손에 어마무시한 돈이 들려있으면 무의식적으로 어쩌라고! 나 돈 있어!라며 고통에 자연스레 둔감해지게 된다.
돈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심리적 효과는 이것 뿐만이 아니다. 어떤 일을 열심히 수행하는데 있어서도 돈은 엄청난 마법을 발휘한다. 2007년 영국 런던대학교의 pessigloine 교수는 세계적 학술지 사이언스에 이런 논문을 발표한다.
단기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큰 고난이도의 과제가 있다. 이 때, 특정 그룹의 참가자들에게는 평범한 사진을 보여주었고, 다른 그룹에게는 영국의 파운드화 지폐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과제를 수행 할 때의 노력도를 측정했더니 후자가 훨씬 더 높은 동기부여를 일으켰다. 심지어 돈을 준다고 한 것도 아닌, 단순하게 컴퓨터 화면에 돈을 띄워만 놓고 보여주었는데도 이런 효과가 일어났다. 스쳐지나간 지폐가 많을수록 과제 수행에 들어간 노력도 더 커졌으며 이 모든 것은 참가자들이 의식하지도 못하는 무의식의 영역에서 일어났다. (PESSIGLOINE M, SCHMIDT L, DRAGANSK B, et al. How the brain translates money into force: a neuroimaging study of subliminal motivation [ J]. Science, 2007, 316 (5826) : 904 - 906)
즉, 이 모든 사실들을 종합해봤을 때 ‘자존감이라는 말은 헛소리고 / 실제 사람이 타인에게 고통을 당할 때 우리를 도와주는 것은 돈이 주는 강력한 심리 안정 효과’ 라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한국 사회는 물질만능주의를 경계하며 돈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이 터부시 되는 사회다. 하지만 최근의 현대 논문들은 고통을 경감시켜주는 진통제로서 돈이라는 도구의 효용성과 인간이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게끔 하는 강렬한 욕망의 촉진제로서 돈 자체에 주목하고 있다. 자존감 같은 추상적인 이야기나 하며 돈을 악으로 규정하고 멀리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란 소리다.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 번 해보겠다. 2017년 5월 경, 나는 뼈빠지게 노동으로 번 돈을 암호화폐 투자에 투입했었다. 당시 세계 1위의 코인 거래소는 poloniex라는 해외 거래소였다. 한국 거래소에 워낙 코인이 없었기에 비트코인을 사서 그곳으로 옮겼다. 그리고 거기서 이상한 잡코인들을 샀다가 1달만에 내 전 재산이 4분의 1토막 나는 사건을 겪었다. 수 많은 노동을 하며 그야말로 피 눈물 나게 모은 돈이었다. 그런 돈을 한 순간에 날려버리니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당시, 나는 대학교 4학년이었는데 방학이 시작한 6월부터 8월까지 하루 2~3시간만 자며 온갖 해외 자료를 보고, 차트 공부를 하고, 코인 소스코드를 뜯어보며 미친듯이 암호화폐를 공부했더랬다. 수능 공부를 할 때도 이렇게 열심히 안했는데 내 노동으로 번 돈이 다 날라갔다는 절망감과 내가 잃은 돈을 어떻게든 복구하겠다는 마음이 어마무시한 동기부여로 결합되어 진짜 미친듯이 공부를 했다. 지금 다시 하라고 해도 그렇게는 공부를 못할 정도로 식음을 전폐하며 코인 공부만 했다.
다행히 2017년 당시에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코인이 뜨지 않았을 때고 (비트코인이 겨우 200~300만원 대였다.) 한국 자료가 아닌 외국의 최신 자료들을 공부한 결과, 좋은 코인들을 발굴 할 수 있어서 곧바로 원금인 4배 수익을 찍고 나중에는 이 때 공부한 내공을 바탕으로 200배에 가까운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됐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당시 내가 수능 공부 할 때보다 더 큰 열정과 노력을 암호화폐 공부에 쏟을 수 있었던 비결은 ‘돈’ 때문이었다. 위에 적은 사이언스지 논문이 말해주는 것처럼 어떠한 고난이도의 미션이던지 돈이 절실하게 달려있다면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최대한의 에너지가 쏟아져 나오게 된다.
그런데 내가 최근에 군대를 다녀오면서 이런 헝그리 정신이 다 사라졌다. 일단, 군대라는 곳은 돈이 있던 없던 힘든 곳이고 그곳에서는 돈이라는 관념을 생각할만한 사건도 기회도 오지 않는다. 즉, 돈이라는 재화가 생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이 사회와 동떨어진 세상으로 자본주의의 가치가 0에 수렴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2년 가까이를 보내고 얼마 전 전역을 했는데, 성균관대 컴퓨터교육과 후배인 EOH가 1달 전 이런 카톡을 보냈다.
내용인 즉슨, 카카오 그룹이 만든 암호화폐 클레이튼 (코인원과 빗썸에 상장되어 있음)이 한국은행의 CBDC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발행) 사업에 참여한다는 것이었다. EOH는 지금 이 순간이 미래에 큰 영향을 주는 순간 같다며 3억원 정도의 현금을 클레이튼에 박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당시 이 이야기를 듣던 나는 “군대를 다녀오니 돈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다. 돈 벌면 뭐하냐 어차피 군대에서 쓰지도 못하는거. 내가 얼마가 있던 전역은 살 수 없고 자유는 구속되어 있었다.” 라는 말을 하며 EOH가 밥 떠먹여서 숟가락을 입 앞에 가져다댔는데도 클레이튼을 하나도 사지 않았다.
그리고 8월 14일, 3주가 지난 시점에서 1140원이던 클레이튼 가격은 2080원으로 근 2배가 올랐다. (심지어 글을 쓰는 지금은 더 올랐다.) 이 기간 동안 EOH가 번 수익은 235,912,708원. 남들 10년 일해서 모을 돈을 한 달도 안되는 기간에 벌어들였다.
EOH와 나는 2017년 초부터 코인 투자를 같이 시작했다. (돈이 4분의 1토막 나는 어둠의 시기를 같이 헤쳐가며 2~3시간만 자면서 코인 공부를 함께 했던 사이다.) 이 친구는 수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재다. 유튜브 구독자 5만명에 수학 교재 판매와 수능 강의로만 년 억대를 번다. 자신이 보유한 이 능력을 활용해 산술적으로 차트를 분석하고 베팅 알고리즘 짜서 좋은 코인을 매수할 타이밍을 추천해주는데 승률이 거의 90%에 육박한다.
더군다나 나는 군대에 2년 동안 갇혀있느라 코인에 대한 분석력도 감도 많이 잃어버렸다. 입대하자마자 코로나가 터져 사회에 거의 나오지도 못해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았다. 그런데 이 친구는 이 시기에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만 4년을 정진하며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었더랬다. 이런 엄청난 친구가 다년간의 투자 짬밥과 탁월한 분석력으로 나를 떠먹여줬는데도 이걸 안 샀다. 솔직히 수익률이 20% 정도 내외만 되었어도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2배에 육박하는 수익률이 3주만에 나와버렸다. 내 재산이 2배가 될 수 있었던 기회를 발로 걷어차버린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되니 눈이 번쩍 떠졌다. "와.. 몸은 전역했어도 마음은 군대에서 아직 못 빠져나왔었구나. 생각해보니 내가 원래 살던 세상은 자본주의 사회였지. 군대가 아니었지. 돈이 무용지물 되어버리는 특수한 군대 PTSD 때문에 2억 3천만원을 3주만에 날려버렸네"
물론 예전처럼 원금이 4분의 1 토막 난 것은 아니다. 가질 수 있었던 기대 수익을 못 가진 것이다. 하지만 항상 함께 수익을 보던 친구가 훌륭한 분석력으로 내게 돈을 떠먹여줬는데도 군대 마인드 때문에 사지 못하다니 이 얼마나 멍청한 판단인가. 2억이 넘는 돈이 날라갔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2017년 5월처럼 개 빡쳐서 다시 엄청난 열망과 동기부여가 되살아나려 한다.
나이 먹고 군대 가서 이것저것 안에서 당한게 많아 위의 절강대학교 심리학 실험처럼 여러모로 우울하고 힘든 점이 많은 군 생활이었더랬다. 그래서 더 돈을 멀리하게 되었는데 생각을 잘못해도 단단히 잘못하고 있었다. 최신의 심리학 연구 결과처럼 돈을 많이 벌 생각을 해야 한다. 그래야 누군가에게 당한 것에 대한 심리 치료가 이루어진다. 금융 치료라는 말은 실제 과학적으로 입증된 이론이다.
누가 나를 욕하던 / 누가 나를 따돌리던 / 누가 나를 소외시키던 돈이 주는 강력한 심리 효과는 이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준다. 내가 어떤 것에 대해 공부하기 싫거나 노력하기 싫을 때도 그 분야가 돈과 절실하게 연결되면 내 몸이 자동으로 알아서 공부하고 노력한다. 사람들이 돈 버는 것을 터부시하고 욕해도 지금의 인류 번영을 만들어낸 것은 자본주의다. EOH가 옆에 있었기에 자본주의에 대한 개념을 파괴시키는 군대 PTSD가 극복되면서 정신을 좀 차리게 됐다. 다시 들어가자. 자본주의 세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