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동안의 세계여행을 마치고 7월 중순 귀국을 했다. 사실 출국 할 때만해도 1년 동안의 계획을 잡고 외국으로 나갔었다. 그런데 막상 지내다보니 계획이 수정되어서 귀국을 하게 됐다. 돌아온 가장 큰 이유는 4년 동안 휴학을 했던 로스쿨에 복학을 하기 위해서다.
태국 후아힌에서 바닷가를 거닐며 재밌게 놀던 중 연락을 한 통 받았다. “귀하는 휴학 년수를 모두 채웠으므로 다음 학기에 복학을 하지 않으면 로스쿨에서 자동 제적된다.”는 내용이었다.
고민을 했다. “이대로 제적을 당하느냐? 복학을 하느냐?” 사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무조건 제적을 당하는 쪽으로 갔을 것이다. 나는 답도 없는 자본주의형 헬조선 상대평가 변호사시험 합격률 50%에 인생 리스크를 걸고 싶지 않았거든.
직장을 안 다녀도 될만큼 코인으로 넉넉하게 모아둔 돈도 있고, 카투사 나와서 영어도 되니 씹선비 유교문화가 가득한 조선반도에서 살 생각이 1도 없었다. 그런데 상황이 좀 달라졌다. 일단, 캄보디아에서 답도 없이 느린 인터넷 + 시도 때도 없이 전기가 나가는 정전 크리 때문에 루나 코인 사태에 제대로 대응을 못해 엄청난 돈을 날려버리는 사건을 겪었다.
(당시에 멘탈이 개 박살나서 쓴 글)
남아 있는 돈을 아껴쓰면서 살면 해외에서 오래 버틸 수는 있겠는데, 이것도 하루이틀이지 이 정도 모아놓은 돈으로는 일을 안해도 되기만 할 뿐, 부유하게 살 수는 없겠다는 위기감이 몰려왔다.
김어준이 MB가 자기를 자꾸 탄압하자 “뭐 어때~ 가난하게 살면 되잖아요.”라는 자본주의에 초연한 거의 스콧 니어링 수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걸 보며 오 발상의 전환이 개쩌는데? 싶었는데 그건 김어준이니깐 가능한거고. 나는 가난하게 살기 싫었다!
사실 이 루나 사태에 개털려버린 것도 이유는 이유인데, 그것보다 더 큰 로스쿨에 복학을 하게 된 이유는 따로 있다. “백수로 사는 것도 너무 힘들다는 점.”과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헷징(리스크를 줄이는 투자 기법) 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는 점” 이 그것이다. 혹시나 진로 고민을 하거나 로스쿨 입학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부분에 대해 자세히 적어보겠다.
첫번째, 백수로 사는 것도 힘들다.
나는 2018년 1학기 때,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을 하고나서 법 공부는 안하고 코인만 했다. 진짜 죽어라 코인만 했다. 로스쿨이라는 곳은 입학하고 나서 기본적으로 민법, 형법, 헌법이라는 3가지 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독보적인 제3의 길을 개척해서 이 헌민형을 단 한 과목도 수강하지 않고, 일명 잡법이라고도 부르는 이상한 법 과목들만 수강을 했다.
원래는 이 강의들조차 수강하지 않고 바로 휴학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1학년 1학기를 이수하지 않으면 휴학이 안된다는거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학습량이 널널한 과목 위주로 선택을 해서 적당히 출석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코인 전업 트레이더로 인생을 몰빵쳤다.
이럴거면 로스쿨을 왜 들어왔냐고? 내가 이곳에 들어온 이유는 내 블로그 자기소개 글에도 적시해뒀지만, 내가 미필자라서 군대를 미뤄야 하는데 여기에 들어가면 자동으로 군대가 연장되는 상황이기에 그랬다. 엄청난 기회의 파도인 코인 붐이 일어나고 있는데 군대에 강제로 끌려 갈 수 없었거든.
또 내가 수능 입시 4수를 할 때 항상 성적이 좋았던 과목이 언어 영역이었다. 로스쿨에 입학하려면 LEET라는 점수를 봐야 하는데, 수능만 4년을 준비했던 짬밥을 투입하니 성적이 꽤 잘 나와 현재 기준으로 123.6점 (당시 성적표는 118.6점이나 표점 계산 기준이 바뀌어 요즘 점수 기준으로는 5점 +)이라는 점수를 맞고 지방 거점 국립대 중 하나에 입학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난 한 학기만 다니고 바로 휴학을 때렸다. 지거국 기준으로 일반 휴학은 총 2년까지 가능하다. 나는 이 기간을 모두 다 쓰며 합법적으로 군대가 미뤄진 상태로 코인 전업 트레이더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이게 말이 크립토커런시 트레이더지, 사실 상 본질은 백수와 다름 없다. 가상화폐란 24시간 돌아가는 세계 시장이다. 그러니 정해진 스케쥴이 없어 내가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트레이딩 하고 싶을 때 하며 말 그대로 고삐풀린 망아지와 같은 상태로 100% 방종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거기에 내 투자 주 종목이었던 아비트리지 거래는 스프레드를 먹는 기회를 계속 포착해야 하니 컴퓨터 앞에 하루 종일 앉아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생활을 1년 넘게 하면 내가 히키코모리인지? 정상적인 인간인지? 헷갈리는 지점을 마주하게 된다. 그럼에도 매일 재정거래 각이 보이니 계속 컴퓨터를 붙잡고 있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나는 그렇게 백수 + 히키코모리 생활을 2년 가까이 하고 주한 미군 카투사로 군대에 입대하게 된다. 군대를 미뤄서 결국 카투사로 갈 수 있었으니 군대 존버 투자가 떡상하기는 했다.
그렇게 전역을 한 후 몇 개월 동안 잠시 또 코인 트레이더의 삶을 살다 무작정 세계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었다. 즉, 나는 일반 휴학 2년 + 군 휴학 2년 모두를 풀로 채워 로스쿨에서 쓸 수 있는 모든 휴학 카드를 다 써버리게 되었다.
이 말은 바꿔 말하면 내가 사회인으로서 정상적인 궤도에 벗어나 백수의 삶을 산 것이 4년 가까이 되었다는 의미가 된다. 무한한 자유가 있는 백수의 삶을 1년 정도 살 때까지만 해도 행복하다. 잠도 실컷 잘 수 있고 제약 받는 것도 없으니깐. 그런데 이게 횟수로 4년에 가깝게 되면 극심한 현타가 오게 된다.
대한민국 사회가 만들어놓은 중, 고등학교 시스템 / 대학교 학사 시스템 / 대기업 근무 시스템 등. 결국 이 모든 사회 조직의 공통점은 시스템이 개인의 ‘생활 습관을 확립해주고’ /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 ‘시험이나 승진 등으로 주기적인 목표를 주면서' / 긍정적 긴장감을 준다는 것에 있다.
물론 이런 시스템이 주는 엄청난 폐혜와 단점도 많다. 하지만 4년을 시스템에서 벗어나 지내다보니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이 보이더라. 특히 나는 크립토커런시 트레이더를 가장한 백수 생활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사회의 입시 시스템과 경제 시스템 안에서 많은 성과를 내며 살아왔던 사람이었다.
단체와 조직이 제공하는 아늑한 시스템에 다시 편입되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백수 생활이나 세계여행은 나이가 들어서도 다시 할 수 있지만, 로스쿨 공부는 지금 아니면 평생 못할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한국으로 돌아와 로스쿨에 복학한 첫번째 이유다.
두번째, 변호사 시험에 대한 공매도 헷징 전략.
나는 단순하게 주식이나 코인을 사고 파는 투자를 싫어한다. 이거는 앵무새나 원숭이도 할 수 있다. 그냥 매수 or 매도 버튼만 누르면 되는거거든. 투자의 기본은 ‘리스크를 없애는 것’이다. 어떤 주식이나 코인을 사고 오르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도박과 다름없다. 50%라는 확률에 내 재산을 맡기는 무모한 행위다.
내가 코인에서 자본을 창출한 방법은 리스크가 0%에 가까운 무리스크 투자로 중국 YUNBI 거래소와 한국 거래소 간의 위안화 - 원화 페어에 대한 스프레드 차이를 먹는 방법이었다. 일명 아비트리지라는 기법으로 워렌버핏 또한 맨 처음 주식 투자를 할 때 미국의 주마다 다른 거래소 별 종목 가격을 이용해 차익 거래를 먹는 무리스크 투자를 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결국 리스크를 얼마만큼 헷징하느냐가 성공 비결이다. 응시자의 겨우 반 밖에 못 붙는 변호사시험에 도전한다는 것은 도박 중의 도박으로, 동전던지기에 인생 전체를 맡기는 것과 다름이 없다. 거기에 변호사시험은 사법고시와 다르게 오탈자 규정이 있어 5번 안에 못 붙으면 평생 변호사가 못된다는 카지노 바카라 투기장 뺨치는 말도 안되는 리스크까지 있는 상황이다. 이게 도박이 아니면 어떤게 도박인가? 심지어 일반 도박은 그냥 돈만 날리고 끝나는데 변호사시험 도박은 인생도, 청춘도, 시간도 모조리 싸그리 날리는 어마무시한 리스크를 지녔다.
사실 내가 로스쿨에 복학하지 않으려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나의 투자 원칙은 절대 리스크를 감당하지 않는 것이었으니깐. “헷징 할 수 없다면 투자하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가진 제1의 매매 원칙이다. 나는 일반 트레이딩을 해도 반드시 1배 숏으로 리스크를 줄인 상태로 매수 포지션에 들어가는 사람이다. 그런데 인생 코인을 건 매수에 헷징 전략이 없다? 절대 안되지. 그러니 로스쿨 제적을 당하거나 자퇴 할 수 밖에. 이게 원래 내 생각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말 놀랍게도 변호사시험에도 헷징 전략이 있었다. 이것은 내가 발견한게 아니다. 나하고 예전에 국회의원실에서 같이 일을 했던 현재는 변호사가 된 김OO 형이 알려주었다. 이 방법을 듣는 순간, 나는 이 형이 인생 투자의 귀재에 천재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일단 나는 백수 생활을 오래하면서 앞으로 진로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이 블로그에 [타인의 삶] 이라는 컨텐츠로 주변인들을 인터뷰 하기 시작했다.
https://m.blog.naver.com/no5100?categoryNo=41#postlist_block
[이런 글들이다.]
이 헷징 아이디어는 이 인터뷰 과정 중 나오게 된 것으로 만약 이 인터뷰를 진행하지 않았다면 나 또한 결코 알지 못했을 아이디어였다. 이런 것을 보면 잘 모를 때는 주변의 고수에게 물어보는 것이 최고다. 내가 보지 못하는 관점을 넓혀주고 큰 시야를 가져다준다.
이 형이 제시한 아이디어는 이렇다.
내가 가진 조건 : 국립대 로스쿨. 이 국립대에서만 이용 할 수 있는 특별한 규정이 존재함.
이 형은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는데, 자기가 학교를 다니면서 어? 국립대는 이 규정이 없네? 이거 잘 이용하면 꼼수처럼 사용 할 수 있겠는데? 라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생각났단다. 다만, 자기는 이걸 실천하지 않고 그냥 변호사시험을 봐서 변호사가 됐다고.
원리는 이렇다. 로스쿨도 나름 ‘석사’ 학위를 주는 곳이다. 사람들이 변호사시험에만 꽂혀 있어서 이 제도 자체가 대학원의 ‘석사 학위’가 나오는 곳이라는 것에 초점을 잘 두고 있지 않다. 보통의 일반 대학원은 석사 학위를 논문을 써서 받게 된다. 그런데 로스쿨은 특수목적의 대학원이니만큼 이 논문 절차를 생략하고 형식적으로 ‘졸업 시험’이라는 것을 치룬다.
이게 사실 굉장히 형식적이라 모두가 붙는 시험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 형은 ‘뭐야? 학점 다 들어놓고 그냥 의도적으로 졸업 시험만 ‘응시 거부’하면 석사학위가 발급되지 않는거잖아? 석사학위가 나오지 않은 상태로 졸업에 필요한 학점은 다 채워놓았어. 그러면 어떻게 되지? 어? 수료 상태라는게 있네. 수료 상태에서는 변호사시험에 응시 할 수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5번 안에 시험을 못 보면 평생 변호사가 못 된다는 오탈자 규정에도 포함되지 않네? 뭐야? 그러면 이론적으로 수료만 하고 영구적으로 버티면 되는거잖아? 그러면 자퇴나 제적을 당하지 않고 언제든지 변호사시험을 볼 수 있는 상태로 나를 위치 시킬 수 있는거잖아?’
이 아이디어의 핵심은 바로 졸업시험을 일부러 응시 거부하는 것. 사립대 로스쿨과 같은 경우 몇 년 안에 반드시 졸업시험을 봐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국립대는 이런거 없다. 또한, 현재 와서 만든다고 해도 이미 입학한 사람들에게는 소급적용을 시킬 수 없다.
이 변호사 형이 내게 조언해준 내용은 어차피 지금처럼 이런저런 고민하면서 백수로 사느니 일단 로스쿨 제적 당하기 전에 복학을 해서 수료상태까지만 만들어놓으라는 것. 그리고 20년이고 30년이고 존버 타서 나중에 준비되면 변호사 시험에 도전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 아이디어를 듣고 이거야말로 인생 코인 공매도 1배 숏 헷징 전략이다. 와.. 이 형은 투자 말고 인생 리스크를 헷징하는 방법을 찾네. 천재다. 라는 감탄이 나왔다. 그 형이 말하길 법이라는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서 너 정도 머리면 변호사시험 붙을거 같기는 한데. 일단 열심히 해보다가 3학년 때 모의고사를 보는데 그거 성적 나온거 보고 답도 없겠다 싶으면 바로 졸업 시험 응시 거부 때려버리라고. 이렇게 수 틀렸을 때 수료해버린다는 보험을 깔고 가면 로스쿨 다니는 내내 마음 편하게 공부 할 수 있을거라고. 자기도 원래 이렇게 하려고 했다고. 그런데 시험 점수가 잘 나왔다고. 이게 오히려 보험을 까니깐 마음이 편해져서 성적이 잘나온 것 같다는 등의 이야기를 해줬다.
내가 이 정보를 크로스 체크 하려고 내가 다니는 국립대 로스쿨에 전화해서 물어보니 살짝 당황한 눈치이기는 했지만, 이 이론을 현실화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래. 이거다. 내 선택을 주저하게 만들었던 변호사시험에 대한 리스크를 헷징 할 수 있으니 로스쿨에 복학 신청을 넣었다. 이것이 내가 법학전대학원으로 돌아온 두번째 이유다.
추가적으로 덧붙이자면, 현재 대한민국은 합계 출산율 0.72로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보이고 있다.
사람들은 ‘나라 망했다.’ / ‘대한민국 멸망했다.’ 라며 당장 큰일 날 것처럼 이야기 한다. 물론 당연하게도 이 출산율이 거시적으로 대한민국에 미치는 영향은 부정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개개인의 인생에서도 그럴까?
나는 위기는 곧 기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예전에 사업을 할 때도, 투자를 할 때도 큰 위기가 오면 반드시 큰 기회도 함께 올 때가 많았다. 현재 이 출산율은 위기다. 국가 전체에는 당연히 큰 위기고 경우에 따라 개인에게도 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이 출산율이 개인에게 엄청난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2022년 현재 우리나라의 신생아 수는 20만명을 간신히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아이들이 커서 20살, 30살이 된다면? 그 때 과연 우리가 아는 대학교 중 얼마나 남아있게 될까? 또한 로스쿨 정원이라는게 지금처럼 연 이천명으로 유지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이 출산율이면 대학교의 상당 수는 폐교 될 것이고 로스쿨 정원 또한 반드시 조정되는 시기가 올 것이라 보고 있다. 저렇게 적은 인구가 로스쿨에 진학할 시기가 오면 분명 여러 로스쿨들도 통폐합을 거쳐 총 정원이 1000명 미만이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 예측한다.
그러면 변호사를 뽑는 수도 줄어드는 것 아니냐고?
현재 한국의 인구 수 당 변호사 수는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지금처럼 1년에 1600~1700명 규모로 뽑는다고 해도 10년이 지나봐야 16000명 늘어나고 20년이 지나봐야 32000명 늘어난다. 한참 부족하다. 물론 기존의 법조계 카르텔이 강력해 추가적으로 뽑는 인원을 계속 막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법조 시장의 수급 불균형이 존재하는 이상 이 합격 인원을 확 줄일 수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신규 변호사의 수가 비슷하게 유지되는 상태에서 학령인구 20만명 시대가 열려 로스쿨 정원이 팍 줄어들게 된다면? 앞으로 족히 20년은 지나야 될 일이겠지만 나는 변호사 시험 합격률이 지금처럼 50%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1회 변호사시험 때처럼 87%에 육박하는 합격률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만약 이런 수치가 열린다면 나는 당장 졸업을 해 변시에 응시 할 것이다. 이 정도 합격률이면 무조건 도전해야 하는 수치다.
40살에 변호사가 되나 50살에 변호사가 되나. 어차피 평생 라이센스이기 때문에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최소의 비용을 투입해서 가성비 있게 산출물을 뽑아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때문에 나는 변시 공부를 해보다가 답이 없겠다 싶어 알고리즘 선택을 수료로 잡는다해도 20년 동안 존버 타서 저 세대랑 같이 변호사시험을 볼거다. 그렇게 50살에 변호사 될거다. 비트코인 20년 존버하는 사람도 있는데 변호사시험이라고 20년 존버 못할 것이 뭐가 있는가? 물론 이 주장은 불확실한 예측에 희망회로가 가득한 이론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긍정성을 가지고 예측해본다.
이상 이러한 전략을 가지고 나는 로스쿨에 복학을 했다. 결국 투자도 인생도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면서 가야 한다. 그러지 않았다가는 큰 코 다친다. '설마 나는 아니겠지?' 이런 안일한 생각을 가지다가는 인생뽑기 동전 던지기 게임에서 꽝에 당첨될 수도 있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