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청이라는 사람이 쓴 <역행자>라는 책에 재미있는 표현이 나온다. 이 분이 2019년 라이프해커 자청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구독자 16만명 정도를 달성하자 그 당시 잘 나가던 유튜버들의 모임에 초대받았다고 한다. 그곳에 가자 조회수와 구독자수가 많은 사람이 권력을 차지했다고.
이 사람들은 완전히 여기에 매몰되어 다른 유튜버들에게 공격을 받거나 구독자 수가 빠져나가면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자청이라는 저자는 이것을 ‘세계관’이라고 표현했는데 어느 순간 자기도 여기에 매몰되어 평범한 일반인들과 만나서 대화 할 때 “구독자가 100만이라는 것에 놀라지 않고” , “100만 유튜버를 천박한 직업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단다.
즉, 자기가 이 세계관에 빠지다보니 평범한 일반인들의 시선으로 유튜버들을 바라보지 못하는 착각에 빠지게 됐다고. 나는 저자의 이 주장을 읽으며 세계관이라는 표현이 재밌고 굉장한 인사이트란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나도 이 세계관 오류에 빠져 살아왔다. 예를 들어, 나 같은 경우는 대학교에 다닐 때 학점 경쟁에 크게 몰두를 했다. 왜냐면 내 주변의 동기들이 모두 학점을 따는데 급급했으니깐. 학점이라는 세계관에 나를 내맡겼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이를 잘 따서 졸업을 해보니 인생에 하등 쓸모가 없는게 이 점수다. 당시에는 주변 모두가 그 세계관에 매달려 있으니 당연히 이 세계관을 세상 모두가 믿는다는 ‘착각’을 하고 살았다. 그런데 막상 졸업을 해 일반인들의 시선으로 보니 아무짝에도 쓰잘데기 없는 헛짓거리였던 것이다.
이것은 코인 투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코인 투자를 하던 시절 내 주변의 친구들과 인터넷 커뮤니티 사람들이 모두 이 이야기만 하니 당연히 세상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코인 투자를 하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정작 자청이라는 분이 유튜브를 빠져나와 다른 세계관을 접하고 자기가 얼마나 특정 사람들만 공유하는 세계관에 갇혀 있었는지를 알고 충격받았듯, 코인 투자를 그만두고 접한 사람들이 이것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도박으로만 생각한다는 일반적인 시선이 내게는 큰 충격이었다.
이 착각은 결국 인간이 볼 수 있는 인지적 한계가 명확하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내 주변에는 책을 많이 읽는 것을 자랑하며 책이 모든 것의 만병통치약인양 여기는 ‘독서’ 세계관에 빠진 사람이 있고, 블로그 운영에 매진하며 방문자 수에 집착하는 ‘블로그’ 세계관에 빠진 사람이 있다. 그런데 나조차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있으니 이 세계관을 빠져나오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서 나도 블로그를 하고 독서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게 인생에 하등 쓸모 없는 학점따는 것과 같은 세계관일 확률이 높은데도 말이다.
EBS 다큐프라임 “인간의 두얼굴” 편에는 이런 실험이 나온다.
- 실험자를 방에 들어가게 한 후 문제를 풀게 한다. 이 때 제작진이 일부러 연기를 피운다. 여기서 문제를 푸는 사람들 중 1명만 실험자고 나머지는 모두 배우다. 연기가 나자 실험자는 두리번거리며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본다. 이 때 미리 지시를 받은 배우들은 연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아무 반응을 하지 않는다. 그러자 실험자들은 아무런 신고도, 방에서 나가지도 않고 꼼짝 없이 연기를 다 들이마시며 다른 사람에 맞춰서 행동했다는 내용이다.
얼마나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과 자신이 처한 상황에 세계관이 영향 받는지 보여주는 실험이라고 본다. 이 연기 안에서 가만히 있던 사람들처럼, 나도 주변 사람들이 다 학점을 따니깐 바보 같이 귀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이 점수를 따는데 낭비해버렸던 것이다. 그 학점 아무도 안 알아주고, 지금 와서보니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데도 이 개 쓰잘데기 없는 행동을 무려 4년이나 했다. 그동안 내가 날린 시간과 에너지가 얼마나 컸겠는가.
그런데도 절대 벗어나기 쉽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아마 다시 돌아가도 이 행동을 벗어나기 쉽지 않을거다. 이성적으로 다 아는데도 불구하고 감정적으로 이 분위기를 거부하기가 절대 쉽지않다. 왜? 주변 사람 모두가 다 이렇게 행동 하니깐. 그만큼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주변 사람에게 영향을 덜 받는다고 자부하는 나조차도 막상 말과는 달리 실제 해왔던 행동들은 어마무시하게 사회적이었다. 복기를 하다보니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들 정도로.
내가 아까 쓴 ‘우월감’이라는 글만 해도 그렇다.
내 주변에는 우월감 세계관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많다. 나를 포함해서 여러 명이. 그런데 정작 이 글을 나머지의 일반 세계관에 사는 사람들 읽으면 아무런 공감도 안될 뿐더러, 이게 현실에서 실제 존재하는 일인가?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10년을 이 세계관에서 이런 사람들을 많이 보고 살아왔는데 이게 일반적인 세계관에서는 용납이 안되는 행동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글쓰기를 하는 것도 사실 알고 보면 이렇다. 내 주변에는 블로그 글쓰기를 하고 책을 많이 읽는 그런 사람들이 몇 있다. 이 세계에서는 조회수, 공감수, 구독자 수가 나름의 지표다. 일반인 세계관에 있는 사람들이 보면 뭐 저런 쓸데없는 것에 집착해라는 소리가 나올 지경인데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신경을 쓴다. 이게 얼마나 헛짓거리인지 이성적으로 알면서도 감정적으로 벗어던지기가 어렵다. 그만큼 세계관이라는 것은 어마무시하다.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멍청한지. 왜 착각으로부터 도무지 벗어나지 못하는지. 대학교 때 쓸데 없는 학점 세계관에 매몰돼 그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으면서 왜 여전히 잘못된 프레임을 빠져나오지 못하는지 자괴감이 든다. EBS 다큐프라임의 실험에서 연기를 모두 다 들이마신 사람들과 내가 도대체 뭐가 다른가?
정말 큰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YES를 할 때, NO라고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세계관이든 한발짝 떨어져 빠져나오는 강단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것이 없는 것 같아 반성을 하며 글을 쓴다. 이 글쓰기 행위 자체도 일종의 세계관이라 매몰되기 싫어 조만간 자제할 듯 싶다. 사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글쓰기라는게 쓸데없는 일 맞거든. 마치 학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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