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만 고백하건데 나는 우월감이 있다. 아마도 이 감정은 경쟁에서 승리했다는 자아도취에서 나온 것일거다. 고생해서 열매를 얻었으니 뿌듯함을 가지는 것은 누구나 당연하다. 그런데 이게 우월감으로 변화하는 순간 굉장히 심각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나 또한 최근 이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알게 모르게 아주 많이.
겉으로 겸손한 척 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 사람의 내밀한 내면까지 겸손해지는 것은 쉽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우월감을 내뿜을 때의 보상은 확실하게 보이는 반면, 겸손해졌을 때의 보상은 잘 보이지 않아 그럴 것이다. 어떤 일이든 보상이 있는만큼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우월감은 당장의 보상이 가득한 과실과 같다. 사람의 자존감을 올려주고, 인정 욕구를 충족시켜주며, 도파민이 분비된다. 하지만 이 행동에는 대가가 따른다.
현대 사회는 과거처럼 물리적으로 싸우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 대신 정신으로 싸우는 전쟁을 한다. 대학 입시에서는 소수의 몇 프로만이 명문대에 입학한다. 취업 전선에서는 소수의 몇 프로만이 좋은 직장에 입사한다. 사회에서는 소수의 몇 프로만이 부를 독점하며, 창업에서는 소수의 몇 프로만이 상장에 성공한다.
한 마디로 경쟁이 아닌 곳이 없다. 세상이 온통 남을 이기고 올라가야만 하는 전쟁판이다. 이 전쟁터에서 이긴 사람들은 응당한 보상을 원한다. 명문대생들이 지방대생들을 지잡대라고 무시하는 현상, 정규직들이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현상, 대기업들이 하청업체를 쥐어짜는 현상들은 모두 승리자들이 보상을 원해 나타나는 모습들이다.
그 결과 약육강식 아사리판의 승리자들은 우월감에 도취되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그렇고 내 주변에서도 이런 사람들을 자주 보고 살아가니 확신 할 수 있다. 내가 거쳐간 곳들 중 특히 이런 사람들이 많았던 3개의 조직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성균관대학교 : 이것은 꼭 내가 졸업한 성균관대 뿐만 아니라, 비슷한 명문대 학생들이 자주 보이는 행태들이다. 에브리타임 같은 학내 구성원들이 가입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나 내 주변의 대학 동기들만 봐도 대놓고 혹은 은연 중 지방대 학생들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기들은 힘들게 공부해서 좋은 대학 왔는데 그 시간에 그 애들은 뭐했느냐 이거지. 엄청난 우월감의 발로다. 그런데 사실 공부라는 것은 환경과 부모의 경제력이 굉장한 영향을 미친다. 통계에 따르면, 서울대 입학생의 70%가 부모가 경제력이 높은 어릴 때 사교육을 잘 받은 강남권 학생들이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 같이 실업계 출신에 가난했던 사람도 좋은 대학에 오지 않았느냐고 반론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예외적으로 뾰록이 터진 사람이다. 거기에 4수까지 했고 그렇게 공부했는데도 서울대를 못 갔다. 나 같이 뾰록 터진 사람을 사례 삼아 환경이나 부모의 경제력과 상관 없이 대학 입시에 성공할 수 있다는 노오력 예찬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 나는 예외적으로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니깐. 가난하다고 무료로 인강을 보내준 권규호 선생님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고. 이게 운빨이지 뭐야. 그리고 애초에 나처럼 노오력으로 어떻게 뾰록 터져 극복한 사람조차 우월감을 안 가지려 노력하는데, 왜 환경이 좋았던 자기들이 멋대로 지방대 학생들을 무시하는가. 결국 이런 사고는 대가로 작용해 칼날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2) 대한민국인재상 : 이 집단이 정말 재미있는데,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인재상 모임에서 접한 많은 사람들이 심각하게 우월감에 빠져있었다. 사실 이 집단은 지금껏 내가 본 어느 집단보다도 가장 이 현상이 두드러졌다. 물론 당연히 여기에도 정상적이고 좋은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낮은 자존감을 인재상이라는 스펙으로 덮기 위해 자위질을 하고 있더라. 살면서 이런 상도 탔어 하고 적당히 뿌듯해하며 넘어가면 될 일을 목숨을 걸고 여기에서 우월감을 느끼려 한다.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낮은 자존감에 대해 고찰 해 볼 필요가 있다.
3) 로스쿨 : 사실 로스쿨 학생들보다는 졸업 후 변호사나 검사가 된 사람들이 이런 우월감을 많이 보인다. 이런 전문직 직업들은 대학 학벌이나 인재상 수상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어마무시한 권위를 부여받는다. 특히 검찰 집단이야 말로 ‘엘리트주의’에 빠져 일반 국민들과 동떨어진 사고와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많은 진보 언론에서 검사 집단의 비상식적 행태를 비판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진보 언론조차 권력이 주는 우월감에 빠져 기득권 놀음을 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의심스럽지만, 그들이 말하는 엘리트주의에 대한 비판은 굉장히 일리가 있다.
이 외에도 우리 사회 어디든 곳곳에 우월감에 빠져사는 사람들이 많다. 하물며 내가 삼수생 시절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할때, 그 편의점 점주도 우월감에 빠져 자기 자랑을 하지 못해 안달인 사람이었다. 도대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왜 우월감을 거부하기 힘든 것일까? 이게 주는 보상과 대가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보상
1. 자신감 향상
2. 낮은 자존감을 커버쳐주고 마약처럼 나르시시즘 뽕 맞게 해줌
3. 내 경험 상 자랑을 할 때 도파민이 분비가 됨. 일종의 쾌락으로 작용 함.
4. 인정 욕구의 충족.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는 말처럼 사람들은 인정을 받는 것에 미쳐있는데 우월감을 느끼면 인정받는다는 기분이 듬.
5. 어떤 것에 노력을 하는 동기부여가 됨. 이거 해서 성공하면 자랑해야지. 주변 사람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없던 에너지가 호랑이 기운으로 솟아남.
6. 자본주의 사회에 최적화가 됨.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소수만이 살아남는 구조라 전쟁터 그 자체인데, 우월감이 주는 테스토스테론 에너지는 이 경쟁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고 맞짱을 뜨는 것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줌.
대가
1. 졸라 재수없음
2. 특히 대중을 상대 할 때는 이렇게 하면 X됨. 그 이유는 경쟁은 소수만이 승리하는 구조. 대중들은 이 통계 구조 상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사람들이 대다수. 그런데 거기다 대고 우월감을 뽐내며 자랑한다? 미친거지.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바로 돌 맞음.
3.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게 함. 예를 들어, 나한테 심리적인 문제가 있거나 혹은 반드시 직면해야 할 문제가 있는데 우월감에 미치면 딴 세상에 정신이 가 있어 문제를 제대로 마주보지 못하게 만듬.
4. 가끔씩 재수 없는 행동으로 인해 인간관계 손절 당함. 우월감에 빠져 사는 사람을 비즈니즈 관계로 좋아 할 수는 있어도 누가 인간적으로 좋아하겠음.
5. 본인 자체도 왠지 모를 무언가의 씁쓸함과 찝찝함을 느낌.
6. 사람을 도전에 부담되게 만듬. 남보다 잘나야 하고 우월해야 한다는 생각에 실패에 대한 리스크가 있으면 애초에 도전조차 하지 않게 됨. 우월감이라는 감정은 남의 인정과 비교가 반드시 존재해야만 성립되는 감정. 때문에 이를 갈구하게 되어 오히려 행동하지 못하는 부담을 줌.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겠다. 우월감이라는 것은 마치 청나라 시대의 아편과 같다. 아편이라는 것도 소량만 흡입했을 시에는 긍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삶을 열심히 살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단다. 문제는 정도가 지나칠 때다. 그러는 순간 이곳에 중독이 돼 심각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우월감이라는 것이 언뜻 보기에는 보상도 많고 좋아보인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대가가 엄청나다. 보상이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반면 이 대가들은 뒤늦게, 간접적으로 작용하기에 당장 보이지 않는 것 뿐이다.
물론 우월감을 아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구든 경쟁에서 승리하면 그 보상을 얻고 싶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이니깐. 이 감정 자체를 아예 없애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적당히’ / ‘소량만’ 이다.
정도가 지나쳤을 때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이에 대해 메타인지를 해야 한다. 결국 우월감에 빠져 사는 많은 사람들이 범하는 우는 당장의 보상에만 집중해 보상-대가에 대한 산출 계산을 잘못한다는 것에 있다. 그렇기에 겉으로만 겸손하고 실제로는 겸손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반드시 대가가 있다. 우월감이라는 감정도 마찬가지다. 이를 말미암아 무의식적으로 경쟁의 낙오자들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그 대가를 인지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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