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의 '액션'

극단 LAS <대한민국 난투극>

by 김소연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개된다. 대한은 하필 아우디 옆에서 발차기를 연습하다가 사이드밀러를 부러뜨린다. 수리비 50만원을 물어주기 위해 노래방(이라는 간판을 걸어놓고 술을 팔고 도우미를 들이는 주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는데, 2차를 나간 손님의 차를 모텔 주차장에 옮겨 놓는 일은 꼬이고 꼬여 대한은 경찰과 함께 가게에 들어서고 만취한 고2 민국은 오바이트를 하고 있다.


4년차 9급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대한'. 교수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친구들로부터 놀림 당하는 '민국'. 현재는 고단하고 미래는 불투명한 청년들, 청소년들이 떠오른다. 연극은 이 두 인물에 '무술'과 유투브를 덧붙여 이야기를 엮어간다. 빈털털이 취준생 대한의 유일한 소일거리는 무술을 다루는 유투브 채널을 구독하는 것이고, 민국이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는 것은 홍콩무술영화 스타 견지단을 흠모하면서 무림의 고수가 되겠다며 무예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사건은 '대한'과 '민국'의 난투극에 도달한다.


'액션활극'을 표방하는 연극답게 무대에서는 종종 바람을 가르며 휘돌아 올라 멋지게 상대를 제압하는 무술 장면들이 펼쳐진다. 그러나 연극에서 전개되는 무예장면은 유투브 방송 장면이거나 대한과 민국이 자신들의 비루한 현실에서 그려보는 판타지이다.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대결은 대한과 민국의 난투극이 유일한데, 이들의 난투극은 그 판타지를 현실에서 '재현'해보고자 했던 것. 당연히 판타지는 현실에서 실현되지도 재현되지도 않는다.


두 인물이 얽혀들어가는 사건의 짜임새, 무예로 펼쳐지는 무대 위의 판타지 등이 긴장감과 활기를 만든다. 무예판타지의 활기는 단지 볼거리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판타지는 암울한 현실에 대한 '거리'를 만들어내고, 그 거리 즉 떨어져 본다는 것이 어떤 위안을 주기도 한다. 슬프거나 아픈 현실도 우리는 떨어져 웃으며 볼 수 있고 웃으며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하지만 이 연극에서 무예판타지는 단지 현실과의 대비 혹은 현실에 대한 연극적 비틀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무예는 사건의 출발이자(아우디 옆에서의 발차기) 도착점이다(대한과 민국이 난투극). 즉 인물이 행동하는 중요한 모티브이다. 그런데 바로 이 점에서 의문이 남겨지는 것이다. 왜 대한은 무예 유트브에 그렇게 빠져있는지, 왜 민국은 무림고수가 되고 싶은 것인지, 민국에게 무림고수란 말 뜻 그대로의 그것인지, 민국에게 '강하다'는 것은 무엇인지 등등의 질문들 말이다.


민국이 흠모하는 견자단이 무비스타인것처럼 무예는 영화의 표현을 자극하는 소재다. 대결의 긴장감은 물론 카메라 워킹이나 미장센 등을 통해 무예의 긴장감을 더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동사서독>처럼 정적인 무예영화도 있지만. 화려한 미장센이나 영상효과를 발휘할 수 없음에도, 연극 무대에도 무예 혹은 격투기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오르고 소재가 된 무예 혹은 격투기로 액션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그런데 창작자들이 액션의 긴장감과 장면의 활기에 대해 느끼는 유혹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대화하는 것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무대 위 배우들의 땀과 몸, 이들의 움직임이 만들어낸 공기의 진동 등 라이브의 생생함에도 불구하고 무대가 재현할 수 있는 긴장과 활기란, 이미 영화의 현란한 미장센에 익숙한 현대관객들을 설득시키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보니 격투장면은 종종 액션의 재현을 지양하는 방식으로 연출되기도 한다. 무대 위의 격렬한 대결로는 가장 고전적인 장면이 <햄릿>의 햄릿과 레어티즈의 대결일 것인데, 지금도 시대를 고증한 의상을 입고 배역을 맡은 배우들이 펜싱 연습으로 땀을 흘린다는 기사가 오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아예 총격전을 벌이기도 한다. (국립극단 <테러리스트 햄릿>(옌스-다니엘 헤르초크 연출, 2007년) 그러나 다른 한편 액션의 긴장감을 완전히 제거해버리는 방식으로 연출되기도 한다. 네크로슈스의 <햄릿>은 예의 장면에서 역시 칼을 든다. 그런데 햄릿과 레어티즈는 객석을 향해 정면으로 나란히 서있다. 그들 뒤로는 일군의 젊은이들이 역시 객석을 향해 서 있다. 이제 결투의 시작. 클로디어스가 펼쳐놓은 음모의 덫에 선 햄릿과 레어티즈가 정면을 향해 칼을 뻗고 일군의 젊은이들 또한 칼을 뻗는다. 그런데 무대 위의 젊은이들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미동도 없이 허공을 가르는 동작을 반복할 뿐이다. 대결의 긴장도 흘러내리는 땀도 숨소리도 없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공포스런 울음인지 허공을 가르는 칼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햄릿도 레어티즈도 그리고 젊은이들도 차례 차례 쓰러진다. 대결의 긴장감보다는 <햄릿>에 대한 연출자의 해석을 앞세우는 연출이다. 그런가 하면 <자객연전>(박상현 작, 이성열 연출, 2003년)에서는 표나게 영화의 미장센을 따라한다. 허공을 가르며 적에게 돌진하는 모습은 영화의 CG를 활용할 수 없는 연극무대에서 힘겹게 다른 배우들에게 들어올려져 나르는 식이다.


무예, 격투기를 소재로 한 작품들로는 무사를 주인공으로 한 <칼집 속의 아버지>(고연옥 작, 강량원 연출, 2013년), 권투선수가 주인공인 <뷰티풀 번아웃>(양정웅 연출, 2012년), 2009년 초연 이래 여러 차례 재공연 되고 있는 <이기동체육관>(손효원 연출) 등등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뷰티풀 번아웃>이나 <이기동 체육관>에서는 본격적인 액션보다는 그것을 준비하는 고된 과정이, 예의 땀과 생생한 몸으로 연출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실제이지만, 주인공들이 가 닿고자 하지만 가 닿을 수 없는 것을 환기하는, 그런 점에서 잠시 잠깐 나타났나 사라져버리는 판타지와 같다. 이들에게 대결은 피할 수 없는 삶의 고통이거나 이미 예정되어 있는 숙명과 같은 패배이다. 하여 액션은 현란함이 아니라 한계를 넘어설 수 없는 몸을 드러낸다.


격투를 다루는 또 한편의 흥미로운 작품은 <비평가>(후안 마요르가 작, 이영석 연출)이다. 이 작품은 비평가와 작가의 대화로 전개되는 2인극인데 등장인물의 면면에서 짐작되듯이 내내 연극에 대한 이야기로 전개된다. 막 성공적인 초연을 마친 작가와 관객들의 열광에도 불구하고 혹평하는 비평가의 대화는, 작가가 직접 자신의 작품을 비평가에게 설명하는 마치 긴 독백같은 장면으로 이어지는데, 작가가 쓴 작품이 바로 권투선수가 주인공이다. 작가는 비평가의 집에서 마치 그곳이 무대이기라도 한 양 스승과 제자의 대결을 오직 자신의 말로 그려간다. 라이브이지만 땀, 공기의 진동, 숨소리 등등 몸이 제거된, 오로지 작가의 말로 그 모든 것을 비평가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그려내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극단 LAS의 <대한민국 난투극>은 액션의 긴장감과 활기와 함께 유투브 영상, 주인공의 판타지 등을 연출하는 재기발랄한 장면만들기, 장면 전환 등의 볼거리가 있다. 그러나 예의 남겨진 질문들은 액션의 장면의 활기를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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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극단 LAS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pg/playtheL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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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극제 참가작

이기쁨 작 연출

동양극장3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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