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달하고 유연한 '고선웅'의 비극

극공작소 마방진 <낙타상자>

by 김소연

판소리(<변강쇠 점찍고 옹녀>), 원잡극(<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 이어 이번엔 현대소설을 각색한 경극을 저본으로 했다. 원작의 양식성을 마방진의 비틀기로 재해석하면서도 드라마적 긴장을 만들어내는 데에 이제 고선웅은 자기만의 방법론을 장착한 듯. 원작의 양식성이 활달한 연극성의 토양이 되면서도 드라마의 강력한 페이소스를 힘 있게 밀고 간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한국인의 초상>에서 보였던 모호한 작가의 시선도 안정적이다. (경극으로 각색된 희곡에 원작인 소설의 장면과 대사를 다시 추가한 듯한) 엔딩은 복자의 죽음에서 멈추는 경극과 달리 상자의 몰락과 세상의 꿈틀거림을 겹쳐놓는다. 처절한 패배에 이르는 한 인물로 조여가는 클로즈업과 억압을 향해 꿈틀거리는 세상을 펼쳐보이는 롱쇼트, 이 두 시점이 한 무대에서 공존한다. 한편 마방진의 스타일이 평면적일 수 있는 호호와 복자를 좀 더 풍부하게 만든다.

아쉬운 점이라면 몇몇 장면의 완연한 리듬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그리고 상자의 변화다. 상자로 분한 임진구는 2시간에 이르는 공연 시간 동안 연극을 이끌고 가면서 종마처럼 펄펄 뛰는 힘과 유연함을 보여준다. 반면 호호의 죽음 이후 거친 상자 그리고 엔딩의 몰락한 상자에서 '몸'의 변화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배우와 연출이 함께 고민해보았으면 한다. 폐목재 패널로 무대를 높게 두른 디자인은, 도시빈민이라는 인력거꾼의 피폐한 삶, 도무지 빠져나갈 수 없는 가난의 굴레를 환기하지만, 다른 한편 폐쇄성이 강조되면서 다양한 공간 변화는 아쉬움이 있다.


이제 규모 있는 공연들은 모두 공공제작극장에서 이루어지는 현실에서 이만한 규모의 공연이 민간극단 제작으로 올랐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스탭 중심의 프로젝트 그룹과 달리 마방진은 배우들이 중심인 극단이다. 이번 공연은 지난 해 낭독공연의 캐스팅이 거의 그대로 이어졌는데 이강(장용철)과 마씨(서창호)는 극단 외부에서, 조선생(조영규)와 유사장(장재호)은 마방진의 선배들이 캐스팅되었지만 상자(임진구), 복자(최하윤), 호호(홍자영) 등 주요인물들은 지난 해 낭독공연에 이어 마방진의 신예들이 맡았다. 대학로의 가장 좋은 자원들로 꾸려지는 제작극장공연의 매끈함과 달리, 함께 성장하는 극단의 앙상블은 매끈함은 덜 할지라도 그것대로의 매력이 있다. 이점은 한해에도 제작극장에서 오르는 수 십 편의 공연들 속에서도 여전히 민간극단 제작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예술감독제 도입 이후 서울연극제에서 이 역할이 좀 더 분명히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자 그래서 한 인력거꾼의 비참한 몰락은 20세기 초 이웃나라의 이야기인가. 우리는 그저 재미난 이야기, 잘 만든 연극을 즐기는 것인가. 고선웅의 연극이 전복적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그저 재미난 이야기에 멈추는 것은 아니다. 옹녀, 정영, 상자 등등은 세상의 밑바닥에서 세상의 풍파를 뚫고 나아가는 이들이다. 끝내 무너지기도 하지만 그와 그녀가 무너진다하여도 또 다른 그/녀들은 이 세상의 풍파에 맞서며 살아갈 것이다. 고선웅의 시선은 혁명의 열망보다는 연민일터인데, 고선웅과 마방진의 연극은 그 활달함으로 쉬운 연민을 비켜간다. 아쉬움이라면 이 인물들에게 몰아치는 세상의 폭력에 대한 연극적 대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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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 쓰고 서울연극제 시상결과를 봤는데... <낙타상자>에 신인연기상은 줘도 되겠더만....



공연정보

http://www.stf.or.kr/showinfo_02_d.asp?idx=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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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극공작소 마방진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mabangz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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