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시작은 어디일까

국립극단 <뻐의 기행>

by 김소연

이야기의 시작은 어디일까. 열 세살 소년 준길이 가족과 헤어져 홀홀단신 남하했던 그때일까. 드넓은 만주벌판 임자 없는 땅이니 힘써 개간하면 내땅된다는 말에 속아 아버지가 고향을 떠났던 그때일까. 더 거슬러 올라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을 만큼 피폐한 식민지의 삶일까. 아니면 내내 순영의 편지를 외면하다가 만주로 떠날 결심을 했던 그때일까. 끝도 없이 거슬러 오르고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은 긴긴 이야기다.


연극은 이 긴긴 이야기의 끄트머리라 할, 그런데 과연 이 이야기는 끝이 있을까, 다렌항에 발이 묶긴 준길에서 시작된다. 준길은 집으로 가지고 갈 수하물 때문에 배를 타지 못하고 있다. 벌써 3일째다. 수하물은, 부모님의 유골이다. 인천, 다렌, 하얼빈, 목릉현에 이르는 그리고 갔던 길을 다시 되밟아오는 준길의 긴 여정은 만주에 뭍혀 있는 부모님의 유골을 고향 선산에 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여정의 마지막에 발이 묶겼다. 유골은 배로 옮길 수 있는 '수하물'이 아니다.


아들 학종은 이 긴 여행에 따라나섰지만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러고 보면 학종은 여행 내내 아버지의 계획에 불만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이장하는 것도, 선산에 모시겠다는 것도 아비의 고집일 뿐이다. 다렌항에 발이 묶여서도 화장을 해서 모시자는 학종의 말을 뿌리치고 유골로 모셔야 한다고 고집이다. 하루 하루의 삶이 벼랑 끝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것 같은 학종에게 아버지의 고집은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자신의 삶에 매달려 있는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의 하나일 뿐이다.


준길의 고집은 관객들에게도 의문이다. 왜 준길은 유골을 고집하는 걸까. 미루어짐작할 수 없는 바는 아니다. 비록 살을 벗었을지라도 살아생전의 몸으로 고향에 모시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궁핍한 것인지, 궁색한 것인지 그 애틋한 순영과의 만남도, 순영의 부탁도 뿌리치는 준길이 왜 많은 비용을 치르면서 유골을 모시려고 할까. 연극은 준길이 유골을 고집하면서 인물이 얽혀들고 사건이 이어지지만, 그러한 사건들은 준길의 고집스러움만을 드러낼 뿐 그 집착의 뿌리에 가닿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길로 분한 박상종의 연기는 인상적이다. 자칫 강팍함을 그리는데 머물 수 있는 캐릭터임에도


최진아는 여행가방의 행렬로 무대 위에 인상적인 미장센을 만든다. 무대를 가로지르며 길게 늘어선 가방은 어린 준길이 홀로 떠나야 했던 그리고 다시 되돌아가고 있는 긴 여정을, 긴 시간을, 준길만이 아닌 근현대의 격랑에서의 험난한 이산의 삶을, 삶에 대한 집착과 욕망으로 확장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준길의 여정의 한 장면으로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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