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피렌체

흘러가는 삶이, 흘러온 삶을 만날 때

by 조르바

점심을 간단하게 샌드위치로 해결하고,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천천히 걸어 내려온다. 피렌체에 있는 동안 매일, 매 끼니를 해결하고 작은 시내를 구경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미켈렌젤로 언덕으로 내 발길이 향하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발이 알아서 가는 것이다. 내 발이 좋은 것을 보러 가자고 나를 재촉하는 것이다. 그렇게 언덕에서 보는 두오모 대성당과 오래된 도시를 관통하는 아르노강을 찬찬히 굽어보고는 강가를 따라 내려와 베키오 다리에서 멈춰서 거리 공연자들의 노래를 듣는다. 분위기와 맞지 않게 시끄러운 록 음악을 부르는 공연자가 있다. 이 남자의 기타 솜씨는 일품이지만 안타깝게도 노래 실력은 애석하다. 목에 잔뜩 힘이 들어간 핏줄만은 인상적이다. 그리고 오래된 시계와 보석 상점들을 최소한의 곁눈질로 살펴본다. 황금빛의 값비싼 빛들. 이 오래된 곳에서 수백 년 자리를 해왔다는 사실만을 배운 채 다시 두오모 대성당이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도심을 관통하는 고즈넉한 강. 성당과 도시 전체를 볼 수 있는 미켈란젤로 언덕. 이 모든 게 충분히 걸어서 돌아다닐 수 있는 구시가지의 피렌체. 대중교통이 필요 없는 이곳을 걸어 다니는 와중에 가슴 한쪽에서 아주 진한 뜨거움이, 느껴본 적 없는 두근거림이 느껴진다. 그 가슴 떨림이 여행 내내 지속하는 이곳. 내가 피렌체가 되어간다. 나의 이름이 피렌체가 되어간다. 이곳을 여행하는 우리 모두 각자의 피렌체를 만들어 간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수많은여행자들 눈에는 일종의 경건함과 감동으로 가득차 있다.


갑자기 거센 폭우가 쏟아진다. 이런 폭우를 달갑지 않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토스카나 지방의 대지에 충분한 영양공급을 하는 이 자연의 생리는 아름다운 곡선으로 뻗친 산맥에 있는 푸르른 나무의 싱그러움을 더하고, 깊은 맛이 나는 토스카나산 와인으로 열매를 맺는다. 그러니 신발이 더러워지고 외투가 젖더라도 불평하지 않고 한동안 비를 피해 어디에 들어가서는 그렇게 도시를 씻어내리는 하늘과 쳐다볼 생각을 한다.



그렇게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를 피해 시뇨리아 광장 일대가 보이는 카페에 몸을 숨긴다. 처마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쳐다보는 나와 같은 행인 네 다섯이 그렇게 한가한 카페 입구 앞에서있다. 밖으로는 아주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많은사람들이 거센 비에 이리저리 몸을 피하느라 다급하다. 그런 광장의 다급한 움직임을 눈으로 좇는 사이에 누구보다 빠르게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길거리에서 셀카봉과 젤리 장난감 혹은 명품 회사 로고가 새겨진 가짜 선글라스를 팔던 장사꾼들이다. 좌판을 빠르게 접고 가방안으로 물건을 모두 넣는다. 단 한 번의 손동작으로 깔려 있던 좌판이 들리면서 물건들이 담긴 보자기가 된다. 그들은 당황하는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다급한 이러한 움직임은 그들이 얼마나 이런 상황에 숙련이 되었는지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그들의 얼굴에는 기대와 신남이 가득하다. 그들이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정말 삼십초도 되지 않는 시간 내에 양손 가득 우산과 우비를 들고나오며 우산을 판매하기 시작한다. 근처에 짐을 맡겨두는 곳이 있는 것일까. 상황에 따라 판매 전략을 빠르게 수정하는 그들의 판단과 움직임을 인상적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그들은 사람들에게 다가가 강압적으로 판매를 요구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 잠시 쏟아지는 폭우에 최대한 많은 물건을 판매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재빠르게 광장을 돌아다니는 장사꾼들의 분주한 발걸음을 눈으로 좇다가 한구석에 가만히 서서 우산을 맞고 있는 한 키가 크고 마른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두 손에 들린 물건도 다른 장사꾼들과 다르지 않다. 장우산과 짧은 우산들, 가방에 가득 찬 우비.



하지만 이 청년의 눈빛에는 그의 동료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 긴 창의 모자 끝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사이로 보이는 순한 양의 눈. 행인에게 다가가려다 발을 다시 돌리는 청년. 행인이 그 청년 앞을 지나갈 때마다 머뭇거리며 다가가려다 발을 돌리기를 몇 차례. 그렇게 그의 동료이자 경쟁자는 재빠르게 물건을 팔아내고 있는 사이 그 청년이 들고 있는 우산의 숫자는 단 하나도 줄지 않는다.



그때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길거리에서 싸구려 그림을 깔아놓고 보행자들을 막아서고, 실수라도 그림을 밟으면 소리를 치며 돈을 요구하는 장사꾼. 마음에도 없는 가짜 명품 가방과 선글라스를 강매하는 장사꾼. 조용히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하고 있으면 언제든지 곁에 다가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물건을 꺼내며 돈을 요구하는 그런 분위기를 깨는 장사꾼들. 나는 그들이 하나 같이 모두 다 그런 무례한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 성격의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순진한 청년의 축 처진 어깨와 어디로 내디더야 할 줄 모르는 발걸음을 보는 와중에 그런 성격이 되지 못하는, 어쩔 수 없이 이런 일을 하게 된, 내몰린 원치 않은 이런 일을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그 청년의 방황하는 발걸음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폭우는 계속되었고, 관광객들은 우산을 많이 구매하고 있었다. 물론 그 청년은 단 하나의 우산도 팔지 못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광장에서 두 부류의 사람을 자세히 보았다. 아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는 이 청년은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신입일지도 몰랐다. 혹은 의외로 재정적으로 넉넉해서 그렇게까지 공격적으로 판매를 해도 되지 않아도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의 머뭇거리는 발걸음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는 그 복잡한 시선에서 내가 느꼈던 것은 나의 과민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비가 계속되는 와중에 나는 그 청년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깨부터 팔을 타고 내리는 비. 가까이에서 보니 더욱더 깡마른 청년. 검은색의 모자는 이미 축축이 젖어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젖게 놔두었지만, 들고 있는 우산은 하나하나 비닐로 포장되어있었다. 안녕, 우산 하나 사고 싶은데. 내가 말했다. 긴 거 아니면 짧은 거. 그 친구가 되물었다. 짧은 거 줘. 내가 답했다. 값을 치렀다. 좋은 하루를 보내, 내가 말을 했다. 그 친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