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공기 품안에서 느끼는 편안함은 무엇일까
오랜만에 피터를 만났다. 한가한 나에 비해 일로 바쁜 피터를 한동안 보지 못한 터였다. 런던 케닝턴 근처에 있는 선술집에서 맥주를 한잔하며 텔레비전에 중계되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축구 경기를 보면서 기다린 지 이십 분이 지나자 피터가 선술집에 들어온다. 늦어서 미안하다고 하는 피터. 해리포터의 영화에서 나이 든 여자 마법사 캐릭터가 쓸법한 모자를 가리키며 내가 킥킥 웃자, 들고 온 장우상으로 나의 허리를 찌른다. 그렇게 어떻게 지냈느냐는 인사로 시작을 했다. 새해가 지난 지 삼 주쯤 된 시점이었다. 딱히 하는 대화가 없어도 어떻게 지냈느냐는 말 한마디 나누는 만남이라면 그렇게 따뜻함을 느꼈던 추운 날. 그렇게 근황을 얘기하는 우리. 피터는 얼마 전부터 길거리에 노숙하는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다고 한다. 번듯한 직장이 있지만, 남는 시간을 활용하여 주위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하다가 얼마 전부터 길거리에 있는 부랑자들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하는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부랑자들에게 말을 건네는 데도 교육이 필요하냐고 묻는 나의 질문에 그들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할 존재들이야, 라고 피터가 답을 한다.
그렇게 몇 주간의 교육을 받고, 처음엔 두 명의 선배 상담사를 따라다니면서 현장에서 어떻게 그들이 부랑자들에게 다가가는지, 어떻게 대화를 시작하는지,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도움을 주고자 하는지 지켜보았다고 한다. 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직접 혼자 바로 현장으로 투입되지 않고 또 몇 주간을 그렇게 남들을 따라다니면서 지켜보기만 하면서 교육과 관찰로 이렇게나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었다면 차라리 하지 않았을지 몰랐다고.
텔레비전 속의 축구 중계는 어느새 런던과 잉글랜드 전역에 내려진 비의 예보를 전하는 남성 앵커의 분주한 움직임이 중계되고 있다. 변화라고 거의 없는 겨울의 이곳 날씨를 중계하는 그들이 사용하는 말도 얼굴도 매일 다르지 않았다. 오늘의 일기예보 영상을 내일 날씨를 전하는 영상으로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눈치채지 않으리라. 그러던 사이에 나와 피터는 두 번째 맥주를 주문하였다.
피터가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고는 계속하던 그 상담 활동에 관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 너 혹시 그거 아니, 길거리에 부랑자 중에 상당수가 집이 있고 번득한 직장이 있다는 거. “
“ 아니. 몰랐는데, 신기하네! 그러면 왜 그들이 집을 나와 바깥에서 그러고 있는 거야?”
피터가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올리브 몇 개를 집어먹는다. 그리고 씨를 뱉었다.
다시 맥주 한 모금을 들이키고는 얘기를 이어나간다.
“ 그렇게라도 해서라도 그들이 집과 직장에서 마주하고 있는 문제를 피하고 있는 것이지.
이런 사람들은 구걸하지도 않고, 어떤 도움도 바라지 않아, 하루 몇 시간 혹은 온종일
그냥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 발꿈치를 쳐다보는 거야. “
“ 그렇게 하면 그들이 가진 문제가 해결되는 거야? “내가 물었다.
“ 아니 그들은 거리를 두고 싶은 거지. 멀리 떨어져서 관찰하고 싶은 거야. 그들의 집으로부터,
그들의 직장으로부터, 그들의 친구로부터. 그들에게는 길 위에 있는 것이 하나의 안식처거든.”
피터는 하나의 에피소드로 자기네 회사 근처에 매일 아침 지나가면서 보는 부랑자들의 이야기를 꺼낸다. 상담 활동을 시작한 뒤로 길거리에 있는 부랑자들을 유심히 쳐다보기 시작한 피터는 어느 날 이들이 돌아가면서 자기네의 자리를 서로 바꾸어가면서 공유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자기네들끼리 말하는 일종의 영토를 매일 돌아가면서 사용하는데, 건물 한 바퀴를 둘러싼 다섯 혹은 여섯 명의 부랑자들이 원을 돌아가면서 그 자리에 앉아있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날 피터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출근길에 앉아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어느 한 중년의 남성에게 말을 걸었다. 잘 정돈된 하얀 수염이 인상적인 중년이었다고 피터는 말을 덧붙였다. 시간은 아침 일곱 시. 직장으로 출근하는 도심의 사람들로 바쁘기 시작할 길거리. 날씨는 늘 그렇듯 쌀쌀했고, 도로는 비에 젖었으며, 그 남성은 동전을 구걸하고 있지도 않았고, 물 한 병도 들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 좋은 아침입니다. 이른 아침인데 나와계시는군요. “ 피터는 어르신에게 말을 걸었다.
“ 좋은 아침이오. 이른 아침이라는 것도 당신네한테나 이르지, 나한테는 이른 게 아니오.” 갈라진 목소리, 물을 마시지 꽤 되지 않았을 거라고 피터는 예상했다.
“ 날씨가 추운데, 커피 한 잔이라도 갖다 드릴까요.” 피터는 물었다. 마침 커피를 파는 트럭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 커피는 필요 없고, 다른 거라면 모르겠는데. “
“ 무엇 말씀인가요. “
“ 위스키 한 잔이면 좋을 것 같소.”
“ 이른 아침인데요, 위스키는 제가 권해드리지 않고 싶어요.”
“ 이른 아침과 위스키와 무슨 상관관계가 있단 말이오. “
“ 커피 한 잔이 어르신에게 좋은 하루를 가져다줄 것 같습니다만.”
“ 위스키 한 잔이 나의 하루를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 같은데.”
“ 위스키는 드릴 수 없습니다, 커피는 한 잔 드릴 수 있습니다.”
“ 위스키 말고는 아무것도 나의 하루를 만들어 줄 수 없어. 아무것도 받지 않겠네. 갈 길 가게.”
그날 오후 다섯 시에 피터는 퇴근은 하면서 아침의 커피 한 잔을 거부했던 장년의 어르신이 앉아있던 자리에 위스키 한 병과 종이컵이 놓여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반쯤 남은 위스키와 찌그러진 컵 그가 앉아 있던 자리에 쏟아진 술. 그 나이든 중년이 앉아있던 자리와 술병 사이의 일그러진 간극. 그 사이에 있는 찌그러진 종이컵의 무게. 피터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렇게 건물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그 부랑자들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졌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