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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핼로군 Sep 26. 2023

요양당직 마지막날 2번째 환자 사망

2019.03.03 초보의사일지

오늘은 요양병원 당직 마지막 날이고, 잊지 못할 하루가 되었다.  

밤에 한 할아버지가 DNR (소생금지 지시 - 대부분 요양 병원 환자들은 연로하신 환자분들이고, 생명 유지를 위한 심폐소생술 등이 오히려 환자의 존엄성을 해친다는 생각에 소생금지를 한다.)을 안 받았는데, 돌아가실 것 같아서 CPR (심폐소생술)을 해야할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 심전도 리듬을 보니 심장이 멎어가는 리듬을 보이고 있었다. 


 첫 CPR이지만 그래도 학교에서 끊임없이 시험봤었고, 의료인이라면 필수로 이수해야하는 심폐소생술이라 열심히 했다. 다만 들어가는 약물들이 기억이 안나서 간호사 선생님께 부탁하고 서둘러 ACLS 가이드라인을 찾고 선배한테도 연락해서 할 수 있는 처치들에 대해 배워서 했다. 환자 보호자분들이 올 때까지 환자를 살려두고 싶었다.  


 보호자분들이 도착해서 옆에서 보시는데 '처음이라 어색한 내 모습을 보고 고소하면 어쩌지, 요새는 환자 죽으면 무조건 고소한다던데' '환자 깨어나시면 큰 병원으로 전원시켜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무서웠다.  


 환자분의 심장이 아주 멎은 뒤에 보호자 분들이 "아빠 우리 아빠로 있어줬어서 고마워. 다음번에도 내 아빠해줘요"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엄청 났다. 환자에게 "사람이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게 청각이래요. 지금 말하시는 건 다 듣고 계실거에요" 라는 시덥지 않은 말을 하고, 서둘러 차트를 쓴 뒤에 내려와서 혼자 펑펑 울었다. 누구든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맞이하게 될텐데, 의사는 그 모습을 일자리에서 자주 봐야하는데 그게 감정소모가 엄청 되었다. 나도 언젠가는 저런 모습으로 병원에 있겠지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울었던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에 자괴감도 들고, 그래도 뻔뻔하게 일처리 잘 해낸 거 같아서 만족스럽기도 하고 여러 과정이 뒤섞이고 감정도 요동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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