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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핼로군 Sep 27. 2023

칼부림 사건 치료

초보의사일지

새벽 2시에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여기 칼부림 사건이 일어났어요. 혹시 와주실 수 있나요?"라는 통화였다. 

이럴 때, 절대 응해서 보건소를 비우고 환자의 집에 가면 안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1. 보건소를 비운 동안 더욱 더 응급한 환자가 올 수 있다.

2. 보건소 내에서 환자 치료에 필요한 도구들이 있어 갈 필요가 없다.

3. 단순한 안전의 문제 등의 이유를 말하고 경찰관들에게 

"제가 갈 수 없으니 환자 상태를 대략적으로 알려주시고, 환자를 모시고 와주세요" 했다. 


경찰관 선생님들이 환자를 데리고 보건지소로 왔는데, 대략적 상황을 확인하니 

아버지와 아들이 술김에 싸우고, 서로 몸싸움까지 일어났는데, 아버지가 아들에게 칼을 겨누었고 그 뒤에 어머니가 아들을 지키려고 하다가 어머니가 대신 칼을 맞은 상황이었다. 


손에서 피가 나고 있는 어머니 옆에서 아들이 대단히 화가 많이 나있었는데, 일단 아들을 진정시켜야 했다. 

아들에게, 지금 이 상황에서 화를 내서 어머니를 당혹스럽게 하는 것이 어머니의 건강악화를 초래할 수 있으니 조심해달라고 했다. 그 뒤에 어머니의 상처를 소독하고 봉합은 목포에서 해야 할 정도였기 때문에 봉합해주는 테이프 (steri-strip)으로 상처를 임시 봉합했다.


경찰 아저씨에게도 대략적인 환자의 상태를 말하고, 사건 수습해달라고 했다. 아버지도 다친 부분이 많이 있지만 굳이 보건소에 오지는 않겠다 하여 내일이라도 술이 깨고, 다친 부분이 있다면 연락해달라고 말했다. 

'칼부림' 이라니,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다. 그것도 가족끼리. 섬에 와서 이래저래 많은 일을 겪으면서 내가 지금까지 누리는지 모르고 누렸던 것들이 얼마나 많고, 얼마나 행복했던 것인지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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