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핼로군 Sep 27. 2023

슬픈 크리스마스

초보의사일지

오늘은 섬에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이다. 혼자 치팅데이다 싶어 1인 1 닭 하다가 너무 넉넉히 주신 아주머니의 인심 덕에 토할뻔하기도 하고, 과식하지 말자는 건 배웠다.


그렇게 솔로 크리스마스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119에서 왔는데, 아이가 숨을 안 쉬는 위급한 상황이라고 해서 서둘러 내려갔다. 오고 나서 진찰해보니 이미 죽은 것처럼 아예 미동도 없고 얼굴과 몸이 검고 파랗게 변해있었다. 그런데 차마 울고 있는 엄마에게 아이가 죽었다고 할 수가 없었다. 또 확신도 없었다. 내가 모르는 어떤 치료가 있고 어떤 기구가 있어서 아이를 살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닥터헬기를 불렀는데 선생님들이 와서 "선생님 이건 이미 죽은 거예요 어쩔 수가 없어요" 하셨다. 하.. 보시기에 얼마나 한심해 보였을지 죽고 살고 구분도 못하고.. 씁쓸했다. 이제는 마음 약해지지 말고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야겠다. 


어느 날에 태어난 한 사람을 전세계 모두가 축하하는 크리스마스에 같은 날은 누군가는 죽어서 슬퍼한다는 게 너무 가슴 아팠다. 엄마 탓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고, 최대한 표현했는데 위로가 되었을지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면사무소에서 걸려온 전화 - 의식없는 환자 이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