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 #희망퇴직 #인생
군대 시절, 평일에 바빠 주말이면 빨래를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세탁기에 많은 인원들이 대기하고 있으니 저는 일부러 아침 일찍 했고, 그것이 지금까지 습관처럼 자리 잡아 집에서도 6-7시에 빨래를 합니다. 군 시절 나왔던 이적의 <빨래> 라는 곡을 자주 들었는데 지금도 간혹 떠오릅니다. 신기하죠. 때론 습관처럼 무서운 게 추억인 것 같습니다. 무튼, 노래는 이별 이후의 남자의 슬픈 심정을 그려내 빨래를 하고 하늘이나 집 앞 풍경을 바라보며 이적의 무덤덤한 목소리가 애잔하게 들려와 뭉클해지며 깊은 들숨을 하게 만듭니다.
오늘 브런치에 '빨래'와 관련된 글을 쓰다 보니 평일인데도 불구 빨래를 해야겠습니다.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습니다. 8년 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연차를 쓰거나 반차를 써도 평일엔 빨래를 할 생각이 일절 없었는데 지금은 하고 싶을 때 그냥 합니다. 요일 상관없이 말이죠. 오래된 드럼세탁기라서 빨래 이후 냄새가 나서 클리너를 써봤지만 일시적일 뿐! 이사를 가게 되면 세탁기를 하나 사야겠습니다. 그땐 무조건 통돌이로 말이죠!
각설하고, 개인적으로 좋아라 하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수필집 3 중 『랑겔한스 섬의 오후』에서 빨래에 대한 '소확행'을 언급한 적이 있었습니다.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 말은 깨끗한 팬티가 잔뜩 쌓여있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작기는 하지만 확고한 행복의 하나(줄여서 소확행)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데, 이건 어쩌면 나만의 특수한 사고 체계 인지도 모르겠다. - 백암, 2002
여기서 언급된 소확행이 2018년 트렌드의 신조어가 되었습니다. 10년 전부터 사용했으니 지금쯤이면 메가 트렌드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하루키처럼 저도 빨래를 하고 나면 수건과 팬티 양말 등을 말거나 접어서 서랍에 두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스토어에 온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솔직히 빨래 널기 전까지가 나름 귀찮긴 한데 막상 오와 열(종대 횡대) 정리가 된 모습들을 보고 또한 은은하게 섬유유연제 향이 코끝을 향해 들어올 땐 괜스레 행복해집니다. 그리고 얼른 입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 솟구칩니다. 공감들 하시죠?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밖을 나가 괜히 거리를 거닐며 가을 맛을 느껴봐야겠습니다.
끝으로 요즘 모국어의 단어와 어휘, 숙어들을 등한시한 나를 반성하고 곱씹으며 읽고 있는 유선경 작가의 『어른의 어휘력』이라는 책에서는 빨래에 관련된 우리말들을 소개하는데, 진짜 처음 보는 말인데 너무 이뻐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p.69
빨다리다 : 빨아서 다리다
새물 : 빨래하여 이제 막 입은 옷
새물내 : 빨래하여 이제 막 입은 옷에서 나는 냄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