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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Aug 06. 2022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삶과 죽음, 그리고 의지

강가에서 나비를 잡다 우연히 만나게 된 여인.

그녀와 함께 마신 오렌지주스.

그 속에 든 독극물.

죽고 싶지만 죽음이 두려워 함께 죽음의 길을 함께 걸어가 달라는 그녀.

하지만 자고로 죽음의 길은 홀로 걸어가야 하는 법.

가까스로 살아난 그에게 형사는 죽은 그녀가 메고 있던 나비목걸이를 건네준다.

그는 그 사건 이후로 기괴한 환각들을 보기 시작한다.


가난한 대학생인 영걸은 빗물이 세는 허름한 집에 살며 매번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라면을 여섯 번이나 먹어도 배가 고프구나! 성가셔서 얼른 죽어버려야겠다."

그렇게 그는 목을 매는데 저번에도 찾아왔던 책외판원이 들어와 그를 야단친다. 죽지 말라고.

더 이상 라면이 먹기 싫어 제 분에 못 이긴 그는 책외판원을 칼로 찔러 죽인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고 목청 높여 소리친다.

"의지다! 의지만 있으면 죽어도 죽지 않는다!" 말뿐이 아니다. 정말 죽지 않는다. 산에 갖다 묻어도 다시 돌아와 자살을 방해하고, 불에 태웠더니 해골이 되어 찾아와 방해한다. 죽는 게 이렇게 힘들어서야 원.


그렇게 그냥 계속 살게 된 영걸은 친구와 동굴여행을 갔다가 해골이 된 시신 한 구 를 발견해 집으러 가져온다. 친구가 해부학 책을 주며 해골을 부위별로 잘 맞추어 해골을 수집하는 박사에 가져가 돈을 벌자고 한다.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아니, 정말 비가 내리고, 세는 빗물이 해골에 닿자, 2000년 전 고려시대에 살던 여인이 깨어난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혼인을 피하고자 도사의 충고를 듣고 2000년 후에 만나게 될 소울메이트를 기다리며 동굴에서 30일간 단식을 했단다. 바로 영걸이 그녀의 그 소울메이트고, 그녀는 이제 일주일 안에 사람의 간을 먹어야 다시 해골로 돌아가지 않는단다. 영걸은 사람의 간을 구해다 달라는 그녀의 부탁을 거절, 그녀는 교미 후 수거미를 잡아먹는 암거미 마냥 그를 홀려 관계를 한 후 그의 간을 먹으려 계획한다. 3초에 하나씩 뻥튀기가 튀어나오는 기계 앞에서 그들은 뻥 같은 섹스를 한다. 뻥튀기 튀어나오는 소리가 이렇게 야하다니! 격렬한 섹스 후, 뻥튀기는 아직 나오는 중,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하는 싼후우울증에 걸린 영걸, 여인은 옆에 놓인 칼을 손에 쥔다. 하지만 그녀는 짧은 순간이지만 영걸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자신은 그걸로 됐다며 다시 해골로 변한다.

 

영걸은 친구와 함께 해골을 들고 박사를 찾아간다. 박사는 영걸을 조수로 삼고 그의 저택에서 함께 지내게 된다. 박사에게는 딸이 하나 있다. 영걸과 그의 딸이 처음 만난 식사자리, 그들은 서로가 같은 나비목걸이를 메고 있는 걸 발견한다. 사실 박사의 딸은 영걸이 강가에서 만났던, 지금은 죽은 그 여인과 함께 죽음이란 주제로 깊은 사색을 즐기던 친구였다. 영걸. 또 사람 잘 못 만났다. 영화 속 모든 여자들이 암거미처럼 그를 죽이려 달려든다. 그는 그들 앞에서 무기력하다. 박사의 딸은 그에게 대놓고 홀로 저승에서 외로울 자신의 친구를 위해 지금이라도 따라 죽으라고 윽박지른다.


박사의 집으로 계속해서 배달되어 오는 의문의 머리 해골들. 비슷한 날짜의 살인 사건 또는 시체의 머리 도난 사건들. 영걸은 박사의 집에 찾아와 박사가 가장 아끼던 1만 년 전 몽골인의 해골을 사겠다고 제안했던 고객을 의심하고 뒤를 쫓는다.


갑자기 박사의 딸이 죽음 엄마의 꿈을 꾸더니 암에 걸린다. 박사는 영걸에게 아직 처녀인 자신의 딸에게 사랑을 알려달라며 그 둘을 여행을 보낸다. 청춘이 불타오르는 해변의 밤. 젊은 남녀들이 음악에 맞추어 몸을 흔들며 서로에게 구애를 한다. 밤이 깊어지고, 청춘들은 자신들의 욕망과 같은 색인, 빨강, 파랑의 텐트 속에 들어가 그 욕망에 몸을 맡긴다. 하지만 남성적으로 무기력한 영걸. 박사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한 채 저택으로 돌아오고, 화가 난 박사에게 그럴 거면 차라리 잘라버리라는 모욕적인 말까지 듣는다. 완전히 거세된 영걸.


죽음이 가까워온 박사의 딸은 영걸에게 자신을 안락사시켜달라고 부탁한다. 자신이 텐트에서의 일을 후회하고 있고 이제는 오히려 갈망한다고 말한다. 이미 수차레 남성성을 모욕당한 영걸은 매몰차게 거절하고 저택을 나간다.


술집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는 영걸. 친구가 영걸의 술에 몰래 약을 탄다. 영걸이 정신을 잃자 친구는 영걸을 어딘가로 끌고 간다. 갑자기, 박사에게 산사람의 목을 잘라 해골로 만들어 보내던 범인이 등장해 영걸과 친구를 칼로 찔러 죽인다. 그가 들고 있는, 박사가 가장 아끼던 1만 년 전 몽골인의 해골.


박사의 집으로 소포가 배달된다. 박사의 딸에게 자신이 먼저 죽어 그녀가 갈 길이 무섭지 않도록 기다리고 있겠다는 말이 든 편지와 함께. 소포 상자를 열어보니 영걸의 머리가 있다. 박사의 딸은 고맙다며 영걸의 머리를 안고 입을 맞춘다. 그러곤 죽는다. 정말 바로 죽는다. 그 자리에서. 박사는 영걸의 머리에게 말한다. 자신의 딸을 위해 희생시켜 미안하다고. 하지만 갑자기 영걸의 머리가 눈을 번쩍 뜨며 말한다. "의지다! 의지만 있으면 죽어도 죽지 않는다!" 젠장. 박사는 칼로 영걸을 내리치다 실수로 자신을 찔러 죽는다. 영걸의 머리는 다시금 외친다. 이제 무슨 말인지 내가 말 안 해도 여러분들이 더 잘 알 것이라 믿는다.


그렇게 박사는 나비가 되어 딸과 함께 저승으로 날아간다.


형사가 술집에 등장한다. 두 청년이 술에 너무 취해 잠들어 술값을 안 낸다는 신고를 받고 온 것이다. 영걸과 친구가 엎드려 자고 있다. 형사는 자신이 젊을 적 그들처럼 못 논게 한이라며 술값을 대신 내주고 이 말을 덧붙인다.


"저놈은 술만 먹으면 3차세계대전도 보는 놈이야."


그렇다. 술이 문제다.


영걸과 친구가 수많은 사람들로 활기찬 거리를 신나게 활보한다. 영걸이 나비목걸이를 목에서 빼 손에 쥐고 있다.


FIN


참. 이렇게 써놓고 봐도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내 필력이 부족한 탓이 크지만, 비겁한 난 이 영화의 난해한 스토리를 탓하겠다. 사실은 인과관계가 딱 들어맞는 이야기의 맥락이 그리 중요한 영화가 아니라서 때문 일 것이다. 몽환적이고 음울한 분위기에 탐미적인, 강렬한 색들이 충돌을 일으키는 황홀한 미장센, 삶과 죽음에 관한 메시지들을 철학적이면서도 직선적인 방법으로 전달하는 김기영 감독의 굳은 의지. 그의 육체는 죽었어도 그의 영혼(영화)만은 영원하리라. 아쉬우니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의지다! 의지만 있으면 죽어도 죽지 않는다!




-김기영 감독 영화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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