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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Aug 08. 2022

MATADOR

박찬욱의 오마주를 오마주 #9



이 글은 영화 설명을 위해 자극적인 성적 묘사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Matador'는 '투우사'를 뜻하는 스페인어이다. 'Matar'는 '죽이다'라는 뜻으로, 'Matador'를 직역하면 '죽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한 여자가 물이 가득한 욕조에 얼굴을 파묻힌 채 죽어간다. 복면을 쓴 사내가 그녀를 밖으로 꺼냈다가 다시금 물속에 처박는다. 여자는 고통에 몸부림치다 점점 잠잠해지고, 요란하게 요동치던 물결 또한 잠잠해진다. 복면을 쓴 사내는 칼을 꺼내 이미 죽은 여자의 손목을 긋는다. 카메라가 줌 아웃되자 모든 상황이 tv속 영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남자가 상기된 표정으로 tv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고, 바지가 내려가 있으며, 그 밑에서 손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Tv화면에서는 끊임없이 나체의 여성들을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하는 장면들이 이어지고, 그 살해의 방식이 더욱 잔혹해질수록, tv를 응시하는 남자의 숨소리는 더욱 가빠지고, 손동작은 더욱 격렬해진다.


이렇게 강렬하게 인물을 소개하며 시작한 영화는 tv앞의 그 남자, Diego(전직 투우사로, 경기 중 크게 부상을 입은 뒤 은퇴하고 투우 아카데미를 차려 학생들을 양성중이다)가 학생들에게 소의 숨통을 단숨에 끊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는 장면으로 넘어간다. 이 장면은 한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는 장면과 교차편집되는데, 그가 학생들에게 소의 머리 밑 급소 위치를 알려주자, 그 여자가 유혹 한 남자의 머리 밑 급소를 긴 음표 모양의 헤어핀으로 찌르는 모습이 나온다. 그 후 그녀는 미동도 않는 시체 위에서 더욱 절정의 오르가슴을 느낀다. 시간(屍姦)이다.


잔혹한 살해장면들과 그로 인해 즐비한 시체들이 나오는 영상 앞에서 자위행위를 하는 남자와 시간(屍姦)을 즐기는 여자, 이 둘은 사디스트(sadist)*이자 네크로파일(necrophile)*들이다.


*Sadist: 가학성애자
*Necrophile: 시체와 성관계를 하거나 훼손하는 성도착증 성향을 가진 사람


이 두 사람들의 교차편집은 비슷한 성적 취향을 가진 이 두 사람이 공동체적 운명을 띄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둘의 만남을 가져온 사건은 Diego가 자신의 제자들 중 하나인 Angel에게 동성애자가 아니냐는 질문을 던지자 이에 발끈한 Angel이 자신이 동성애자가 아님을 증명하겠다며 Diego의 애인인 Eva를 성폭행하면서 발단된다. 다음날 Angel을 죄책감을 느껴 경찰서를 찾아가 자수를 하지만 오히려 피해자인 Eva가 성폭행 사실을 부인한다. 이에 Angel은 정신착란 증상을 일으키며 자신의 담당 형사가 수사 중인 다른 미제사건 4건에 대해 자신이 한 짓이라며 자수를 한다.  


형사는 그가 미덥지 않지만 이미 자수를 한 이상 하는 수 없이 그를 체포하게 되고, 앞서 등장한 네크로파일인 그녀 Maria(유명 여성인권 운동가이자, 변호사이다)가 자청해 Angel의 변호를 맡게 된다.


미제사건 4건 중 2건은 뒤통수 한 뼘 밑에 위치한 급소를 찔려 두 남성들이 살해된 사건이고, 다른 2건은 두 명의 투우 아카데미 여학생들의 실종 사건이다. 냄새가 난다. 아주 고약한 놈들의 냄새가.


Maria는 사실 Diego가 투우사일 때부터 따라다니던 열성 팬이다. Diego와 같아지고자 소의 뒤통수 대신 남자들의 뒤통수에 헤어핀을 꽂았고, 이제 Diego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자신의 궁극적인 욕망의 꿈을 이루고자 한다. Diego 또한 자신과 같은 류의 사람인,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Maria와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Diego의 추종자는 Maria 뿐만이 아니다. Angel의 정신착란증은 사실 자신이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자(Diego)와의 정신적 합일화를 이루는 초인적인 힘이었고, Diego가 벌인 두 건의 여학생 살인사건(시체를 발견하지 못했기에 실종사건에 머물렀던)의 과정을 자백하며 Diego가 시체를 묻어 놓은 곳으로 형사를 인도한다. 그는 Diego의 벌인 살인사건들을 자신이 덮어쓰며, 자신이 추종하는 Diego가 되어버린다.


한편 Maria의 등장으로 인해 Diego로부터 버림받은 Eva는 Diego의 집으로 자신의 짐을 챙기러 왔다가 Diego와 Maria의 이야기를 엿듣게 되어 그들의 모든 비밀을 알게 된다. 여기서 더욱 소름 끼치는 사실은 Eva가 그 비밀을 알게 되고도 Diego에게 매달린다는 사실이 아니라, Diego가 섹스를 할 때 항상 그녀에게 죽은 듯이 있으라는 주문을 생각한 그녀는 Diego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시체처럼 화장을 하고 왔다는 사실이다. Eva는 그의 어두운 면까지 이해할 정도로 사랑했고, Diego 또한 Eva를 진정으로 아꼈기에, 그녀에게 모든 것을 잊고 새롭게 출발해 달려며 그녀를 보내준다. 이런 식으로 아름답게 포장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그릇된 욕구에 잠식되어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들을 상실한 자들이다.


감독은 형사를 통해 이러한 대사를 지껄이며 이들의 그릇된 행동들을 옹호한다. "독버섯이 독을 가지게 된 이유 따윈 없어. 그냥 원래부터 독을 가졌고, 그래서 독버섯인 거야. 그냥 그런 거야."


눈물 젖은 호소에도 불구하고 Diego에게 버림받은 Eva는 결국 경찰서로 찾아가 Diego와 Maria의 비밀을 폭로하고, 형사는 Angel의 초인적 능력을 이용해 Diego와 Maria를 뒤쫓는다. 같은 시각, Diego와 Maria는 서로 살인을 하는 행위와 살인을 당하는 행위를 동시에 욕망하며 강렬한 섹스를 나눈다. 형사와 일행이 Maria의 비밀별장에 도착한 순간 개기월식이 시작되고 그 장면을 넋이 빠져 바라보던 그들을 깨우는 한 발의 총성. 탕!


별장 문을 열자 나체 상태로 서로 뒤엉킨 채 뒤통수에 헤어핀이 꽂혀있는 Diego와 발사된 권총을 입에 물고 있는 Maria, 자신들의 궁극적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서로에게 시체가 되어 준, 서로의 완벽한 욕망의 대상이 되어 준 그들의 마지막 모습.


형사는 이번엔 이런 말을 지껄인다, 저렇게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표정을 본 적 있느냐고.


Diego와 Maria


히치콕의 영화 'Vertigo'에서도 등장했던 시간(네크로필리아)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이런 난해하고 민감할 수 있는(물론 난해하다는 것은 상대적일 테지만) 소재를 다루면서도 오히려 아무렇지 않다는 듯 점잖게, 더 나아가 영화 중간중간에 유머 코드들 까지 등장해가며 평범한 영화 행세를 한다. 마치 멀쩡한 버섯 흉내를 내는 독버섯 같이.







-Pedro Almodóvar 감독 영화 'Matad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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