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호수
아스라이 안개로 뒤덮인 푸른빛의 호수.
바람에 살랑이는 무성한 갈대들과 그 위로 힘없이 축 늘어져 지붕을 만드는 느티나무.
매 가지마다 선분홍빛의 꽃들이 만발해 있다.
그 한 폭의 수채화 속 저 멀리, 서서히 노를 저어 다가오는 나룻배 하나.
그 위로 들려오는 익숙한 소리.
우리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배우는 노래.
세상 모든 게 억울해 목청껏 울던 우리를 따뜻한 체온으로 감싸 안고 평온에 들게 하던 소리.
자장 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가.
따뜻함과 포근함, 그 뒤로 일렁이는 왠지 모를 슬픔, 또는 그리움.
그의 머릿속 하나의 이미지로 남은 어머니에 대한 유일한 기억.
고단한 일상을 보내고 지친 몸을 누인 그를 재워주는 어머니의 따스한 자장가.
안토니오 르블랑.
어릴 적 미국으로 입양된 그는 완전한 미국인이다.
피부색과 작은 눈만 빼면 말이다.
그는 입양된 지 6개월 만에 버려져 아동보호 시설을 떠돌며 자랐고, 새로운 입양부모를 찾게 되었지만 계속되는 새아버지의 폭력으로 결국 집을 나와 홀로 길에서 자랐다. 길에서 어울린 친구들과 한 때 여러 절도 범죄에 가담했던 그이지만, 현재는 타투이스트로 일하며 자신의 딸을 임신한 캐시라는 여자와 결혼해 의붓딸인 제시와 함께 셋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는 어릴 적 친부모와 양부모들에 의해 수차례 버림받은 기억에, 친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어린 제시에게 만큼은 좋은 아버지가 되고자 최선을 다한다. 그는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만큼 헌신적이고 그만큼 그들을 사랑한다.
자신이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은 제시는 자신의 아버지를 모른다. 하지만 최근에 갑자기 그의 친부인 에이스가 나타나 자신의 양육권을 주장하며 제시를 만나게 해 달라 하지만 제시는 자신의 아버지는 안토니오라고 굳게 믿는다. 비록 다르게 생겼지만 말이다.
비록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서로에 대한 굳은 신뢰와 사랑으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그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사건이 벌어진다. 경찰인 에이스와 시비가 붙은 안토니오는 결국 연행되고, 에이스의 파트너인 대니가 안토니오가 시민권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에이스의 복수를 해준답시고 그를 이민국으로 보내 추방당하게끔 만들어버린 것이다.
여기서 우리 모두가 의아한 사실은, 어릴 적 미국으로 입양되어 30년 넘게 미국에서 살아온 그가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난 2000년, 미국 의회에서 외국 태생 입양인에게 시민권을 자동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되었다. 하지만 이는 이 법의 제정일(2001년 2월 27일) 기준 만 18세 미만의 입양 아동들에게만 적용이 되는 법이다. 그 이전에 입양되어온 아이들 중 양부모의 무관심으로 인해 제대로 된 시민권 취득 절차를 밟지 못한 아이들은 모두 언제든 추방될 수 있는 환경 속에 놓여있다는 말이다.
바로 안토니오가 그 아이들 중 한 명이다.
그렇다.
이 영화는 자신의 모국에서 버려져 새로운 나라에 왔지만 또다시 버림을 받게 된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의 각본, 연출 및 주연배우로 출연한 저스틴 전 감독은 바로 이러한 미국 아동시민권법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이 부당한 법을 바꾸는 것이 이 영화의 목적임을 밝혔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단순히 극 중 인물인 안토니오 뿐만이 아닌, 이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모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더 나아가 단순히 시민권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법’이라는 무기로 국가가 한 인간에게 잔혹하게 저지르는 폭력, 인권 탄압에 관한 문제이다.
영화의 마지막, 안토니오는 추방되며 또다시 그와 같이 국가에 의해 버림받게 된 아이들이 생겨나게 된다. 아버지와 생이별을 하게 된 제시와 새롭게 태어난 아이 말이다.
제시가 울며 말한다. "I choos you. I choose you. Please don't go daddy…”
제시가 아버지 안토니오를 선택했고, 그 또한 제시를 선택했지만, 정작 그들을 보호해야 할 국가는 그들을 버렸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한 인간이, 더 나아가 한 가정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가정을 지켜내야 하는 의무를 가진 국가가, 더욱이 인권을 최우선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이민자들에 의해 세워진 미국이라는 나라가 벌이는 모순적, 위선적 행태를 적나라하게 비판한다.
-Justin Chon(저스틴 전) 감독 영화 "Blue Bayou(푸른 호수)"
지난 2022년 2월 4일 입양인시민권법이 미국 하원을 통과했다. 위에서 언급한 아동 시민권법에 해당하지 않는 모든 입양인들에게도 시민권을 부여하는 법안이다. 현제 상원 통과와 대통령 서명만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하루빨리 법안이 통과되어 더 이상의 공권력에 의한 부당한 인권탄압이 일어나지 않는 세상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