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시절>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
마치 때를 알고 상대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랑처럼.
이미 물이 넘쳐 홍수가 난 대지에 퍼부어대는 비는 이기적이다.
부서진 사랑의 파편에 의한 생채기가 채 아물지 않은 그대에게 쏟아내는 일방적인 고백처럼,
상실의 홍수 속 허우적 대는 그대에게 왜 수영을 할 줄 모르냐 다그치는 말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고통의 심연 속 가라앉는 그대를 모른 척하는 짓처럼,
나만 아프고, 나만 힘들다고 울어대는 이기적인 감정의 폭우처럼.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
마치 때를 알고 상대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랑처럼.
그대가 나를 필요로 할 때,
그때,
나의 손을 내어주고,
나의 어깨를 내어주고,
나의 따뜻한 가슴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처럼.
-허진호 감독 영화 "호우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