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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Jan 06. 2023

라이트 스모커

단편

조급한 마음으로 담배 연기를 들이마셨다. 내쉬는 연기와 함께 후회했다. 머리가 띵 해오며 목이 불편해오고 속이 매스꺼워졌다. 담배는 늘 이런 식으로 나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는 이내 후회하게 만들었다.


나는 라이트 스모커다. 담배를 극도로 혐오하는 부모님 덕에 집에서는 담배를 피울 생각은 하지도 못했고, 그나마 여행을 다닐 때나 자유롭게 흡연을 해왔지만 한창 많이 피울 때조차도 하루에 5~6개비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 ‘한창’ 때마저도 담배를 정말 피우고 싶어서 피웠다기보다는 헤비 스모커가 매니저로 있는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했던 나로서는 매니저로부터 일하는 중간 '합법적' 쉬는 시간을 부여받기 위해 골초 행세를 해댔던 것이었다. 


정신없이 사람에 치이고, 밀린 주문에 치이며 매일 반복되지만 또 매번 다른 러시 아워의 비상 상황들을 온갖 말초 신경들을 곤두세워가며 해결해가다 보면 어느 순간 머리가 하얗게 정지될 것만 같은 순간이 온다. 그럴 때면 매니저는 귀신같이 알아보고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담배 한 대 피우고 와.” 


그 한 마디가 나에게 주는 쾌감은 섹스할 때의 오르가즘과 거의 맞먹을 정도였다. 커피숍의 매니저는 바리스타들이 언제 니코틴 금단 증상이 오는지를 파악하고 해소시켜 주는 엄청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에스프레소 한 잔을 뽑아 들고 홍콩의 가장 바쁜 거리 한가운데의 문 닫은 상점 입구의 턱에 쪼그려 앉아 피우던 담배와 에스프레소의 황홀한 맛은 나에게 담배에 대한 거짓된 환상을 심어주었다. 그 이후로 그렇게 맛있는 담배를 피워 본 적이 있나 싶다. 항상 그때 느낀 맛을 되찾기 위해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지만 그 맛의 근처도 가지 못한다. 


그럴 때면 순진하게 이런 생각을 떠올리곤 했다, 우리네 인생은 과거에 한 번 맛본 황홀한 쾌감을 되찾기 위해 의미 없이 우리 자신을 망가뜨리는 일을 기계적으로 반복하게 되는 것뿐이라고, 하지만 그 과거의 쾌감조차 거짓된 환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쯤에는 이미 우리의 몸과 마음은 망가져 회복 불가한 상태에 빠진 지 오래였다.


요즘 들어 목이 간질간질하고 잔기침이 많이 나오기 시작하며, 가래가 들끓고, 호흡이 불규칙하며, 몸이 무겁다는 느낌이 들어 담배를 잠시 동안 끊었던 차였다. 물론 하루에 2~3개비 정도밖에 피우지 않는 라이트 스모커로서 담배보다는 다른 이유로 인해 몸이 망가져간다고 생각은 했지만 모두가(비흡연자가) 입을 모아 말하듯이 그 ‘백해무익’한 담배가 작은 부분일지라도 분명히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담배를 제외한 다른 이유들 중 하나로는 불규칙한 수면 패턴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약한 정도의 불면증이었다. 힘들게 잠에 든다 하더라도 갑작스럽게 눈을 뜨면 한, 두 시간 정도밖에 지나있지 않았고,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본능조차 충족시키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에 괴로워하다 보면 그 뒤를 이어 연쇄적으로 쏟아지는 우울감으로 인해 다시 잠을 청하기란 불가능했다. 무언가를 읽지 않고,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말하지 않고 오로지 홀로 잠을 청해야 하는 밤, 새벽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내기 하기 위함인지 내 머리는 과거의 기억들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끄집어와 냄새와 소리, 심지어 그 당시 느꼈던 감정들마저 완벽히 재현해 댔다. 그렇게 밤마다 재상영되는 기억의 영화제를 이리저리 오가다 보면 엔딩 크레디트를 보기 전에 아침 해가 화면을 페이드 아웃 시키기 일쑤였고, 그럴 때면 차라리 잘됐다 안심하며 지친 몸을 침대에서 일으켜 간절한 마음으로 커피를 찾았다. 그렇게 과거에 대한 회한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얼키설키 거미줄을 쳐댄 방을 나서 뜨거운 커피로 무기력한 몸을 달래고, 잠시 동안(고백하자면 기껏해야 하루 이틀이다) 끊었던 담배를 다시 꼬나물고는 연기를 길게 들이마시고 내뱉기를 반복하며 부정적인 감정들과 기억들이 함께 공기 중에 사라지길 바랐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담배는 늘 이런 나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는 이내 후회하게 만들었다. 머리가 아파오고 몸은 더욱 무거워졌다.


낮 시간 동안의 나는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지 않기 위해 강박적으로 무언가를 읽고, 보고, 들으며 실제 기억의 이미지들과 새롭게 집어넣어 대는 허구의 이미지들이 충돌하고, 그 과정에서 그들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나는 좌절과 망각을 반복했다. 그러한 일련의 무의미한 작업들을 반복하는 일상을 보내며 좌절의 반대는 희망이 아닌 망각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잠시 동안의 과거에 대한 망각은 현실을 살게끔 하는 동력이 되었다. 과거의 실패에 대한 망각은 미래의 성공이라는 헛된 꿈을 심어 주었고, 과거에 고통을 받았던 행동에 대한 망각은 같은 행동을 반복해가며 미래의 행복을 기대하게 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담배를 집어 들고 희망을 피웠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밤을 맞았다. 그렇게 보지 못할 엔딩 크레디트를 기다리며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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