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빌런.

by NOMAD J

내 손에서 1시간이면 끝날 일이 빌런에게 가면 이틀이상이 걸린다.

속도를 지적하면 자기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항변한다.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사이에, 같이 처리해야할 업무를 부여하면 원래의 일은 잊혀진다. 그렇게 두 가지는 모두 해결되지 않는다. 업무를 동시에 처리하는 것이 어렵나고 하였더니 "어떻게 두 가지 일을 한번에 하냐?"고 반문한다. 그래 글자그대로 보자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은 어렵긴 하겠구나. 빌런의 사고체계에서는.


업무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처리하는 것이 어렵냐고 물었더니, 본인은 "나름대로 고민해서 처리하고 있다."고 했다. "나름대로"의 기준이어서는 안된다고 하였더니 "누구는 이것 먼저 하라고 하고 누구는 저것 먼저 하라고 한다. 그래서 내 나름의 기준으로 하고 있다."라고 한다.


빌런은 자기가 빌런인 줄은 추호도 모른다.

백방으로 알려주려 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빌런의 눈높이에 맞추고자 다른 비슷한 사례를 들어 설명해주면 "그 경우는 나의 경우와는 달라요."라고 한다. 그래 그도 그렇겠지. 완벽히 똑같은 사람과 완벽히 똑같은 상황이 아닌 것이라면 빌런의 생각에는 그건 다.른. 일이겠지.


타일러도 보고, 화도 내보고, 통제도 해보았지만 빌런은 그저 결연하다.


소름끼치게 무서운 것은, 빌런은 자기가 정말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뭇 사람들이 모두 본인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또 의도적으로 질책한다고 한다.

관계라는 것이 상호작용에 의한 것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이쯤 되니 빌런은 아픈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찾아보니 비슷한 학술적 개념도 존재하는 듯 하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여, 영리를 목적으로 움직이고 사람의 노동력을 가치로 평가하는 '회사'가 빌런을 품어야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크게 의문이다.

그러나 국내 제도의 특성 상, 빌런과 안녕을 고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그냥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나의 사회생활에 새로운 경험이 하나 더 쌓이고 있다고 위안이나 할 밖에 도리가 없다.

누적된 경험치는 무의식중에 '역량 향상'의 기초가 되기도 하니까,

나는 그렇게 빌런을 통하여 능력자가 되어가는 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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