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슝(高雄), 대만.
- 엄마, 가방 하나 해드릴까? 아님 여행을 갈까?
- 가방 필요없어. 여행가자. 딸들하고 시간 보내는 게 하고 싶지. 가방 같은 건 필요 없어.
모친은 내년 초에 칠순을 앞두고 있다.
환갑은 현실적인 문제에 더해 가정불화가 있었던 터라 그냥 넘겼었다. 어쩌면 조금은 한이 되었으리라.
멋드러지게 뭘 해드리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시간을 내기가 마땅치 않다. 생일은 지나서하는 것은 아니라는 어른들 말씀이 있는데, 그렇게 하자니 내년 초반에는 두 딸이 시간을 맞추어 시간을 뺄 수 있는 날이 없다. 몇 달을 당기더라도 지금 다녀오는게 맞겠다. 이를테면 "칠순맞이 여행"이라고 해두자.
그리하여 가오슝은 지극히 현실적인 선택지.
해외일 것, 3박 4일 정도 일정으로 가능할 것, 비행시간이 5시간 이내일 것, 너무 저가항공이 아닐 것.
가오슝(高雄).
유명하다는 곳엔 사람이 넘쳐난다. 각종블로그에 소개된 맛집이라고 하는 곳에서 웨이팅을 3시간 가까이 했다. 2시간이 지났을 땐 이제 포기하잔 마음으로 근처 야시장(먹거리가 넘쳐나니 꼭 가봐야한다고 많은 분들이 블로그에 소개해 준 곳)에 가서 저녁을 떼우자 했다가는, 셋이 입구 한 블럭을 사람을 헤치고 지나고나서 그 길로 도망을 나왔다.
"와~~~ 진짜 언성시럽다!!!"
※ 경상도 사투리로, ' 지긋지긋하다, 참기가 힘들만큼 부산스럽다, 뭔가 암튼 부대끼고 별로다' 의 상황에 쓰이는 말로써 표준어로 정확히 표현이 좀 어렵다.:)
도시가 작은 만큼 가볼만한 곳은 2~3km안에 오밀조밀하게 분포하고 있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걷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무리 모친이 나이에 비해 젊고 잘 걷고 건강하다고, 해도 그래~도 칠순노인인 걸. 우리는 지하철 이용을 아예 포기했고, 이동이 필요할 땐 무조건 택시를 이용했다. 그럼에도 하루 2만보 이상은 걸을 수 밖에 없었는데, 힘이 들었을텐데도 "엄마는 괜찮아.", "엄마 이정도는 해. 딸들 따라다니려고 내가 평소에 얼마나 운동을 열심히 하는 줄 알아?히히" 를 연발한다. 고맙기도 하지만, 조금 안쓰럽기도 하다. 어쩌면 엄마에겐 이 시간이 그만큼 소중한 것일까. 만나면 싸우기만 하던 지긋지긋했던 남편을 이상하리만치 애틋하게 보냈고, 그 계기로 몇 년간 왕래하지 않던 딸 하나도 이제서야 자기 품으로 돌아 왔다고 느낀다.
나는 아마 죽어도 그 마음이 무엇인지는 가늠하지 못할 것이다.
솔직히 나는 늘 가족을 지긋지긋해하지만, 부모에게는 내가 감히 가늠하지 못 하는 사랑이 있다는 것은 안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랑에 최소한으로라도 도리를 해야한다는 것을 안다. 모든 것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겠지만.
일정을 꽤 러프하게 짰다. 일단 여행 결정부터 출발까지 시간이 별로 없기도 했고 준비라는 걸 그나마 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혼자서라면 그냥 대충 구글맵에 가고 싶은 곳 몇 곳 찍어놨다가 현지에 도착해서 가고싶으면 가고 말고싶으면 마는 식으로 휘뚜루마뚜루 휘적거리며 다녔겠지만, 어른 1명과 초계획인간인 자매1명과 함께 가는 여행이 좀 걱정스러워, 스프레드시트로 대략적인 일정을 짜서 자매에게 컨펌을 받았다. 다만 전제가 있었지.
- 엄마 컨디션 살펴서 일정을 조정해야 해. 엄마는 늘 괜찮다고 하니까 우리가 표정을 잘 살펴야 함.
- ㅇㅋ.
그렇게 실제로 몇 가지 일정은 과감히 삭제했다. 사실 어느 한 군데를 더 보고 덜 보는게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니까.
불광산사는 놀랍도록 크고 웅장했으며 깨끗했다. 사이비종교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응집된 에너지와 돈이 쓰일 수 있었을까 싶어 검색도 해보고, 택시기사 아저씨에게도 물어봤는데 정상적인 불교사원이라고 했다. 역시 중화권 문화는 일단 규모부터가 상상초월이다.
(공간도 공간이었지만, 불광산사를 오가는 동안 함께해 준 택시기사 아저씨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대륙과 대만의 차이와 사고방식에 대해서까지.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장미성당은 자그마했고 아기자기했다. 천주교 신자인 두 분이 기도의 시간을 갖는 동안 뒤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좀 새삼스러웠다. 온갖 무속신앙과 절, 개신교를 넘나들며 뭔가를 갈구하던 모친과 차녀가 결국은 천주교를 선택했다. 그리고 종교라는 것 자체를 그리도 거부하던 아빠도 마지막엔 본인 입으로 세례를 받겠다 하였고 병자성사까지 받으셨었다. 큰언니 수녀님의 기도가 대단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뭔가 정해진 게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이제 남은 숙제는 나 하나. 그러나 억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가 있을 것이다.
가는 곳마다 사람이 넘쳐나서 기운이 빠질 때도 있었다. 여행이란 무릇 그 나라 사람들이 어찌 사는 지도 좀 보고, 마음을 느긋하게 가져야하는 것인데 이상하게 몸도 마음도 바빴다.
다음 방문 장소를 위해 가열차게 걷던 중, 관광지의 한가운데에서 생활의 공간에 시선이 멎는다. 주거지라고 보기엔 남루했으나 대략 창고나 작업실 정도로 사용하는 공간인 것 같았다. 빨래가 널려있는 것을 보면 왠지 늘 사진을 찍는다. 사람 사는 냄새라는 것이 결국은 이런 일상에 녹아 있다.
잠시 이번 여행에 대해서 생각한다.
누구도 만족할 순 없었지만, 이렇게 시작은 해야하는 여행이다. 이번 여행을 돌아보며 다음엔 더 좋은 시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현실에 남은 건 우리 셋 뿐이다.
언니와 모친, 다리가 길쭉한 두 여자가 씩씩하게 걷는 뒷모습을 많이도 찍었다. 뻥을 조금 보태 두 사람의 뒷모습 사진만 한 3분지 1은 되는 것 같다.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기도 하지만, 상호돌봄의 존재로 같이 늙어가야 한다.
남은 시간이 이제 그리 많지도 않다.
또 무슨 일이든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집 안에 유일한 남성이었던 부친은 발병사실을 안 날로부터 10개월여 만에 떠났다. 꼭 질병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어떤 일이나 예상할 수 없는 것들이 정말로 원하지 않는 시기에 찾아온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 기다리지 말고 할 수 있을 때 뭔가를 해야 하겠다.
다만, 이번처럼 무리는 말고.:)
2025.12.
가오슝(高雄), 타이완(臺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