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목 이불

회장님의 보은

by 키튼

내과 레지던트 시절, 응급실을 통해 한 할아버지가 실려 왔다. 아흔을 바라보는 연세였다. 피검사를 해보니 수치들이 하나같이 위태로웠다. 염증 수치는 치솟아 있었고, 장기 기능도 이미 한계에 가까워 보였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검사 결과가 아니라 그의 행색이었다. 마른 체구에 낡은 옷가지, 해어진 점퍼. 침상에 옮겨 눕히는 순간, 코를 찌르는 퀴퀴한 냄새가 번졌다. 오래 씻지 못한 몸에서 나는 냄새인지, 세월이 스며든 옷에서 배어 나온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의학적 판단으로는 당장 중환자실에 가야 했지만, 가족들은 단호했다. 아버지가 고통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인공호흡기를 거부했다. 결국 1인실에서 항생제와 승압제만 쓰며 조용한 이별을 준비하기로 합의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이 할아버지의 결말을 어느 정도 예상한 채로 치료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을 빗나가는 상황이 벌어졌다. 별다른 처치 없이 항생제와 기본 수액 정도만 들어갔을 뿐인데, 피검사 결과가 몰라보게 좋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흔의 노인이 이토록 무력하게(?) 나아버리다니. 의학적 예측이 민망할 정도로 상황은 호전되었다.

다만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던 건 혈압을 올리려 쓴 승압제 부작용 때문이었다. 할아버지의 한쪽 발끝에 괴사가 진행되어 거뭇하게 변해버린 것이다. 살려놓고 원망을 듣지는 않을까 싶어 회진 때마다 내 심장은 사정없이 쪼그라들었다.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들어간 내게, 딸은 뜻밖의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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