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저렇게 나이들고 싶다

어떤 노년의 품격

by 키튼

직업의 특성상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을 자주 뵙는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와 몇 마디 나누다 보면, 그분이 통과해온 세월의 결이 어렴풋이 느껴질 때가 있다. 굳이 화려한 이력을 듣지 않아도 그렇다. 말을 내뱉는 속도, 질문을 받아들이는 태도, 예기치 못한 불편함에 반응하는 방식, 그리고 자신의 몸을 대하는 습관 속에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 고스란히 배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유난히 기억에 남는 어르신 한 분이 계셨다.

여든을 넘긴 고령임에도 몸매가 묘하게 다부지셨다. 소위 말하는 '근육질'은 아니었으나, 오랜 시간 자기 자신을 함부로 내버려 두지 않은 사람 특유의 단단함이 느껴졌다.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외양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흐트러짐 없는 전체적인 분위기였다.

옆구리의 불편함으로 내원하신 그분은 이미 타원에서 초음파 검사까지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여전히 가시지 않는 불안을 해결해 드리고자, 초음파로 놓칠 수 있는 병변을 확인하기 위해 CT 검사를 권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조영증강 CT를 촬영하는 과정에서 조영제가 혈관 밖으로 새어버린 것이다. 어르신들은 혈관이 약해 드물게 발생하는 일이라지만, 하필 내가 유난히 잘해드리고 싶었던 환자에게 이런 일이 생기자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금세 퉁퉁 부어오르는 손을 보며 나는 연신 죄송하다는 사과를 건넸다.

당황스러울 법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노신사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나를 몰아세우지도, 노골적으로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지도 않으셨다. 그저 현재 상태가 어떤지, 앞으로의 경과는 어떠할지 차분히 물으셨다. 한참 어린 의사인 나의 설명을 주의 깊게 경청하며, 온전히 존중해 주는 태도였다.

처치 도중, 그분이 조용히 혼잣말처럼 덧붙이셨다.



오늘 강연 일정이 있는데, 이 손으로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순간 조금 이상했다.
이 근처 대학에서 강연하실 정도의 분이라면, 그리고 '손으로 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하시는 걸 보니 예사로운 분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당시 내 마음을 가득 채운 것은 오로지 죄송함뿐이었다. 아이스팩 처치와 경과 관찰에 관해 상세히 설명해 드린 뒤, 가까이 사신다면 자주 내원해 상태를 살피자고 말씀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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