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Sex!

영어보다 어려운 진료의 언어

by 키튼

20대의 젊은 미국인 여성 환자가 있었다.


처음 내 진료실에 들어왔을 때 그는 전형적인 방광염 환자처럼 보였다. 소변을 볼 때 불편하고, 자주 마렵고, 아랫배가 묵직하게 아픈 증상. 외래에서 흔히 보는 질환이었다. 나는 평소처럼 경험적 항생제를 처방하고 소변 배양검사도 진행한 뒤 돌려보냈다. 한동안 오지 않기에 잘 나았겠거니 했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나 다시 왔다. 같은 증상이 재발했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약을 먹고 좋아졌다고 했다. 하지만 그다음에는 더 빨랐다. 불과 2주 만에 다시 내원했다. 약을 먹으면 좋아지는데, 시간이 지나면 또 반복된다고 했다. 재발성 방광염이 아주 드문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환자처럼 짧은 간격으로 반복되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환자도 점점 예민해졌고, 나 역시 초조해졌다.


한국의 외래는 대체로 짧다. 핵심 증상을 듣고, 검사를 하고, 약을 설명하고, 다음 환자를 본다. 하지만 이 환자는 자신의 병력과 생활 습관, 증상의 흐름을 충분히 설명하고 싶어 했고,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납득할 만한 답을 원했다. 당연한 요구였다. 나도 환자의 말을 끝까지 듣고 싶었다. 다만 현실의 외래는 그렇게 흘러가지 못할 때가 많다. 뒤에 환자가 밀려 있고, 나는 자꾸 시계를 보게 되고, 결국은 조금 더 들어야 할 이야기를 다 듣지 못한 채 진료를 서두르게 된다. 그때마다 늘 비슷한 종류의 미안함이 남는다.

이번에도 약을 주고 보내면 되겠지 싶었던 순간, 환자가 나를 붙잡았다.


“왜 자꾸 반복되는지 알고 싶어요.”


사실 나도 그 점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약을 먹으면 좋아지는데 다시 재발한다는 것.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환자는 이미 예민해져 있었고, 나는 그 화난 20대 미국인 여성을 영어로 진정시키며 설명해야 했다.

평소 반복적으로 쓰는 말은 영어로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날은 표준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환자는 답을 원했고,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한 문장씩 더듬어 꺼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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