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돌아가셨다.

2022.2.15

by 키튼

외할머니가 아프시기 시작한 것은 8년 전이다. 할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셨는데, 수백 번도 더 갔던 교회에서 집에 오는 길을 잊어버리셨다. 이후에 증상은 점점 심해져갔다. 평소 무화과를 좋아하시던 할머니에게 선물로 들어온 무화과 한 상자를 혼자 다 드시고는 자신은 먹은 기억이 없다고 하시질 않나, 매일 같이 보던 이웃이 누군지 못 알아보시기도 하였다. 처음에 할머니를 모시던 삼촌은 치매를 의심하던 주변의 말에도 그럴 리가 없다며 완강하셨다. 하지만 대소변을 못 가리시는 것을 본 후에 할머니가 많이 아프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삼촌이 더 이상 감당이 안 되는 할머니를 처음 요양 병원에 모신 그날, 할머니는 여기가 싫다며 그렇게 우셨다고 한다.



다행히도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잘 적응을 하셨다. 평소 예쁜 거, 꽃을 좋아하시는 할머니는 어디서 나셨는지 자신의 병실을 가짜 꽃들로 장식해놓으셨다. 자주 찾아뵙지 못했지만, 갈 때마다 할머니는 당신의 아들, 딸들에게 ‘여기도 좋다. 괜찮다’는 말씀을 하셨다. 차라리 너무 힘들다고 하셨다면 덜 마음 아팠을 텐데, 그런 할머니가 너무 안쓰러워서 더 눈물이 났다.

5년 전부터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부터 매해 겨울마다 할머니는 폐렴으로 힘들어하셨다. 3년 전에는 기관삽관을 고려해야 할 정도로 힘든 상황이었었다. 병문안을 온 손주에게 할머니는 본인 몸이 천근만근인데도 손주를 반가워하시고는 손을 꼭 잡으셨다. 할머니는 나를 항상 ‘강아지’라고 불렀는데,

세상에서 나를 유일하게 ‘강아지’라고 부르는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그런 분이었다.


항상 자신보다 당신의 아들, 딸들, 손주들의 안위를 더 걱정하시고 한없는 사랑을 가진 따뜻하고 강인하신 분이었다.



이번 겨울에도 어김없이 폐렴에 걸리셨고, 병원에서는 마음에 준비를 하라고 하였다. 왠지 이번은 넘기기 힘드실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할머니 임종하기 전 병원에서 아들, 딸들을 급하게 찾았다. 어머니는 놀라 보게 말라버린 할머니를 보고 와서는 오열했다. 어머니는 아직 결혼하지 않는 막내아들은 우리가 보살 필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귀속말로 하였다.




장례식날 관 안에 놓여 있는 할머니에게 가장 화려한 색깔의 꽃다발을 쥐어드렸다. 살아생전 꽃을 좋아졌던 할머니. 지난 세월 병마와 싸우시느라 너무 지치셨던 할머니를 놓아드렸다.


할머니는 꽃처럼 살다 가셨다.

남들은 모두 더 빨리 가라고 조언할 때 나에게 천천히 가도 된다고 말하던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던 할머니. 이제 나를 ‘강아지’라고 불러줄 사람은 없다. 할머니 같은 사람을 위해 천국은 존재할 것이다. 착한 사람들만 간다는 그곳에서 할머니는 편히 쉴 것이다.




할머니의 강아지는 어느덧 37살이 되었습니다.

천국에서 편히 쉬세요.

할머니에게 자랑스럽고 떳떳한 손주가 될 테니 잘 지켜 봐주세요.

사랑합니다. 할머니.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