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10년 전, 소설 쓰기를 배울 때 나는 코엔 교수에게 이렇게 물었다.
“왜 글을 계속 쓰라고 하는 건가요? 세상에는 잘 쓴 글이 이미 너무 많아서 의욕이 안 나요.”
코엔 교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매일 아침에 점심 샌드위치 도시락을 쌉니다. 이 샌드위치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샌드위치가 아닌데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샌드위치를 싸느니 자살을 하는 편이 낫겠죠.”
연애와 술 - 김괜저
사실 글쓰기를 접으려고 했었다.
왜 쓰는지도 모르겠고, 쓴다고 인생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읽는 내 글은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도대체 이런 부끄러운 이야기를 왜 여기에 올렸던 거지’
‘오탈자라고 고칠걸... 기본도 안되어 있어’
3달 정도 브런치에 글을 안 올렸을 무렵, 원인 모를 알고리즘에 의해 갑자기 조회수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처음 몇 시간은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가 이내 무감각해졌다.
‘이러다가 말겠지 뭐’
그러다가 어떤 구독자님게 메일을 받았다.
꽤 장문의 메일이었다. 의대생과 간호사 자녀 분을 두신 구독자님이었는데 얼굴도 모르는 나를 응원하신다고 하셨다.
순간 눈물이 날 뻔했다. 요새 몸도 마음도 꽤 지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긴 인생을 살아본 건 아니지만, 우리가 인생을 견딜 수 있는 이유는 이름 모를 누군가의 선의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중학교 때 윤리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온갖 흉악 범죄가 판을 치더라도 이 세상이 굴러가는 이유는 그래도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착한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야
나랑 관련은 없지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
의례적으로 주고받는 인사말 속에 따뜻한 마음.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마음.
적극적인 선행이 아니라더라도 따뜻한 정으로 이 세상은 굴러간다.
2주 전, 친구가 자살 충동으로 정신과에 입원했다.
친구는 중학교 때부터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다. 물론 시간이 흘러 그 친구와 나와의 관계가 예전 같진 않았지만 여전히 그 아이는 나의 인생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친구의 병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래도 성실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아이었다.
며칠 전에 갑자기 공황발작이 생겼고 그냥 이렇게 살바에야 죽고 싶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의사가 아니라 친구로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게 미안했다.
나는 그 친구가 어떤 사정인지 안타깝게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리고 만약 알더라도 그런 사정을 여기에 올리는 것은 좀 아닌 듯하다.
그래도 내가 쓴 이 글이
이 글에 담긴 내 마음이
조금은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받았던 선의로 인해 힘을 낼 수 있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