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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튼 Aug 31. 2022

한국어보다 영어를 잘한다면?

싱가포르 사람들의 행복한(?) 고민

다행히 병원에서 허락을 해주셔서 코로나가 한창인 이때 싱가포르에서 여름휴가를 보낼 수 있었다. 여행을 준비하는 내내 가이드 북을 보면서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여행책에는 유명한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사진도 있었고, 화려하고 다양한 먹거리들이 즐비했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하늘길이 폐쇄되고 3년 만이었다.

입국 절차는 순조로웠다. 싱가포르는 현재 백신 3차 접종만 하면 입국할 수 있어서 큰 문제없이 입국할 수 있었다.  입국하자마자 거대한 쇼핑센터가 날 반겼다. 얼마 전에 공항에서 개장한 주얼 창이라는 곳이었다. 쇼핑몰 한가운데 거대한 분수가 쏟아졌다.

싱가포르 창이 국제공항에 있는 주얼 창이


처음에는 신기했다. 이런 곳에 이런 거대한 쇼핑몰이 있다니. 하지만 곧 무덤덤해졌다. 유명한 관광지에는 항상 거대한 쇼핑센터가 있었다. 샌즈 호텔 지하에는 어마어마한 쇼핑센터가 있었고, 유니버설 스튜디오로 유명한 센토사 섬에는 또 비보 시티라는 쇼핑센터가 건너편에 있었다.

2022년 대한민국의 서울에 살고 있는 우리 부부에게는 쇼핑센터가 솔직히 그렇게 신기하진 않았다. 요새는 스마트 폰 하나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이다. 해외 직구로 지구 반대편의 진귀한 물건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세상이다.



사실 쇼핑센터 보다도 기억에 남는 것은 이곳의 인종의 다양성이었다. 70%가 화교로 구성된 나라라고 들었는데, 이곳에 다른 나라 국적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감안하면 거의 절반은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인 거 같았다. 백인은 물론이고, 까무잡잡한 얼굴색의 인도인, 인도네시아 사람, 흑인 그 외에도 국적을 알 수 없던 사람들 까지.

하지 레인의 싱가포르 사람들.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이 어울려 산다.

 이곳 사람들은 Singlish(이하 싱글리쉬)라고 하는 영어를 사용한다는데, 영어가 이 나라의 공용어가 되면서 방언화되는 것으로 보였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내내 곳곳에서 싱글리쉬가 들렸다. 다들 각자의 악센트와 뉘앙스로 말하면 상대방은 그것을 또 찰떡 같이 알아먹었다.

싱가포르에서는 현재 신기한 캠페인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바로 “집에서는 모국어를 사용하기”라는 캠페인이었다. 실제로 싱가포르에서는 아직 입이 트이기 직전의 어린아이를 중국어(만다린) 유치원에 보내는 게 유행이었다.  ‘집에서 가르치면 되지 왜 유치원에 보내는 거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들 부모는 자신이 틀린 중국어를 알려줄까 봐 집에서 조차 중국어를 하지 않고 오직 싱글리쉬로만 말하기 때문에 이런 유치원이 성행한다고 한다. 싱가포르 학교에서는 옛날부터 모국어 시험을 보고 있는데,  실제 생활에는 영어만 해도 지장이 없기 때문에 거의 쓸 일이 없어 시험용으로 전락하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는 정말 신기했다. 우리나라와 정반대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아직 말조차 트이지 않는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낸다. 그리고 정규 교육 내내 영어를 가르치지만 결국 외국인을 만나면 도망 다니기 일쑤이다. 변명을 하자면 실생활에서 한국어만 할 줄 알아도 아무 불편함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영어"


이것 만큼 한국인들에게 애증의 대상이 또 있을까. 정말 얼마나 많은 사교육으로 부모들의 등골을 휘게 만드는 것인지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다. 길가면서 들었던 그들의 영어는 특유의 악센트가 있었지만, 매우 유창했고 자연스러웠다. 솔직히 좀 부러웠다.  나는 이 나이 먹어서도 영어에 대한 뿌리 깊은 콤플렉스에 시달리는데 이곳 사람들은 모국어를 잊어버릴 정도로 영어가 유창하다니.




1년 전에 싱가포르 영어 선생님을 화상통화로 만난 적이 있다. 그 친구는 나보다 10살 정도 어린 남자 선생님이었는데, 한국을 너무너무 사랑했다. 그는 자기는 5개 국어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영어, 북경어(만다린), 광둥어(칸토니스), 한국어, 일본어. 특히 한국 예능을 너무 사랑하는데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유재석이라고 했다.

이 친구를 만나고 나서 싱가포르 사람들은 모두 언어 천재인가 보다 생각했는데, 실제 싱가포르에 와보니 국민 모두 다중언어 능력자는 아닌 것으로 보여서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이 친구는 어느 날 갑자기 나와 수업이 힘들 거 같다며 자기는 중국으로 가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왜 중국으로 가냐고 물어봤고, 그는 자신의 뿌리를 알고 싶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영어선생으로 일하는 것이 돈도 적게 벌고, 열악하지만(실제로 중국의 영어학원에서는 싱가포르인들을 원어민으로 대우해주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자기 인생에서 한 번은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그때는 그냥 그의 마음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고 그냥 응원한다고만 말했지만, 막상 이곳 싱가포르에 와보니 왜 인지 알 거 같았다.




싱가포르는 정말 멋진 도시였고, 지구상에서 손꼽히는 부자 나라였지만, 이 나라의 정체성은 해가 갈수록 모호한 상태였다. (그게 이 나라의 독특한 매력이기도 하다.) 사실 관광지로 손꼽히는 곳은 모두 인공 건축물이었고, 말레이시아랑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오직 2년 동안 말레시아 연방에 속해 있던 거 빼고는 오히려 사이가 안 좋았으며, 고향은 중국이었지만 영어를 쓰고 서방국가와 친화적이었다.


그래서 매력적이지만, 거칠게 말하면 그들 스스로도 그들이 누군지 헷갈릴 거 같았다.
싱가포르 갈비탕 '바쿠테' 지금 생각해보니까 '깍두기'가 없어서 허전했다.


수많은 나라의 음식점들이 있었고, 유명 셰프의 레스토랑들이 즐비했지만 막상 모두 애매했다. 예를 들면 싱가포르에서 먹는 갈비탕과 우리나라에서 먹는 갈비탕의 차이처럼. 그 한국의 맛을 아는 사람에게는 매울 수 없는 허전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 친구는 그것을 알고 싶었을 거 같다. 내가 싱가포르에서 먹었던 갈비탕의 허전함의 정체 같은 그 무언가를.




싱가포르 곳곳에 한국인 종업원 분을 만났는데 많이 바쁘신데도 나에게 이것저것 많은 것을 알려주셨다. “여기 커피는 이게 맛있고, 한국에서는 이게 유명한데 저는 이것을  추천한다” “스타벅스는 여기로 가면 있는데 중간에 작은 스타벅스도 있다. 기념품 사시려면 조금  걸으셔서  스타벅스로 가시는  좋겠다이런 식이었다. 그냥 주문한 것만 가져다줘도 되고, 묻는 길에만 대답해줘도 됐을 텐데, 타국에서 만난 한국인 반가우셨나 보다.

우리나라에 다시 돌아가려면 코로나 신속항원 검사를 받고 음성을 받아야 한다. 항원 검사 결과를 받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 얼마나 긴장이 되던지. 오직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나에게 한국이 너무 당연한 곳이 었다는 것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출국하기 전에는 온통 떠날 생각뿐이었는데 싱가포르에서 한국이, 한국인이 얼마나 서로에게 당연하지 않은 존재였는지 깨닫고 돌아간다.


다행히 항원 검사 결과는 음성이 나왔다.


출국하는 비행장에서 처음으로 한국어를 들었다.

“한국 가는 비행기 타러 오셨어요” 승무원으로 보이는 신사분이었다.

너무 반가워서 나도 모르게 손이라도 잡을 뻔했다.


한국어를 잘 구사하는다는 것에 감사해야겠다. 나는 적어도 내가 누구인지 헷갈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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