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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튼 Mar 29. 2020

글을 쓰는 이유

 초등학교 때, 글쓰기 학원을 다닌 적이 있다. 또래 5명이서 모여서 듣던 수업이 었는데, 선생님 댁에 직접 찾아가서 수업을 듣던 방식이었다. 선생님의 방에는 셀 수도 없는 책들로 둘러싸여 있었고, 오래된 책이 주는 기분 좋은 묵은 냄새로 가득했다.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언제 가는 나도 선생님처럼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마음먹었던 게.



  

 나의 구독자들은 대부분 나의 지인이다. 너무 감사하게도 '재밌다', '글 잘 쓴다'는 말을 한마디씩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고, 우쭐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부담스러운 맘이 더 크다. 글을 쓰면 쓸수록 '멋있어 보이고 싶어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의 글을 다시 보는 일은 너무 부끄럽다. 정말 이런 생각을 했던가 싶을 때도 있고, 그때랑 생각이 달라져 있는 경우도 많다. '글을 쓰는 나'라는 새로운 가면을 만들어낸 느낌이랄까... 그 사람이 진정 '나'인지 나조차 헷갈린다.




1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세계여행을 갈 생각에 부풀어 있었다. 그리고 이 공간에는 나의 여행기를 올려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WHO가 코로나 판데믹을 선언한 바로 그날, 올해 여행은 글렀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우리 부부가 세계여행을 계획했던 건 5년 전부터였다. 5년간의 기다림이 한순간 물거품이 되어버린 그때, 설명할 수 없는 좌절감이 들었다. 글을 쓰기 위해 열었던 이 공간도 의미 없다고 느껴지던 요즘이었다.




 

점점 글을 쓰는 게 힘들다. 어떤 날은 컴퓨터 앞에 한 시간 동안 앉아서 멍 때리다가 포기한 적도 많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내면의 자기 검열 과정이 점점 혹독 해지는 탓이다. 이런 이야기를 써도 될지, 멋있어 보일지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것은 아이러니하기도 부끄럽기 때문이다.


부끄러우니까 또 써보고, 그래도 어제보다는 좀 더 나의 진짜 생각에 근접한 글이 나올 거라는 일말의 기대감 때문이다. 글을 쓰는 과정은 나의 생각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글을 쓸 때야 비로소 생각해 보게 된다.


 나의 세계 여행은 좌절되었지만, 글은 계속 써볼 생각이다. 나 자신의 허세와 마주하는 일은 너무 힘들지만, 매 순간 진심 어린 글을 쓸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나에게 작가의 세계에 동경을 심어준 그 선생님께 심하게 혼났던 적이 있다. 선생님의 칭찬을 너무 받고 싶었던 나머지 몰래 이어령 선생님의 글을 베껴서 나의 생각인양했던 적이 있다. 선생님께서는 처음에는 비범한 재능에 놀라시는 듯하더니, 계속되는 거짓 독후감을 눈치채셨다.


"내가 지금 너를 혼내는 이유는 나중에 큰 잘못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란다. 가장 좋은 글은 진실된 글이야. 너의 생각이 부끄럽다면 계속 쓰면 돼"

 


 

 부끄러워서 오늘도 써본다.


그리고 나의 부끄러운 일기장 같은 글을 읽어주시는 구독자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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