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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리에 이르는 길은 미스터리다

지식은 책이나 책상에서 나오지 않고 실천적 성찰에서 나온다

마스터리(Mastery, 경지)에 이르는 길은 미스터리(Mystery, 신비)!

지식은 책이나 책상에서 나오지 않고 실천적 성찰(reflection-in-action)에서 나온다.    

     


전문가는 전문적으로 문외한이다!     


한 분야의 경지(mastery)에 이른 사람의 여정은 영원히 풀 수 없는 신비(mystery)에 쌓여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저보고 어떻게 그렇게 책을 빨리 쓸 수 있는지 비법을 설명해달라고 한다.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저 매일 조금씩 밥 먹듯이 쓴다고 대답한다. 특별한 비법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하려고 마음을 먹는 순간 막막한 기분이 든다. 어떻게 책을 쓰는지를 빠짐없이 정리해서 완벽한 책 쓰기 매뉴얼로 만들 수 없다. 혹은 책 쓰기 과정(process)을 구체적인 단계로 나눠서 각 단계별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practices)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지만 여전히 마스터리에 이르는 길은 미스터리로 가려져 있다. 본인이 매일 하고 있는 일을 언어를 매개로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 언어적 개입을 거부하는 전문성의 경지, 거기에 이르는 길은 늘 베일에 가려져 있다. 경기도 파주에 가면 선일금고라는 금고 만드는 강소기업이 있다. 안타깝게 설립자 김용호 회장님은 돌아가셨다. 김용호 회장님은 전 세계 금고를 종류별로 손으로 여는 지루한 반복 연습을 통해 금고여는 마스터리에 이르게 되었다. 김용호 회장님의 금고 여는 노하우, 즉 마스터리는 말로 또는 언어로 가르칠 수 없는 신비의 영역(mystery)으로 남아 있다. 금고여는 당사자는 몸으로 알고 있지만 누군가에게 가르쳐 줄 수 없는 신비의 영역이다.     


“전문직은 이제 신뢰성과 정당성의 위기라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대중들의 분노, 사회로부터의 비판, 전문가 자신의 불평 등 전문직에 대한 부정적 분위기 속에서 그동안 전문가들이 독점해온 지식의 배타적 소유권, 사회에 대한 통제 권리는 도전을 받고 있다”(11쪽). 한 우물만 파다가 매몰되는 전문가도 속출하고, 전문가지만 자기 분야밖에 모르는 전문적으로 문외한도 등장한다. 전문가가 전문성은 갖추고 있지만 사람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과 식견, 다른 사람과 어울려 소통하고 공감하는 능력은 현격하게 떨어진다. 전문가의 조언과 충고, 도움과 노력으로 난관을 극복하고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었지만 언제부터인지 전문가의 전문성은 물론 그들이 인간성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전문가의 전문성의 깊이에도 문제가 있지만 깊이가 없으면서도 깊이 있는 전문가임을 자처하는 무늬만 전문가도 속출하면서 일반인들은 더 이상 전문가를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첫째, 전문가들이 더 이상 자신들이 지지하는 가치와 규범에 따라 살지 않고 있고, 둘째, 그렇게 때문에 그들은 더 이상 효과적인 활동을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11쪽). 전문가라고 믿었지만 전문가로서 갖추어야 될 전문성의 깊이도 부실할 뿐만 아니라 전문가로서 끌리는 인간적 미덕조차 부재하기 때문에 전문가는 이제 위기와 난국에 직면하고 있다.  

 

   

모든 전문성은 사회적 맥락에서 탄생된다     


지금까지 전문성은 전문성이 발휘되는 현장(context)에서 분리 독립시켜 전문가가 갖추어야 될 전문성을 도출하고 이를 근간으로 체계적인 교육을 실시하면 기대하는 전문가를 육성할 수 있다는 소위 기술적 합리성의 패러다임을 따랐다. 전문가 육성에 대한 기존 패러다임은 이런 전문성을 익히려면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보유하고 있는 전문성을 탈맥락적으로 도출한 다음 이것을 초보자들에 체계적으로 가르치면 기대하는 전문가를 육성할 수 있다고 가정했다. 특정한 분야의 전문성을 발휘하는 과정(processes)을 구체적으로 처방한 매뉴얼을 그대로 따라 한다고 매뉴얼대로 실천(practices)되지 않는다. 즉 어떤 일을 하는 프로세스나 매뉴얼을 머리로 안다고 해서 그대로 몸이 움직여 실천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앎이 현장에서 잉태되지 않고 책상에서 속성 재배되었기 때문이다. 앎이 이루어지는 책상은 창백하다. 복잡한 역동성과 불확실성, 그리고 뜻밖의 예기치 못한 사건과 사고가 우발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농후한 현장은 언제나 기대했던 매뉴얼이나 프로세스대로 실천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전문성은 전문성을 잉태한 사회적 맥락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다. 모든 전문성은 그것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문제의식과 전문성 탄생에 영향을 준 모든 사람의 사회적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그동안 전문가에 대한 관점은 전문가가 되는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전문성이 발휘되는 맥락과 무관하게 탈맥락적으로 가르치면 필요한 전문가를 육성할 수 있다는 기술적 숙련가 패러다임이 지배해왔다. 이들에 따르면 “전문성을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지식체계가 아니라 주관적이고 상황적인 앎의 과정”(ii쪽)으로 인식한다. 기술적 숙련가 패러다임에 따르면 전문가를 육성하려면 전문가가 갖추어야 할 다양한 전문성을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가르쳐야 한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전문가로서 갖추어야 할 전문성을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습득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실천 현장에서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부지기수로 발생하면서 전문가 육성에 대한 전통적인 패러다임의 한계와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기술적 숙련가를 육성하는 전문성 모델을 다른 말로 기술적 합리성 모델이라고 한다. “기술적 합리성 모델에 따르면, 전문가 활동은 과학적 이론과 기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도구적 문제 해결 행위로 설명된다”(21쪽). 목적이나 방향이 결정되면 그다음 문제는 거기에 이르는 수단과 방법, 도구와 절차를 합리적으로 결정해서 실행하면 된다는 발상이다. 하지만 전문가의 처방을 기다리는 상황은 어떤 해결책을 동원하면 기대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는 문제(problem)가 아니라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알 수 없는 문제 임직한 상황(problematic situation)이 더 많다.    

 


문제는 문제(problems)가 아니라 문제 상황(problem situations)이다     


문제는 해결하면 되지만 문제 상황은 특정 절차나 프로세스대로 따라가면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문제 상황은 시시각각 바뀌는 변화무쌍한 위기일발의 사각지대이자 어떤 조치를 취하면 고민하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딜레마 상황이다. 어떤 한 가지 해결책으로 주어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하고 불확실하며 불안정하고 혼돈스러운 상황이다. 과학적 지식이나 체험적 노하우를 체계적으로 적용한다고 해결되지 않는 이해하기 어려운 난국이다. “기술적 합리성의 관점으로 보면, 전문가의 실천 활동은 일종의 문제 해결 과정(problem solving)이다. 즉 기술적 합리성 관점에서 보면, 선택을 하거나 결정하는 문제는 활용 가능한 수단들 중에서 목적 달성에 가장 적합한 수단을 선정하는 행위로 해결된다”(40쪽). 그런데 문제 해결은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규정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후속 조치가 따른다. 즉 문제의 본질을 규정하는 문제가 문제 해결에 필요한 접근 논리의 방향과 성격을 규정한다. “문제 규정(problem setting)은 기술적 문제 해결을 위한 필수 조건이지만, 문제 규정 자체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문제 규정(problem setting)은 주의를 기울여야 할 현상들을 명명(name)하고, 주의를 기울이게 될 맥락을 틀 지우는(frame) 행위를 동시에 수행하는 일련의 과정이 된다”(41쪽). 문제 해결은 기술적 문제지만 문제 규정은 문제의 본질을 인식하고 정의하는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이해관계자의 협의와 합의가 필요한 문제다. 따라서 여기는 과학적인 도구를 도입한다고 금방 해결되지 않는 불가사의한 영역이 여전히 신비에 싸여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규정하는 문제는 기술적 과정이 아니라 정치적 합의과정이다. 문제 상황은 문제라고 보는 시각과 관점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전장(戰場)이다.     


모든 문제는 문제 해결 이전에 계획했거나 준비했던 방식대로 풀리지 않는다. 문제가 존재하는 문제 상황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 문제 해결을 위한 완벽한 계획을 수립했다고 그대로 실행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문제 해결을 위한 완벽한 계획과 절차, 방법과 수단을 사전에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준비하는 일보다 실제로 문제가 존재하는 딜레마 상황에서 다양한 실험과 실천을 하는 가운데 초기 계획을 수정하는 행위 중 성찰(reflection-in-action)이다. “행위 중 성찰 과정이야말로 바로 실천가들이 불학실성, 불안정성, 독특성, 가치 갈등 상황들에서 때때로 적절하게 대처하도록 해주는 “기예art”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50쪽). 행위 중 성찰은 완벽한 계획을 수립해서 완벽한 실천을 기하려는 노력이 아니다. 오히려 행위 중 성찰찰은 어느 정도 구상이나 계획이 수립되면 실천 현장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성찰해보고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했다면 어떤 문제 때문에 생각대로 안 풀리는지를 당시의 상황적 맥락을 고려해서 판단하고 다음 조치를 어떻게 취할지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이때 생기는 앎이 바로 행위 중 앎(knowledge-in-action)이다. 앎은 책상에서 생기지 않고 실천 현장에서 온몸으로 뒹구는 와중에 문득 다가오는 깨달음이다.     



배워야만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배운다     


“배워야만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배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도날드 숀이 주장하는 실천적 인식론 입장에서 배움과 일의 관계에 대한 통찰력 있는 명언을 남겼다. 행위 중 성찰reflection-in-action)은 행위 중 앎(knowing-in-action)을 낳은 원동력이며, 행위 중 앎은 행위 중 이론(theory-in-action)을 낳는 씨앗이다. 지식은 책상과 책에서 나오지 않는다. 지식은 실천하는 도중(knowledge-in-practices)에, 그리고 그런 실천 중 성찰 과정(reflection-in-practices)에서 나온다. 이론이 현장과 무관하게 책상에 생산된다면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거대이다. 그런 이론은 논리적 설명력은 강하지만 실천적 적용력이나 현실적 설득력은 취약하다. 행위 중 이론 또는 실천적 이론은 이론의 생산 근거지가 관념이 아니라 현장에서의 실천이다. 그래서 이론 이름이 행위 중 이론(theory-in-action)이다. 그런 이론이 현장을 변화시킬 수 있는 마력을 품고 있다. 행위 중 이론은 책상에서 논리적 조합으로 만들어진 이론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행위에 관해서 성찰(reflection-on-action)하고, 어떤 경우에는 행위 중 성찰(reflection-in-action)”(56쪽)이 만들어낸 이론이다. “행위 중 성찰은 대개 예기치 못한 경험으로 일어난다. 직관적, 즉각적 행위가 기대한 결과를 낳으면, 그 행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직관적 행위가 의도하지 않은 상황, 즉 즐겁고 보람찬 혹은 원하지 않는 결과를 낳게 되면, 행위 중 성찰(reflection-in-action)이 일어난다”(57쪽). 행위 중 성찰은 어떤 결과가 어떤 상황에서 발생할지를 일반화할 수 있는 보편적 이론보다 특수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결과를 성찰하고 다음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를 부단히 고민하고 성찰하는 독특한 개성 기술적 이론을 선호한다.      


“요컨대, 실천가들은 불확실하거나 독특한 실천 상황 속에서 놀라움, 어리둥절함, 혼란 등을 경험한다. 이때 실천가는 그런 현상에 대해서 성찰을 하면서 자신에게 내재된 사전 지식(prior understanding)에 대해서도 성찰을 한다. 동시에 실천하는 현상을 새롭게 이해하고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모종의 실험을 실시한다”(70쪽). 미리 정해진 방식과 절차를 따라가면 목표했던 성과나 결과가 나온다는 가정은 복잡한 현실을 무시한 탁상공론이다. 행위 중 성찰을 매개로 전문성과 전문가를 새롭게 정의하려는 성찰적 실천가는 과학적 엄밀성(rigor)보다 현장이나 문제 소유자에게 얼마나 적합한지를 중시한다. 즉 성찰적 실천가는 엄밀성보다 적합성(relevance)을 추구한다. 이 말은 문제를 해결하거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최적의 수단과 방법을 결정하는 도구적 문제 해결 과정의 엄밀성을 추구하기보다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나 결과가 과연 윤리적으로 옳고 도덕적으로 정당한지를 따져보는 적합성의 문제를 우선적으로 생각한다는 말이다. 과학적 엄밀성을 추구하는 기술적 숙련가는 실천 이전에 계획이 필요하고 모든 행동과 실천은 계획된 논리대로 따라가면 된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성찰적 실천가는 행동이나 실천은 계획 없이도 일어날 수 있거나 계획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완벽한 계획과 그에 따른 후속적 실천보다 실천하는 와중에 계획을 수정하는 과정을 더 선호한다. 

    


마스터리(mastery)에 이르는 길은 언제나 미스터리(mystery)     


“실천 상황에서 행위 중 성찰을 하는 사람은 연구자(researcher)가 된다. 독특한 케이스를 만나면, 기존 이론과 기법 범주에 의존하지 않고 해당 케이스에 적합한 새로운 이론을 창출해낸다. 행위 중 성찰은 일종의 탐구활동이며, 이 탐구 활동은 사전에 합의된 목표에 따라 필요한 수단을 선택하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행위 중 성찰은 목표와 수단을 분리시키지 않고, 문제 상황에 대한 틀을 만들고 그 안에서 목표와 수단을 상호적으로 규정하는 과정이다. 또한 행위와 사고를 분리시키지 않으면서 추후 행위로 전환될 모종의 결정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추론해 나가는 과정이다”(70쪽). 이론으로 현장을 설명하기보다 현장의 고유한 특성에서 이론적 특성을 도출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상황 구속적 독특한 이론을 생산한다. 이론이 관념적으로 생산되지 않고 실천적으로 현장을 매개로 생산되니까 현장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실천적 파워가 더욱 강력해진다. 이런 이론은 시공을 초월해서 어떤 곳에나 다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이론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을 풍부하게 설명해낼 수 있는 개성 기술적 이론(idiosyncratic theory)이다. 개성 기술적 이론은 상황의 특수함과 고유함을 밝혀내기 때문에 성찰적 실천가가 주어진 현장을 변화시키는 데 실천 지침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이론이다.     


“수퍼바이저는 환자의 자료를 해석하는데 숙달된 능력(his mastery of materials)을 보여주지만, 그런 능력의 원천을 미스터리한 상태로 감추고 있다”(128쪽). 이런 전문가의 실천과정을 도널 쉰은 “봉인과 지배(mystery and mastery)”라고 한다. 봉인은 아직 개봉되지 않은 중요한 비밀이나 색다른 노하우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베일에 가려진 상태를 말한다. 미스터리다. 지배는 한 분야의 경지에 올라 세상을 굽어보면서 자신의 전문성으로 어떤 미래를 펼쳐나갈 것인지를 구상하며 특유의 내공을 토대로 경지에 이른 사람의 노하우를 말한다. 경지에 이른 사람은 알지만 그곳에 이르는 과정이나 비법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어떻게 그런 경지에 이르게 되었는지 물어보면 “그냥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지요”가 답일 수도 있다. 마스터리는 미스터리다. 마스터리에 이르는 과정은 다음 네 가지 단계의 무수한 반복이다. “행위 중 성찰은 경험 현상의 즉각적 노출(on-the spot surfacing), 비판적 고찰(criticizing), 재구조화(restructuring), 직관적 이해의 검증(testing of intuitive understanding)의 과정으로 진행된다"(234쪽). 모든 전문성은 낯선 현장에 즉각적으로 노출되면서 시작된다. 뜻밖의 일이 발생할 수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 뒤따를 수도 있다. 어떤 일이 발생하든 비판적 고찰이 뒤따르면서 행위 결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교훈을 얻는다. 이어서 기존의 생각 프레임을 재구조화하면서 시시각각 부각되는 다양한 현상을 직관적으로 이해한다.      



앎이 곧 행동이고 행동이 곧 앎이다   

  

“성찰이 촉발되는 것은 행위로 인한 뜻밖의 결과 때문이고, 성찰이 정지되는 것은 행위로 인한 만족스러운 결과 때문이다”(269쪽). 성찰적 실천가는 완벽한 계획이나 매뉴얼을 준비하는 시간보다 실천이나 행위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생각지도 못한 우발적 마주침에서 배움을 얻는데 더 많은 관심을 쏟는다. 성찰은 뜻밖의 결과가 발생했을 때 극대화된다. 정상적으로 일이 진행될 때 성찰은 멈춘다. 사람이 생각하는 시점도 정상적인 상황이 아닐 때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사람도 정상적으로 생각한다. 성찰이 촉발되는 시점은 바로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이 전개될 때다. “행위 중 성찰은 예기치 못한 사태(surprise)로 인해서 초래되는 결과이기도 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태를 발생시키는 원인이기도 하다”(312쪽). 성찰은 언제나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해서 시작되지만, 역으로 성찰로 인해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양면성을 지닌다. 뜻밖의 상황에서 성찰을 하면서 성찰의 결과로 뜻밖의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흥미롭다. 뜻밖의 결과에 대한 성찰과 성찰로 인해 편지 풍파를 일으키는 성찰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반복된다. 성찰은 색다른 생각을 잉태하는 시작이자 색다른 생각을 출산하는 마지막이기도 하다.      


성찰적 실천가는 실천이 실종되면 이론은 탄생할 수 없음을 전제한다. 성찰적 실천가는 “실증주의적 실천 인식론으로 개발된 세 가지 종류의 이분법을 비판한다. ”첫 번째 이분법은 목적(ends)과 수단(means)의 분리이다. 도구적 문제 해결 과정은 주어진 목적을 달성하는데 수단이 어느 성도 효과가 있는가도 판단하는 기술적 절차이다. 둘째 이분법은 연구(research)와 실천(practice)의 분리이다. 연구는 통제 실험에 의해서 객관적 및 일반적 이론과 기법을 도출하는데 목적이 있고, 실천은 연구로 도출된 이론과 기법을 문제 상황에 적용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본다. 마지막 이분법은 앎(knowing)과 행함(doing)의 분리이다. 행위는 단지 기술적 의사결정의 실행이자 검증으로 인식된다”(164쪽). 목적과 수단, 연구와 실천, 앎과 행함은 기술적 숙련가에게는 구분될 수 있는 두 가지 별개의 활동이다. 하지만 성찰적 실천가에게는 두 가지는 한 가지 활동을 지칭하는 두 가지 다른 이름이다, 성찰적 실천가에게 목적은 수단이며 수단은 목적이다, 목적에 이르는 길을 수단이라고 하면 수단으로 달성된 목적은 또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신한다. 성찰적 실천가는 연구와 실천을 두 개의 독립적인 활동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연구는 곧 실천이고 실천하는 과정을 연구자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그것도 연구다. 이런 점에서 앎과 행함은 따로 노는 두 개의 이질적 활동이 아니라 앎이 곧 행동이고 행동이 곧 앎이다.      


성찰적 실천가는 위험한 혁명가다     


성찰적 실천가는 위험한 혁명가다. “조직학습 역량을 갖춘 개인은 기능적 전문성 발휘가 요구되는 안정적 규칙과 절차 시스템으로서 조직에 대해 위험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대개 관료주의 조직은 성찰적 실천을 하는 전문가들을 꺼려한다”(312쪽). 성찰적 실천가는 지금 여기서 누리는 안락함과 습관적인 타성의 기원과 본질을 성찰한다. 성찰은 익숙함을 파고드는 경각심이며 편안함을 뒤흔드는 각성제다. 성찰을 시작하는 개인은 비장한 각오로 기존 질서나 규범에 문제를 제기한다. 정해진 규칙과 규범, 늘 반복하는 관계나 관습, 습관적으로 반복하려는 통념이나 타성을 깨부수는 노력을 전개할 때 성찰은 고개를 들고 우리 곁에서 세상을 관조하고 관망한다. “성찰적 실천은 전문성의 탈신화화에 기여한다. 성찰적 실천은 전문가와 반전문가 모두에게 특정 지식이 인간을 위한 가치와 이익을 위한다는 기준으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을 알게 해준다. 또한 성찰적 실천은 불확실성, 불안정성, 독특성, 갈등 상황에서의 기능적 전문성이 무력하다는 점도 깨닫게 해준다. 나아가서 성찰적 실천은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전문성의 기반이 되는 연구 기반 이론과 기법을 적용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지라도, 그들이 행위 중 성찰을 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알려줄 수 있는  법이 될 것이다”(326쪽).      



성찰적 실천은 과학적 지식으로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만심에 경종을 울리는 자극제다. 성찰적 실천은 나아가 지금 보유하고 있는 한 사람의 전문성만으로는 복잡하고 불확실하며 애매하고 혼돈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과학적인 처방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함을 알려주는 빨간불이다. 겸손한 자세로 세상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지금 여기서 성찰은 나를 중심으로 세계를 들러보고, 관계 속에서 인간의 놀라운 존재를 생각해보는 각성이다. 성찰은 내가 사물이나 현상을 거대한 우주 속에서 생각하는 것, 미지의 세계로 떠나려는 나의 관점,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 우연한 마주침 속에서 깨달은 교훈을 거대한 사회적 구조와 관계망 속에 투영시켜 반추해보는 냉정한 각성이다. 주어진 목표를 빠르게 달성하기 위해 방법과 수단을 기계적으로 찾으려는 기술적 숙련가에서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지, 왜 우리는 이런 삶을 살아가는지, 세상의 전문가는 왜 무책임하고 자기 안위만을 위해 목숨을 거는지를 성찰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직접 실천하는 성찰적 실천가로 변신할 시점이다.


이 글은 도널드 쉰의 《전문가의 조건 - 기술적 숙련가에서 성찰적 실천가로》를 읽고 쓴 리뷰다.



도날드 쇤(지은이), 배을규(옮긴이)(2018). 《전문가의 조건 - 기술적 숙련가에서 성찰적 실천가로》. 서울: 박영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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