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책 쓰기’의 차이

‘책 쓰기’는 ‘글쓰기'보다 쓰다

‘글쓰기’와 ‘책 쓰기’의 차이: ‘책 쓰기’는 ‘글쓰기’보다 더 쓰다


‘쓰다’는 글을 ‘쓰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맛이 ‘쓰다’는 의미도 지닌다. 도구를 ‘쓰다’나 사람을 어떤 목적으로 ‘쓰다’는 사용하거나 활용한다는 의미다. 힘을 ‘쓰다’에서는 ‘애쓰다’처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모자를 ‘쓰다’에서는 밖에 있는 도구나 물체를 내 몸에 ‘덮어 씌운다’는 의미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 ‘쓰다’는 놀랍게도 글을 쓰고 책을 쓰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우선 글을 쓰려면 종이 위에 필기구를 쓰거나 컴퓨터 키보드로 써서 입력을 해야 한다. 글쓰기는 결국 내 생각을 도구를 써서 겉으로 드러내는 행위다. 글을 쓰는 행위는 그냥 저절로 써지지 않는다.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적절한 단어를 선정, 한 문장 안에 마치 집을 짓는 것처럼 애를 써야 비로소 한 문장이 써진다. 글쓰기는 정말 쓰다. 글쓰기에 비해 책 쓰기는 더 애를 써야 사투 끝에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된다. 글쓰기보다 책 쓰기는 더 쓰다. 글쓰기도 쓰지만 책 쓰기는 쓴 맛을 여러 번 반복해서 경험하는 힘든 과정이다. 쓴 약을 한 번만 복용하면 되는 글쓰기에 비해 쓴 약을 기약 없이 여러 번 반복해서 계속 복용하는 과정이 책 쓰기다.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듯이, 쓴 약을 반복해서 복용하다 보면 글쓰기 근육도 생기고 책 쓰기 내공도 서서히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누가 책 쓰기가 쉽다고 하는가?


‘글쓰기’는 붙여 쓰고 ‘책 쓰기’는 띄어 쓴다


“말들은 좀체로 말을 듣지 않았다. 여기에 묶어내는 몇 줄이 영세한 문장들은 말을 듣지 않은 말들의 투정의 기록이다. 아마도 나는 풍경과 상처 사이에 언어의 징검다리를 놓으려는 미망을 벗어던져야 할 터이다. 그리고 그 미망 속에서 나는 한 줄 한 줄의 문장을 쓸 터이다”(5쪽). 소설가 김훈이 《풍경과 상처》에서 문장을 짓는 고된 노동의 흔적을 고백하는 장면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소설을 전문적으로 쓰는 작가 역시 책 쓰기가 쉽지 않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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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고차 함수인데 글이 쉽게 써지면 반칙이다. 정확한 단어와 표현을 고심하다 보면 자신을 스스로 속일 가능성이 줄어들고, 몸을 숙여 한 사람의 내면의 갱도에 들어가는 훈련으로 남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을 수 있다고”(149쪽). 은유의 《다가오는 말들》에 나오는 말이다. 책 쓰기가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책을 써보지 않은 사람일 확률이 높다. 책 쓰기의 고통을 온몸으로 체험해본 사람은 책 쓰기는 장거리 마라톤을 달리는 선수가 달리는 내내 사투를 벌이는 장면을 연상할 것이다. 그에게 책 쓰기는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그러나 한 번 도전하면 그 매력에 빠지는 일생일대의 프로젝트다. 책을 쓰는 과정에 온전히 몰입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책 쓰기는 그동안 살아온 삶의 화두 중에 몇 가지를 선정해서 총정리해보는 일종이 숙제이자 축제다. 이렇게 힘을 써서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사이 독자가 읽어주고 찬사를 받으며 작가로서의 왕관을 쓰기도 한다. 책 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책 쓰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하지만 책 쓰기는 평범한 한 사람을 저자로 재탄생시켜주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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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글쓰기와 책 쓰기는 어떻게 다른가? ‘글쓰기’는 붙여 쓰고 ‘책 쓰기’는 띄어 쓴다. 글과 쓰기는 붙어 있지만 책과 쓰기는 떨어져 있다. 글은 쓰기만 하면 글쓰기로 태어나지만, 책은 쓴다고 바로 책으로 탄생되지 않는다. ‘글’과 ‘쓰기’가 붙어 있는 이유는 ‘글’은 곧 ‘쓰기’가 되기 때문이고, ‘책’과 ‘쓰기’가 떨어져 있는 이유는 ‘책’을 쓰는 데는 시간이 그만큼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단거리 경주지만 책 쓰기는 장거리 마라톤이다. 단거리를 잘 뛰는 글쓰기 선수와 장거리를 잘 뛰는 책 쓰기 선수가 질적으로 다른 이유다. 글쓰기는 순발력으로 해낼 수 있지만 책 쓰기는 지구력으로 견뎌내야 한다. 글쓰기는 짧은 시간 동안 생각하며 글감을 찾아 연결하는 노력이지만 책 쓰기는 비교적 긴 시간 동안 인내심을 발휘하면서 자기만의 스토리를 엮어내는 지난(至難)한 과정이다. 글은 단기간에 원하는 분량을 자유롭게 쓸 수 있지만 책은 비교적 장기간 일정한 분량을 써내야 한다. 글쓰기는 한 가지 주제로 펼치는 단기전이지만 책 쓰기는 한 가지 주제라도 여러 번 다르게 펼쳐지는 장기전이다. 글은 온전히 자기 생각만으로 쓸 수 있지만 책은 남의 생각을 참고하지 않으면 끝까지 쓰기 어렵다. 한두 가지 재료만으로도 글쓰기가 가능하지만 책 쓰기는 자기가 직접 겪은 체험적 스토리와 깨달음을 지지해주고 지원해주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인용하거나 참고하지 않으면 쉽지 않다. 글쓰기에 비해 책 쓰기는 관련 자료를 어떻게 수집해서 조직화시키느냐가 성패의 관건으로 작용한다. 책 쓰기는 사실 이런 점에서 다양한 자료를 자신의 목적과 체험적 통찰력에 맞게 버무리고 뒤섞은 편집술이다. 세상의 모든 책은 자신의 체험적 깨달음을 특유의 개념과 다른 사람의 생각을 버무려 녹여낸 합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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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독자가 안 읽어도 되지만 책은 독자가 안 읽으면 존재 이유가 없어진다


글은 대부분 무료로 읽을 수 있지만 책은 대부분 유료로 읽어야 된다. 글은 내 맘대로 써서 독자가 안 읽어도 그만이지만 책은 독자가 읽어주지 않으면 존재 의미가 없다. 글은 내가 만족하기 위해서 내 마음대로 써도 된다. 하지만 책도 내가 만족하기 위해서 쓸 수 있지만 독자가 저자의 노고에 보답하는 방식으로 책을 사서 읽어주지 않으면 책과 책을 쓴 저자, 그리고 책을 출간한 출판사 모두 힘들어진다. 내가 쓴 글을 누군가 안 읽어도 나는 살 수 있지만 내가 쓴 책을 누군가가 안 읽으면 출판사가 경제적으로 피해를 볼 수 있다. 글은 취미 생활로 쓸 수 있지만 책은 취미를 넘어 독자들의 재미를 자극하고 의미를 제공해야 존재 이유를 찾는다. 내가 왜 이 책을 돈을 주고 읽어야 되는지에 대한 이유가 분명하지 않으면 책은 존재 이유를 잃어버린다. 글쓰기는 배우면 비교적 쉽게 한 편의 글을 쓸 수 있지만 책 쓰기는 배운다고 바로 책을 내기 어렵다. 글쓰기에 비해 책 쓰기는 생각만큼 쉽게 배울 수 없다는 의미다.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책 쓰기도 오로지 쓰기를 통해서만 향상될 수 있다. 내가 글을 써서 일정한 양을 확보하지 않고서는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글쓰기나 책 쓰기 과정을 이수한다고 해도 들을 때뿐이다. 쓰지 않고 쓰는 능력이 향상되는 방법은 없다. 쓰기는 쓰는 노력을 통해서 쓰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는 쓰는 기술이다. 책은 쓰는 노력을 통해서 탄생한 글을 일정한 구조와 체계로 엮어내야 비로소 세상으로 나오는 작품이다. 글은 생각나는 대로 아무 때나 쓸 수 있지만 책은 생각을 정리해야 일정기간 지속적으로 써야 비로소 결과를 만날 수 있다. 글쓰기는 생각날 때마다 쓰면 되지만 책 쓰기는 생각을 집중해서 일정기간 써야 된다.


글을 쓰는 사람은 많지만 책을 쓰는 사람은 아직도 그렇게 많지 않다. 글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쓸 수 있지만 책은 마음먹는다고 누구나 쓰기 어렵다. 글쓰기는 그리움을 긁어서 글로 쓰는 과정이고 책 쓰기는 긁어서 생긴 글을 엮어나가는 과정이다. 글은 단편적인 주제로 쓸 수 있지만 책은 단편적인 주제를 일정한 구조로 엮어내야 한다. 글쓰기가 곧 책 쓰기로 연결되지 않는다. 글을 써도 책으로 창조되지 않는다. 틈틈이 쓴 글을 묶는다고 책이 되지 않는다. 책 쓰기가 집 짓기로 비유되는 이유도 집을 짓기 위한 각종 건축 재료를 그냥 더 섞어 놓는다고 집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책 쓰기도 마찬가지다. 기초와 지붕, 벽과 석가래, 각종 방의 기능과 구조를 그 집에 살아갈 사람에 맞게 설계하듯 책 쓰기에 필요한 재료를 그 책을 읽을 독자들의 취향과 선호도에 맞게 구상하고 설계해야 된다. 한 편의 글에 담긴 메시지가 한 권의 책으로 엮이기 위해서는 일정한 논리와 구조와 관계로 엮여야 한다. 책은 글의 단순한 합이 아니다. 책을 쓰는 과정은 지루하고 인내심이 요구되는 지난한 과정이다. 책 쓰기는 복잡한 생각을 단순화시켜 하나의 구슬에 꿰는 구조화 과정이자 그동안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던 생각의 파편들을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공부다. 책을 쓰는 과정이 바로 나만의 지식생태계를 만들어가는 첫걸음이 되는 이유다. 책으로 엮어내지 않으면 복잡한 생각과 지식이 일정한 논리적 구조로 체계화되지 않는다. 모래알에 시멘트를 붓고 물어 부어서 원하는 형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바로 책 쓰기다. 내가 쓴 만큼 내 생각도 정리된다. 내가 완성한 책만큼 내 삶의 건축도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글은 내 몸에 도는 피지만 책은 상대방의 몸에서 뛰는 심장이다


글을 쓰면 생각이 정리되지만 책을 쓰면 지식이 체계화된다. 글은 쓰면 복잡한 생각을 단순하게 정리할 수 있지만 책은 쓰면 복잡한 지식을 일정한 구조로 체계화시킬 수 있다. 나무에 관한 글을 쓰면 나무에 관한 나의 단상을 피력할 수 있지만 나무에 관한 책을 쓰면 나무가 살아가는 방식과 원리에서 삶의 교훈을 집대성할 수 있다.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는 책을 통해 인간은 나무만도 못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냥 그 자리에서 존재하는 나무처럼 보이지만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나무의 치열한 생존 투쟁기를 목격하고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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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 관한 글을 쓰면 공부에 관한 나의 생각을 특정한 관점에서 정리할 수 있다. 이런 글을 더 심화 확장시켜 공부 전반에 관한 사유와 양식을 나의 체험적 공부에 비추어 총정리하다 보면 내가 생각하는 공부에 대해 엄청난 공부를 하게 된다. 《공부는 망치다》라는 책을 쓰면서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공부를 참고했지만 결국 내가 지금까지 해온 체험적 공부론을 중심으로 왜 우리가 공부해야 하는지, 도대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공부는 어떤 의미지인지.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어느 정도 공부해야 하는지를 공부하면서 공부 책을 쓴 것이다. 글을 쓰면 괴로운 마음이 순간적으로 치유되지만 책을 쓰면 인생의 화두가 결정적으로 명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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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선에 관한 글을 쓰면 곡선이 지니는 다양한 의미 중에 한 두 가지 주제에 비추어 곡선적 삶과 지혜를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곡선으로 승부하라》와 같은 곡선에 관한 책을 쓰면 곡선이 내포하는 인문학적 의미를 우리 삶에 빗대어 왜 우리 삶이 왜 곡선인지, 곡선으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곡선적 삶으로 행복에 이르는 방법을 어떻게 찾아낼 것인지를 풀어내는 곡선적 공부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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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글을 쓰고 책을 쓰면서 공부하지만 그 공부가 저자만의 공부로 머무른다면 책은 아직 갈길이 먼 것이다. 진짜 책의 존재 이유는 독자들의 심장에서 비롯된다. 아무리 저자가 많은 공부를 하면서 책을 완성했다고 해도 독자들에게 새로운 지적 자극이나 통찰력을 제공해줌으로써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면 책은 저자의 심장을 뛰게 할 뿐 독자의 심장을 갑갑하게 만들 수도 있다. "우리가 책이라고 부르는 물건은 진짜 책이 아니라, 그 책이 지닌 가능성, 음악의 악보나 씨앗 같은 것이다. 책은 읽힐 때에만 온전히 존재하며, 책이 진짜 있어야 할 곳은 독자들의 머릿속, 관현악이 울리고 씨앗이 발아하는 그곳이다. 책은 다른 이의 몸 안에서만 박동하는 심장이다(99쪽).” 레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에 나오는 말이다. 《출판하는 마음》이라는 인터뷰집을 낸 은유 작가는 이 글을 인용하면서 글과 책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글이 내 안에 도는 피라면 책은 다른 이의 몸 안에서만 박동하는 심장이다”(12쪽). 내 맘대로 쓴 글이 남의 심장을 움직이려면 내 생각을 그대로 쏟아 놓아서는 안 된다. 진짜 책은 독자들을 새로운 공부의 세계로 인도해서 새로운 깨달음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지적 자극제가 되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책은 독자들을 미지의 세계로 인도하는 관문이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거울로 작용한다. 나아닌 다른 사람이 기꺼이 지갑을 열고 돈을 지불한 다음 소중한 자기 시간을 내서 책을 읽게 만들기 위해서는 독자의 아픔을 사랑해야 한다.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역지사지와 측은지심이 저자의 몸속에서 숙성되며 탄생한 고뇌의 산물이 바로 책이다. 그렇게 쓰인 책이야말로 소장하고 싶도록 독자를 유혹하고 읽고 싶도록 끊임없이 충동질해서 설레게 만드는 심장 박동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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