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개념 있는 사람입니까?
어휘와 어이: ‘어휘’가 없으면 ‘어이’도 없다!
당신은 개념을 의도적으로 공부합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의 통념에 갇혀 있습니까?
HRD에 관한 새로운 생각과 실천은 HRD에 관련된 새로운 개념적 사유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면 HRD를 Human Resources Development로 해석하는 교육담당자에게 HRD는 언제나 인간을 자원으로 취급하고 그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개발하고 관리할 것인지의 사유에 머물러 있다. HRD 분야에 역량중심 교육체계 수립과 교육과정 개발이 유행하는 이유도 HRD를 인적자원개발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인적자원이 갖춰야 할 특정 능력을 그 능력이 발휘되는 특정 상황적 맥락과 분리 독립시켜 개체론적으로 사유하는데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개체론적 HRD는 특정 직무 수행에 필요한 역량, 예를 들면 커뮤니케이션 능력, 자료조사 수집 및 분석 능력, 문제 해결 능력, 상황판단력과 의사결정 능력, 전략적 사고능력 등을 모두 상호 분리시켜 독립적으로 분석해서 특정 역량을 탈맥락적으로 강조하는 접근이다. 신입사원에게는 실무적 역량이 필요하고 중간 관리자에게는 갈등관리나 의사결정 능력이 요구되고, 임원에게는 전략적 사고능력이 필요하다고 상호 배타적으로 사고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도 HRD를 개체론적으로 이해하는 개념적 사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HRD를 Human Relationship Development로 재개념화 시키면 HRD는 독립적 개인이 갖추고 있는 특정 역량을 탈맥락적으로 분석해서 처방하는 접근에서 벗어나 특정한 성과나 성취는 사회적 관계의 산물로 바라보는 관계론적 사유가 시작된다. 관계론적 HRD는 인간의 독립적인 역량을 개발하기보다 인간관계를 바꿈으로써 이전과 다른 인간으로 변화시키는 노력에 중점을 둔다. 이처럼 개념을 바꾸면 사유가 바뀌고 사유가 바뀌면 HRD 실천의 변화가 수반된다.
개념은 생각의 양념이다
언어철학적 입장에서 언어와 사고의 관계를 연구하면서 다양한 논쟁을 거듭해오고 있지만 아직도 분명한 결론은 나지 않고 있다. 대체로 언어와 사고는 변증법적 관계로 언어가 사고에 미치는 영향과 반대로 사고가 언어에 미치는 영향을 인정하면서 상호 간의 변증법적 관계를 상정하고 있다. 다만 분명한 점은 인간은 언어 없이 생각할 수 있지만 생각한 바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언어의 힘을 빌려야 한다. 언어를 떠난 인간은 동물학적으로 존재할지 모르지만, 인간학적으로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세계와 인간에 대한 참된 인식은 언어적 차원에서 그 의미의 해명, 즉 개념 정리를 토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이데거의 말대로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말이나 니체의 “꿀벌은 밀랍으로 집을 짓고 살지만 사람은 개념으로 집을 짓고 산다”는 말은 모두 인간은 언어적 존재임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서 언어로서만 느끼고 생각하며 세계를 지각하고 사색하며 미래를 계획하고 전망하며 지금의 삶을 성찰하며 살아간다. 한 마디로 인간은 언어 이전의 의식으로 태어나 언어를 배우며 자신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공감하며 살아가다 언어를 남기고 죽는다. 언어는 단순히 사고를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행위다. 따라서 다른 언어를 갖는다는 건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고 다르게 산다는 걸 의미한다. 거꾸로 말하면 다르게 산다는 건 다른 언어를 갖고 세상을 다르게 본다는 걸 의미한다.
문제는 전문분야마다 다르지만 새로운 개념을 습득할 기회를 점차 상실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지의 범람과 개념의 빈곤이 한 집안에 같이 살아가는 요즘, 개념은 황폐화되고 오로지 이미지만이 현란하게 춤추고 있다. 《개념: 뿌리들》의 저자, 이정우 박사에 따르면 현대인들은 천천히 깊이 있게 사유할 수 있는 개념보다 강렬하지만 즉물적인 이미지의 홍수에 떠내려가고 있다. 근본적인 사유는 이미지의 개념적 해석 능력과 텍스트의 이미지화 과정을 통해서 일어난다. 개념은 있는 데 개념이 지향하는 바를 이미지화시킬 수 없다면 추상적 사고를 통해 구체적인 현실을 포착할 수 있는 상상력을 가질 수 없다. 이미지는 있는데 그 이미지가 의도하는 바를 해석할 수 있는 개념적 사고능력이 없다면 이미지가 추구하는 미지의 세계를 알 수 없고 이미지의 피상적 의미에 매몰될 수 있다. 특히 사유의 과정은 개념적 사유로 시작하든 이미지로 기억되든 사물이나 현상, 그것을 움직이는 원리와 법칙은 개념을 매개로 일어난다. 따라서 다양한 개념을 적기에 인출하여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면 아무리 위대한 상상을 이미지를 떠올려가면서 한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상상은 현실로 구현되지 않는다. 언어나 개념 이전에 인간은 생각하고 상상해왔다. 예를 들면 행복이라는 단어를 모르고도 행복한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내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이나 떠오른 아이디어를 적확한 개념을 활용하여 분명하고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면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으로 머물 뿐 색다른 창조로 연결되지 않는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맛을 내는 양념이 추가되지 않으면 음식 맛이 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다양한 생각을 적절한 개념으로 요리하지 않으면 생각은 그저 생각으로 멈춘다. 개념은 생각을 맛나게 만드는 양념이다.
기존 개념의 의미에 대한 성찰과 각성이 동반되는 재음미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나는 지금 쓰고 있는 개념에 함몰되어 다른 세상을 볼 수 없다는 맹점을 지닌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개념적 의미에 따라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나 세계가 보인다. 내가 지향하는 교육은 교육에 대한 나의 개념적 의미부여에 따라 다르게 구상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교육은 교육에 대해 내가 부여하는 개념적 의미 이상의 교육을 지향하거나 추구할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교육을 온실 속의 화초 재배하듯이 속성으로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면 교육은 사육이다. 사육의 목적은 좋은 대학에 입학해서 좋은 기업에 취업에서 정상적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반면에 진정한 교육의 목적을 야생에서 자라는 잡초처럼 시련과 역경을 스스로 경험하면서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재개념화 한다면 전혀 다른 교육적 가능성의 문이 열린다. 새로운 교육적 가능성의 문을 열어보고 싶다면 교육과 관련된 개념을 다른 의미로 재정의하거나 새로운 개념을 창조할 필요가 있다. 내가 창조하는 개념대로 내가 원하는 세계의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개념은 나의 신념이 담긴 생각의 양념이다. 내가 창조하고 싶은 미래가 있다면 거기에 상응하는 새로운 개념을 창조해야 한다. 개념의 창조 없이 새로운 미래는 열리지 않는다.
개념이 바뀌지 않으면 통념에 갇힌다
개념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고 어제와 다른 방법으로 생각하기 위한 인식의 틀이자 사고의 도구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노력해야 될 일 중의 하나는 나를 표현하고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개념’을 배우는 것이다. 새로운 개념을 배우지 않으면 우리는 지금까지 배운 개념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1년 전에 내가 썼던 개념을 1년이 지난 지금도 비슷하거나 동일한 개념을 반복해서 쓰고 있다면 나는 개념 없이 1년을 살아온 것이다. 개념 없이 살았다는 이야기는 생각의 변화 없이 1년을 살았다는 이야기다.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제와 다른 개념을 갖고 있어야 한다. 청소년기에 습득한 개념으로 청년기를 살아가가는 사람, 청년기에 습득한 개념으로 중장년을 살아가는 사람은 더 이상 공부를 하지 않고 예전의 생각 수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다. 사람은 그 사람이 습득한 개념이다. 개념을 끊임없이 공부해야 되는 이유는 동일한 개념이라고 할지라도 예전의 개념과 다른 의미로 재탄생하기도 하고 다른 맥락에서 다른 의미로 변형 적용되어 쓰이면서 색다른 개념으로 거듭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개념을 공부하는 더 중요한 이유는 개념적 렌즈가 세상을 바라보는 안경이기 때문에 어떤 개념적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세상으로 이해되고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념은 저마다의 문제의식과 탄생 배경을 갖고 있다. 특히 철학적 개념은 그 개념을 창조한 사람의 문제의식이 녹아 있다. 자신의 철학적 사유의 핵심을 이전 개념으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기존 개념에 색다른 의미를 부여해서 재개념화 시키거나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개념을 부단히 창조한다.
개념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고 어제와 다른 방법으로 생각하기 위한 인식의 틀이자 사고의 도구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노력해야 될 일 중의 하나는 나를 표현하고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개념’을 배우는 것이다. 새로운 개념을 배우지 않으면 우리는 지금까지 배운 개념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제와 다른 개념을 갖고 있어야 한다. 청소년기에 습득한 개념으로 청년기를 살아가가는 사람, 청년기에 습득한 개념으로 중장년을 살아가는 사람은 더 이상 공부를 하지 않고 예전의 생각 수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다. 사람은 그 사람이 습득한 개념이다. 개념을 끊임없이 공부해야 되는 이유는 동일한 개념이라고 할지라도 예전의 개념과 다른 의미로 재탄생하기도 하고 다른 맥락에서 다른 의미로 변형 적용되어 쓰이면서 색다른 개념으로 거듭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HRD와 관련된 개념이 주로 선진국에서 창조된 개념이라면 그런 개념을 사용하는 우리는 선진국의 HRD에 속박된 사고를 자기도 모르게 하는 수밖에 없다. 개념적 사유는 개념에 담긴 문제의식이 결정한다. 내가 창조한 개념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이 창조한 개념을 내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한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나는 다른 사람의 사고체계에 속박되어 생각하는 기생적 사유에 물들어 있는 셈이다. 개념을 공부하는 더 중요한 이유는 개념적 렌즈가 세상을 바라보는 안경이기 때문에 어떤 개념적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세상으로 이해되고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념은 저마다의 문제의식과 탄생 배경을 갖고 있다. 특히 철학적 개념은 그 개념을 창조한 사람의 문제의식이 녹아 있다. 자신의 철학적 사유의 핵심을 이전 개념으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기존 개념에 색다른 의미를 부여해서 재개념화 시키거나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개념을 부단히 창조한다.
체코의 한 서점 슬로건, 언어가 세계를 창조한다(Words create worlds), 즉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내가 살아가는 세계를 창조한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의 한계가 내가 사는 세계의 한계다.” 언어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말이다. 세계를 다르게 창조하려면 다른 단어가 필요하다. 내가 사용하는 단어가 바뀌지 않으면 내가 창조하고 싶은 세계도 바뀌지 않는다. Words create worlds에서 'worlds'를 기업에서 개발하고 싶은 신제품이나 서비스(Products & Services)로 바꾸어 놓고 생각해보면 훨씬 쉽게 와 닿을 것이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의 세계가 내가 상상하고 만들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결정한다. 아무리 위대한 생각과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도 이를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언어나 개념이 없다면 이전과 제품과 서비스는 창조되지 않는다. 어제와 다른 제품과 서비스는 어제와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어휘력이 결정한다. 언어가 틀에 박히면 생각도 틀에 박힌다.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생각은 생각지도 못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언어는 그래서 단순히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에 따라 사람도 바뀌고 삶도 바뀐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나다. 나를 바꾸고 내 삶을 바꾸려면 내가 사용하는 언어를 바꿔야 한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에는 내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를 분석해보면 내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언어는 그래서 사고를 표현하는 수단을 넘어 내 삶을 결정짓는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