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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부족하면
좋은 어른이 될 수 없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대로 나의 미래가 결정된다

언어가 부족하면 좋은 어른이 될 수 없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대로 나의 미래가 결정된다    



언어가 틀에 박힌 모범생의 언어와 틀을 깨는 모험생의 언어    


정해진 길을 걸어가며 조화와 안정을 추구하는 모범생은 선생님이 가르치는 말을 잘 듣고 그대로 생활에 옮기는 탁월한 재주를 갖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데 에는 두렵고 능력도 없다. 반면에 모험생은 이미 걸어간 길을 뒤쫓아 가는 삶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아무도 걸어가지 않는 낯선 길을 가장 먼저 걸어가면서 불확실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체험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데에 모험생은 남다른 재미를 느끼고 의미를 발견한다. 모범생은 이미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언어를 주로 구사한다. 이미 대가들이 정의한 개념을 재사용하면서 그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는데 익숙하다. 반면에 모험생은 생각도 파격적이고 혁신적일 뿐만 아니라 언어 사용도 창의적이다. 그 누구도 사용하지 않은 개념을 새롭게 창조하기도 하고 기존 개념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재개념화 또는 재정의해서 자기 방식으로 정의하는데 재미와 의미를 느낀다. 모범생이 생활에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는 늘 하던 방식대로 따라가면서 기존의 틀 안에서 안주하기 때문이다. 언어 사용도 교과서나 국어사전에 나오는 단어 사용의 범례를 넘어서는 법이 없다. 반면에 모험생은 편안한 삶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지금 여기서의 안전한 삶의 경계를 넘어 낯선 곳으로 이주하거나 탈주하는 과정을 즐긴다. 생전 처음 마주치는 낯선 부딪침을 즐기며, 그런 경험을 이전과 다른 언어를 사용해서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즐긴다.    



모범생의 언어는 틀에 박혀 있다.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는 깨달음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있는 개념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그 의미체계 안에서 생각이 갇혀 있다. 범상한 언어를 사용해서 현실에서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생각을 한다. 이에 반해 모험생의 언어는 생각과 행동만 위험한 것이 아니고 언어를 사용해 표현한 방식도 위험하다. 왜냐하면 아직 사회적 합의를 거치지 않은 개념적 의미를 자신의 독특한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자유롭게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언어는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재 정련되면서 특정 상황에서 특정한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는 특유한 개념으로 출산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철학자들, 예를 들면 스피노자의 코나투스나 니체의 아모르파티와 같은 개념어가 바로 특수한 상황에서 스스로 고뇌하는 가운데 창안해낸 독창적인 개념이다. 삶이 절박하지 않으면 언어도 간절하지 않다. 이전과 다른 상황에서 어제와 다른 삶을 살아가려고 애간장을 태우는 사람 앞에 미래는 다른 가능성을 잉태한다. 그 가능성의 잉태와 더불어 언어적 사용의 깊이와 넓이가 함께 변할 때 평범함 모범생은 비범한 모험생으로 변신한다. 모험생의 삶은 위험의 연속이다. 체험만 위험한 것이 아니라 위험한 모험을 표현할 언어 사용도 파격적이다. 틀을 깨고 판을 뒤흔든다. 여기에 동원되는 언어 사용도 낯설다. 개념의 조합방식도 특이할 뿐만 아니라 아예 새로운 개념을 창조해서 자신의 생각을 담아낸다.    


https://youtu.be/SfQ0-hnQF68


죽은 사전(死典)이었던 사전(辭典), 생각하는 사전(思典)으로 돌아오다    


일본을 대표하는 두 가지 국어사전이 있다. 누계 약 2000만 부가 팔린 야마다 선생의 《신메이카이 국어사전》과 누계 약 1000만 부 팔린 겐보 선생의 《산세이도 국어사전》이 그것이다. 기묘하게 두 사람은 도쿄 대학 동기생이었고 한 때 힘을 합쳐 같이 《메이카이 국어사전》을 펴냈던 좋은 친구사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성격의 국어사전을 내는 일본 사전 출판계의 두 거성이다. 이 두 사전이 어떻게 다른 입장을 드러내는지 연애(戀愛)에 관한 풀이를 비교해보자. 먼저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의 연애에 관한 정의다. 《신메이카이 국어사전》 3판에는 연애를 “특정한 이성에게 특별한 애정을 품고 둘만이 함께 있고 싶으며 가능하다면 합체하고 싶은 생각을 갖지만 평소에는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아 무척 마음이 괴로운(또는 가끔 이루어져 환희하는) 상태”라고 정의한다. 이에 반해 《산세이도 국어사전》 3판에서 연애는 “남녀 사이의 그리워하는 애정(남녀 사이에 그리워하는 애정이 작용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연애에 관한 두 사전의 정의를 보면 사전이 지향하는 성격이 판이하다.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은 주관적이면서 도발적인 의미를 비교적 구체적인 의미로 길게 풀이하고 있다. 반면에 《산세이도 국어사전》은 지극히 객관적이고 현대적인 의미를 비교적 단문으로 단정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전자는 국어사전에 대한 고정관념을 파괴하고 개념의 의미를 파격적으로 제시한다. 후자는 예상대로 국어사전다운 개념 정의를 내린다.



하이데거가 말했던 언어가 존재의 집인 이유는 똑같은 단어라고 해도 그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 나는 단어가 품고 있는 의미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나의 생각과 행동은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규정한다. 범인(凡人)을 ①보통사람. ②하찮은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산세이도 국어사전》 3판에 나오는 의미대로 살아가는 사람과 “스스로를 향상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거나 공명심을 갖고 있지 않거나 해서 다른 것에 대한 영향력이 전무한 채 일생을 마치는 사람 또는 가정 제일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는 대다수 서민이라는 뜻”으로 정의하는 《신메이카이 국어사전》 3판의 의미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천지차이가 난다. 언어의 변화는 존재의 변화를 유발하고 존재의 변화는 언어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존재가 어떤 언어로 집을 짓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언어의 집에 사는 존재도 달라진다. 모범생은 남들이 걸어가며 남긴 기존 언어로 집을 짓고 평범하게 살아가지만 모험생은 누구도 걸어가지 않은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며 부단히 새로운 언어를 개발하고 창조하며 비범하게 살아간다.     



타성에 젖은 언어, 탄성을 자아내는 언어로 거듭나다    


모범생은 기존 언어를 답습하며 타성에 젖어 사는 걸 모르고 산다. 모험생은 같은 언어라도 다른 의미를 부여해보고 다르게 정의한다. 세상을 주도하는 사람은 자기만의 언어로 기존 언어를 다르게 사용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쉽게 각인되는 독특한 언어를 개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개념을 창조해왔다. 모범생은 체험하지 않고 기존 현실에 안주하며 관념적인 언어를 사용하지만 모험생은 색다른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면서 자신의 체험을 적확한 언어로 번역하기 위해 부단히 애간장을 태운다. 철판을 용접하며 회색빛 청춘을 보냈던 사람이 이질적 지식을 섞어서 새로운 지식으로 창조하는 지식융합이라는 말 대신이 지식 용접(knowledge welding)이라는 개념을 창안했다. 이질적 철판을 녹여 새로운 철판으로 만들어내듯 이질적 지식을 용접해서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지식의 연금술사를 생각하며 창조한 개념이 바로 지식 용접이다. 모범생은 지식융합이라는 기존의 개념에 머물러 관념적인 사유를 즐기지만 모험생은 지식 용접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조, 지식을 버무리고 뒤섞는 과정에 열정과 철학을 가미시키는 과정을 강조한다. 타성과 상식에 사로잡힌 언어로 지은 집에는 모범생이 살아가고 탄성을 지르고 기존 상식에 도전하는 언어로 지은 집에는 모험생이 살아간다.    

 


긍정의 언어를 사용하면 긍정적인 내가 되고, 부정의 언어를 사용하면 매사에 부정적인 자세와 태도를 보여주는 내가 된다. 열정과 도전의 언어를 사용하면 열정적으로 도전하는 내가 되지만 좌절과 절망의 언어를 사용하면 언제나 좌절과 절망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희망과 가능성의 언어를 사용하면 생각지도 못했던 가능성의 세계가 활짝 열린다. 내가 어떤 언어로 내가 존재하는 집을 짓는지에 따라서 나의 생각과 행동도 바뀌고 삶도 바뀐다. 모범생은 지금까지 자신이 배운 언어로 주어진 현상을 설명하고 이해하려고 한다. 그에게는 언어의 쓸모가 새롭게 생기지 않는다. 지금까지 배운 언어로도 우리 생각을 표현하는데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외국어 단어는 외우면서 모국어 단어는 공부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언어를 쓰던 방식대로 답습하기 때문에 언어의 쓸모도 변함이 없다. 반면에 모험생은 어제와 다른 방식으로 언어의 쓸모를 변화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언어의 쓸모를 바꾸는 노력만큼 나 역시 쓸모가 바뀌고 세상을 위한 쓰임새도 달라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범생은 소일하면서 오래전에 지은 언어의 집에서 안빈낙도하지만 모험생은 소임을 다하면서 어제와 다른 언어의 집을 끊임없이 증축하고 개정하며 변화를 꿈꾼다.     



언어를 창조하려는 몸부림이 언어의 쓸모를 변모시킨다    


언어의 쓸모는 이미 내가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를 반복해서 생기지 않는다. 언어의 쓸모는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언어를 쓸 때가 왔을 때 적확하게 표현하는 순간에 생긴다. 나아아 언어의 쓸모는 기존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곤란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난국을 탈출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며 새로운 언어를 구상하는 안간힘을 쓰는 사이에 쓸모가 새롭게 발견되기도 한다. 소설가 배수아가 《당나귀들》에서 사용한 표현을 빌리면 ‘언어의 틈새’를 메우려는 노력이 부단히 전개될 때 언어의 쓸모도 한층 더 의미 있게 생긴다. 경이로운 순간을 목격했지만 기존 언어로는 그 장관을 표현할 수 없는 한계를 느끼고 새로운 언어를 찾아 나서는 안간힘 속에 언어의 틈새는 존재한다. 배운 언어로는 일상의 기적을 담아낼 수 없을 때 사람은 거기서 좌절하지 않고 다른 언어를 찾아 나서거나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려는 몸부림을 부리는 사이에 언어의 틈새는 부단한 모색과 실험 속에서 그 간격이 조금씩 좁혀진다. 그 순간 언어 역시 비약적으로 방향으로 쓸모가 생긴다. 언어의 쓸모가 어제와 다르게 업그레이드될 때 사람의 쓸모 역시 어제와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모범생에게는 배운 언어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언어의 틈새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모험생은 어제와 다른 낯선 세계를 탐험하기 때문에 경이로운 순간을 만날 때마다 언어의 부족을 느낀다. 배운 언어로는 표현이 안 되는 감동적인 순간이나 처절한 절망의 시간을 보낼 때마다 언어의 틈새는 점차 벌어진다. 모험생은 점차 벌어지는 언어의 틈새를 메꾸기 위해 다시 새로운 언어를 찾아 나서거나 스스로 언어를 창조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배운 언어에 만족하지 않고 늘 배우는 언어로 생각을 정련하고 매 순간을 성찰하며 일상을 숙고한다. 언어는 거기 그냥 있는 명사로서의 존재가 아니라 누가 그걸 사용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모습으로 끊임없이 재탄생하는 동사로서 움직이는 생성이다. 언어를 배우는 시간, 새로운 언어 습득에 투자한 시간만큼 언어의 쓸모는 달라진다. 모험생은 오늘도 언어를 배우기 위해 어제와 다른 모험을 떠난다. “모험이 부족하면 좋은 어른이 될 수 없다” 일본 철도의 카피다. 모험을 했어도 그걸 표현할 언어가 부족하면 모험은 모습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언어가 부족하면 좋은 어른이 될 수 없다. 여러분 언어 여행을 멈추지 마세요. 요람에서 무덤까지 배우는 언어의 품격이 나의 품격을 결정한다. 오늘 만든 언어의 틈새를 메우기 위해 내일 나는 어떤 언어 공부를 할 것인지, 배우는 언어가 우리를 삶의 주연 배우로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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