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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권 읽기보다 여러 번 읽어라

여러 권 읽기보다 여러 번 읽어라

많은 사람들이 다독(多讀)하면 
많이 생각하는 다상량(多商量)을 권장한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한 권을 여러 번 읽으면서 
저자가 던져주는 의미를 다양한 맥락 속에서 
곱씹어보는 사색과 사유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책이 중요하지 않고,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기 삶 속에서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자기 재구성 능력이 훨씬 중요하지요......
깨닫는다는 것은 다양한 수평적 정보를
수직화는 능력을 필요로 하지요. 
절대로 많은 정보를 얻는다고 깨닫게 되는 게 아니거든요. 
그 많은 정보를 수직화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자기 인식을 심화시키면서 재구성 능력을 높여가는 게 
바로 공부이고 학습입니다(340-341).”
신영복 교수님의 《손잡고 더불어》에 나오는 말이다.



여러 권 읽었으나 심금을 울리는 메시지가 기억나지 않거나
책을 읽었지만 저자의 메시지에 빠져서
나를 반추하면서 내 생각으로 정리한 게 없다면
읽었지만 읽은 게 아니다.


속도와 효율 복음이 지배하는 세상에
뭐든지 빨리빨리 해치우려는 심리적 조급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책도 빨리빨리 읽으려고 한다.


"두 번 읽기를 시행해보면 
그 효력은 한 번 읽기의 두 배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몇 배 더 큰 효력을 발휘한다. 
나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한 열 배 정도의 효력이 있는 것 같다(250쪽)."
롤프 도벨리의 《불행피하기 기술》에 나오는 말이다.


내가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 책 중에
고 신영복 교수님 책이 많다.
특히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강의: 나의 동양 고전 독법》, 
그리고 《담론: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는 읽으면 읽을수록
의미가 심장에 꽂히는 강도가 색다르다.



"경험 고집은 주체적 실천의 
가장 믿음직한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몸소 겪었다는 사실이 안겨주는 확실함과 애착은 
어떠한 경우에도 쉬이 포기할 수 없는 
저마다의 진실이 되기 때문입니다(213쪽)."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나오는 말이다.



창백하기 이를 데 없는 좁은 공간에서 건져 올린
사색의 샘물이 주는 통찰력은 
놀랍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작은 것에서 큰 것을 꿰뚫어 보고
하찮은 일상에서 비상하는 상상력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독서의 즐거움이자 깨달음이다.


“작은 것, 사소한 문제 속에 담겨 있는 
엄청난 의미를 읽어 내는 것이 상상력입니다. 
작은 것은 큰 것이 다만 작게 나타났을 뿐입니다. 
빙산의 몸체를 볼 수 있는 상상력을 키워야 합니다. 
세상에 사소한 것이란 없습니다. 
다만 사소하게 나타났을 뿐입니다(52쪽).”
신영복 교수님의 《담론: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에 나오는 말이다.



상상력은 체험적 상상력이다.
일상을 무대로 체험하지 않은 상상은 
책상에서 생각만 거듭하는 망상과 몽상, 
환상과 허상, 공상과 허상만 발상하다 울상이 될 뿐이다.


“저는 그 사람의 사상은 
그가 주장하는 논리 이전에 
그 사람의 연상세계ㅡ 
그 사람의 가슴에 있다고 믿습니다. 
그 사람의 사상이 어떤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어떤 연상 세계를 
그 단어와 함께 가지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봐요(65쪽).
신영복 교수님의 《냇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에 나오는 말이다.



상상력은 결국 내가 사용하는 단어와 관련된
직간접적 체험이 연결되어 떠오르는 생각의 뭉치다.
아파트라는 단어에 윤수일 가수가 떠오는 사람,
“몇 평인지 계량화에 익숙한 오늘을 사는 사람,
건설현장에서 땀 흘리는 노동자가 떠오른 사람 간에는
엄청난 상상력의 차이가 잠재되어 있다.


“사람의 생각은 자기가 살아온 삶의 결론입니다(14쪽).”
“그 사람의 생각은 그가 살아온 삶의 역사적(?) 결론이기 때문입니다(229쪽).”
역시 《담론: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에 나오는 인두 같은 한 문장이 아닐 수 없다.
생각이 쉽게 바뀌지 않는 이유는
삶을 바꾸지 않고 생각만 바꾸려고 책상머리에서
머리만 쓰기 때문이다.


생각은 내가 살아온 삶이 만든 결론이기에
내 생각을 바꾸려면 삶부터 바꿔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대상이나 사람과 아무런 관계 맺음 없이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객관(客觀)은 뒤집으면 관객(觀客)이 됩니다(278쪽).”
“관계와 애정 없이 인식은 없습니다...
모든 인식은 그 대상과 자기가 맺고 있는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에서부터, 
즉 관계를 자각하고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280쪽).”



관계와 애정과 인식,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세 가지 키워드 간의 관계,
인식론적 패러다임의 혁명은 물론
앎에 이른 참된 방법론의 궁극적인 진리 탐구 방향을 던져준
각성과 성찰의 메시지였다.


“내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가 햇볕이라고 한다면,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하루하루의 깨달음과 공부였습니다. 
햇볕이 '죽지 않은' 이유였다면, 
깨달음과 공부는 '살아가는' 이유였습니다. 
여러분의 여정에 햇볕과 함께 끊임없는 성찰이 함께하기를 빕니다(425쪽).
《담론: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의 마지막 구절이다.



자살하지 않는 이유보다
살아가는 이유가 더 소중하다.
깨달음과 공부의 원천, 
책의 바다에 빠져서 저자가 던지는 메시지에 함몰되기보다
내가 살아가는 삶의 맥락에서 반추해보는 집요함이 필요하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던져주는 메시지에 대해 
개인적인 반성을 넘어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사회적 연대나 관계를 지향하는 성찰로 이어질 때
책은 문자가 들어 있는 사각형 종이책이 아니라
나를 다시 태어나게 만들어주는 각성제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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