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글’을 엮어야 ‘책’으로 쓰인다!
‘글쓰기’와 ‘책 쓰기’의 차이
쓴 ‘글’을 엮어야 ‘책’으로 쓰인다!
글쓰기는 붙여 쓰고
책 쓰기는 띄어 쓴다.
글과 쓰기는 붙어 있지만
책과 쓰기는 떨어져 있다.
글은 쓰기만 하면 글쓰기로 태어나지만
책은 쓴다고 바로 책으로 탄생되지 않는다.
‘글’과 ‘쓰기’가 붙어 있는 이유는
‘글’은 곧 ‘쓰기’가 되기 때문이고
‘책’과 ‘쓰기’가 떨어져 있는 이유는
‘책’을 쓰는 데는 시간이 그만큼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단거리 경주지만
책 쓰기는 장거리 마라톤이다.
단거리를 잘 뛰는 글쓰기 선수와
장거리를 잘 뛰는 책 쓰기 선수가 질적으로 다른 이유다.
글쓰기는 순발력으로 해낼 수 있지만
책 쓰기는 지구력으로 견뎌내야 한다.
글쓰기는 한 가지 주제로 펼치는 단기전이지만
책 쓰기는 한 가지 주제라도 여러 번 다르게 펼쳐지는 장기전이다.
글은 대부분 무료로 읽을 수 있지만
책은 대부분 유료로 읽어야 된다.
글은 내 맘대로 써서 독자가 안 읽어도 그만이지만
책은 독자가 읽어주지 않으면 존재 의미가 없다.
내가 쓴 글을 누군가 안 읽어도 나는 살 수 있지만
내 쓴 책을 누군가가 안 읽으면 출판사가 망할 수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은 많지만
책을 쓰는 사람은 아직도 그렇게 많지 않다
글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쓸 수 있지만
책은 마음먹는다고 누구나 쓰기 어렵다.
글쓰기는 그리움을 긁어서 글로 쓰는 과정이고
책 쓰기는 긁어서 생긴 글을 엮어나가는 과정이다.
글쓰기는 배우면 하루아침에도 쓸 수 있지만
책 쓰기는 배운다고 바로 책을 내기 어렵다.
글은 생각나는 대로 아무 때나 쓸 수 있지만
책은 생각을 정리해야 끝까지 쓸 수 있다.
글쓰기는 생각날 때마다 쓰면 되지만
책 쓰기는 생각을 집중해서 일정기간 써야 된다.
글은 온전히 자기 생각만으로 쓸 수 있지만
책은 남의 생각을 참고하지 않으면 끝까지 쓰기 어렵다.
글은 단기간에 원하는 분량을 자유롭게 쓸 수 있지만
책은 비교적 장기간 일정한 분량을 써내야 한다.
글은 단편적인 주제로 쓸 수 있지만
책은 단편적인 주제를 일정한 구조로 엮어내야 한다.
글을 쓰면 생각이 정리되지만
책을 쓰면 지식이 체계화된다.
글은 쓰면 복잡한 생각을 단순하게 정리할 수 있지만
책은 쓰면 복잡한 지식을 일정한 구조로 체계화시킬 수 있다.
글을 쓰면 괴로운 마음이 순간적으로 치유되지만
책을 쓰면 인생의 화두가 결정적으로 명쾌해진다.
글쓰기가 곧 책 쓰기로 연결되지 않는다.
글을 써도 책으로 창조되지 않는다.
틈틈이 쓴 글을 묶는다고 책이 되지 않는다.
한 편의 글에 담긴 메시지가
한 권의 책으로 엮이기 위해서는
일정한 논리와 구조와 관계로 엮여야 한다.
책은 글의 단순한 합이 아니다.
"우리가 책이라고 부르는 물건은 진짜 책이 아니라,
그 책이 지닌 가능성, 음악의 악보나 씨앗 같은 것이다.
책은 읽힐 때에만 온전히 존재하며,
책이 진짜 있어야 할 곳은 독자들의 머릿속,
관현악이 울리고 씨앗이 발아하는 그곳이다.
책은 다른 이의 몸 안에서만 박동하는 심장이다(99쪽).“
- 레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 중에서 -
최근 출판하는 마음이라는 인터뷰집을 낸
은유 작가는 이 글을 인용하면서 글과 책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글이 내 안에 도는 피라면
책은 다른 이의 몸 안에서만 박동하는 심장이다(12쪽).“
내 맘대로 쓴 글이
남의 심장을 움직이려면
내 생각을 그대로 쏟아 놓아서는 안 된다.
나아닌 다른 사람이 기꺼이 지갑을 열고 돈을 지불한 다음
소중한 자기 시간을 내서 책을 읽게 만들기 위해서는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책을 쓰는 과정은
지루하고 인내심이 요구되는 지난한 과정이지만
복잡한 생각을 단순화시켜
하나의 구슬에 꿰는 구조화 과정이자
그동안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던 생각의 파편들을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공부다.
책을 쓰는 과정이 바로 나만의 지식생태계를
만들어가는 첫걸음이 되는 이유다.
책으로 엮어내지 않으면 복잡한 생각과 지식이
일정한 논리적 구조로 체계화되지 않는다.
모래알에 시멘트를 붓고 물어 부어서
원하는 형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바로 책 쓰기다.
그리고 책 쓰기는 소장하고 싶도록 독자를 유혹하고
읽고 싶도록 끊임없이 충동질해서
설레게 만드는 심장 박동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