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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아직도
종이책을 읽어야 하는가?

참을 수 없는 전자책의 가벼움과 견딜 수 없는 종이책의 무거움

우리는 왜 아직도 종이책을 읽어야 하는가?

참을 수 없는 전자책의 가벼움과 견딜 수 없는 종이책의 무거움   

  


만질수록 질감에 감전되는 종이책이 감전되다    

 

전자책은 자극적이거나 유혹적이지 않다. 종이책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독자를 유혹한다. 오프라인 서점에 가보면 각종 신간이 매대에 누워있다. 그것도 저마다의 아름다운 자태(표지)와 독자를 끄는 촌철살인의 제목으로 제발 자기를 한 번만이라도 봐달라고 안간힘을 쓴다. 독자의 손에 한 번이라도 맞닿은 책은 독자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 전에 매끈한 표지와 책마다 뿜어내는 향기로 다시 한번 독자의 오감을 자극한다. 목차를 보는 순간 독자의 목을 차 버릴 정도로 당기는 매혹적인 메시지가 즐비하다. 독자는 맨 뒤편에 조용히 자리 잡은 가격표를 표고 잠시 망설이다 계산대로 가져간다. 그 순간 베스트셀러는 서점이 마련해준 특별한 침대에서 갖가지 표정을 지으며 독자를 다시 한번 유혹한다. 계산대로 가기 전에 또 한 번 독자는 수많은 유혹의 대열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간신히 계산대까지 가서 줄을 섰다. 거기에 출판사가 의도적으로 전시한 책의 대열이 독자의 손길을 기다린다. 마치 마트에서 계산하려고 기다리는 중에 점원 바로 앞에 전시되어 있는 각종 상품들이 고객의 눈길을 마지막으로 사로잡기 위해 발악(?)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책은 서점 곳곳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출판사와 서점의 손길이 여기저기 뻗쳐져 있다. 이런 책은 어떤지 제발 와서 만져봐 달라고 저마다의 목소리로 아우성을 친다. 잘 못 만지면 감전되는 책이 곳곳에 널려 있다. 전자책은 아무리 만져도 전기가 통하지 않지만 종이책은 만지면 만질수록 종이 질감이 주는 묘한 물질감에 감전되고 만다. 손길과 눈길이 만나는 순산 첫눈에 반해버린 책들은 이제 독자의 뇌를 순간적으로 감전시키는 끊을 수 없는 선물, 뇌물(腦物)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종이책의 진짜 매력은 읽으면서 밑줄을 긋고 거기에 내 생각을 가미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밑줄을 칠 때 나는 소리와 저자의 생각과 내 생각이 포개지면서 나오는 또 다른 생각의 임신과 출산에 저절로 신이 난다는 점이다. 거기다 더 강조하고 싶으면 형형색색의 형광펜으로 다시 인두 같은 한 문장에 색을 입히고 다시 한번 손글씨로 별도의 메모장에 기록해둔다. 그것도 모자라서 밑줄 친 페이지 옆에 형형색색의 포스트잇 갈피를 붙여둔다. 나중에 그 부분만 펴서 밑줄 친 문장을 모두 손가락을 움직여 타이핑해서 기록해둔다. 나중에 책을 쓸 때 참고로 인용하기 위한 수고와 정성이다. 나만의 비밀 문장 노트에 한 문장 한 문장 기록해서 축적하는 재미는 아날로그의 여유로움과 사색이 주는 감미로운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전자책으로 훌쩍 넘겨버리며 읽는 속도감보다 꾹꾹 눌러 메모하면서 생각의 파편이 종이책을 뚫고 들어가 각인되는 느린 여유로움이 좋다. 검색의 속도보다 사색의 밀도가 간절한 시점에서 종이책을 읽고 메모하고 행간에 나의 생각을 다시 밀어 넣는 수고스러움이 읽기의 고수로 만들어주는 비밀 전략이 아닐까. 신출귀몰한 정보의 바다에 빠져 검색의 속도를 즐기다 정작 정말 중요한 지식이나 지혜의 창고에서 나만의 생각을 창조하는 농축된 시간의 밀도를 잃어버리고 있다.   

  


인두 같은 한 문장에 심장이 박동하고 파장이 일어난다     


책의 묘미와 매력에 빠져 책 속으로 잠입한 독자는 설레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다. 서문을 읽다가 압도당한 독자는 서문부터 밑줄을 그어야 할 부분이 너무 많이 나올 때 책장을 다시 덮고 잠시 상념에 잠기기도 한다. 덮인 책장 안에는 저자의 생각이 독자의 생각과 마주치면서 강렬한 전류가 흘렀다. 감전의 강도가 너무 센 나머지 뇌를 건드린 전압은 온몸을 휘감는 전율로 파고든다. 힘겹게 참고 견디다 못해 다시 책을 열어본다. 그 사이에도 밑줄 친 문장은 긴장감에 떨고 있다 다시 한번 독자의 심장박동을 뛰게 만든다. 다시 그 문장에 형광펜으로 색감을 입혀 놓고 다시 다가오는 파장과 파문에 눈을 떼지 못한다. 잠시 생각을 멈췄다가 다시  손으로 책장을 넘기고, 손으로 밑줄을 친다음 그걸 다시 손으로 메모하는 손맛은 종이책 읽기가 선물하는 행복한 촉감이다. 밑줄칠 때 글자와 함께 따라서 스며 나오는 소리, 책장을 넘길 때의 종이가 꺾이면서 나오는 투박한 소리와 다음 페이지로 안착되는 소리, 그래 어서 와 내가 기다리고 있다는 환영의 박수소리가 다음 페이지에서 흘러나오는 기분이다. 손으로 책장을 넘기고 손으로 남은 부분을 넘겨다보면서 흔적을 남기는 독서는 종이책이 나에게 주는 행복한 촉감이다. 다시 뒤를 이어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 모르는 설렘과 함께 불확실한 기대감이 중간에 멈추지 않고 다음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책 겉표지 뒷장에 주로 나타나는 저자 소개는 글의 스타일과 색깔, 즉 문체를 알아보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준다. 저자 소개가 풍기는 이미지와 스타일은 그가 쓰는 책의 성격과 방향을 어느 정도 예증한다. 범상치 않은 소개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저자가 있는가 하면 틀에 박힌 과거의 학력이나 이력을 소개하면서 자기 자랑을 하는 평범한 저자도 있다. 그런 저자의 책은 우선 처음부터 독자의 구미를 당기지 못한다. 저자 소개는 독자의 관심에 호소하는 자기 드러냄의 관문이다. 독자의 호기심과 질문이 따라오게 만드는 저자의 말에는 저자의 관심과 애정, 사람과 삶에 관한 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런 철학으로 독자의 공감을 유발하는 글을 쓰는 것이다. 저자의 말과 더불어 제목과 목차, 그리고 서문에 혼을 빼앗기면 이제 남은 일은 책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종이책의 강점은 시작과 끝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중간에 어디든 다른 곳으로 샐 수 있는 하이퍼텍스트와는 다르게 오로지 줄기차게 처음부터 끝까지 가면 끝을 만날 수 있다는 안도감이 책에는 존재한다. 하지만 디지털 텍스트는 중간에 링크를 눌러 잘 못 빠지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정보의 삼천포로 빠지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기조차 쉽지 않다. 끝없이 펼쳐지는 망망대해의 정보의 바다가 무한한 가능성을 주기도 하지만 언제 어디로 빠질지, 그리고 언제 정보 항해가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한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읽고 있는 와 다 읽고 기다리는 ’, 그 사이에 읽기는 계속된다     


내가 중간에 멈추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책갈피로 표시해놓고 잠시 딴짓을 칠 수도 있다. 시작하면서 끝은 가까워지고 그 끝에 읽는 내가 미리 가서 기다리며 지금 읽고 있는 나와 상봉할 그 순간을 기다린다. 끝을 기다리면서 점차 읽어갈수록 책의 무게감은 읽은 쪽으로 넘겨가고 뒤쪽은 가벼워지기 시작한다. 손바닥으로 받쳐서 들어보면 읽은 왼쪽이 무거워지고 읽지 않은 오른쪽이 가벼워질수록 책은 이제 거의 다 읽어간다는 신호다. 책장을 넘기는 침묵과 고독 속에서 읽어가는 나와 이미 다 읽고 책 끝에서 기다리는 내가 만날 그날만을 고대하게 된다. 우치다 타츠루의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독서는 '지금 읽고 있는 나'와 '벌써 다 읽어버린 나'의 공동 작업입니다……'다 읽고 난 나'가 보증인이 되어주기 때문에 '지금 읽는' 것이 가능합니다……'읽고 있는 나'와 '다 읽은 나'는 모래밭 양쪽에서 굴을 파는 두 아이와 같습니다. 계속 파 들어가는 사이에 점점 맞은편에서 굴을 파는 상대방의 손이 가까이 오는 것을 느낍니다. 마지막으로 얇은 모래벽이 무너지면 손과 손이 만나고 바람이 훅 통합니다. '아아, 드디어 만났구나!' 하는 성취감이 있습니다. 한 권의 책을 다 읽는다는 것은 그런 식으로 '내가 다 읽은 것을 기다린 나'와 다시 한번 만나는 것입니다”(64쪽). 책이 두꺼울수록 책 뒤에서 기다리는 나는 지금 읽고 나를 기다리는데 지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루한 기다림이지만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고 기다릴 때 읽고 있는 나는 읽고 기다리는 나와 만나는 감동 또한 그렇게 크다. 물론 종이 책도 각주나 미주를 따라가며 읽으면 끝없이 펼쳐지는 연결 읽기가 가능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몸을 움직여 다른 곳으로 빠져나와 책을 주문하거나 도서관을 찾아 그 책을 찾지 않는 이상 발생하지 않는다.     

 


문제는 전자책에는 책 뒤에서 읽고 있는 나를 기다리는 나의 자리가 없다. 전자책은 아무리 많이 읽어도 몇 페이지나 남았는지, 읽은 페이지와 비교해서 뒤에 남은 페이지의 중량감을 느낄 수 없다. 그래서 다 읽은 내가 어디서 기다리고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저자의 결론적인 메시지가 무엇인지, 그래서 그 사람이 본론의 핵심적인 메시지로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가 책을 읽어가면서 서서히 본색을 드러낸다. 책에 저자가 심은 메시지의 흐름을 감지하며 읽다 보면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대강 언제쯤 이 책의 결론이 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든다. 읽고 있는 나는 책의 뒤편에서 고대하고 있는 나를 만나는 장면을 서서히 상상하며 읽는다. 다시 우치다 타츠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실제로는 손으로 받쳐 든 책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감촉이나 무게감, 손바닥 위의 균형 변화 같은 요소, 즉 주제의 측면에서는 의식하지 못하는 시그널에 반응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읽기 방식을 미세하게 조정하는 것입니다”(64쪽). 언제쯤 이 책의 종착역에 다다를 것이라는 예감과 함께 책이 전하려는 절정과 결말의 메시지가 안갯속의 이미지로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한다. 읽는 마음과 자세를 가다듬고 클라이맥스에 오를 준비를 시작한다. 책을 책상에 놓고 읽을 때는 읽은 양이 얼마 되지 않을 때는 책은 오른쪽 두께가 훨씬 두껍다. 그 두꺼움이 왼쪽의 얄팍함을 지배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양쪽이 균형을 맞추다 서서히 왼쪽 두께가 두꺼워진다. 이제 책의 끝장을 향해 옮겨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책장을 넘기는 소리를 들을 때의 안도감과 다 읽어간다는 확신은 깊은 만족감의 물결을 치게 만든다. 조용하지만 책장 넘기는 소리는 침묵을 뚫고 허공으로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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