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AC)
바람직한 교육의 변화 방향

우리 모두가 반드시 명심해야 될 미래 교육의 10대 지침

코로나 이후(AC: After Corona) 바람직한 교육의 변화 방향

우리 모두가 반드시 명심해야 될 미래 교육의 10대 지침


두 달째 온라인에서 동영상 강의나 줌으로 화상 수업을 하고 있다. 학생들과 대면하지 않고 언컨택트(uncontact) 상태로 수업을 하는 미증의 사건을 몸소 경험하는 중이다. 내가 동영상 강의를 올려놓고 과제를 준 다음 문제를 해결하거나 토론방을 열어놓고 토론을 유도하기도 한다. 직접 실시간 화상으로 발표와 토론을 하고 다시 내가 총정리하면서 오늘의 배움 포인트를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수업을 하기도 한다. 비대면 수업이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들의 의견에 참견하기보다 그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켜 자신의 관점을 다른 관점과 어울리게 장을 만든다. 때로는 의견 충돌과 갈등이 일어나고 그 속에서 합의점을 찾아내는 탐구 여정이 벌어지기도 한다. 오프라인에서 직접 몸으로 느낌을 확인할 길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수업 참여 과정을 관찰하면서 다음 수업행동에 적절한 조치를 임기응변적으로 취하기도 한다. 계획된 수업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도 있고 생각지도 못했던 반응에서 새로운 시사점을 배우기도 한다. 가급적 충고나 조언보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을 열어 보이고, 일방적 평가나 판단으로 학생들의 의견을 나의 입장에서 재단하기보다 공동의 의견을 물어보고 색다른 관점도 얼마든지 제시될 수 있음을 몸으로 느끼게 해 본다. 코로나 19가 몰고 온 전반적인 사회변화와 함께 교육도 혁명적인 전환기를 겪지 않으면 오히려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떤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까?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행한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는 의무적 실천조항이다.


①계획과 우연: 각본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 많은 배움이 우연히 일어난다

②질서와 혼돈: 생각지도 못한 창조는 극심한 혼돈과 무질서에서 나온다

③단순과 복잡: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노력은 단순하지 않다

④과정과 결과: 과정을 알아야 결과가 빛난다

⑤문제 해결과 문제제기: 전대미문의 문제를 제기하는 문제아가 세상을 이끌 것이다

⑥접촉과 접속: 접촉 없는 접속은 진정한 접목으로 연결되지 못한다

⑦재미와 의미: 재미있으면서 의미까지 심장에 꽂혀야 의미심장해진다

⑧방법과 방향: 방법을 가르치지 말고 방향을 가리켜라

⑨앎과 함과 삶: 앎은 효과적인 행위이자 어제와 다른 삶이다

⑩행위자와 행위: 사물도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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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계획과 우연: 각본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 많은 배움이 우연히 일어난다


모든 수업은 어느 정도의 계획과 목표가 필요하다. 한 학기 수업이 지향하는 목적지가 있고 하루 동안 수업을 통해 함께 도달하고 싶은 목적지에 대한 이미지가 있다. 여행을 떠났는데 어디로 갈 것인지는 알고 떠나야 되지 않을까. 물론 가다가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해서 계획대로 되지 않을지는 몰라도 이번 여행의 종착역은 어디로 갔다가 어디를 거쳐서 다시 돌아오겠다는 어렴풋한 일정은 누구나 갖고 떠날 것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사전에 철저하게 계획된 여행사 패키지 상품을 선택하고 아예 거기에 몸을 맡기는 사람도 있다. 수업을 하나의 여행에 비유하면 자유여행 같은 수업이 있고 패키지여행 같은 수업을 상상할 수 있다. 가르치는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어떤 수업을 선택할지가 결정되겠지만 온라인 수업의 특성상 오프라인에 비해 사전 계획대로 주어진 수업 시간대로 진행되지 않는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면 갑자기 네트워크 상의 문제로 접속이 원활하지 않을 때 또는 내가 사용하는 컴퓨터가 예고 없이 먹통이 될 때 온라인상에서의 수업은 기술적 이유로 계획대로 진행하기 어려운 국면을 맞이한다. 물론 주어진 시간을 세부적으로 분할해서 시간대별로 어떤 내용을 어떤 방법으로 전달할 것인지 철저한 계획을 수립하고 그대로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 목적지에 도달하는 속도와 효율을 너무 중시한 나머지 목적지에 이르는 여정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깨달음의 묘미는 상상할 수 없다. 각본대로 진행될수록 의외성이나 우연성은 떨어질 뿐만 아니라 재미도 실종되기 시작한다. 정상 궤도를 이탈하는 비정상적인 행동이 전개될 때 많은 사람들에게는 불안한 일탈이지만 그 속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깨달음의 급소가 우리를 놀라게 한다. 예측 불가능성이야말로 다가오는 시간을 기다리고 설레게 만드는 원동력이지 않을까. 우연한 마주침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교육이라야 깨우침이 발생하고 뉘우침이 따르며 새로운 가르침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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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질서와 혼돈: 생각지도 못한 창조는 극심한 혼돈과 무질서에서 나온다


지금까지의 교육은 질서 정연함을 강조해왔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두 마디가 있다. “조용히 해.” “자리에 앉아.” 조용히 자리에 앉아서 입 다물고 선생님이 말하는 내용을 잘 들어보라는 의미다.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교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놀고 싶은 강한 충동을 견디고 오로지 질서 정연하게 가공된 학습내용을 내 몸에 각인시키는 고통스러운 노력만 칭송될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적 삶은 무질서의 야적이자 극심한 혼돈이 펼쳐지는 전쟁터나 다름없다. “우리가 아무리 다른 길을 가고자 해도, 삶은 실시간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삶은 통제할 수 없다. 삶은 그 자체로 무질서하다. 이러한 순리를 거스르려고 하는 사람은 어린 고등학생뿐만 아니다. 각본에 쓰인 말을 계속 반복하는 것은 언제나 깔끔한 정답을 찾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질문이 혼란스러운 때 이런 접근방식은 아무 쓸모가 없다”(60쪽). ‘혼돈에서 탄생하는 극적인 결과’라는 부제목이 붙은 팀 하포드의 《메시》에 나오는 말이다. 질서 정연하고 체계적으로 전개되는 깔끔한 교육이라야 진정한 교육이라는 믿음을 갖고 왔다. 하지만 진정한 창조성은 오히려 극심한 혼돈과 무질서라는 야생의 텃밭에서 무럭무럭 자란다고 《메시》의 저자는 말한다. “진정한 창조성, 자극, 인간성은 삶의 깔끔한 부분이 아니라 무질서한 부분에서 나온다. 인간이 잠재성을 실현하는 무질서의 미덕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북돋워주어야 한다”(62쪽). 앞으로의 교육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적 삶과 분리된 상태에서 조화와 통일, 조직과 체계성만을 일방적으로 배우는 방향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 오히려 교육은 무질서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경쟁하는 다양한 관점이 모순을 들어낸 채 서로 충돌하고 갈등하는 양상을 보여주면서 스스로 질서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강조해야 한다. 어디로 갈 것인지를 서로가 합의한 상태에서 거기에 도달하는 방법은 무한한 가능성과 자유를 보장할 때 겉으로 보기에는 극심한 혼돈 상태로 보이지만 그 속에서 보여주는 움직임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질서를 찾아가는 수업이 앞으로 강조해야 할 교육의 모습이다. “위험에 미리 대처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푹신푹신한 쿠션으로 둘러싸인 키즈카페에서 핀볼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보다 울퉁불퉁한 야외 놀이터에서 모험을 하며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이 훨씬 낫다”(68쪽). 역시 팀 하포드의 《메시messy》에 나오는 이야기다. 교수와 학습이 맞물려 역동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장면으로 상상해도 일맥상통하는 모습이다. 온라인 가상공간에서도 너의 다른 의견이 우리의 다양한 의견으로 존중되면서 다름과 차이를 배려하는 가운데 시끄러운 상호작용을 얼마든지 연출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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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단순과 복잡: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노력은 단순하지 않다


전통적으로 교육은 주로 학교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학교는 공장처럼 규격화된 인재가 달성해야 될 목표를 사전에 규명하고 여기에 이르는 최단거리를 컨베이어 벨트처럼 체계적으로 돌아가는 기계였다. 기계로 학교를 바라보는 관점은 학교에 오는 학생을 기계의 부속품으로 간주하고 가르치는 사람은 기계를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관리자다. 학생은 사전에 정해진 철도나 고속도로를 따라 목적지에 가급적 빠르게 도착해야 한다. 철도를 달리는 기차를 학교에 비유하면 학교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일사불란하고 질서 정연하게 움직여야 한다. 목적지도 딱 한 군데 결정되어 있다. 한편 학교를 고속도로에 비유하면 정해진 목적지에 도달해야 한다는 점은 철도와 동일하나 목적지에 이르는 길이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는 점이 다르다. 철도와 도로를 지배하는 학교 패러다임은 속도와 효율이 핵심원리로 작용한다. 반면 학교를 오솔길에 비유하면 속도와 효율은 중요하지 않다. 오솔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남이 걸어가지 않은 길을 얼마든지 개척해서 갈 수 있기 때문에 비효율적인 사색의 길이 될 수도 있다. 철도와 도로가 지향하는 교육 패러다임은 원인과 결과가 단선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직선형 패러다임이다. 투입하는 요소가 결정되면 결과는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오솔길 패러다임은 언제 어디서 어떤 낯선 마주침을 겪을지 예측할 수 없다. 목적지도 가는 도중에 바뀔 수도 있다. 빠르게 직선으로 달려가서 목표를 달성하는 효율적인 패러다임은 무의미하다. 오솔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학습자라면 가급적 천천히 주변을 살피면서 삼라만상이 모두 스승이다. 오솔길에서는 누가 선생이고 학생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 모두가 스승이고 배우는 사람이다. 나에게 우발적 마주침을 통해 깨우침을 주는 모든 것은 다 스승이다. 정해진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려는 철도와 도로 패러다임에 비해 오솔길 패러다임은 목적지로 가는 여정에서 우연히 깨닫는 부산물에 더 의미심장한 교육적 시사점이 있음을 인정한다.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여정은 비효율적인 탐색과 시도이자 탐험과 도전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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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과정과 결과: 과정을 알아야 결과가 빛난다


지금까지의 교육은 결과 중심 교육이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의 재료인 쌀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나오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쌀이 나오는 전 과정을 몸으로 경험해본 사람은 더더욱 많지 않다. 직접 벼농사를 지어 본 사람은 매일 먹는 밥의 한 톨도 소홀히 취급하지 않는다. 이른 봄에 볍씨를 뿌려 모를 만들고 모내기를 논에 한 다음 지극 정성으로 키우면서 여름을 보낸다. 천둥과 번개를 맞고 놀라기도 하면서 비바람을 견뎌내고 가을이 되어 고개 숙인 벼이삭을 만난다. 벼 베기를 통해 한 해 벼농사를 마무리하면서 탈곡을 하고 다시 방앗간에 가서 우리가 원하는 쌀이 나오기까지 긴 여정에 수많은 사람의 땀과 정성이 담긴다. 앞으로 교육은 과정 중심 사유를 즐기면서 배우는 과정을 촉진해야 한다. 공부는 이렇게 덕분에 이루어진 사회적 합작품의 이면을 들여다보며 하나의 결과나 성과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들여다보면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함께 분투노력하는 탐구과정이다. 쌀 한 톨(米)이 생산되기 위해서 88번의 농부의 수고와 정성이 들어가야 얻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쌀‘미(米)’자를 분석해보면 여덟 ‘팔’(八) 두 개가 합쳐져서 이루어진 글자(八 + 八 = 米)라고 한다. 즉 한 톨의 쌀이 생산되기까지는 88가지의 농부의 정성스러운 노력과 수고스러운 땀이 투여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과정을 직접 몸으로 체험해보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앞으로 언컨택트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온라인 교육 비중이 높아진다면 과정에 투여되는 노력과 정성만이라도 우리가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과정을 중시하는 교육은 결과보다 과정에서 겪으며 배우는 시행착오의 교훈을 소중하게 다룬다. 과정에서 겪어본 시행착오가 판단 착오를 줄여준다. 나아가 과정 중심 교육은 산물보다 부산물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내가 생각하기에 부산물은 무엇인가를 만들어낸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당연하다. 산물이 없으면 부산물도 없다. 부산물은 행운으로 치환할 수도 있다. 의도한 것 이상의 결과물을 만날 수 있다는 행운. 그것은 무엇인가를 이루어 낸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0에는 아무리 0을 곱해도 0이다. 1을 만들어 내야 비로소 새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p.162).” 마스다 무네야키의 《지적 자본론》에 나오는 말이다. 산물을 만들어내야 할 결과로 생각했지만 우연히 만들어진 부산물에서 의미심장한 가치를 발견하는 교육을 강조할 때 우리 삶은 더불어서 아름답게 고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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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문제 해결과 문제제기: 전대미문의 문제를 제기하는 문제아가 세상을 이끌 것이다


지금까지의 교육은 가르치는 사람이 문제를 내고 학생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패러다임이었다. 교육의 목표는 문제 해결사를 양성하는 데 있다. 문제 해결 패러다임은 우선 문제는 완벽하게 규명될 수 있다는 가정과 규명된 문제 또한 완벽하게 해결될 수 있다는 가정을 갖고 있다. 과연 문제가 무엇인지 사전에 분명하게 규명할 수 있을지는 정말 문제다. 문제를 규명하는 와중에 문제의 성격과 본질이 바뀔 수도 있고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 전혀 문제가 아닐 가능성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일상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물론 교육문제 역시 다양한 변수들 간 복잡한 상호작용과 의존관계로 얽혀있기 때문에 그 성격과 속성을 사전에 명쾌하게 해명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아지고 있다. 이런 경우 그 문제를 모두가 만족할 정도로 완전히 해결할 수 있다는 가정도 문제시된다. 나아가 문제 해결은 사람보다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이 더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인간은 질문하고 기계는 대답한다는 말이 있다. 인간의 존재 이유 중의 한 가지는 기계가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전대미문의 색다른 질문을 던질 때 그 질문에 대답하거나 질문이 요구하는 가능성의 문은 언젠가 열린다. 기술발전이나 문명이 발달은 언제나 색다른 질문이나 문제를 품고 집요하게 파고든 사람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 앞으로의 교육은 학생들에게 문제를 던지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능력을 육성하는 과정을 강조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까지 남이 낸 문제에 대한 정답을 찾는 능력을 개발해왔다. 이제 그 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색다른 질문을 던지거나 이제까지 그 누구도 제기하지 않았던 문제를 내는 능력을 지속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문제를 잘 내는 인재를 전문용어로 문제아라고 한다.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세상을 이끄는 리더가 되는 시대가 바로 우리가 준비해야 될 중요한 과제다. “물음의 역량은 물음이 향하는 대상은 물론이고 그에 못지않게 묻고 있는 자를 위험에 빠뜨리고, 또 자기 자신을 물음의 대상의 위치에 놓는다”(424쪽).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에 나오는 말이다. 어제와 다른 물음이 물결처럼 일어나는 교육이야말로 늘 호기심을 품고 깊은 탐구과정으로 유도하는 마중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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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접촉과 접속: 접촉 없는 접속은 진정한 접목으로 연결되지 못한다


접촉 없는 접속은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고 접속 없는 접촉은 참기 어려운 무거움이다. 과정의 수고와 정성을 관찰할 수 있는 아날로그와는 다르게 시작과 끝만 보이는 디지털의 속도는 접촉과 접속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봄날의 따스한 햇빛을 벗 삼아 모내기를 해봤던 감촉과 작렬한 폭염 속에서 논을 매 봤던 체험적 고통은 아날로그가 아니라면 경험할 수 없는 신체적 감각이다. 디지털은 이 모든 고통의 과정을 생략하고 텍스트로 전환한다. 콘텍스트가 실종된 텍스트와의 접속을 신체 언어가 아니라 입으로 말하는 구술 언어, 그리고 그것을 말하는 사람의 일부 몸짓이 교감되는 접속의 세계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들의 머나먼 가상공간에서 무반응 상태로 내려다보는 듯하다. 오프라인 수업에서 온라인 수업으로의 이동은 단순한 공간이동이 아니라 공간에서 익숙했던 몸과 정신의 동반 이동을 의미한다.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지던 면대면 상호작용은 단순한 언어적 소통이 아니라 몸짓과 표정이 담고 있는 암묵적 가정과 숨은 의도를 시시각각 해석하고 반응하며 공감하는 과정이다. 때로는 공감 대역 안에서 몸으로 그 열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단순한 전달자에서 코우치나 훠실리테이터로 변신한 교수 역시 자신이 말하는 메시지에 대해 학생들의 순간적인 반응을 살펴보면서 전체적인 맥락을 읽고 즉흥적 성찰을 통해 다음 메시지의 성격과 방향을 결정한다. 그 와중에 논리의 허점을 공략하는 촌철살인의 메타포를 던져 사고의 일파만파를 이루기도 한다. 이처럼 오프라인 접촉은 갈등하고 충돌하는 아이디어의 직접 만남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어가며 지식융합이 일어나는 낯선 지식 간의 접목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 온전이 온라인으로 옮겨지지 않는다. 학생들이 보여주는 어느 정도의 표정 변화는 읽어낼 수 있지만 가끔씩 얼굴을 감추고 낯선 배경화면을 보여주는 학생이나 얼굴보다 머리끝만 보여주며 말하는 학생들과의 접속은 견딜 수 없는 수업의 황당한 허무함을 느끼게 만든다. 수업을 이끌어가는 교수의 평소 스타일이나 지향하는 가치관에 비추어 천차만별의 상호작용이 일어나겠지만 온라인 역시 대체로 침묵은 금이라고 생각하는 학생이 많고, 의무 방어전으로 토론에 참가해서 심사숙고하면서 정련된 몇 가지 아이디어를 선언적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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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재미와 의미: 재미있으면서 의미까지 심장에 꽂혀야 의미심장해진다


온라인에서 수업을 하든 오프라인에서 수업을 하든 내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수업의 전제 조건은 의미심장한 깨달음을 유도하는 지의 여부와 일정기간 감정적 흥분 상태가 지속되는 재미있는 수업이라야 된다는 점이다. 내가 굳이 수업을 듣지 않아도 어디서든 얻을 수 있는 자료를 기반으로 전개되는 수업이라는 판단이 들면 집중과 몰입은 물 건너 간 일이다. 강제적 의무규정에 못 이겨 들으 수밖에 없는 수업이기 때문에 듣는 것이다. 강제성이나 의무 규정이 사라지는 순간 해당 콘텐츠 기반 수업은 사장된다. 두 번째 수업의 중요한 구성요건은 재미다. 재미는 한바탕의 웃음이 아니다. 재미는 생각지도 못한 생각을 불러일으키며 통렬한 깨달음의 뒤통수를 맞았을 때 찾아온다. 의외성과 기대 저버림에서 재미가 나온다. 틀에 박힌 멘트가 만발할 경우 사람들은 바로 주의를 분산시켜 집중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재미없겠다는 예상과 함께 딴짓하기 시작한다. 특히 온라인으로 강의를 들어야 하는 시간에 오프라인보다 주의집중 지속기간이 짧아지기 때문에 학습자의 주의를 집중시킨 콘텐츠 내부적 논리의 구조화나 내용 전개 흐름의 완급을 통해 반전을 주는 전략이 필요하다. 한 마디로 앞으로 어떤 내용이 전개될지 모르는 긴장감 속에서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한다는 가정이 잠재되어 있을 때 학습자는 긴장을 유지한 채 다음 내용을 기대하며 기다린다. “유머 감각은 웃음거리를 감지하고 구사할 줄 아는 능력으로, 이성적인 추론이나 사유를 뛰어넘어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이 요구된다. 한편으로는 상대방의 호의와 배려를 지니고 있어야 하고, 다른 한 편으로 사물과 현실에 대해 거리를 두면서 냉철한 직관을 구사해야 한다”(64쪽). 김찬호의 《유머니즘》에 나오는 말이다. 재미를 유발하는 수업은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 모두 귀를 기울여 상대방의 이야기에 주목하지 않으면 맥락에 흐르는 메시지의 의미와 반전 가능을 포착하기 어렵다. 촌철살인의 익살과 해학은 통념과 상식을 뒤집는 반전과 생각지도 못하게 기대를 망가뜨리는 가운데 나온다. 생각의 물구나무를 서서 바라보게 만드는 뒤통수치는 메시지에서 의외의 통렬한 깨달음이 감지될 때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폭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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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방법과 방향: 방법을 가르치지 말고 방향을 가리켜라


지금까지의 교육은 배워야 할 필수 교과목을 가르치는 사람이나 주관 기관에서 사전에 결정하고 배우는 사람은 무조건 해당 필수과목을 의무적으로 공부해야 했다. 알면 좋지 않은 과목은 없다. 알아두면 몸에 해로운 지식은 없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어떤 지식은 몰랐을 때보다 알았을 때 신체적-정신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대입 수능을 위해 학생이 배워야 할 교과목을 어떤 목적과 근거로 정했을 것이다. 과연 과목 선정 기준이나 가치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지는 물어봐야 한다. 한 사람이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그 많은 과목을 다 잘하는 공부 선수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전과 다른 질문을 던지고 다른 가능성을 탐색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의 교육은 점차 가르치지 않고도 배울 수 있는 내용이 점차 더 많아질 것이다. 반드시 이건 가르쳐야 한다는 가정과 강박관념도 가르치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는 하향식 권위주의적 발상인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건강상 금연(禁煙)도 필요하지만 학습자의 학습건강을 위해서 지나친 교육을 금지하는 금교(禁敎)가 필요할지 모른다. 진정한 배움은 가르침에서 나오지 않고 혼자 안간힘을 쓰면서 터득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가르침에 길들면 모범생이 되지만 가리킴에 익숙해지면 모험생이 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칠수록 학습자의 가르치는 사람에 의존하게 되고 스스로 방향을 찾아 낯선 길을 찾아 나서지 않는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그 누구도 대신 가르쳐주지 않는다. 비록 시간이 걸린다고 할지라도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내가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우여곡절과 파란만장한 체험 끝에 어느 순간 내가 갈 길이 떠오른다. 방향을 가리키면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지만 점차 하나둘씩 스스로 깨달으면서 자기만의 독창적인 방법을 개발한다. 방법이라는 약을 계속 복용하면 지금 당장 뭔가를 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되지만 지금보다 더 심각한 시련과 역경에 직면하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실종된다. 방법은 어떻게 할 것인지의 문제지만 방향은 어디로 갈 것인지의 문제라서 방향이 결정되지 않고 방법을 고민할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한 지혜는 누군가 가르쳐준 방법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찾은 방향으로 걸어가기 위해 내가 스스로 터득한 방법이다. 방황(彷徨) 끝에 스스로 찾은 방향(方向)은 나만의 독창적인 방법(方法)과 방식(方式)으로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방도(方道)로 걸어갈 수 있는 시금석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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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앎과 함과 삶: 앎은 효과적인 행위이자 어제와 다른 삶이다


이제까지의 교육은 지행일치(知行一致)를 교육적 가치로 가르쳐왔다. 지행일치의 교육은 삶과 독립된 상태에서 앎을 먼저 가르치고 나중에 안대로 실천할 것을 강조한다. 알면 실천한다는 가정이다. 교육받은 사람이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천하지 않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지행일치 교육은 주로 일상과 거리를 두고 창백한 책상에서 일어난다.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는 현장의 현실은 대부분 희석되거나 각색된다. 지행일치의 공부는 책상 지식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즉 앎으로 삶을 증명하려는 관념적 지식인 양성에 목적을 두고 있다. 먼저 알고 나중에 행동하는 선지후행(先知後行)을 주장하는 지행일치의 공부는 앎과 삶이 철저하게 구분되는 공부이며 지식과 지식에 칸막이가 쳐져서 소통과 왕래가 없는 공부다. 나아가 지행일치를 주장하는 교육은 지(知)와 정(情)이 분리되어 자신의 결연한 판단과 과감한 시도 속에 반영되는 열정과 지향하는 가치가 반영되지 않는 건조한 지식만 양산할 뿐이다. 앞으로의 교육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추구하는 패러다임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지행합일은 앎이 곧 함이고 함이 곧 삶이다. 앎과 함과 삶이 따로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 통합된다. 삶의 현장이 내가 뭔가를 깨닫는 앎의 교실이자 나를 어제와 다르게 탄생시키는 함의 무대다. 지행합일의 패러다임은 입으로 앎을 증거 하지 않고 몸으로 앎을 창조한다. 앎은 그 자체가 효과적인 행위다. 지행합일의 공부는 하면 할수록 어제와 다른 삶이 창조되고 그 속에서 나 역시 어제와 다른 나로 끊임없이 변신을 거듭한다. 지행합일을 추구하는 교육은 세상이 모두 앎의 텃밭이자 어제의 나로 탄생시키는 함의 무대이며 나답게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다. 지행일치를 지향하는 지금까지의 교육이 현실과 거리를 둔 채 객관적인 지식을 주입하고 암기하는 방식을 강조해왔다. 반면에 지행합일을 추구하는 앞으로의 교육은 지금 겪고 있는 삶의 이슈나 문제, 딜레마 상황이나 위기 국면이 우리가 탐구하고 논의해야 될 살아있는 교육적 주제다. 삶 속에서 삶과 더불어 일어나는 모든 행위 자체가 어제와 다른 앎을 탄생시키는 배움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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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행위자와 행위: 사물도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위자다


지금까지의 교육은 사람만이 사람을 가르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위 주제로 생각해왔다. 사람이 사용하는 도구나 기술은 어떤 목적으로 갖고 사용하는지에 따라서 사람에게 봉사하는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앞으로의 교육은 사람뿐만 아니라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풍부하게 만들어주거나 도와주는 모든 사물이나 기술을 모두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적극적 행위자라고 본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각종 도구나 기술 역시 하나의 행위자로 봐야 한다는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NT: Actor-Network Theory)이 있다.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은 학습활동이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소는 행위자다. 기술은 인간 학습자의 도구로만 작용하는 수단이 아니라 기술 자체가 인간 행위자에게 적극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또 다른 행위자다. 인간 학습자는 다양한 행위자 네트워크 안에서 다른 행위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영향을 받는 하나의 행위자일 뿐이다. 앞으로의 교육은 비 생명체 역시 하나의 행위자로 끌어안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역동적인 상호작용과 창발적 우연성을 수용한다. 예를 들면 책은 누군가 읽기를 기다리는 물체가 아니라 어떤 작가로 하여금 책을 쓰게 만드는 행위자(actor)다. 책을 읽는 순간 강한 공감을 일으키며 나로 하여금 내 삶에 관한 책을 쓰게 만든 영향력자다. 책이 행위자로 역할 변신을 하는 근거는 책 또한 책을 쓰고 싶은 욕망을 누군가에 부추기는 과정에서 영향이나 자극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작가인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는 과정에서 도구는 단순히 글을 쓰는 수단을 넘어선다. 오히려 작가에게 글이나 책을 쓸 수 있도록 자극이나 영향을 주는 도구나 기구가 언제나 내 주변에서 일정한 네트워크를 유지하면서 서로 간에 상호작용한다. 그 과정에서 한 편의 글이나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도구나 기구가 의외로 소중한 역할을 하는 행위자로 부각된다. 자동차가 전속력으로 달리다 스피드 범퍼를 보는 순간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간다. 스피드 범퍼는 인간 운전자와 무관하게 저쪽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의 운전 습관을 통제하고 조정하는 행위자 네트워크 안에서 적극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위자다. 앞으로의 교육은 이런 행위자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지에 따라 교육효과에서 천차만별의 차이가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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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생명체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생태계는 누군가의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우연한 마주침으로 생각지도 못한 변화가 일어나고 불현 듯 극심한 혼돈이 부각되다 다시 자체 정화작용으로 평온한 질서를 찾는다. 생태계는 각본대로 진행되지 않으면서 극심한 혼돈과 무질서를 일으키지만 거기서 새로운 창조의 지혜를 낳기도 한다. 생태계는 부단히 움직이는 과정이며 흐름이다. 지금 여기서 느끼는 생태계의 모습은 다양한 생명체가 주고받은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생태계에서는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면 다른 생명체가 그걸 해결한다. 갑자기 세찬 비바람에 나뭇가지가 꺾이거나 뿌리채 뽑히면 새로운 생명체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부단한 접촉과 접목으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고 스스로 터전을 잡고 방향을 찾아 저마다의 활로를 개척한다. 생명체가 자라는 과정에서 우연히 만난 돌멩이 하나도 성장과정에 영향을 주는 강력한 행위자가 될 수 있다. 생태계는 생명체의 네트워크이면서 생명체의 존재방식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환경이나 사물이 하나의 거대한 관계망으로 엮여 있는 축제의 무대다. 지식생태학자는 오늘도 생명체와 비생명체가 함께 어울려 축제같은 삶이 펼쳐지는 생태계에서 우리 교육의 바람직한 방향과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배운다.


코로나 이후 교육변화 방향

https://www.youtube.com/watch?v=HAzPPYMstQQ&t=1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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