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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은 오늘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제 노트북과 작별을 고해야 할 시간입니다

노트북은 오늘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제 노트북과 작별을 고해야 할 시간입니다


노트북과 외장하드를 분실한 걸 뒤늦게 깨닫고 실가닥 희망으로 제주공항을 누볐지만 허사였습니다. 마지막 희망을 걸고 공항 주변 CCTV를 보기 위해 우선 한국공항공사(KAC)로 찾아갔습니다. 거기서 관할하는 CCTV는 주로 출입구를 관찰해서 공항의 보안을 지키는데 목적이 있다고 합니다. CCTV의 임무도 주로 출입구를 왕복하는 사람을 보기 때문에 출입구 바깥으로 나간 사람은 관심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내가 노트북을 분실한 곳은 Gate 2번 왼쪽에 위치한 벤치였습니다. 거긴 CCTV 사각지대다. 그나마 KAC에서 CCTV를 계속 보기 위해서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자신들도 업무가 바빠서 몇 시간에 걸쳐서 CCTV를 같이 볼 수 없기 때문에 제주국제공항경찰 지구대 가서 CCTV를 계속 봐야 되는 이유를 허락받고 오라는 것입니다. 경찰이 CCTV를 더 봐야 될 필요성을 인정하면 더 볼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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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분을 잠시 삼키고 제주국제공항경찰 지구대로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이해가 된다는 듯 곧 신고서에 간단하게 기술하고 나서 경찰의 허락과 함께 경찰 입회하에 GATE 2번 CCTV가 사각지대를 비출 수 없어서 GATE 1과 GATE 3을 비추는 CCTV를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혹시 노트북 가방을 들고 가는 사람을 노트북 분실 시간으로부터 우선 각각 30분씩 뚫어지게 쳐다봤지만 결정적인 단서를 잡을만한 의심인물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다시 주정차 위반용 CCTV에 희망을 걸고 GATE 2번 밖의 벤치를 비추고 있는지 알아봤습니다. 주정차 위반 CCTV는 관할이 제주 시청이고 피의자라도 일반인은 볼 수 없다고 합니다. 형사가 보고 혐의가 포착되면 알려주겠다고 하는데 과연 당사자만큼 철저하게 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동일한 장소의 다른 위치에서 저마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설치되어 있는 CCTV는 관할기관이 제각각 다르고 볼 수 있는 사람과 시간도 한정되어 있어서 범인을 초기에 잡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습니다. 주중 근무시간에만 볼 수 있는 시청 관할 CCTV는 주말에 일어난 범인을 잡기에는 이미 물 너 간 사람을 뒤쫓아가는 후발대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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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항공사 직원이 하는 일과 경찰이 하는 일이 물론 다르지만 경찰 중에서도 형사가 하는 일은 또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번 일로 똑같은 경찰이지만 형사는 살인이나 방화, 마약이나 절도 등 특수 범죄를 전담하는 경찰임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경찰이 경찰복을 입고 민생과 일반 시민을 위한 치안범죄에 치중하는 반면 형사는 본인이 경찰임을 알리지 않고 위장 수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사복을 입고 특수 수사를 담당합니다. CCTV를 보고 범죄 행위가 포착되면 경찰에서 형사의 손으로 넘어갑니다. 경찰이 노트북 분실 경위를 조사해서 범죄 사실이나 혐의를 포착하면 형사에게 넘겨 범죄 사실을 더 심도 깊게 파고듭니다. 노트북 분실도 단순 부주의로 잃어버렸다기보다 전문 범행단의 의도적인 움직임이 있었다는 물증을 어느 정도 확보해서 CCTV를 보다 폭넓고 깊이 조사 중에 있습니다.


형사가 만약 물증을 포착해서 범인을 잡았다면 정확히 사건 경위를 심층 조사해서 검사에게 넘길 것입니다. 검사는 직접 범인을 잡기보다 형사와 경찰이 범인을 잡으면서 수사한 내용으로 법리를 따져서 죄의 종류와 수준을 따져서 처벌기준을 정해서 법원에 기소하면 판사가 형량을 최종 판결합니다. 경찰과 형사, 검사와 판사의 업무분장 사이를 오고 가다 보면 미묘한 권력다툼의 그림자가 보입니다. 노트북이 특수 범죄단의 의도적 소행이라면 형사의 초동 수사를 거쳐 검사에게 넘겨질 전망이지만 거기까지 가는 데에는 상당한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아마 검사의 손에 넘어가지도 않고 노트북은 누군가의 손에 넘어가서 같이 따라간 외장하드와 함께 나의 방대한 자료를 즐겨보고 있을지 모릅니다. 관련 자료가 워낙 방대하다 보니 그것만 다 보는 데에도 몇 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즐겨 보시고 싫증이 날 때쯤 제발 외장하드와 손때가 묻은 메모장과 문장 노트만이라도 돌려주면 좋겠습니다. 노트북은 다시 사면되고 없어진 데이터는 채우면 됩니다. 하지만 문장 노트와 메모장은 나의 땀과 고뇌와 눈물이 서린 육필 흔적입니다. 한 때 고뇌했던 흔적이 사라지면 한 동안 머리와 가슴도 허공을 떠다니며 진한 그리움에 젖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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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전문가와 전문성의 깊이가 심화될수록 전체적인 조망력을 갖고 위기를 탈출하고 문제를 해결할 전문가의 전문성은 속수무책입니다. 전문화와 분화를 넘어 분절화의 길로 갈수록 한 사회가 안고 있는 총체적인 문제는 대증요법적 처방책만 강구될 뿐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대안은 요원할 뿐입니다. 코로나 19 사태만 보더라도 한 분야의 전문가가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하고 애매하면서도 혼돈스러운 난제입니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와중에 우발적 마주침을 통해 생각지도 못하는 새로운 해결 대안이 떠오를 가능성의 텃밭을 일궈나가야 합니다. 관할기관별 극도로 분장된 업무는 극심한 난국에 빠졌을 때 아무런 대책도 강구하지 못하고 불타는 지붕만 바라보다 돌이킬 수 없는 사태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전문가를 대량 양산하고 업무는 극도로 분장되어 자기 분야를 넘어서는 일에는 아예 관심조차 갖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거의 모든 문제는 거미줄처럼 엉킨 복잡한 문제이자 난제입니다. 이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저마다의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협력을 넘어 협업을 통해 경계를 넘나드는 열린 마음으로 서로의 지혜를 구하는 길입니다.


주말과 하루를 더 보내고 깊은 고뇌 끝에 결단을 내렸습니다. 희망을 포기하자고. 이미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 마음껏 자유를 누리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노트북과 외장하드, 그리고 문장 노트와 메모장으로 또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면 좋겠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크게 깨달은 인간적 미덕은 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의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대부분은 자기 업무 영역뿐만 아니라 그걸 넘어서면 나 몰라라하고 발을 뺍니다. 사고를 당한 당사자는 애간장이 녹아들 정도로 다급하고 절벽에 매달린 기분입니다.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노력해도 한줄기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을 때 사람은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며 절망감을 느낍니다. 그럴 때마다 만나는 업무 분장과 부서 간 불통, 넘을 수 없는 장벽으로 얕은 가망마저 보이지 않을 때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해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넘어 손을 내밀어 줄 때 진한 인간적 미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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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나의 노트북은 수많은 청중을 대상으로 강의하는데 나의 생각과 느낌을 전달하는 소중한 매개체였습니다. 방대한 자료를 업로드해도 불평불만하지 않고 묵묵히 안으로 삭히면서 받아주었습니다. 하루 종일 뜨거운 전기로 충전하면서 돌아가는 동영상과 이미지 처리, 그리고 메시지를 받아들여 출력하는 중노동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키보드는 주인의 손가락 구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인이 원하는 문자를 끊임없이 본체에 입력시켜 주었으며 본체는 키보드를 통해 입력되는 다양한 자료를 가공하고 처리해서 주인이 원하는 포맷으로 부지런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주말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해도 주인을 향해 원망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은 밤기 깊었음에도 잠을 재우지 않고 심야까지 늦은 작업량을 거부하지 않고 묵묵히 받아주었습니다.


때로는 낯선 곳에 데려가 불안한 교탁 위에 올려놓고 주인이 원하는 시간대에 원하는 방향으로 원하는 자료를 신속하게 표출시켜 청중의 뜨거운 반응을 얻어내기도 했습니다. 어떤 때는 싸늘한 반응에 몸 둘 바를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참고 견디면서 마지막 종료 시간이 될 때까지 묵묵히 소임을 다합니다. 관중들의 뜨거운 열기와 차가운 냉기를 계절에 관계없이 온몸으로 받아낸 노트북은 지방을 오고 갈 때에 더욱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노트북은 찰나의 순간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저장하는 소중한 나의 아이디어 창고였습니다. 기차 안에서도 노트북은 늘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는 창고였으며 세상 사람과 연결시켜 소통하는 대화채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노트북은 늘 내 곁에서 내가 하려는 말의 핵심과 정수를 담아서 전달하는 과정을 도와주었고 관중들의 이해도를 증진하고 감동을 배가하기 위해 다양한 영상과 이미지를 보여주는 영화관 역할도 했습니다. 감동적인 강연이 끝나면 환호와 갈채는 주인이 받지만 나는 여전히 뒤에서 묵묵히 주인이 다가와 전원을 끄고 가방에 넣어주기를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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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은 휴가를 떠나지만 휴가지에 가서도 노트북은 시시때때로 켰다 껐다 하면서 주인이 원하는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늘 긴장상태로 대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인이 한가롭게 휴식하는 동안에도 노트북은 여유롭게 쉬지도 못하고 다음 작업을 위해 긴장상태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노트북은 그동안 여러 번 떨어뜨리고 맨땅에 헤딩하면서도 통증조차 호소하지 못하고 상처 투성이인 몸을 돌볼 겨를도 없었습니다. 뜨거운 여름이든 혹한의 겨울이든 노트북은 늘 같은 옷을 입고 더위와 추위를 몸으로 견뎌야 했습니다. 유행과 계절 따라 사람은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노트북은 늘 검은 가방 속에 들어가 숨죽이며 주인의 이동경로에 따라 움직여야 했습니다. 어느 날은 운전석 옆 좌석에 앉아 있다 급정지하면서 앞으로 굴러 떨어진 경험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노트북은 어떤 아픔도 호소하지 않고 묵묵히 까만 가방 안에서 통증을 감내하며 주인이 움직이는 목적지까지 동반 여행을 다녀야 했습니다.


노트북은 하루도 쉬지 않고 줄기차게 달려오다 이제 주인을 떠나 다른 주인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동안 같이 지내면서 한 번도 휴가를 준 적도 없고 멋진 옷이나 맛난 음식도 사주지 못했습니다. 더운 여름날 시원한 물에 목욕도 해본 적이 없고 낭만적인 바닷가에 가서도 푸른 바다를 구경해본 적도 없습니다. 풍광이 좋은 산에 가서도 자신은 언제나 딱딱한 책상 위에서 주인이 내려다보기 가장 좋은 자세를 유지하며 요구하는 내용에 따라 반응하는 수동적인 위치에서 늘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마 나의 노트북은 주인을 잘 못 만나 고생만 하다가 때를 기다리다 다른 주인에게도 가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부디 나 같은 주인 만나지 말고 같이 따라간 외장하드에 저장된 다양한 자료를 주인과 함께 만끽하면서 휴식과 동시에 새로운 양식도 습득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노트북에 내장된 멋진 음악도 들어가면서 한가롭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면서 그동안 즐기지 못했던 노트북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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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내 품을 떠나 누군가의 손에 넘어간 노트북이지만 새로운 주인을 만나서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주인을 잘 못 만나 일만 하다가 떠난 노트북에게 늦게나마 미안함을 전합니다. 좀 더 멋진 옷도 입혀주고 유행하는 가방도 사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짧은 1년여 시간 동안 내 말을 묵묵히 들어주고 내 생각을 멋지게 표현해준 노트북이었지만 한 번도 맘대로 쉴 수 있는 여유를 주지 못한 점도 가슴 아픈 안타까움으로 남습니다. 부디 새로운 주인에게는 적극적으로 의사표현도 해주고 멋진 옷도 사달라고 부탁도 하면서 나머지 여생을 행복하게 즐겼으면 합니다. 깊이 헤아리지 못한 관심과 사랑이 일생의 후회로 남습니다. 하지만 새로 만난 주인은 나와 다르게 노트북을 깊은 관심과 애정으로 보살펴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여기까지가 나와 맺은 노트북의 인연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나눈 노트북과의 깊은 관계는 내가 돌보지 않고 일방적으로 부려먹은 안타까운 아픔이었습니다. 우연히 만난 운명의 순간은 여기서 그치려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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