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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도문(弔道文):
노트북을 위한 조침문(弔針文)

노트북(器機)을 분실하고 아픔을 호소하며 쓴 시기야방성대곡是機也放聲大哭

다음 글은 조선 순조 때 애지중지하던 바늘을 부러뜨리고 비통함을 글로 표현한 유씨 부인(兪氏夫人)의 조침문(弔針文)을 참고로 노트북을 내 몸의 연장으로 생각하며 창작의 도구로 활용하다 갑자기 분실한 아픔을 글로 쓴 것이다. 노트북을 내 생각을 발전시키는 도구로 생각해서 유씨부인의 조침문에 빗대어 유씨남자(劉氏男子)의 조도문(弔道文)이라고 표현했다. 1905년에 일본의 강요로 을사조약이 체결된 것을 슬퍼하여 장지연이 민족적 울분을 표현한 논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정도는 아니지만 2020년 6.20일 생각지도 못한 불의의 사기행각으로 나의 분신인 노트북과 외장하드 기기(器機)를 분실하고 슬퍼하며 답답한 아픔을 표현하는 시기야방성대곡(是機也放聲大哭)을 써 보았다.


조도문(弔道文): 노트북을 위한 조침문(弔針文) /유씨남자(劉氏男子)


2020년 6월 20일 오전 11시 50분 즈음에, 유씨남자는 애지중지하던 노트북을 분실했다. 복잡한 생각을 정리해주는 도구이자 다양한 두뇌활동을 도와주었던 노트북은 노트북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내 신체의 연장이자 네 능력을 신장시켜주는 도구다. 내가 쓴 많은 책(book)이 노트북(notebook)을 통해서 세상으로 나왔다. 두뇌작용의 한계를 노트북에 의지해서 살아왔던 나에게 노트북 분실은 생각지도 못한 사고이며 돌이킬 수 없는 절망이자 생각할수록 허탈감이 감도는 일생일대의 불상사(不祥事)다. 세상 어디에나 노트북은 널려 있고 일하는 거의 모든 사람 손에서 노트북은 오늘도 주인의 명령에 따라 충실히 노동을 한다. 하지만 내 몸의 연장(延長)이기도 했던 노트북 망실(亡失)은 신체 한 부위가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떨어져 나간 듯 끊이지 않는 통증과 함께 깊은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오호통재라, 안타깝고 허망하며 쓰라리고 저리다. 제주 공항의 하늘을 올려다봐도 공황장애가 올만큼 대책은 없고 삭신에 마비가 오는 듯 중심을 잃고 세상이 흔들리는 듯하다. 잠시 정신을 차리고 심신을 가누어 진정하니 노트북의 종적은 찾을 길 없고 사람들의 발길은 바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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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나의 분신으로 늘 함께 했던 노트북이 생명을 다했다. 과거를 처분해야 낯선 미래를 맞이하듯 쌈짓돈 모아서 새 노트북을 1년 전에 장만했다. 처음 맞이하던 날 나의 기쁨보다 노트북이 나를 맞이해주던 들뜬 기분이 아련한 심상으로 밀려온다. 마트에서 너를 처음 만나는 순간 한눈에 반해서 한 걸음에 달려가 카드를 긁었다. 간단한 설명을 듣고 뛰는 심장을 자제하며 집으로 달려오지 않았던가. 박스를 뜯고 너를 처음 꺼내서 어루만져 주던 날 너는 그 기쁨에 온몸을 뒤틀며 전율했던 첫 만남의 강렬한 추억이 마냥 옛날이야기만 같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전기를 꽂아 뜨거운 사랑을 온몸으로 흐르게 한 후 두뇌 세포를 이식하고 입력된 정보가 처리될 수 있도록 각종 내장 기관들을 장착하던 순간에도 너는 나와의 첫 만남이 주는 희열감을 감추지 못하고 가쁜 숨을 내쉬며 내 손길을 기다리지 않았던가. 연약한 피부에 작은 상처라도 생길까 봐 코팅된 비닐 막으로 피부 보호막을 설치할 때도 살포시 미소 지으며 어떤 일이 있어도 백년해로하자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너의 주인은 이제부터 나라고 인식하게 내 이름 석자를 너의 몸에 새겨 넣었다. 그런 너를 데리고 8월의 멋진 꿈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하늘을 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꿈같은 8월의 크리스마스를 가슴에 품고 제주에 내렸건만 달콤한 이상은 일장춘몽이 아니라 단 몇 시간 만에 하늘이 무너지고 지반이 꺼지는 애통함에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있어야 할 자리에 노트북이 없어진 걸 알아차린 것은 이미 공항을 떠난 후 5시간이 지난 후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노트북을 노리던 사기꾼들의 행각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결정적 단서를 찾을 수 없어서 아직도 실낱같은 가능성의 불꽃을 끄지 않고 간절한 마음으로 희망의 끈을 붙잡고 있다. 노트북은 새것으로 장만해서 정을 붙이면 되지만 피와 땀과 눈물의 액체로 용해시켜 만들어 놓은 방대한 자료는 내 생각의 원료이자 창작의 재료다. 하얀 백 지위에 떨어지는 눈물보다 더 짠 눈물이 있을까. 믿었던 안전핀이 작동하지 않고 기대했던 지반이 무너지는데 내가 쓸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이 속수무책이라면 나는 어떤 생각으로 다가오는 시간을 맞이할 수 있을까. 육필의 노고로 남긴 나의 문장 노트와 메모장에는 감탄과 경탄, 전두엽에 불이 켜지는 전율감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내 삶의 한 순간이 담긴 역사의 한 페이지였는데, 흐르던 시간에 구멍이 뚫려버렸다. 메꿀 수도 없는 허망함에 망연자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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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깝다 문장 노트여, 다른 사람의 손길에서 더 뜨겁게 살아라, 안타깝다 메모장이여, 세월의 흔적을 가슴에 품고 누군가의 손길에 닿아 따뜻한 온기라도 전해주거라. 오호통재라, 나와 함께 동고동락하며 길들여진 노트북이 낯선 누군가의 손으로 넘어갔구나. 황당한 기색을 숨길 수 없고 불안감마저 감출 길이 없구다. 땀과 눈물, 고독과 고뇌를 응축시켜 뽑아낸 노고의 산물이 누군가에는 지나가다 만나는 부산물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드에 저장된 수많은 자료들은 도처에 산재하는 데이터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그 자료는 내 몸을 던져 가공하고 편집해서 뜨거운 관심과 애정으로 녹여낸 애간장의 산물이다. 애태우고 용쓰며 건져 올린 정화수 같은 나의 축적물이 지금 누군가의 손에서는 퇴적물로 바뀌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밤잠을 설치고 있다. 소리 없는 통곡의 메시지를 허공에 날려 보낸다. 하지만 아직 그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고 있구나. 아픔이 심장을 꿰뚫고 슬픔이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여전히 몸과 맘은 제주 공항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비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망연자실한 심정을 스스로 쓰다듬는다. 창밖으로 내리는 비(悲)가 슬픔의 연가로 들린다.


노트북과의 인연은 여기까지인가. 1년 동안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함께 보낸 시간의 소중함은 막중하고 중차대하다. 나의 착각과 오판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전국을 돌아다니며 함께 만든 감동적인 장면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인생의 한 페이지로 남을 것이다. 늦은 밤 기차로 상경하면서도 너는 언제나 내 손가락과 마주치며 하얀 미소를 보내주었다. 활짝 열린 하얀 스크린에 스쳐 지나가는 상념의 한 자락을 옮겨심기도 했고, 책과 눈이 맞아서 뜨겁게 사랑했던 흔적을 너에게는 고스란히 보여주지 않았던가. 혹한의 추위에도 두꺼운 옷 하나 걸치지 않고 나를 따라나섰던 너의 용기에 뒤늦게나마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폭염이 내리쬐는 한 여름에도 까만 가방 속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더위를 견뎌내며 나와 함께 했던 동행이 나에게는 정말 행복했던 순간이다. 추위가 가시지 않은 새봄의 꽃샘추위에도 너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희망의 싹을 누구보다도 일찍 틔워 녹음으로 향하는 한 여름을 미리 준비하지 않았던가. 오호통재라, 기회가 되면 너에게 한가로운 휴식과 함께 달콤한 음식을 함께 먹으며 생각의 미래를 구상했을 텐데,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언제나 내 곁에서 나에게 기쁨을 주었던 선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왜 나는 이리도 뒤늦게 깨닫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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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노트북을 켤 때마다 짙은 양심의 그림자가 평생을 따라다니며 유령처럼 괴롭힐 것이다. 과연 내 것도 아닌 남의 노트북을 소유해서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사용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아마도 포맷하고 중고나라에 팔아 먹힐 안타까운 운명이겠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의 문장 노트와 메모장에 적힌 의미와 가치가 그 누군가의 영혼을 흔들어 깨운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거기에 담긴 땀 냄새와 필적이 품고 있는 의지와 의도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그걸 소유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괴롭힐 것이다. 쓸모없는 물건으로 쓰레기통에 들어간다면 그걸 쓴 사람의 마음도 같이 쓰레기통으로 버려진다는 사실을 알아주면 좋겠다. 오호통재라, 지금 어디선가 어둠 속에 갇혀 있을 나의 노트와 메모장에게 잠깐만이라도 세상의 빛을 보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호통재라, 누군가에게는 혼신의 힘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 아무 곳에나 팔아넘기는 상품으로 전락한다는 사실, 세상에 이보다 더 안타까운 거래가 어디에 있으랴. 지금 이 순간에도 글을 쓰면서 스마트폰을 열어본다. 어디선가 좋은 소식이 생각지도 못하게 다가오고 있지는 않은지, 바람 앞에 깜빡이는 등불의 불안한 심정으로 더 이상 어둠이 빛을 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함과 함께.


돌보지도 않고 보살피지도 않고 내 욕심만으로 그동안 너를 노동의 현장으로만 데리고 다니며 마구잡이로 사용했던 나의 죄를 용서해줄 수는 없겠니. 세상의 지식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적인 글과 강연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바로 노트북의 희생정신이 아니었다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비록 말하는 입과 듣는 귀는 없다고 할지라도 누구보다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언제나 기대 이상으로 정리를 해서 나에게 보여주었던 너의 헌신적인 노동을 왜 나는 진작 알지 못하였을까. 누군가의 손에 넘어가 농락당하는 괴로움을 겪고 있을 너를 생각하노라면 가만히 있다가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하다. 노트북아, 살아서 나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말거라.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다 절호의 찬스가 온다고 생각하면 탈출을 시도해라. 나 역시 중고장터나 분실물 센터, 그리고 공황의 검색대를 끊임없이 주시하며 혹시 모를 너의 출현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것이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나도 모르게 한국을 떠나 외국으로 가더라도 나와 함께 지냈던 한 순간의 추억을 아름답게 기억하기를 바랄 뿐이다. 부디 멋진 사람 만나서 내가 줄 수 없었던 사랑받으며 앞으로 남은 시간만이라도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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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깊은 관심과 애정으로 걱정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떠남은 또 다른 만남이 기다리는 법, 더 멋진 노트북과 깊은 사랑에 빠져 농익은 사유체계를 구축해나가겠습니다. 망연자실(茫然自失)의 끝에서 복차지계(覆車之戒)의 교훈으로 새로운 시작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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