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해보는 6가지 창의의 의미
다시 생각해보는 6가지 창의의 의미:
‘창의’는 당연함에 ‘질의’를 던져 캐묻는 ‘항의’다
①창의는 질의(質議)다:
창의는 호기심을 기반으로 던지는 질문이다.
창의는 언제나 질문을 먹고 산다. 낯선 질문이 틀에 박힌 사유에 젖어 사는 사람들에게 생각지도 못한 사유를 시작하게 만든다. 특히 호기심을 기반으로 던지는 질문은 이제껏 깊이 생각해보지 못한 색다른 생각을 잉태하게 만든다. 아빠와 산책하던 도중에 나무를 찍어 집을 만드는 딱따구리를 본 아이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아빠에게 질문을 던진다. “아빠, 딱따구리는 저렇게 부리를 나무를 찍어도 왜 두통에 안 걸려?” 아빠가 대답한다. “아 딱따구리는 원래 그래.” 스탠퍼드 대학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5살 때 아이는 평균 65번 내외 질문을 한다. 40년이 지난 45세가 되면 질문이 1/10로 줄어들면서 늘어나는 단어가 ‘원래’, ‘물론’, ‘당연’이라고 한다. 호기심의 물음표가 나이가 들면서 줄어드는 이유가 바로 ‘원래’, ‘물론’, ‘당연’이라는 단어로 호기심의 물음표를 죽였기 때문이다. 아이는 어른과 전혀 다른 호기심을 먹고 자란다. 어른에게는 세계 7대 불가사의가 정해져 있지만 아이들에게 세상은 언제나 수백 개 이상의 불가사의가 사유 속을 걸어 다닌다.
②창의는 항의(抗議)다:
창의는 당연함에 시비를 걸며 반대하는 거부다.
모든 창의는 익숙한 사고방식에 문제를 던지며 시작한다. 창의적인 사람은 상식에 시비를 거는 몰상식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상식적인 사람의 눈에는 창의적인 사람은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아로 보이기도 할 것이다. 반대로 창의적인 사람에게 상식에 얽매여 살아가는 사람이 오히려 문제아로 보일 것이다. 틀에 박힌 사유를 즐기며 상식을 늘 상시 복용하면서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식상해 보일 것이다. 상식의 틀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우선 불안하고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는 익숙한 방식에서 벗어나 낯선 방식에 적응하기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창의적인 사람은 늘 어제와 다른 문제의식으로 기존 사유체계의 근본을 뒤흔들며 전복을 꿈꾸는 사람이다. 그들의 일상은 언제나 항의로 일관된 불편한 삶이다. 불편함과 동거할 때 편안함을 지향하는 인간의 본능은 창의적 아이디어로 가는 관문을 마침내 열어젖히고 말 것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새로운 창조로 향하는 관문을 열기 위한 반대이자 기존 생각의 답습에 반대하는 거부다.
③창의는 사의(辭意)다
창의는 기존의 방식과 헤어지는 결별이다
창의는 관성을 답습하는 고정관념과 습관적 사고방식 또는 상식에 반대하며 격렬하게 항의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기존의 익숙한 것과 과감하게 결별하는 사의 표명이다. 창의는 언제나 익숙한 지금 여기서 낯선 저기로 떠나려는 몸부림이다. 낯선 것이 우리를 떠나기 전에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향하려는 호기심의 발로가 바로 창의의 출발이다. “낯선 곳을 두려워하지 말고 익숙한 곳을 두려워하라.”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말이다. 질의를 통해서 문제의식을 가진 다음 항의를 통해 기존의 것에 대한 불만이 극대화된다. 이제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떠나기 위해서는 익숙한 것과 과감하게 결별을 선언해야 한다. 강물은 자신을 버려야 바다를 만난다. 과거를 잡고 있는 손을 놓지 않고서는 오늘을 맞이할 수 없고 내일을 기대할 수 없다. 오늘의 나를 만들어준 과거의 역사는 내일을 위한 시금석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단 과거에 얷매여서는 곤란하다. 경험에서 배우는 교훈을 창조적으로 해석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배울 것은 선택해서 새로움을 창조하는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이나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가 바로 창의로 가는 출발점이다.
④창의는 열의(熱意)다
창의는 열정적으로 탐구하는 도전이다
창의는 상상력으로 잉태된 아이디어를 반드시 현실에 구현시키겠는 불굴의 의지(意志)다. 상상력에 불굴의 의지나 돌파력이 추가되지 않으면 상상은 공상이나 허상, 망상이나 몽상으로 전락하기 쉽다. 창의는 기존의 것과 차별화되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아니다. 아이디어가 현실을 바꾸지 않는다. 아이디어가 현실에 구현되는 가운데 많은 장애물과 방해공작이 관여된다. 창의적인 사람은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의 삶을 이전과 다르게 바꿔보려는 열정을 가진 사람이다. 창의적인 사람이 한두 번의 아이디어 발상만으로 자신의 생각이 관철되지 않는다고 포기한다면 세상은 언제나 다른 사람의 생각으로 편집되어 돌아갈 것이다. 내가 관여하는 세상, 내가 몸담고 있는 작은 공동체 안에서도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을 끊임없이 하면서 다른 사람이 만든 다양한 물건이나 도구를 사용해서 나의 목적을 달성하면서 살아간다. 이런 일상적 삶에서 자주 만나지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늘 스쳐 지나가는 작은 현상이나 과정도 관심과 애정을 갖고 들여다봐야 창의적 변화 가능성을 포착해낼 수 있다. 창의는 언제나 열정적인 의지가 넘치는 사람에게 색다른 세계로 나가는 관문을 열어준다.
⑤창의는 건의(建議)다
창의는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낯선 제안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열의를 갖고 기존의 불편함이나 불만족스러움, 또는 새로운 가능성이 현실에 구현될 수 있도록 다양한 대안을 모색하는 건의다. 건의가 창의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건의하는 사람의 문제의식과 건의를 수용하는 사람의 열린 마음이 만나야 한다. 둘 중의 한쪽이 현실에 대한 문제 파악의 강도나 열정이 식을 경우 건의는 그냥 아이디어 제안 수준에 머무를 수 있다. 우선 건의하는 사람은 질의를 통해 갖고 있는 문제의식을 항의를 통해 공식적으로 표출했다면 기존의 것과 과감하게 결별을 선언하는 사의 표명을 새로운 가능성의 기반을 잡은 사람이다. 이제 사의로 표명된 색다른 가능성을 현실로 구현시키기 위해 열정적으로 몰입하면서 불굴의 의지로 새로운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타진하는 가운데 자신의 문제의식을 적확한 언어를 동원해서 정교하게 정리한 다음, 자신의 아이디어를 가장 열린 마음으로 받아줄 수 있는 파트너를 찾아야 한다. 고객은 기업이나 다른 유관기관이 될 것이고, 일반 국민은 정부가 될 것이며, 학생은 가르치는 선생이나 교육기관의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건의의 독창성이나 참신성도 중요하지만 건의에 담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수용하는 조직의 문화적 수용력도 중요하다. 종국에는 창의성이 독창성이 아니라 협동의 창의성 또는 문화적인 창의성인 이유는 아무리 독창적인 아이디어라고 할지라도 그것의 가능성을 수용해주지 않는 문화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⑥창의는 정의(定義)다
창의는 통념을 깨고 개념을 탄생시키는 의미부여다
창의는 언제나 통념을 깨고 새로운 신념으로 무장된 개념을 정의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남이 정의한 개념으로 생각을 거듭할수록 관념의 파편에 물들어 남의 생각에 종속되어 살아간다. 창의적인 사람은 새로운 생각을 색다르게 표현하기 위해 기존에 통용되는 개념을 자신의 문제의식으로 새롭게 재정의한다. 예를 들면 기존 교육방식이 마음에 걸리고 불편한 사람은 교육을 자기 방식으로 재정의한다. 불란서 철학자 랑시에르는 기존 교육, 즉 지능이 월등한 선생은 가르치고 지능이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설명을 통해 가르쳐야 한다는 통념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가르치지 않고 가르치는 스승을 무지한 스승으로 새롭게 개념화시켰다. 랑시에르의 창의적 교육관은 모든 사람은 지적으로 평등하다는 전제 하에 가르침의 본질은 학생의 의지를 촉발시켜 배우고야 말겠다는 열정으로 유도하는 데 두고 있다. 선생의 설명이 반복될수록 오히려 학생은 바보 만들기의 전형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이처럼 기존 개념에 불만을 품고 자신의 신념을 반영해서 재정의하는 순간 새로운 가능성의 관문이 열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