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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읽기’ 흔적이
‘쓰기’의 기적을 낳는다

‘지금까지’보다 ‘지금부터’ 다르게 살아가려는 애쓰기가 책 쓰기다

엄마의 읽기’ 흔적이 쓰기의 기적을 낳는다

지금까지보다 지금부터’ 다르게 살아가려는 애쓰기가 책 쓰기다.


지식채널 e 중에 ‘경험은 안주인이다’라는 영상이 있다. 이 영상 초기에 로마시대 키케로의 명언이 나옵니다. “잡것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책을 내려고 한다.” 하지만 영상에서는 잡것의 사례를 한 사람씩 보여줍니다. 예를 들면 잡것들, 포경선 선원이었던 백경의 작가 허먼 멜빌, 우체국 직원이었던 프란츠 카프카의 성, 세관원에서 지루한 일을 반복하던 주홍글씨의 나다니엘 호손, 어린 시절 아버지가 감옥에 가 12살부터 공장 노동을 일을 했던 올리버 트위스트의 찰스 디킨스, 모두 잡것이었다. 하지만 잡것들이 아니고서야 누가 책을 내랴. 잡것들이야말로 작가들이다. 우리 모두는 잡다한 일상생활 속에서 잡다한 일을 하는 잡사(雜士)다. 석사(碩士)와 박사(博士) 보다 더 높은 학위가 나는 잡사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대학교수지만 잡다한 경험을 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학교 때까지 시골에서 수렵, 어로, 채취, 농경 생활을 하면서 자연을 벗 삼아 재미있게 놀았던 추억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나는 과거에 이질적 철판을 녹여서 붙이는 용접공이었다. 공고를 다니면서 용접기능사 자격을 취득한 이후 경기도 평택화력발전소에 취업했다가 우연히 고시 체험생 수기집을 읽고 고시 공부하러 우여곡절 끝에 대학에 진학했다. 한 권의 책이 나의 운명을 혁명적으로 바꾸는 출발점이었다. 하지만 고시공부는 내가 하면 재미있는 공부가 아니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부다. 고시 공부하던 책을 다 달밤에 불살라버리고 내가 하면 재미있는 공부를 하기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이제 철판을 용접하지 않고 이질적 지식을 융합하는 지식 용접공으로 변신했다. 철판 용접에서 배운 지식 용접의 노하우는 이질적인 지식이라도 두 가지 지식을 융합하려는 뜨거운 열정이 있다면 색다른 지식으로 재창조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일상에서 만나는 작은 깨달음도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고 나의 문제의식으로 끌어들여 뜨거운 열정으로 녹아내는 글을 짓고 책을 쓰는 일을 평생 반복하게 된 것이다. 쓸 데 없는 사람은 없다. 쓸 때가 되면 쓸 데가 생긴다. 지금이 바로 여러분의 삶을 앎의 터전으로 삼아, 다른 사람의 생각이 살아가는 책과 접속하며 꾸준히 글로 집을 지으면서 그 속에서 당신만의 고유한 책을 잉태하고 출산할 시점이다. 살기와 읽기 그리고 글짓기가 축적되면 책 쓰기가 가능해진다. 즉 쓰기=살기+읽기+짓기의 합작품이다. 늘 반복되는 일상적 삶을 어제와 다른 각도로 바라보면서 나와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깨달음이 기록된 책을 읽으면서 끄적끄적 흔적을 남기며 글을 짓다 보면 나도 어느 사이 책을 쓸 수 있는 기적이 시작된다.



책도 안 읽는 사람책만 읽는 사람책을 쓰는 사람


세상에는 세 가지 부류의 엄마가 있다. 첫째, 책도 안 읽으면서 아이들에게만 책 읽으라고 강요하는 엄마다. 책을 안 읽으니 과거의 경험에 갇혀 산다. 꼰대 엄마가 되는 비결이다. 꼰대는 입력장치는 고장 나고 출력장치만 살아 있는 엄마다. 입력장치가 고장 났으니 오감이 열리지 않고 색다른 생각을 잉태하는 낯선 자극이 들어오지 않는다. 출력장치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발달해서 낡은 생각을 날조하는데 탁월한 기질을 발휘한다. 늘 같은 생각에서 같은 말을 반복하니 아이들도 듣기 싫어질 것이다. 둘째, 책만 읽는 엄마다. 책도 안 읽는 엄마에 비해 생각의 차원과 수준이 다르긴 하다. 하지만 남의 책에 너무 빠져 읽고 주체적인 생각을 하지 않다 보니 늘 남의 사고방식에 종속되어 살아간다. 진정한 책 읽기는 빠져서 읽되 다시 빠져나와서 내 생각으로 재해석해보고 내 삶에 적용하면서 나의 주체적인 관점으로 읽은 내용을 재정리해봐야 한다. 그렇지 않고 책만 계속 읽으면 생각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상황에 따라서 시시각각 생각이 바뀐다. 이런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아이는 당연히 혼돈스러울 것이다. 주관적인 엄마 생각을 듣고 싶은데 늘 남의 말을 인용하는 엄마가 왠지 줏대가 없어 보인다. 셋째, 책을 쓰는 엄마다. 책만 읽고 끝나지 않고 읽은 내용을 자녀교육은 물론 자신의 일상적 삶에 적용해보고 실천하는 가운데 보고 느낀 점을 수시로 기록하는 흔적을 축적한다. 생각날 때마다 메모하고 기록으로 정리하는 흔적이 축적되면 나의 삶이 남긴 얼룩과 무늬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서 한 권의 책으로 직조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내 삶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책 쓰기로 연결하는 책 읽기가 되려면 어떻게 독서를 해야 될까? 첫째, 책에 나오는 낯선 개념에 주목하면서 읽자. 책을 읽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평상시에 사용하는 언어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다.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를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이 보인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는 개념은 인격이라고 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사용하던 방식과 다르게 사용하는 개념이나 처음 만나는 개념을 나만의 개념노트에 적어두자. 개념이 풍부해질수록 나의 신념을 더욱 확고부동하면서도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 개념 없는 인간으로 전락하는 이유는 낯선 개념이 들어 있는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문장에 밑줄을 치고 밑줄 친 문장이 들어 있는 페이지에 찾아보기표를 붙여놓자.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만의 문장 노트를 만들어서 인두 같은 문장을 기록해두자. 책을 다 읽고 나면 밑줄 친 문장만 따로 워드 문서로 기록해서 독서 일기 폴더에 주제별로 보관한다. 모든 창조는 참조해서 이루어는 법! 문장 부자가 진짜 부자다. “지금 읽는 이 문장이 당신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아름다운 문장을 읽으면 당신은 어쩔 수 없이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김연수의 《우리가 보낸 순간, 시》에 나오는 말이다. 


셋째, 책을 읽으면서 나와 다르게 사유하는 방식에 주목하자. 책은 나와 다른 세계에 살면서 다른 경험과 다른 사유를 하는 사람의 사유체계가 녹아 있는 생각의 보고(寶庫)다. 낯선 생각에 접속하지 않으면 내 생각은 늘 과거에 갇혀 살아간다. 특히 일상에서 접하는 다양한 개념을 독특한 은유로 풀이하면서 생각의 관문을 열어가는 사유에 주목해보자. 은유는 겉으로 보기에는 닮지 않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며 닮을 점을 찾아 둘 사이를 새로운 의미로 연결하는 사유다. 예를 들면 “독서는 피클이다”도 놀라운 비유다. 책을 읽기 전에는 오이였는데 책을 읽고 나면 피클로 바뀐다. 하지만 피클이 오이로 돌아갈 수 없듯이 책을 읽기 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사건이 바로 독서다. 한 권이 책이 한 사람의 운명을 혁명적으로 바꾼다. 마지막으로 모든 책을 읽으면서 3331 독서법을 실천하자. 책을 읽으면서 인두 같은 문장 3가지,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 3가지, 책을 읽고 내 삶에 적용할 3가지, 그리고 읽은 책을 한 마디로 말하면 뭐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를 기록해보고 가까운 사람과 만나 독서토론을 시작하자. 책 읽기의 완성은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가 아니라 이렇게 3331 방법으로 메모한 다음 다른 사람과 토론하며 책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협독(協讀)이다. 고독하게 혼자 책을 읽으면서 곱씹어보되 반드시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과 만나 토론해보면 같은 책도 다르게 읽고 해석해내는 다른 관점을 배울 수 있다.



내 삶을 불멸의 예술작품으로 창작하는 방법


그럼 남의 책만 읽지 말고 나의 책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사람은 모두 저마다의 삶을 살아간다. 그 누구의 삶으로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삶이다. 책 쓰기는 내가 살아가는 삶을 하나의 위대한 예술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애쓰기다. 쓸 데 없는 사람은 없다. 쓸 데가 있는 사람이 쓸 때, 비로소 내 삶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는  애쓰기를 시작한 셈이다. 우선 쓰면 쓰임도 달라진다. 쓰다 보면 다 쓰게 된다. 쓰기는 오로지 쓰기를 통해서만이 쓸 수 있고 실력도 향상된다. 쓰지 않으면 쓰러진다. 쓰면 쓰임새도 달라진다. 뭘 쓸지 하얀 백 지위에서 고민을 거듭하면 내 머리도 하얀 백지로 변한다. 일단 쓰면 쓴 문장이 다음 문장을 물고 온다. 전문가가 쓰는 게 아니라 쓰면 전문가가 된다. 그래서 무조건 써야 한다. 꾸역꾸역 쓰면서 애쓰다 보면 쓸 데 생기는 책이 나온다. 모든 책 쓰기는 참조 없이 불가능하다. 오로지 내 경험으로 쓰면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좌정관천(坐井觀天)의 어리석음이나 오만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참조 없이 창조도 없다. 모든 책은 다 참고해서 쓴다. 참고할 게 많은 사람은 그만큼 창조도 잘한다. 모든 글짓기와 책 쓰기는 발상이 아니라 연상이다. 연상 재료를 확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나와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쓴 책을 읽는 거다. 읽지 않으면 읽힌다. 읽으면 세상을 다르게 읽어낼 수 있다다. 다르게 읽어낸 사람만이 다르게 쓸 수 있다. 딜레마 상황에 직면해서 어떤 방도도 없다고 포기하지 말고 나와 다른 경험을 하면서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쓴 책에 접속해보자. 읽기를 통해서 낯선 생각에 접속하지 않으면 내 생각이 어떤 문제와 한계를 지니고 있는지 모른 채 오만해질 수 있다. 뜻밖의 색다른 방도나 생각지도 못하게 나타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우리가 알았고, 사랑했던 사람들을 정당하게 평가해주는 것, 다시 말해 그들을 위해 증언해주는 것이자 그들을 불멸화하는 것입니다.” 롤랑 바르트의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에 나오는 말이다. 내가 글을 짓고 책을 쓰는 이유는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나 사람을 불멸의 예술작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 삶을 사랑한다. 니체가 말한 아모르파티(amor fati), 즉 운명애를 몸으로 실천하면서 내 삶을 불멸의 예술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오늘도 안간힘을 쓰면서 애쓴다. 내 삶을 불멸의 예술작품으로 만들기 위해서 읽기와 쓰기보다 선행되어할 게 있다. 바로 내 삶을 이전과 다르게 살아보려는 노력이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프랑스 시인 폴 브루제의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내가 보기에 잘못된 최악의 명언이다. 생각하는 대로 살기 어렵다.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경우가 더 많다. 생각을 바꿔서 삶을 바꾸기는 나이가 들수록 더 어려워진다. 오히려 삶을 바꾸면 생각이 바뀐다. 한 마디로 딴짓을 하면 딴생각이 든다. 이걸 글짓기와 책 쓰기에 대입해도 마찬가지다. 삶을 바꾸지 않고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내 삶을 능가하는 책을 읽을 수 없고 쓸 수도 없다. 이전과 다르게 읽고 쓰려면 우선 이전과 다르게 내가 살아가는 일상을 바꿔야 한다. 좋은 글은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안간힘에서 나온다. 책 쓰기가 애쓰기인 이유다. 



마지막으로 내가 쓴 《책 쓰기는 애쓰기다》에 나오는 말을 결론에 가늠하면서 글을 마친다. 

"책을 쓰기로 결심한 사람은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기로 결심한 사람이다. 지금 이대로 살지 않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겠다는 결단이 책 쓰기의 출발이다. 순리와 본능적 욕구대로 살지 않고 자기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삶을 살겠다는 결연한 각오와 함께 위험한 탐험이 시작된 것이다." 유영만의 《책 쓰기는 애쓰기다》 중에서


https://youtu.be/5J7BOvx40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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