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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먹구름’은
미래의 ‘밑거름’이 된다!

지식생태학자 유영만의 2020년 10대 뉴스

지금의 먹구름은 미래의 밑거름이 된다!

지식생태학자 유영만의 2020년 10대 뉴스


"코로나로 물든 지금의 '먹구름'이 위기를 극복하는 미래의 '밑거름'으로 바뀌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의 지혜를 믿습니다.“ 올해 코로나가 본격화되면서 난국의 조짐을 불러왔던 2월에 쓴 글인데 아직도 우리는 코로나 위기를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다. 아니 시작할 때보다 더 심각한 살얼음판의 위기를 건너고 있다. 여리박빙(如履薄氷)의 위기가 바로 지금 우리가 온몸으로 겪고 있는 위기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복은 까치복도 아니고 참복도 아니며 밀복도 아니다. 그 복의 이름은 전화위복(轉禍爲福)이다. ‘역경’ 속에서 깨달은 ‘경력’의 지혜를 믿고 전화위복 속에서 깨달은 역전의 깨달음을 몸에 새기며 한 해를 되돌아보려고 한다.



복잡하고 다양한 일을 겪으면서 어려웠던 다사다난(多事多難)이 아니라 오로지 코로나 19 하나의 전대미문의 사태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사다난(少事多難)의 한 해가 아닐까. 모든 일상이 코로나 19로 멈춰버린 가운데에서도 책을 읽고 쓰면서 운동하는 세 가지 습관은 밥 먹듯이 해왔다. 하지만 이것 마저도 코로나 확진자의 가파른 증가 추세로 인해 체육관은 급기야 문을 닫고 식당과 카페마저도 심각한 영업 위기를 맞으면서 어둠의 터널 속에서 암울한 일상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연초에 세웠던 계획은 비구름처럼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지는 허망한 청사진에 불과했다.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 게 인생이지만 올 한 해는 생각대로 문제를 풀어간 사람보다 생각지도 못하게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보낸 고난과 난국의 시기였다. 사람은 언제나 고난이라는 시련을 체험하면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로 향하는 의지를 불태웠고 불확실한 세상에서도 난국을 돌파하는 혜안을 쌓아왔다. 생각보다 오랫동안 지속되는 힘든 시기에 불안한 감정으로 걱정하고 우울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전대미문의 새로운 위기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할 때 믿고 의지할 버팀목조차 발견하기 어렵다. 넋 놓고 하늘을 바라보면 허망하기 짝이 없다. 예정된 일이 취소되고 해보고 싶었던 일이 계획대로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올 2월을 시작했다.



코로나가 몰고 온 위중한 시기에 나는 책을 더 열심히 읽고 내 삶을 반추해보는 시간으로 사유의 깊이와 넓이를 심화하고 확장해보았다. 그 결과물로 많은 칼럼도 쓰고 염두에 두고 있었던 책도 열심히 쓰면서 정신 근육을 단련했다. 이런 난국에 무엇보다도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소중한 자산이다. 정신 근육 못지않게 신체 근육을 단련해야 위험한 난국 상황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내공이 쌓인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 심각해지면서 헬스장도 문을 급기야 닫아버렸다. 홈 트레이닝으로 대체해서 운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땀 흘리며 근육 운동하는 맛은 찾기 어렵다. 몸도 맘도 힘든 시기였지만 힘들 때 없었던 힘도 생긴다. 힘들어야 힘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멘털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피지컬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우여곡절을 경험하고 파란만장(波瀾萬丈)했던 한 해였지만 누군가에게 생각의 파란을 일으킬 수 있는 파란문장(波瀾文章)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을 마련하는 한 해이기도 하다.


❶ 우연한 인연으로 이어진 만남이 이어지기 하지만 끊어지며 아쉬움을 남긴다

새로운 만남의 끈이 생기기도 하고 믿었던 인연의 끈이 끊어지는 아픔을 경험하다

만남이 있으면 떠남이 있고 떠남 속에서 인연의 부실함과 충실함을 동시에 배우다


❷영원히 철들지 않는 방법을 연구하다 이전과 다르게 사는 방법을 모색하다

EBS Class e 앙코르 강연, 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른 삶을 위한 20명의 철학자를 만나다

저마다 다른 철학자의 삶에서 고유한 문제의식이 농축된 철학을 실천하다


❸ 색다르게 읽고 쓰면서 세상을 읽어내고 해석하려는 독자와 저자의 삶을 살다

책 3권 출간과 3권 탈고하다 탈골되기 직전에 화룡점정하다

읽지 않으면 읽히고 쓰지 않으면 쓰러진다


❹ 다른 사람과 더불어 책을 읽으면서 독서로 관계를 맺고 연대를 이루다

정기적으로 만나 독후감을 나누며 낡은 생각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함께 탐구하다

같은 책을 읽고 다른 생각을 나누며 함께 살아가며 깨닫는 즐거움을 맛보다


❺‘칼’ 같은 차가운 이성과 ‘럼주’ 같은 뜨거운 감성이 이중주를 울리는 ‘칼럼’을 쓰다

월간 HRD 매거진 20회 칼럼 완성 등 각종 사보와 잡지에 생각의 단상을 이어가다

정기적으로 ‘글감’을 찾아 헤매는 위기의식이 있어야 ‘마감’ 시간에 ‘영감’이 다가온다


❻ 내 삶의 동반자였던 노트북과 외장하드, 그리고 메모장을 분실하다 

데이터 기반 사유에서 벗어나 일상에서 비상하는 상상력의 날개를 달다

바늘을 잃어버리고 쓴 조침문(弔針文), 노트북을 애도하는 조도문(弔道文)을 낳다


❼ 대중과 소통하는 방송과 강의를 통해 현장을 변화시키는 실천력을 배가하다

KBS 아침마당 등 공중파 방송과 유튜브 방송을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다

살갗을 파고드는 설득력은 책상 지식보다 체험적 깨달음이 낳은 산물이다


❽ 코로나 19 팬데믹 사태로 전대미문의 삶의 방식을 온몸으로 경험하다

곤경에 처해 몸으로 부딪쳐본 고생이 멋진 풍경으로 나를 데려다준다

계획보다 실행, 목표보다 과정, 의도보다 우연의 소중함을 배우다


❾ 힘든 시기일수록 힘을 쓸 수 있는 몸을 만드는 운동이 내 삶의 중심으로 작용하다

운동으로 단련된 몸으로 맘을 통제하고 조율하는 신체성의 소중함을 경험하다

행복은 추상명사가 아니라 내가 행동할 수 있는 동사에 절대 비례한다


❿ 현장에서 겪은 고단한 체험적 각성이 울림을 주는 고품격 콘텐츠를 낳는다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와 함께 세상을 바꾸는 상상력을 잉태하다

앎으로 삶을 재단하지 않고 삶으로 앎을 증명하는 목소리가 울림을 낳는다


❶ 우연한 인연으로 이어진 만남이 이어지기 하지만 끊어지며 아쉬움을 남긴다

새로운 만남의 끈이 생기기도 하고 믿었던 인연의 끈이 끊어지는 아픔을 경험하다

만남이 있으면 떠남이 있고 떠남 속에서 인연의 부실함과 충실함을 동시에 배우다


만남으로 사람은 다른 사람이 된다. 그 만남이 나에게 상처를 준 아픈 마주침이든 깊은 사유를 불러온 색다른 깨우침의 만남이든 만남을 통해서 사람은 이전과 다른 세상을 알아간다. 나에게 만남을 통해 새로운 세계가 있음을 알려주는 타자가 바로 나의 미래라고 한 레비나스의 통찰이 이해가 된다. 이전과 다른 타자를 만날 때 나의 미래도 이전과 다르게 열린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나인 이유다. 나는 내가 만나는 사람이 만든 사회적 관계의 합작품이다.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에서 시종일관 강조한 핵심은 나를 바꾸려면 내가 만나는 사람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누군가에게 한 사람은 한 세상이기도 하고 깊은 시름과 상처를 남기는 한(恨) 많은 세상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연말과 연초가 교차하는 경계지점에서 생각의 한계를 꿰뚫는 사유가 잉태된다. 그동안 만났던 수많은 인연의 연결고리에서 더욱 돈독한 사랑으로 관계가 강화되는 인간관계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건이나 그것이 담고 있는 사연의 서로 다른 해석의 차이로 오해가 생겨 인연의 끈이 끊어지는 경우도 있다. 올 한 해도 새로운 인연으로 설렘 가득 찬 만남이 이어지는 사람과의 사랑도 기대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아쉽고 서글프게도 그 만남의 끈이 끊어져 한 순간의 추억으로 가끔씩 생각나는 만남의 인연도 있다.


연말이면 생각나는 시인이 있다. 바로 ‘어떤 경우’라는 시를 쓴 이문재 시인이다. 


어떤 경우에는/내가 이 세상 앞에서/그저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어떤 경우에는/내가 어느 한 사람에게 세상 전부가 될 때가 있다.

어떤 경우에도/우리는 한 사람이고/한 세상이다.


내 전화번호부에 새로 입력된 사람의 면면을 잘 알지 못한다. 앞으로 이런 사람과 만들어갈 미래의 타자가 주는 색다른 이미지가 상상력을 자극한다. 여전히 내 전화번호 어딘가에 숨어 있지만 꽤 오랫동안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죽은 인맥 속에서 맥을 추지 못하는 사람도 한 둘이 아니다. 서로의 필요로 만났다가 필연적인 인연으로 따뜻한 관심과 사랑 속에서 튼실하게 자라는 인간관계가 있는가 하면 한 때는 뜨거운 관심과 사랑으로 보살펴주고 보듬어주던 아름다운 인간관계에 금이 가서 벽이 생기고 담이 생겨서 넘을 수 없는 사이가 된 경우도 있다. 한 사람의 인위적인 노력을 어찌할 수 없는 인연의 한계다.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다시 이어질 인연으로 생각하면서 내년에 새롭게 만날 타자를 통해 나의 미래는 어떤 이미지를 띨 것인지가 더 기다려지고 설레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원히 철들지 않는 방법을 연구하다 이전과 다르게 사는 방법을 모색하다

EBS Class e 앙코르 강연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른 삶을 위한 20명의 철학자를 만나다

저마다 다른 철학자의 삶에서 고유한 문제의식이 농축된 철학을 실천하다


나이가 들면서 철이 들면 세상의 기준으로 내 생각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관성과 타성에 젖어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철이 든다는 이야기는 세상 물정을 판단하는 능력이 생긴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이전과 다른 생각으로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 능력은 상대적으로 취약해지기 시작한다는 양면성을 띠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이 들어야 한다면 아마 철학자들의 철분 같은 생각의 자양분을 먹고 이전과 다르게 생각해보는 생각을 새롭게 잉태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으며, 이것이 내가 아는 한 최고의 진리라고 호언장담해왔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얼마나 자만에 빠진 낡은 생각이며 오만불손한 생각인지는 나와 다른 생각에 접속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철학자들의 사유체계는 이런 면에서 평범한 일상도 비상한 관심으로 들여다보고 당연하다는 우리들의 통념을 통렬하게 시비를 걸어준다. 거기서 탄생하는 경이로운 생각의 창조가 갑자기 이전과 다른 차원과 수준으로 철이 들게 만든다.


평소에 어렴풋이 알고 있었거나 낯선 개념을 잉태한 철학자를 만나는 작업은 시작부터 쉽지 않다. 우선 철학자의 저서는 난해하기 이를 데 없다. 그들의 주특기는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렵게 책을 쓰는 남다른 재주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서 원전의 번역서를 읽고 다양한 해설서를 참고로 내 삶에 비추어 반추해보고 내가 실천하는 철학적 삶을 정리하면서 많은 공부가 되었다. EBS CLASS-e에서 지난여름 10명의 철학자에 비추어 ‘다르지’ 않으면 (어제와 다른 곳에) ‘이르지’ 못 한다: 색다르게 ‘행동’한 사람의 10가지 남다른 ‘생각’을 주제로 했던 강연 반응이 좋아서 앙코르 강연을 하게 되었다. 그때 저와 함께 철학에 비추어 색다른 철학적 사유로 우리들의 삶을 이전과 다르게 생각해보는 시사점을 던져준 10명의 철학자(문학가)의 면면은 색다른 사유체계를 건축한 선각자들이었다. 톨스토이의 행복론: 삶은 ‘속도’보다 ‘밀도’다!, 질 들뢰즈의 우발적 마주침론: 색다른 사고(思考)는 사고(事故) 쳐야 생긴다. 에마누엘 레비나스의 타자 철학: 인간은 낯선 인간관계의 산물이다. 자크 데리다의 색다른 전문가론: 전문가는 전문적으로 문외한인 사람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적 지혜: 인공지능을 넘어 인간 지성으로 가는 지름길. 매리언 울프의 독서론: 책(責) 잡히기 전에 몸으로 책(冊)을 읽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다. 조지 레이코프의 체험적 은유법: 의미가 심장에 꽂히면 의미심장해진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전복의 철학: ‘정상(頂上)’에 오른 사람이 ‘정상(正常)’입니까? 미셀 푸코의 자기 변신론: 남다름은 색다름에서 나온다!



이번에는 “어떤 만남은 운명이다: 운명도 혁명적으로 바꾸는 10명의 철학자를 만나다”를 주제로 다시 10명의 철학자를 엄선, 그들이 구축한 사유체계에 비추어 특히 앎(knowing)과 삶(living)과 함(doing)을 하나로 통합하는 철학적 메시지가 교육적 패러다임 전환과 전문성 개발 및 육성에 어떤 의미를 던져주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①키에르케고르의 간접 전달:

오로지 몸으로 가르치는 스승을 만나고 싶다면?

상심의 바다에서 좌절한 절망이 회심의 미소를 짓는 희망을 낳는다

몸부림치는 안간힘이 더 높은 세계로 도약하는 힘을 길러준다


②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론:

모범생이 아니라 모험생을 기르는 스승을 만나고 싶다면?

학습 성과의 차이는 지능의 차이가 아니라 학습욕구와 의지력의 차이다

배우려는 불굴의 의지가 불가능의 장벽도 뛰어넘게 만든다


③존 듀이의 예술적 경험론:

힘들었지만 의미심장했던 ‘하나의 경험’을 만나고 싶다면?

경험 없는 사고(思考)는 사고(事故)이며, 사고(思考) 없는 경험은 위험하다

질적으로 다른 세상은 질적 다른 경험이 열어간다


④마이클 폴라니의 인격적 지식관:

헌신적 참여와 열정으로 창조한 나다운 지식을 만나고 싶다면?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

믿지 않으면 어떤 앎도 행동도 없다


⑤리처드 세넷의 장인 기질론:

오늘보다 나아지기 위해 애쓰는 장인을 만나고 싶다면? 

내가 하는 일이 곧 나다

오늘 하는 일에 목숨을 걸고 흔적을 축적하면 기적이 일어난다


⑥도널드 숀의 성찰적 전문가론:

자기 성찰로 나날이 성숙하는 전문가를 만나고 싶다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실천에 관한 성찰이다

문제는 문제가 아니라 문제가 뭔지 모르는 ‘문제 상황’이다


⑦마투라나의 방랑하는 예술가론:

우연과 만나 운명을 바꾸는 예술가를 만나고 싶다면?

몸은 머리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

배워야만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배운다


⑧롤랑 바르트의 푼크툼과 무딘 의미: 

기존의 이미지를 벗어나 미지의 세계에서 전혀 다른 의미를 만나고 싶다면? 

‘이미지’가 ‘미지(味知)’의 세계를 결정한다! 

미지의 세계로 가려면 미래에 대한 이미지를 바꿔라


⑨브뢰노 라투르의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

내 인생을 바꾸는 행위자를 만나고 싶다면?

존재 가치를 바꾸려면 존재가 다른 행위자와 맺는 관계를 바꿔라

내가 만나는 행위자와의 네트워크가 내가 발휘할 수 있는 힘을 결정한다


⑩리처드 로티의 아이러니스트: 

자신만의 메타포로 자아를 끊임없이 창조하는 시인, 아이러니스트를 만나고 싶다면? 

통념에 갇힌 자아를 버려야 신념으로 가득 찬 자신을 만날 수 있다

내 몸을 관통한 한 순간의 ‘눈먼 각인’이 한 평생을 좌우한다


저마다의 문제의식으로 고뇌하며 독창적인 개념을 창조함으로써 자기만의 스타일과 칼라로 사유체계를 구축한 10명의 철학자는 우선 이해조차 힘든 난국이었다. 그들이 어떤 문제의식으로 고유한 개념을 창조,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철학적 사유를 건축했는지가 궁금했다. 이를 위해서 그것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시사점이 무엇인지를 해설하기보다 내 삶에 적용하거나 이미 살면서 적용했던 체험적 사례나 에피소드에 비추어 철학자의 문제의식을 내가 겪은 체험적 깨달음에 비추어 재해석해보려고 안간힘을 써보았다. 집요한 독서와 정리를 하면서 난해한 철학적 개념을 일상적 경험에 비추어 쉽게 설명하고 그것이 주는 의미와 시사점을 지금 여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비추어 해석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덕분에 엄청난 공부를 할 수 있어서 행복했던 깨달음의 시간을 보냈다. 낯선 사유로 늘 심장 뛰게 만드는 낯선 철학자들이 여전히 우리들의 탐구와 탐험을 기다리고 있어서 설레는 마음으로 늘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지적 여행을 오늘도 꿈꾸고 있다.



❸ 색다르게 읽고 쓰면서 세상을 읽어내고 해석하려는 독자와 저자의 삶을 살다

책 3권 출간과 3권 탈고하다 탈골되기 직전에 화룡점정하다

읽지 않으면 읽히고 쓰지 않으면 쓰러진다


나에게 책 쓰기는 시대의 화두를 잡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서 그 의미를 파고들어가며 깨닫는 엄청난 공부 여정이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책을 쓰는 일도 있지만 나는 거꾸로가 더 맞다고 생각한다. 전문가가 책을 쓰는 게 아니라 책을 쓰면서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책 한 권을 쓰기 위해서 해당 분야의 관련된 책을 나의 경우 최소한 3-40권을 읽고 메모하고 치밀하게 논리를 정리한다. 지금까지 나온 책의 공통점과 차이점, 여전히 파헤쳐지지 않은 한계나 문제점을 찾아 나는 어떻게 이런 한계나 문제를 뛰어넘고 해결할 것인지를 그동안 해왔던 독서와 체험적 각성을 연결해보고 융합해본다. 읽고 끄적거리는 동안 낯선 사유가 새롭게 잉태되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생각이 출산되기도 한다. 책을 읽고 책을 쓰는 시간은 하루 동안 내가 즐기는 가장 즐겁고 행복한 루틴이자 리추얼(ritual)이다. 취미로 책을 읽고 쓰는 데 그것이 나의 직업이 되기도 한다면 정말 나는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책을 읽고 쓰는 일을 지금까지 몇십 년 반복해오고 있지만 여전히 책을 읽고 새로운 책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진통은 고통으로 다가오는 희열이다. 숭고한 고통이 마지막에 나에게 던져주는 참을 수 없는 즐거움의 경지다. 


올 한 해 동안 《책 쓰기는 애쓰기다》, 《당신은 책과 눈이 맞아본 적이 있습니까》, 《유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 등 3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유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 《언어의 쓸모》, 《근력이 자본이다》, 《유영만의 인두 같은 한 문장》, 《유영만의 문중 모색》 등 4권의 저서를 탈고했거나 탈고 중에 있다. 탈고는 언제나 환골탈태(換骨奪胎)의 과정처럼 마지막까지 뼈를 깎는 고통이 동반되는 자기와의 싸움이다.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되었다가도 ‘웬만하면 한 번 더 고쳐보자’는 마음이 늘 경계선에 대치하며 사투를 벌이다 적당한 시점에서 ‘이만하면 됐다’가 언제나 판정승을 거둔다. 왼벽을 기할수록 완벽해질 수 없는 벽이 생긴다. 생각을 쥐어짠다고 색다른 생각이 태어나지 않는다. 잠시 글을 쓰지 않고 다른 일로 소일하다 다시 책 쓰는 중심으로 침범해서 들어와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선과 시각으로 내가 흘려 놓은 글의 흔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관점이 생긴다. 내년 이 맘 때쯤이면 많게는 95권 정도의 책이 출간될 예정이다. 잠정적 목표로 삼았던 정년퇴임 전의 100권 출간은 2-3년 이내에 성취될 전망이다. 큰 의미는 없지만 내 삶의 새로운 역사적 이정표를 세우고 죽기 전까지 나는 건강이 따라준다면 책을 읽고 쓰는 일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적 호기심을 갖고 배우고 익히면서 몸은 낡아도 생각을 낡지 않게 부단히 애쓰는 가운데 이전과 다른 작품은 계속해서 잉태되고 출산될 것이다. 



❹ 다른 사람과 더불어 책을 읽으면서 독서로 관계를 맺고 연대를 이루다

정기적으로 만나 독후감을 나누며 낡은 생각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함께 탐구하다

같은 책을 읽고 다른 생각을 나누며 함께 살아가며 깨닫는 즐거움을 맛보다


한 해를 정리하면서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부은 일이 뭔가를 생각해보았다. 아마 잠자는 시간 빼고 책을 읽고 책을 쓴 시간이 가장 많을 것이다. 아침부터 저녁 잠자리 들기 전까지 내 삶을 관통하는 일은 독서와 글짓기, 그리고 책 쓰기다. 읽고 짓고 지은 글로 책이라는 사유체계를 건축하는 일을 통해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소신 있게  펼쳐나간다. “책 읽기는 물을 건너는 것과 비슷하다. 강을 건널 때는 온몸이 젖을 수밖에 없지만 작은 개천을 건널 때는 물방울 튀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 깊은 강을 건너다가는 몹시 아프거나 죽을 수도 있고, 작은 개울이라도 물이 불었을 때는 사고가 나기도 한다. 비가 온다면 어느 물가를 건너더라도 온몸이 다 젖을 것이다”(18쪽). 정희진의 《정희진처럼 읽기》 중에 나오는 말이다. 올 한 해도 50권 내외를 읽은 것 같다. 책 속으로 완전히 빠져들어 저자의 사유체계에 거주하며 생각 샤워를 흠뻑 젖도록 한 후에 다시 책 밖으로 빠져나와 내 삶에 비추어 저자의 메시지를 재해석해보고 적용하는 과정을 통해서 나의 언어로 책을 읽으며 생긴 생각을 정리해본다.



“저는 그동안 착각해 왔던 것입니다. 내가 이 책의 정신을 훔쳐오고 있다고 착각했지요. 그게 아니었습니다. 니체가, 마르크스가, 푸코가, 그들의 정신이 관절을 타고 들어와 내 정신을 훔쳐가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들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40쪽). 강민혁의 《자기 배려의 책 읽기》에 나오는 말이다 한 해 동안 수많은 저자들이 내 몸을 관통해서 지나가면서 강인한 체험적 각인의 흔적을 남겼다. 때로는 읽어내기 힘든 책을 붙잡고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보면서 저자가 의도하는 핵심을 잡아보려고 했다. “읽을 수 있는 것을 읽을 때보다 읽을 수 없던 것을 읽게 되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일고 있는 것이다. 편하게 읽히는 책이라면 이미 읽은 글이거나, 이미 알고 있는 생각이어서 제게 새로움을 안겨주지 않는 글,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는 글일 가능성이 클 거라고요. 생각할 필요가 없는 글이라면 지금 이렇게 나의 시간과 존재를 걸고 읽어야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29쪽). 강민혁의 같은 책에 나오는 말이다. 마이클 폴라니의 《개인적 지식》은 이런 점에서 저자의 방대한 배경지식을 융합해서 쓰는 글이기에 난해할 뿐만 아니라 번역이 거의 반역 일정도로 오역이 많고 문맥이 맞지 않은 비문 천지라서 이해하는 데 많은 애를 먹은 책이다. 이 책을 원서와 대조하면서 대학원생과 스터디를 하고 있다. 함께 읽고 토론하면서 저자의 의도와 의중을 읽어내고 나름 우리들의 언어로 재정리하는 시간 속에서 개인적 지식이 아니라 지식창조 주체의 열정과 헌신이 담긴 인격적 지식임을 확신하고 있다. 학교 밖에서는 독수공방(讀修工訪)이라는 독서모임을 통해 함께 책을 읽으면서 인문학적 사유를 삶에 적용하면서 저마다의 성장과 발전을 지원해주고 응원해주는 공부의 즐거움을 나눴다. 독수공방은 독서(讀書)로 수련(修練)하며 공부(工夫)하고 탐방(探訪)하는 모임이다. 책만 읽는 독서법(讀書法) 강좌가 아니라 책을 읽으며 나를 읽고 세상을 읽어내서 나만의 지식 지도를 그려내는 독도법(讀圖法) 연마 과정이다.


“책은 눈의 약이라고 말한다. 책의 페이지가 최고의 치료라고 암시한다(37쪽).” 이반 일리치의 《텍스트의 포도밭》에 나오는 말이다. 책을 읽으면 새로운 눈이 생겨서 이전과 다르게 세상을 볼 수 있는 신비한 안목이 생긴다. 책이라는 약을 많이 먹은 사람은 책 속의 메시지가 뿜어내는 지혜의 불빛에 감전되어서 어둔 터널을 빠져나갈 수 있는 새로운 힘을 얻는다. “책과 마주하는 것은 이른 아침 그 시대의 창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고딕 교회에서 맛보는 경험에 비길 수 있다. 동트기 전에는 돌 아치 사이를 검게 채워 넣었던 것처럼 보였던 스테인드글라스의 색깔이 해가 뜨면 살아 나오는 것이다(34쪽).” 역시 이반 일리치의 《텍스트의 포도밭》에 나오는 말이다. 뿌옇거나 어둡게 보였던 현상이 햇빛을 받으면서 환해지듯이 페이지마다 품고 있는 지혜의 빛이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가는 독자를 만나 밝은 빛으로 자아를 비추어 준다. “개념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창에 서린 성에를 닦아 내는 작업과 비슷하다. 흐릿하고 모호했던 개념이 글을 쓰면서 서서히 명확하게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다(p.47).” 윌리엄 진서의 《공부가 되는 글쓰기》에 나오는 말이다. 저마다의 문제의식을 품고 있는 다양한 작가들의 독특한 개념에는 작가 특유의 신념과 열정이 녹아 있다. 그걸 다시 나의 개념으로 재창조하거나 재개념화 시키기 위해서는 나의 체험적 깨달음으로 재해석하는 노력을 부단히 전개할 필요가 있다. 그것도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과 열띤 토론을 하면서 각자의 삶으로 건져 올린 사유 속에 뒤섞어볼 때 뜨거운 개념은 자신도 모르게 몸으로 파고든다.



’ 같은 차가운 이성과 럼주’ 같은 뜨거운 감성이 이중주를 울리는 칼럼을 쓰다

월간 HRD 매거진 20회 칼럼 완성 등 각종 사보와 잡지에 생각의 단상을 이어가다

정기적으로 글감을 찾아 헤매는 위기의식이 있어야 마감’ 시간에 영감이 다가온다


글은 나에게 길이다. 아니 내가 살아온 길을 글로 녹여낸다. 글은 길이고 길은 글이다. 글과 삶은 언제나 따로 놀지 않고 글 속에 길이 있고 길 위에 글이 춤을 춘다. 《책 쓰기는 애쓰기다》에서 내가 살아가는 삶은 앎이 자라는 텃밭이라고 한 이유다. 삶이 파란만장할수록 다른 사람의 심장을 녹이는 파란 문장이 나온다. 코로나 위기로 겪고 있는 고단한 삶은 역설적으로 고단수의 글감으로 축적되고 누군가에게는 언젠가 어둔 삶을 비출 수 있는 빛으로 변신해서 우리 앞을 비출 것이다. 삶은 언제나 글감이 자라는 터전이다. 매 순간순간 보고 느끼면서 생각이 잠시 멈추는 곳에는 언제나 낯선 생각이 어제와 다르게 똬리를 틀고 있다. 늘 만나는 일상이지만 작가에게 일상은 언제나 동일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반복해서 만나는 사물이나 현상도 어제와 다른 생각을 품고 다름으로 다가오는 사상의 원천이다. 모든 사물은 이미 고유한 사상을 품고 있다.


직업이 책을 읽고 글을 지으며 강의하고 연구하는 일이라서 밥 먹듯이 책을 읽고 다양한 종류의 칼럼이나 원고를 부탁받는 경우가 많다. 한 때는 전자신문에 2년간 주 5회를 연재하며 500회 칼럼을 쓴 적도 있다. 올해는 전년도에 이어서 월간 HRD에 유영만의 문중모색(問中摸索)이라는 제목으로 질문으로 시작해서 인재나 전문가를 육성하는 관점을 색다른 시선과 시각으로 바라보는 글을 연재했다. 문중모색(問中摸索)은 암중모색(暗中摸索)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질문(質問)을 중심으로 미래의 방향을 모색한다는 의미로 조어한 개념이다. 사보나 정기적인 웹진, 교육 관련 잡지 등에도 한 해 동안 이런저런 주제로 칼럼을 부탁받는데 가급적 다 들어준다. 칼럼을 부탁받는 순간 새로운 공부를 시작할 수 있고 산만한 생각을 한 가지 주제로 엮어서 짧은 글이지만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시간 자체를 즐긴다. 그렇게 흔적을 축적해서 일정한 논리체계로 엮어서 낸 책도 몇 권 있다. 작심하고 책을 쓴 작품도 있지만 우연한 사건의 집적물을 사유체계로 구조화시켜 책을 낸 경우도 생각보다 많다. 산물을 중심으로 결과를 만들어내는 노력보다 우연히 반복하다 부각되는 부산물에서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깨달음의 경지를 맛보는 경우도 많다.



❻ 내 삶의 동반자였던 노트북과 외장하드그리고 메모장을 분실하다 

데이터 기반 사유에서 벗어나 일상에서 비상하는 상상력의 날개를 달다

바늘을 잃어버리고 쓴 조침문(弔針文), 노트북을 애도하는 조도문(弔道文)을 낳다


조도문(弔道文): 노트북을 위한 조침문(弔針文) /유씨남자(劉氏男子)


2020년 6월 20일 오전 11시 50분 즈음에, 유씨남자는 애지중지하던 노트북을 분실했다. 복잡한 생각을 정리해주는 도구이자 다양한 두뇌활동을 도와주었던 노트북은 노트북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내 신체의 연장이자 네 능력을 신장시켜주는 도구다. 내가 쓴 많은 책(book)이 노트북(notebook)을 통해서 세상으로 나왔다. 두뇌작용의 한계를 노트북에 의지해서 살아왔던 나에게 노트북 분실은 생각지도 못한 사고이며 돌이킬 수 없는 절망이자 생각할수록 허탈감이 감도는 일생일대의 불상사(不祥事)다. 세상 어디에나 노트북은 널려 있고 일하는 거의 모든 사람 손에서 노트북은 오늘도 주인의 명령에 따라 충실히 노동을 한다. 하지만 내 몸의 연장(延長)이기도 했던 노트북 망실(亡失)은 신체 한 부위가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떨어져 나간 듯 끊이지 않는 통증과 함께 깊은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오호통재라, 안타깝고 허망하며 쓰라리고 저리다. 제주 공항의 하늘을 올려다봐도 공황장애가 올만큼 대책은 없고 삭신에 마비가 오는 듯 중심을 잃고 세상이 흔들리는 듯하다. 잠시 정신을 차리고 심신을 가누어 진정하니 노트북의 종적은 찾을 길 없고 사람들의 발길은 바쁘기만 하다. 


오랫동안 나의 분신으로 늘 함께 했던 노트북이 생명을 다했다. 과거를 처분해야 낯선 미래를 맞이하듯 쌈짓돈 모아서 새 노트북을 1년 전에 장만했다. 처음 맞이하던 날 나의 기쁨보다 노트북이 나를 맞이해주던 들뜬 기분이 아련한 심상으로 밀려온다. 마트에서 너를 처음 만나는 순간 한눈에 반해서 한 걸음에 달려가 카드를 긁었다. 간단한 설명을 듣고 뛰는 심장을 자제하며 집으로 달려오지 않았던가. 박스를 뜯고 너를 처음 꺼내서 어루만져 주던 날 너는 그 기쁨에 온몸을 뒤틀며 전율했던 첫 만남의 강렬한 추억이 마냥 옛날이야기만 같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전기를 꽂아 뜨거운 사랑을 온몸으로 흐르게 한 후 두뇌 세포를 이식하고 입력된 정보가 처리될 수 있도록 각종 내장 기관들을 장착하던 순간에도 너는 나와의 첫 만남이 주는 희열감을 감추지 못하고 가쁜 숨을 내쉬며 내 손길을 기다리지 않았던가. 연약한 피부에 작은 상처라도 생길까 봐 코팅된 비닐 막으로 피부 보호막을 설치할 때도 살포시 미소 지으며 어떤 일이 있어도 백년해로하자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너의 주인은 이제부터 나라고 인식하게 내 이름 석자를 너의 몸에 새겨 넣었다. 그런 너를 데리고 8월의 멋진 꿈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하늘을 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꿈같은 8월의 크리스마스를 가슴에 품고 제주에 내렸건만 달콤한 이상은 일장춘몽이 아니라 단 몇 시간 만에 하늘이 무너지고 지반이 꺼지는 애통함에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있어야 할 자리에 노트북이 없어진 걸 알아차린 것은 이미 공항을 떠난 후 5시간이 지난 후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노트북을 노리던 사기꾼들의 행각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결정적 단서를 찾을 수 없어서 아직도 실낱같은 가능성의 불꽃을 끄지 않고 간절한 마음으로 희망의 끈을 붙잡고 있다. 노트북은 새것으로 장만해서 정을 붙이면 되지만 피와 땀과 눈물의 액체로 용해시켜 만들어 놓은 방대한 자료는 내 생각의 원료이자 창작의 재료다. 하얀 백 지위에 떨어지는 눈물보다 더 짠 눈물이 있을까. 믿었던 안전핀이 작동하지 않고 기대했던 지반이 무너지는데 내가 쓸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이 속수무책이라면 나는 어떤 생각으로 다가오는 시간을 맞이할 수 있을까. 육필의 노고로 남긴 나의 문장 노트와 메모장에는 감탄과 경탄, 전두엽에 불이 켜지는 전율감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내 삶의 한 순간이 담긴 역사의 한 페이지였는데, 흐르던 시간에 구멍이 뚫려버렸다. 메꿀 수도 없는 허망함에 망연자실할 뿐이다.


아깝다 문장 노트여, 다른 사람의 손길에서 더 뜨겁게 살아라, 안타깝다 메모장이여, 세월의 흔적을 가슴에 품고 누군가의 손길에 닿아 따뜻한 온기라도 전해주거라. 오호통재라, 나와 함께 동고동락하며 길들여진 노트북이 낯선 누군가의 손으로 넘어갔구나. 황당한 기색을 숨길 수 없고 불안감마저 감출 길이 없도다. 땀과 눈물, 고독과 고뇌를 응축시켜 뽑아낸 노고의 산물이 누군가에는 지나가다 만나는 부산물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드에 저장된 수많은 자료들은 도처에 산재하는 데이터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그 자료는 내 몸을 던져 가공하고 편집해서 뜨거운 관심과 애정으로 녹여낸 애간장의 산물이다. 애태우고 용쓰며 건져 올린 정화수 같은 나의 축적물이 지금 누군가의 손에서는 퇴적물로 바뀌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밤잠을 설치고 있다. 소리 없는 통곡의 메시지를 허공에 날려 보낸다. 하지만 아직 그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고 있구나. 아픔이 심장을 꿰뚫고 슬픔이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여전히 몸과 맘은 제주 공항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비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망연자실한 심정을 스스로 쓰다듬는다. 창밖으로 내리는 비(悲)가 슬픔의 연가로 들린다.


노트북과의 인연은 여기까지인가. 1년 동안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함께 보낸 시간의 소중함은 막중하고 중차대하다. 나의 착각과 오판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전국을 돌아다니며 함께 만든 감동적인 장면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인생의 한 페이지로 남을 것이다. 늦은 밤 기차로 상경하면서도 너는 언제나 내 손가락과 마주치며 하얀 미소를 보내주었다. 활짝 열린 하얀 스크린에 스쳐 지나가는 상념의 한 자락을 옮겨심기도 했고, 책과 눈이 맞아서 뜨겁게 사랑했던 흔적을 너에게는 고스란히 보여주지 않았던가. 혹한의 추위에도 두꺼운 옷 하나 걸치지 않고 나를 따라나섰던 너의 용기에 뒤늦게나마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폭염이 내리쬐는 한 여름에도 까만 가방 속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더위를 견뎌내며 나와 함께 했던 동행이 나에게는 정말 행복했던 순간이다. 추위가 가시지 않은 새봄의 꽃샘추위에도 너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희망의 싹을 누구보다도 일찍 틔워 녹음으로 향하는 한 여름을 미리 준비하지 않았던가. 오호통재라, 기회가 되면 너에게 한가로운 휴식과 함께 달콤한 음식을 함께 먹으며 생각의 미래를 구상했을 텐데,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언제나 내 곁에서 나에게 기쁨을 주었던 선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왜 나는 이리도 뒤늦게 깨닫는단 말인가.


내 노트북을 켤 때마다 짙은 양심의 그림자가 평생을 따라다니며 유령처럼 괴롭힐 것이다. 과연 내 것도 아닌 남의 노트북을 소유해서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사용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아마도 포맷하고 중고나라에 팔아 먹힐 안타까운 운명이겠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의 문장 노트와 메모장에 적힌 의미와 가치가 그 누군가의 영혼을 흔들어 깨운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거기에 담긴 땀 냄새와 필적이 품고 있는 의지와 의도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그걸 소유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괴롭힐 것이다. 쓸모없는 물건으로 쓰레기통에 들어간다면 그걸 쓴 사람의 마음도 같이 쓰레기통으로 버려진다는 사실을 알아주면 좋겠다. 오호통재라, 지금 어디선가 어둠 속에 갇혀 있을 나의 노트와 메모장에게 잠깐만이라도 세상의 빛을 보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호통재라, 누군가에게는 혼신의 힘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 아무 곳에나 팔아넘기는 상품으로 전락한다는 사실, 세상에 이보다 더 안타까운 거래가 어디에 있으랴. 지금 이 순간에도 글을 쓰면서 스마트폰을 열어본다. 어디선가 좋은 소식이 생각지도 못하게 다가오고 있지는 않은지, 바람 앞에 깜빡이는 등불의 불안한 심정으로 더 이상 어둠이 빛을 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함과 함께.


돌보지도 않고 보살피지도 않고 내 욕심만으로 그동안 너를 노동의 현장으로만 데리고 다니며 마구잡이로 사용했던 나의 죄를 용서해줄 수는 없겠니. 세상의 지식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적인 글과 강연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바로 노트북의 희생정신이 아니었다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비록 말하는 입과 듣는 귀는 없다고 할지라도 누구보다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언제나 기대 이상으로 정리를 해서 나에게 보여주었던 너의 헌신적인 노동을 왜 나는 진작 알지 못하였을까. 누군가의 손에 넘어가 농락당하는 괴로움을 겪고 있을 너를 생각하노라면 가만히 있다가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하다. 노트북아, 살아서 나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말거라.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다 절호의 찬스가 온다고 생각하면 탈출을 시도해라. 나 역시 중고장터나 분실물 센터, 그리고 공황의 검색대를 끊임없이 주시하며 혹시 모를 너의 출현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것이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나도 모르게 한국을 떠나 외국으로 가더라도 나와 함께 지냈던 한 순간의 추억을 아름답게 기억하기를 바랄 뿐이다. 부디 멋진 사람 만나서 내가 줄 수 없었던 사랑받으며 앞으로 남은 시간만이라도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랄 뿐이다. 


그동안 깊은 관심과 애정으로 걱정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떠남은 또 다른 만남이 기다리는 법, 더 멋진 노트북과 깊은 사랑에 빠져 농익은 사유체계를 구축해나가겠습니다. 망연자실(茫然自失)의 끝에서 복차지계(覆車之戒)의 교훈으로 새로운 시작을 배웁니다.



❼ 대중과 소통하는 방송과 강의를 통해 현장을 변화시키는 실천력을 배가하다

KBS 아침마당 등 공중파 방송과 유튜브 방송을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다

살갗을 파고드는 설득력은 책상 지식보다 체험적 깨달음이 낳은 산물이다


흔히 교수를 비롯해 상아탑이나 연구기관에서 가르치고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사용하는 전문용어를 사용하여 전문적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의미는 있지만 재미가 없어서 청중의 호응과 공감을 얻기 어려운 강의는 학교나 해당 기관에서는 의무적 수강이라는 강제 조항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런 강의가 밖으로 나가서 대중과 만나면 사정은 달라진다. 호기심을 자극하고 궁금증을 유발하면서 강의를 통해 전달받는 메시지가 청중의 삶에 유용한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 들지 않으면 청중은 바로 자세를 흐트러뜨리고 집중하지 않는다. 책으로 배운 지식을 논리 정연하게 설명해도 청중은 이해는 하지만 가슴으로 느끼지 못한다. 의미는 머리에 꽂는 것이 아니라 심장에 박히는 것이다. 심장에 박힌 의미만 의미심장해진다. 심장에 박힌 의미는 체험으로 깨달은 각성의 산물이다. 대중은 전문 분야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그것으로 어떤 언어를 통해 전달하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그런 연구의 결과가 내 삶과 무슨 관계가 있으며, 그것을 알면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알고 싶어 할 뿐이다. 머리로 이해한 개념을 아무리 고급언어로 설명을 해도 머리로 전달될 뿐이다. 체중이 실린 언어에는 그 사람이 몸소 겪은 체험적 깨달음이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엮여 있다. 체중을 실은 체험적 깨달음을 전달하는 강의는 사람의 삶이 거기에 다 녹아 있어서 몸으로 와 닿는 메시지가 되는 이유다.


올 한 해는 세바시를 비롯해 KBS 아침마당 생방송 특강, 국회방송의 오유경의 인생 책방, 국방 TV의 책 쓰기는 애쓰기다, 신사임당과 김미경의 TV, 815 머니톡 등 유튜브에 출연하거나 소개되면서 코로나 19로 대면접촉보다는 비대면 접속 상황에서 화상강의를 하거나 유튜브 라이브 강연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천, 부산, 여수, 대전, 논산 등 지자체 기관과도 평생학습과 인문학 특강을 유튜브 라이브나 줌 화상 실시간 강의를 하면서 언택트(untact)나 온택트(ontact)와 같은 접속만으로는 체험적 각성을 감각적으로 전달할 수 없는 치명적인 한계를 몸소 체험하는 한 해였다.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이루어진 다양한 상호작용 체험은 주어진 상황에서 강사와 청중이 주고받는 맥락적 감수성에 따라 후속되는 메시지나 전달 방식의 성격과 방향을 조율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하지만 원격으로 접속된 비대면 상황에서는 메시지가 상호작용되는 맥락적 특수성을 몸으로 읽어내는 데는 치명적인 한계가 따른다. 화상강의는 심지어 청중을 전혀 볼 수 없는 상태에서 허공에 던지는 메아리처럼 강의 메시지가 울림 없이 산산이 흩어지는 기분은 혼신의 힘을 다해 강의하는 강사의 사기를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든다. 어쩔 수 없이 비대면 접속으로 강의가 계속된다고 해도 살갗을 파고드는 설득력을 체득하기 위해서는 화상강의로 들은 내용을 학습자 스스로 실천하며 깨닫는 체험적 깨달음의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❽ 코로나 19 팬데믹 사태로 전대미문의 삶의 방식을 온몸으로 경험하다

곤경에 처해 몸으로 부딪쳐본 고생이 멋진 풍경으로 나를 데려다준다

계획보다 실행목표보다 과정의도보다 우연의 소중함을 배우다


고난을 겪어보지 않고서 난국을 돌파하는 능력은 생기지 않는다. 누군가 가르쳐 준 지식으로는 생각지도 못한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를 구출할 지혜를 선물로 주지 않는다. 모든 위인은 위기가 낳은 자식이다. 시련과 역경은 우리 모두를 한 단계 비약적으로 성장시키려는 숨은 의도다. 저마다의 고생으로 위대한 성취를 이루고 맞이한 경지는 성공으로 달려가는 직선 주로 끝에 맞이한 목적지가 아니다. 갖은 시행착오와 더불어 늘 절치부심했던 고행의 흔적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축적되면 때를 맞이해서 기적을 낳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태는 좋아지기보다 더 악화일로를 거듭하고 있다. 어둠의 터널을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일말의 희망조차 유지하기 힘들어질 때 경제적 위기는 설상가상으로 밑바닥을 벗어날 기력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런 시기일수록 누구를 탓하면서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내기보다 힘에 겨운 하루하루가 반복해도 뭔가를 준비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지금 왜 이러는 가 궁금하면 과거를 보라. 앞으로 잘 될 수 있을까 궁금하면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지를 보라.” 불교 금언 중의 한 마디다. 코로나 이후, 아니 위드 코로나의 미래를 알고 싶다면 지금 내가 뭘 준비하면서 행동으로 옮기는지를 관찰해보라. 걱정과 고민으로 일관하면서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으면 준비되지 않은 미래는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다. “준비에 실패하면 실패를 준비한다”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을 떠올려봐야 하는 이유다.


《곤란한 성숙》을 쓴 우치다 타츠루도 성숙은 곤란한 체험을 통해서 숙성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성숙은 시간의 문제이지 효율의 문제는 아니다. 배추가 김치가 되기 위해서는 소금에 절임을 당하는 고통을 체험하면서 갖은양념에 버무려 숙성되는 시간을 거쳐야 한다. 디지털 기술로 숙성의 과정을 효율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자연적으로 흐르는 시간과 더불어 참고 견디며 기다리는 내공의 맛이 숙성으로 탄생되는 형언할 수 없는 맛이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복잡한 문제도 신속하게 단순화시켜 해결 대안을 제시하는 전문가를 찾기 시작했다. 코로나 19라는 전대미문의 위기에 직면한 인류 역시 난국을 돌파하고 새로운 미래를 제시할 전문가들에 해법을 찾고 있다. 하지만 한두 사람의 전문가가 자신의 전문성으로 코로나 난국을 돌파할 혜안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를 인내심을 갖고 조금씩 해결하면서 현명한 답을 찾아나가듯, 코로나 위기도 근원적인 성찰과 함께 난국을 불러온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를 캐물어야 한다. 쉽게 찾고 싶은 해결 대안보다 우리가 직면한 위기의 뿌리를 찾아 들어가는 집요한 탐구심이 필요하다. 다 같이 힘든 한 해를 보내면서 유난히 코로나 이후의 일상적 삶으로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막연한 기다림은 사람을 더욱 지치게 만든다. 모든 비는 반드시 그치고, 땅 위에 내린 모든 눈도 반드시 때가 되면 녹는다. 엄동설한의 혹한도 다가오는 봄을 물리치지 못한다. 코로나 난국에서 위기를 극복하는 슬기로운 지혜를 배우는 절호의 계기로 삼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❾ 힘든 시기일수록 힘을 쓸 수 있는 몸을 만드는 운동이 내 삶의 중심으로 작용하다

운동으로 단련된 몸으로 맘을 통제하고 조율하는 신체성의 소중함을 경험하다

행복은 추상명사가 아니라 내가 행동할 수 있는 동사에 절대 비례한다


책상에 오랫동안 앉아서 뇌력을 발휘하며 뭔가를 창작하는 직업은 몸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정신노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정신노동이 순전히 정신이 관여하는 노동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정신 나간 소리나 다름없다. 정신의 근원지는 몸이다. 체력이 소진된 상태이고 몸이 더 이상 체력을 발휘할 수 없는 위기에 처하는 순간 정신도 같이 나가버리고 뇌력은 힘을 상실하기 시작한다. 운동으로 단련된 사람만이 필요한 시기에 필요 이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체력을 지닌다. 체력은 책상에 앉아서 생각만으로 기를 수 없다. 불편하게 움직이며 힘들게 운동하지 않으면 편안한 삶은 보장되지 않는다. 90년대 초부터 시작한 운동은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반복하는 하루 일과가 되었다. 땀 흘리며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 시간이었는지를 마음 놓고 운동할 수 없는 요즘 같은 시기에 피부로 느낀다. 반복해서 강도 높게 운동할 때 근육이 감동해서 흘리는 눈물인 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새삼 느낀다. 매일 운동을 하는 것이 뉴스가 되기보다 매일 운동을 안 하는 것이 뉴스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올해의 10 뉴스에 운동을 꼽은 이유는 변함없이 하던 운동을 상황의 변화로 운동을 하지 못하는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변함없이 운동을 하면서 내 몸의 변화를 실감하지 못하지만 슈트(suit)를 입거나 방송에 출연해서 강의하는 모습을 볼 때 슈트핏이 좋은 느낌이 내가 봐도 좋아 보일 때다.


체육관 문을 닫아버린 지금 몸은 계속 움직이며 집에서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하루에 스쾃 100회, 팔 굽혀 펴기 100회, 플랭크 3-5분 사이를 매일 반복한다. 짧은 시간 내 몸으로 하는 운동이지만 생각보다 땀도 나고 심장박동도 박력 있게 뛴다. 나름 유산소 운동도 된다는 증표다. 운동할 시간이 없다는 말은 운동할 의지가 없다는 말이다. 운동할 공간이 없어서 못하겠다는 말도 운동하기 싫은 사람이 내 세우는 핑계에 불과하다. 한계는 한 게 없는 사람의 핑계다. 맨몸으로도 할 수 있는 운동은 무궁 무진하며, 가장 이상적인 운동도 내 몸의 무게로 하는 자연스러운 운동이다. 힘든 세상을 버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힘들어도 힘들어가는 몸이다. 몸이 망가지면 몸을 기반으로 발휘되는 마음도 생각도 무너진다. 몸이 중심에 서 있어야 마음도 흔들리지 않고 상심하지 않고 머리도 핵심을 놓치지 않고 명쾌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노력이 실력을 낳은 원동력이라면 그 원동력의 발원지는 몸이다. 건강한 몸이라야 강한 면역력을 유지하고 만의 하나 바이러스 공격을 받더라도 다른 사람보다 빨리 바이러스를 물리치는 전쟁을 치를 수 있다. 《근력이 자본이다》(가제)라는 책도 내년 2월 초에 나온다. 땀 흘리며 운동하면서 깨달은 인문학적 사유와 자기 계발의 비결이 쉽지만 읽으면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을 나 역시 설레며 기다리고 있다. 땀 흘리며 운동하면서 내 몸의 변화를 관찰한 결과를 책으로 옮겨보았다. 행동할 수 있는 작은 움직임을 동사로 표현해보자. 움직임으로 표현되는 동사의 종류와 숫자만큼 내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수준을 결정한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몸으로 움직여 누릴 수 있는 동사의 종류가 다양하다. 



❿ 현장에서 겪은 고단한 체험적 각성이 울림을 주는 고품격 콘텐츠를 낳는다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와 함께 세상을 바꾸는 상상력을 잉태하다

앎으로 삶을 재단하지 않고 삶으로 앎을 증명하는 목소리가 울림을 낳는다


삶으로 앎을 증명하는 사람의 메시지에는 형용사의 거품이 담길 공간이 없다. 논리 정연하지 않지만 심장을 뛰게 만들고 전두엽을 전율케 하는 체험적 각성만이 일리 있는 메시지로 와 닿는다. 현장에서 건져 올린 살아있는 이야기라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일리(一理) 있는 깨달음으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저마다의 삶의 현장에서 힘든 삶을 겪어내며 몸으로 체득한 메시지라야 일리 있는 이야기를 넘어 가장 보편적 진리(眞理)로 무리(無理)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한다. 가장 국부적인 이야기지만 평범한 사람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깨달음의 울림이 스며들어 있어서 가장 대중적으로 호소력을 지닐 수 있다. 몸으로 깨달았지만 언어를 매개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적 앎도 의외로 많다. 우리는 언제나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안다고 《개인적 지식》의 저자, 마이클 폴라니는 말하고 있다. 책을 쓰고 강연하는 사람의 한결같은 고민은 자신의 생각을 적확한 언어로 어떻게 표현하는지와 관련되어 있다. 의미를 심장에 꽂아 의미심장하게 만드는 내공을 쌓는 비결에는 매뉴얼도 없고 가이드라인이 없으며 지름길도 없다. 복잡하고 곤란한 상황에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생했던 체험이 사람을 설득하고 교훈을 남기는 책과 강연의 소중한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고단한 체험으로 체화시킨 지혜는 위기의 순간 과감한 결단의 칼을 뽑아 들고 해결 대안을 모색하는 데  든든한 버팀목으로 작용한다. 


쉽게 극복할 수 없는 난국이 끝없이 이어진다고 해도 모든 눈은 반드시 녹고 모든 비는 때가 되면 반드시 그친다는 평범한 진리를 믿는다. 보잘것없는 깨달음의 결과를 힘든 시기를 보내는 사람과 나누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세바시에 자주 출연했다. 어쩌다 보니 세바시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세바시 그랜드 슬램은 세상을 바꾸는 15분 오리지널 【세바시】, 【세바시】에서 시간 제약으로 다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45분 동안 토크하는 【세바시 나머지 45분】, 세바시 교양대학에 입학한 사람들을 위해 실시간으로 만나는 【세바시 라이브】, 세바시 팬들을 위해 배움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세바시 클래스】, 김민식 PD님과 책 이야기를 나누는 【꼬꼬독】에 모두 출연한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상징적 타이틀이다. 2020년 9월 1233회 《오늘부터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려면 결심해야 하는 단 한 가지》에 출연한 영상은 지금 30만 조회수를 넘어서는 등 지금까지 총 5회 세바시에 출연하면서도 짧은 시간에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말하는 것이 여전히 쉽지 않다. 더불어 올해 세바시 전속 강사로 선정되어 세바시와 함께 세상을 바꾸는 창의적 콘텐츠 개발과 보급에 작은 도움을 주기로 했다. 언택트 시대, 의미에 컨택하는 공부에 가장 좋은 지식의 보고는 세바시다. 저마다의 살아있는 경험으로 자신이 몸으로 배운 깨달음을 자기의 언어로 녹여내는 지혜의 향연이 매일 펼쳐지는 곳이 바로 세바시다. 평생 배우고 익히면서 낯선 지적 자극에 노출하고 싶다면 세바시에 접속해보라. 책으로 배울 수 없는 감동적인 강연이 끝없이 이어진다.



금시초문의 코로나 19 위기는 아무리 위중한 상황이라고 119에 신고해도 어쩔 수 없이 견디며 해결 대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심각한 위협임에는 틀림없다.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비정상적인 일상이 기약 없이 펼쳐지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도 버틸 힘조차 점차 상실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지금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극복할 힘을 낼 수 있는 이유는 지금의 고행이 언젠가는 끝날 수 있다는 작은 희망 때문이다. 백신이 개발되어 보급되고 있지만 그래도 내년 상반기 초까지는 위중한 상태를 다 같이 이겨내야 하는 힘든 시기를 보내야 한다. 그 어떤 말을 해도 하루를 힘겹게 버티면서 살아내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대신에 김승희 시인의 ‘갑자기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들렸다’는 시를 인용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잉태하면서 내년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갑자기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들렸다


폭설의 밭 속에서 살고 있는 것들!

백설을 뻗치고 올라가는 푸른 청보리들!

폭설의 밭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들!

시퍼런 마늘과 꿈틀대는 양파들!

다른 색은 말고 그런 색들

다른 말은 말고 그런 소리들!


하루를 살더라도 그렇게

사흘이나 나흘을 살더라도 그렇게!


이어서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島)’라는 섬에 가서 절치부심하며 위기를 극복할 지혜를 연마해야 한다. 김승희 시인의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는 시를 함께 읽어보면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는 용기를 품었으면 좋겠다.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김승희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뜨리지 않는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목숨을 끊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천사 같은 김종삼, 박재삼,

그런 착한 마음을 버려선 못쓴다고


부도가 나서 길거리로 쫓겨나고

인기 여배우가 골방에서 목을 매고

뇌출혈로 쓰러져

말 한마디 못 해도 가족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

중환자실 환자 옆에서도

힘을 내어 웃으며 살아가는 가족들의 마음속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런 마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 가장 아름다운 것 속에

더 아름다운 피 묻은 이름,


그 가장 서러운 것 속에 더 타오르는 찬란한 꿈

누구나 다 그런 섬에 살면서도

세상의 어느 지도에도 알려지지 않은 섬,

그래서 더 신비한 섬,

그래서 더 가꾸고 싶은 섬, 그래도

그대 가슴속의 따스한 미소와 장밋빛 체온

이글이글 사랑과 눈이 부신 영광의 함성


그래도라는 섬에서

그래도 부둥켜안고

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서리라,

어디엔가 걱정 근심 다 내려놓은 평화로운

그래도, 거기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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