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내 인생의 10대 뉴스
한 사람이 일생동안 경험하는 고통의 총량은 불변하다. 이를 고통 총량 불변의 법칙이라고 한다. 젊어서 우여곡절의 어려움을 몸소 경험한 사람은 삶의 보람과 가치를 만끽하는 인생의 후반기를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 역으로 젊어서 별 다른 고생 없이 자랐다면 인생의 후반기에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고통이 따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인생 전반에 걸쳐서 한 사람이 경험하는 고통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는 말이다. 길을 건널 때 육교를 선택하면 처음 올라갈 때에는 힘들지만 나중에 내려갈 때는 어렵지 않다. 만약 지하도를 선택해서 길을 건너기로 결정했다면 처음에는 내리막이라 쉽고 나중에는 오르막이라 어렵다. 결국 길을 건너는데 필요한 고통의 총량은 동일하다. 물론 육교와 지하도를 선택하지 않고 횡단보도가 없는 곳에서 무단횡단을 감행할 수 있다. 운 좋게 별다른 어려움 없이 무단 횡단으로 길을 건널 수 있다. 하지만 운 나쁘게 무단 횡단한 죄과를 나중에 치를 수도 있고, 쉽게 길을 건너려다 불의의 사고를 당해서 영원히 인생을 어렵게 살 수도 있다. 쉽게 가려다 평생을 어렵게 살 수도 있다. 육교와 지하도를 통해 길을 건너는 방법은 살면서 만나는 위기를 극복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인생에는 무한정 올라가는 상승곡선만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인생은 한 없이 내려가는 하강곡선도 아니다. 올라가면 내려와야 되고, 내려가면 올라갈 때가 반드시 온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는 것이다. 지금 내려가고 있다고 해서 너무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말 것이며, 지금 올라가고 있다고 해서 마냥 즐거워해서도 안 된다.
괴테가 말했다. 네가 자주 가는 곳, 네 곁에 있는 사람, 그리고 네가 읽는 책이 너를 말해준다고. 나를 말해주는 세 가지가 바뀌면 결국 나도 어제와 다른 나로 거듭 재탄생하는 것이다. 사람은 어제 덮고 잔 이불속에서 오늘을 맞이한다고 한다. 어제 잉태되었던 생각과 생각대로 구상한 내일이 오늘 아침에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다. 밤에 꾼 꿈이 낮으로 이어져 꿈을 계속 꾸는 사람만이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다. 오늘은 어제의 반복이 아니라 어제와 다른 오늘의 차이가 반복된다. 어제와 오늘 사이에 살아가는 차이가 나를 만든다. 어제와 다른 차이를 어제와 오늘 사이, 그리고 오늘과 내일 사이에 부단히 만들어가는 사람이 바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부단히 자신을 변신시켜 나가는 사람이다. 나를 바꾸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괴테가 말했던 대로 나는 내가 체험한 역사적 산물이며, 내가 만나온 사람과의 인간관계의 투영물이자 내가 읽은 책으로 깨달은 결과 탄생한 존재다. 결국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방법은 나의 체험과 인간관계, 그리고 내가 읽은 책을 물어보면 된다. 나는 이런 변화(change) 철학을 체인지(體認知)와 체인지(體仁知) 개념으로 정리한 바 있다. 몸을 움직이는 다양한 시행착오와 우여곡절 속에서 이루어지는 체험(體)이 새로운 깨달음(認)을 가져오고 그런 깨달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지식(知), 체인지(體認知)만이 나를 포함해 세상을 체인지(change)할 수 있다는 변화 철학이다. 체인지(體認知)는 말한다. “야성 없는 지성은 지루하고, 지성 없는 야성은 야만이다!” 지성과 야성을 고루 갖추기 위해서는 ‘책상’ 머리보다 ‘일상’ 언저리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라고. 주관적 ‘체험’이 객관적 ‘경험‘보다 힘이 세다! 남의 ‘경험’으로부터만 배우지 말고 너의 ‘체험’으로 배워라! ‘체험’ 없는 ‘경험’은 공허할 뿐이고, ‘생각’ 없는 ‘체험’은 맹목일 뿐이다. ‘경험’은 스쳐 지나간 흔적이나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체험’은 몸에 개인적으로 각인된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경험’은 죽은 채로 과거 속에서 살아가지만, ‘체험’은 살아서 현재에서도 빛을 발한다. 운전수는 ‘체험’하지만 조수는 ‘경험’한다. 조수의 간접 ‘경험’보다 운전수의 직접 ‘체험’이 백번 낫다! 체험은 ‘발로’ 뛰면서 체득하는 산지식, ‘책’을 읽고 ‘산책’하면서 깨닫는 체험적 통찰력이다. “모험이 부족하면 좋은 어른이 될 수 없다”라고 일본 철도(JR: Japan Railroad)는 말한다.
어른 수업은 결국 이전과 다른 체험을 하면서 온몸으로 깨닫는 과정의 연속이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보험은 위험을 무릅쓰고 어제와 다른 모험을 즐기면서 축적하는 체험이다. 어른은 그가 두 발로 걸어온 삶의 역사적 기록이 말해준다. 내 두 발로 걸어온 내 삶의 역사가 바로 이력서(履歷書)다. 생각의 ‘발로(發露)’는 ‘발로’부터 나오고 생각의 ‘말로(末路)’는 ‘말로’만 하는 사람에게 다가온다. 남다른 생각의 발로를 얻기 위해서는 이전과 다른 체험적 도전이 뒤따라야 한다. 어른이 될수록 남다른 체험적 통찰력을 얻기 위해서는 이전과 다른 체험적 도전이 뒤따라야 한다. 체험적 통찰력은 몸부림에서 나온다. ‘몸부림’은 주로 ‘굶주림’과 함께 온다. 배부르면 몸부림치지 않는다. 등 따시고 배부르면 몸부림보다 나태함과 게으름을 친구로 살아간다. 굶주려야 굶주림을 극복하는 몸부림이 시작된다. ‘몸부림’은 ‘몸’을 ‘부림’이다. 몸을 부리지 않고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몸부림’ 치는 노력이라야 작은 성취라도 이룰 수 있다. ‘몸부림’은 ‘몸’을 ‘부름’이다. 몸을 누군가가 또는 무엇인가가 불러야 ‘몸부림’ 친다. ‘몸’이 ‘부름’을 받아야 ‘몸부림’ 치는 갈급함과 갈망이 시작된다. 갈급함과 간절함이 극에 달해야 ‘몸부림’ 치며 ‘몸부림’ 치는 갈급함과 간절함이 있어야 ‘몸부림’ 끝에 누군가를 만날 수 있고, 어딘가에 다가갈 수 있다. 몸부림치지 않고서는 위대함은 탄생되지 않는다. -
‘몸부림’은 ‘다가감’이다. 춥고 배고파야 ‘몸부림’ 치며, ‘몸부림’ 쳐야 몸이 꿈의 부름을 받아 꿈의 목적지로 조금씩 다가갈 수 있다. 그래서 ‘몸부림’은 꿈으로 다가가는 ‘처절함’이자 ‘치열함’이다. 나는 지금 얼마나 처절하고 치열한가? ‘몸부림’은 ‘사무침’이며 ‘그리움’이다. 사무치는 그리움을 갈망하는 사람이라야 ‘몸부림’ 치는 고통을 감내할 수 있다. 나는 얼마나 ‘몸부림’ 치고 있는가? 모든 몸부림은 치열한 몸부림 밖에 없다. 대강 대충 치는 몸부림은 없다. 열정에도 오로지 지독한 열정밖에 없듯이 몸부림에도 치열하고 처절한 몸부림 밖에 없다. 치열하고 처절하지 않으면 몸부림이 아니다. ‘몸부림’은 ‘치열함’이자 ‘처절함’이다. ‘몸부림’은 무엇인가를 향한 ‘지독함’이며 누군가를 위한 ‘처절함’이다. 처절해야 보이지 않는 가능성의 문이 열리며, 불가능도 가능해진다. 처절한 몸부림은 불가능에 도전하는 치열함이며, 한계를 넘어서려는 지독한 열정이다.
본래 체인지(體認知)라는 콘셉트로 전자신문에 약 2년간 500회 칼럼을 쓰고 나중에 칼럼의 전반부를 모아서 낸 책 이름이 체인지(體仁知)다. 체인지의 인(認)이 인(仁)으로 바뀌었다. 체인지(體認知)가 온몸으로 체험(體)해야 깨달음이 오고, 가슴으로 타인의 아픔에 공감(仁)할 때 비로소 탄생하는 지식(知), 체인지(體仁知)로 재정립된 것이다. 본래 인(仁)은 타인의 아픔을 마치 나의 아픔처럼 느낄 줄 아는 측은지심에 해당된다. 다른 말로 말하면 인(仁)은 주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타인의 아픔을 가슴으로 헤아릴 줄 아는 능력이다. 체인지(體認知)의 '인(認)'이 개인 차원의 깨달음을 강조하지만 체인지(體仁知)의 ‘인(仁)’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느낄 줄 아는 관계 차원의 능력을 강조한다. 체인지(體認知)의 인(認)'이 수직적 깊이를 추구하는 ‘앎(knowing)'을 강조하지만 체인지(體仁知)의 ‘인(仁)’은 수평적 관계의 확산을 추구하는 '느낌(feeling)'을 강조한다. 깨달음이 개인차원에 머무르는 체인지(體認知)와 인간적 관계로 확산되면서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 체인지(體仁知)에 주목할 때 보다 따뜻한 사회, 변화하는 세상을 맞이할 수 있다. 결국 어른 수업의 핵심도 어제와 다르게 깨닫는 인지적 앎(認)과 어제와 다르게 느낄 줄 아는 감성적 앎(仁)의 합작품으로 탄생된다고 볼 수 있다.
체인지(體仁知)의 ‘인(仁)’이 말해주듯 사람의 인성과 능력은 진공 속에서 생기지 않는다. 인간(人間)은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의 합작품이다. 인간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시간, 인간과 공간 사이(間)에서 인격이 형성되고 능력이 개발된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은 인생의 성장 시기별로 어떤 환경에서 어떤 인간관계를 맺어왔는지를 알아야 한다. 내가 살아온 지난 삶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내 인생은 내가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시련과 역경의 역사다. 내 삶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었던 갈림길과 변곡점에서 내가 선택한 결과이며, 그 선택에 따라 실천해온 여정의 역사다.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위기와 난국, 시련과 역경에 직면한다. 그 속에서 처절한 좌절과 절망의 눈물을 흘릴 수도 있고, 걸림돌을 디딤돌로 바꿔서 새로운 반전을 시도할 수 있다. 삶은 그 자체가 경이로운 체험이며 감동적인 행복이 아닌가.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면 희로애락이 담겨있는 기억될만한 뉴스가 있게 마련이다. 그 뉴스가 비보든 낭보든 모두 내 삶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사건이다. 그 뉴스를 되짚어보면서 오늘을 반성하고 미래를 전망해볼 수 있다. 오래된 과거 속에 꿈틀거리는 미래가 숨 쉬고 있다. 이런 점에서 내 인생의 10대 뉴스를 정리해보는 일도 의미 있는 일이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즐겁고 기뻤던 일도 있었지만 슬프고 괴로웠던 일도 많았다. 10가지 뉴스를 정리하면서 내가 온몸으로 체험했던 기억을 반추해본다.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뉴스가 있었는가 하면 긍정적인 상황에서도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뉴스도 있었다. 어쨌든 수평선을 기점으로 상단에는 즐겁고 행복했던 일을 표시하고 하단에는 슬프고 괴로웠던 일을 표시해보았다. 그때 느꼈던 감정의 강도가 곡선의 높낮이를 대변해준다. 그래서 삶은 오르락(樂) 내리락(樂)하는 곡선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출발부터 위대한 사람은 없다.
위대해지려면 시작해야 한다
내 인생의 첫 번째 뉴스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 동안 농사를 짓다가 뒤늦게 중학교에 진학한 경험이다. 나는 중학교 시절까지 시골에서 자랐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정 형편 때문에 바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일 년 동안 농사를 지었던 추억은 보잘것없는 생태학적 상상력을 발휘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던 것 같다. “공부는 뭐하러 하냐? 나랑 농사나 짓자”는 어머니 말씀에 중학교 진학마저 포기한 채 꼬박 1년 동안 농사만 지었지만 그래도 대자연을 벗 삼아 즐겁고 행복하게 지냈던 시절이었다. 이듬해야 간신히 어머니를 설득해 중학교에 진학했지만 논밭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해보면서 노동의 소중함을 깨달았던 시기였다. 빨간 고추를 수확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정성이 가는가? 파종해서 고추묘를 옮겨 심고 다시 일정기간 키워서 밭에다 옮겨심기까지 그야말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지만 얼마나 정성스럽게 혼으로 농사를 짓느냐에 따라 천재지변을 제외하고는 어김없이 나중에 농부에게 보답하는 것이 농사일인 것이다. 눈이 오면 긴 작대기나 몽둥이 비슷한 막대기를 들고 동네 친구나 후배, 또는 선배들과 떼를 지어서 뒷산으로 올라가 토끼를 사냥하던 추억은 잊을 수 없다. 농사일이 조금 한가해지면 고사리, 더덕, 잔대, 산도라지, 칡뿌리, 마 등을 캐서 먹으면서 자연이 준 선물들을 만끽하였다. 비가 오면서 마당으로 빗물에 휩쓸려 들어오는 미꾸라지를 힘 안 들이고 잡거나 개울가에서 그물이나 간단한 물고기 잡는 도구를 활용해 붕어를 비롯하여 피라미, 모래무지 등을 잡았던 그 시절이 그냥 한없이 그립기만 하다. 거기다 메뚜기나 개구리를 잡아서 막대기에 꿰어서 불에다 구워 먹으면서 친구들과 함께 들판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던 추억은 지금 생각해도 다시 만들어 보고 싶은 추억이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힘들었지만 자연의 소중함에서 배운 추억이 많았던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요즘 사람들이 철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철없이 아무 때나 나오는 과일들을 먹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것이 최선이고, 농사야말로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는 일이다. 쌀 ‘미’(米) 자를 분석해보면 여덟 ‘팔’(八) 두 개가 합쳐져서 이루어진 글자(八 + 八 = 米)라고 한다. 즉 한 톨의 쌀을 생산하기까지 88가지의 농부의 정성스러운 노력과 수고스러운 땀을 흘려야 비로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88가지의 노력이 단순히 시간이 많이 걸려서 효율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중간과정을 생략하고 보다 쉽게 쌀을 생산할 수 있는 자동화를 추구할 경우 자연의 햇볕과 바람과 비와 공기와 더불어 여물어 가는 수확의 여정이 단축될 수 있을지언정 건강한 쌀을 확보하기는 불가능하다. 본래 자연은 곡선인데 인위적으로 곡선을 직선으로 만들면서 인간의 불행이 시작되지 않았을까. 천천히 느리게 자연의 순리에 따라가는 삶이 여유롭고 행복하다. 자연은 절대 서두르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가 되면 어김없이 겨울부터 준비해서 봄에 씨앗을 뿌리고 여름에 수고한 결실을 가을에 가져다준다. 겨울은 길고 봄은 짧다. 여름은 길고 가을은 짧다. 긴 기다림의 곡선 끝에 짧은 기회가 직선으로 다가온다. 기회를 잡고 행운을 얻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을 자연은 말없이 가르쳐주고 있다.
내 인생의 두 번째 뉴스는 가정형편 때문에 실업계고등학교인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를 진학한 것이다. 전액 장학금은 물론 기숙사에서 숙식을 제공하는 특성화 고등학교인 수도전기공고는 나에게 더 없는 절호의 기회였다. 나에게 수도전기공고는 파란만장한 인생의 서막이나 마찬가지 일정도로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실업계 고등학교라서 인문계 고등학교와는 다르게 대학 진학을 위한 공부를 하지 않고 취업을 위한 실기 중심의 수업이 이루어졌다. 대학입시 준비를 위한 각종 책 대신에 철근을 깎는 줄과 용접봉으로 가득 찬 가방을 갖고 다녔으며, 영어와 수학 공부 대신 전기용접과 철판을 가공하는 시간이 많았다. 한국전력공사에서 직접 운영하는 수고 전기 공고를 졸업하면 한국전력으로의 취업이 100% 보장되었기에 졸업 후 취업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문제는 어쩔 수 없이 선택한 학교였지만 공고에서 배우는 과목이나 학교생활이 내가 생각했던 학교생활과는 너무 거리가 먼 데서 생기는 갈등과 고민이었다. 나의 전공인 용접을 하기 전에 두꺼운 철근을 줄로 가는 기초 연습을 할 때면 왜 그렇게도 힘들었는지 이런저런 요령을 피우다 조교 선배에게 무던히도 맞았다. 지금 땀을 흘리지 않으면 나중에 진땀 흘린다는 말이 그때도 여전히 피부에 와 닿았다. 한 여름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용접을 해본 사람만이 땀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 추운 겨울날 철판을 만져본 사람만이 손이 얼마나 시린지 알 수 있다. 더우면 더울수록 더욱 뜨거워지는 용접의 열기와 추우면 추울수록 더욱 차가워졌던 쇠 철판과 함께 일 년 사계절을 보내면서 밤하늘의 별을 얼마나 많이 바라보았던가.
나는 용접을 통해서 이질적인 두 가지 아이디어를 융복합시키는 창조의 원리를 배웠다. 철판과 철판을 붙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강력한 방법은 뜨거운 불꽃으로 녹여서 붙이는 용접이다. 이질적 아이디어다 융합되어 하나의 새로운 아이디어로 탄생하려면 체험적 상상력이라는 촉매제가 필요하다. 누구나 두 가지 이상의 이질적인 아이디어를 엮어낼 수 있지만 남 다른 방식으로 융합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서는 남다른 체험적 상상력이라는 윤활유가 필요하다. 나름대로 밤늦게까지 준비했던 용접기능사 2급 자격증 첫 시험에서 용접기의 온도조절 실패로 보기 좋게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용접기능사 시험의 낙방은 내 인생의 첫 번째 실패로 기록되었다. 실패를 해봐야 이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시도할 수 있으며 그래야 이전과는 다른 성취를 얻을 수 있다. 길을 가다 넘어지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 넘어지고 안 일어나는 것이 실패다. 따라서 실패는 포기하는 순간 시작된다. 위대한 실패일수록 위대한 성취를 가져다준다. 삶은 실패의 연속이기도 하지만, 실패 속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배움의 과정이기도 하다. 실패의 곡선 속에 번뜩이는 깨달음의 직선이 자라고 있다. 어떤 시작이 실패로 끝났지만 그 끝에서 어제와 다른 시작을 하는 사람만이 어제와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위대한 성취는 이렇게 어제와 다른 실패에서 얻은 색다른 깨달음의 축적에서 비롯된다. 위대한 사람은 그래서 시작부터 많은 고민을 하지 않는다. 일단 시작해야 위업도 달성된다. 용접기능사 시험을 통해서 내가 깨달은 바는 두 가지 철판을 녹여 붙일 때 곡선의 무늬처럼 용접봉을 녹여야 결합 강도가 높다는 것이다. 용접이 끝나고 난 뒤에 볼 수 있는 결이 얼마나 아름다운 곡선의 무늬를 띠고 있느냐에 따라서 성패 여부가 결정 난다. 두 가지 철판을 직선으로 녹여서 붙이면 접합부의 강도도 그만큼 떨어진다.
내 인생의 세 번째 뉴스는 고 2때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겪었던 견디기 어려운 아픔이다.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리고 난 후, 나는 한없는 바닥으로 내동댕이치는 것 같았다. 일찍 아버님을 여의였기에 어머니는 나에게 마지막 남은 희망이었다. 어머니가 생각나면 하던 밤늦게까지 하던 용접도 잠시 손을 놓고 개포동 달밤의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때 겪었던 서글픔은 지금 생각하면 모두가 아름다운 상처였다. 그때부터 나는 세상을 혼자 끌어안고 살아가야 된다고 생각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또 다른 엄청난 시련의 역사적 사건이 발생했다. 다름 아니라 후배 구타 사건으로 다가온 무기정학의 가혹함은 처음으로 술을 가까이하게 된 역사적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수모를 겪어가면서 교무실에서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많은 것을 반성했다. 하지만 생각은 쉽게 갈피를 잡지 못하고 암울한 방황과 고민의 터널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무기정학을 맞아 근신 중임에도 불구하고 허망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학교 담을 넘을 넘어 하루가 멀다 하고 술로 밤을 지새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개포동 달밤을 벗 삼아 학교 근처의 포장마차에서 젊음을 하소연하고 지금의 현실을 탓했던 어리석음의 연속이었다. 용접을 하다가도 영문을 모르는 화가 나고 불만이 폭발해 뜨거운 열기로 철판을 빨갛게 달구어 보름달 같은 구멍을 그 열기로 뚫어도 보았지만 학교생활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 대한 암담함은 가시지 않았다. 기숙사 생활이라 군대처럼 일석점호가 끝나면 바로 잠자리에 들어야 하지만 몇몇 친구들과 어울려 옥상에 올라가 술을 마시고 내 운명을 탓했지만 나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앞으로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어둠의 터널 속을 방황하면서 삶에 대한 막연한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뭔지는 잘 모르지만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과 반성이 순간순간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지금 갈치를 못 잡고 방황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나도 방향을 잡아 된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다. 곡선의 방황이 어느 지점을 지나면 나도 직선으로 달려갈 수 있는 방향을 잡을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이 오히려 삶의 위안이 되었다. 책상 앞에는 언제나 한자 3천 자, 그리고 성문 종합 영어와 수학의 정석이 나를 향해 언제나 무언의 압력을 주었다.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틈틈이 한자를 공부하고, 영어와 수학 책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대학에 가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와 수학 기초 실력이 너무 낮아서 책을 봐도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매일 책을 만져보면서 꿈을 버리지 않았다. 앞이 안 보이는 시계제로의 상황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꿈만은 포기하지 말아야 되겠다고 다짐했다. 두꺼운 성문 종합 영어와 수학의 정석은 그 어떤 자기계발서보다 나에게는 커다란 위로의 안식처이자 진정제였다. 앞날을 적당히 몰라야 살맛이 나지 않는가. 모든 것이 투명하게 밝혀져 있고,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다면 앞날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 그리고 애틋한 기다림의 여운이 없어질 것이다. 그런 삶은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다. 삶은 곡선으로 적당히 가려져 있는 미지의 세계가 존재해야 내일을 기다리는 설렘이 생긴다. 위기 끝에 기회는 오지 않고 또 다른 위기가 연속되었던 설상가상의 시련과 역경은 아마도 오늘의 나를 만들기 위한 담금질이었는지 모른다.
방황을 해봐야 방향을 잡을 수 있다
내 인생의 네 번째 뉴스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평택화력발전소에 취업한 것이다. 간신히 졸업한 수도 전기 공고를 뒤로 하고 내 인생의 첫 직장이었던 평택화력발전소로 발령을 받았다. 숱한 고민과 방황을 뒤로하고 학교를 떠나는 날 왜 그렇게도 시원하고 섭섭한지 몰랐다. 내 청춘의 많은 시간을 보냈던 굴곡진 과거의 숨결이 살아 숨셔서 그런 걸까. 졸업장을 받은 것만이라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낯선 곳이었지만 평택은 왠지 나에게 그리 낯설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업무를 시작했지만 방황의 늪은 더 깊어져만 갔다. 이제 방황의 도를 넘어서 방랑 생활의 연속이었으며, 방랑은 끝을 모르는 방탕 생활로 이어졌다. 월급을 타면 그날로 평택 시내로 달려가서 술로 탕진했으며, 거기서 다시 송탄으로 진출, 코가 삐뚤어질 정도로 마신 다음 몸과 마음을 간신히 가눈 채 집으로 향하는 날이 많았다. 비몽사몽 출근하는 시간은 나에게 그저 무료하기만 했다. 발전소 특성상 일 년 365일 전기를 생산해야 하므로 근무일 정도 3일 간격으로 바뀌었다. 아침에 출근해서 오후 늦게 퇴근하는 일정, 오후 늦게 출근해서 심야에 퇴근하는 일정, 밤늦게 출근해서 그다음 날 아침에 퇴근하는 일정을 주기적으로 반복했다. 어떤 날은 기름 유출 사고로 발전소 연료인 새까만 방카 C유라는 기름 청소를 하기 위해 하수구 구멍에서 며칠을 밤을 새워 청소하던 날, 한 여름밤 모기는 왜 그렇게 많던지, 모기와 사투를 벌여가면서 온 몸에 기름을 뒤집어쓰고 일하는 내 모습이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바닥을 기어봐야 나중에 걸을 수 있고, 걸을 수 있어야 결국 달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틀에 박힌 일을 매일 반복하다 보니 퇴근 후에는 무조건 술집으로 가는 날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인생이 일대 전환점이라고 볼 수 있는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 길을”이라는 책을 만나게 된다. 고시 합격 체험 수기집이었는데 거기서 우연히 공고생이 고시를 합격하기까지의 여정을 절절하게 그려 놓은 글을 보고 “내가 갈 길이 여기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길로 좋아하던 술과 모든 인간관계를 끊고 대학입시를 위한 치열한 사투를 시작했다. 책상 서랍에는 일 년 후 퇴사하겠다는 다짐을 담은 사퇴서를 미리 써서 책상 서랍에 간직해놓았다. 힘들 때마다 꺼내 보았다.
공부는 그렇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오랜만에 잡은 책도 이해하기 어려웠고, 내가 목표로 하는 법과대학에 진학할 실력을 쌓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갈수록 나 자신을 괴롭혔다. 집채만 한 발전기가 돌아가는 틈바구니에 들어가서 엄청난 소음을 음악 삼아서 공부했고, 서늘한 밤공기를 마시면서 발전소 옥상에 올라가 새벽을 맞이하기도 했다. 집중하면 주변 여건은 모두가 핑계나 자기합리화의 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방송통신 고등학교 대학입시 방송이 유일한 나의 선생님이었다. 생각만큼 실력이 올라가지 않다가 어느 시점부터 조금씩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바닥을 헤매다 조금씩 하늘을 볼 수 있는 여유를 갖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든지 처음부터 선명한 빛이 보이지 않는다. 안갯속을 헤매다 어느 순간 희미한 빛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어느 순간 찬란한 태양을 볼 수 있듯이 실력도 처음에는 별 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다 어느 순간 서광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대단한 결심을 하고 출발한 대학입시 공부 여정이지만 돌이켜 보면 참으로 치열한 자기 연마 과정이었다. 생각만큼 성적이 올라가지 않을 때는 한 없이 위축되었다가 조금 가능성이 보이면 한없이 기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오전에 하늘을 찌를 듯 기뻤다가도 모의고사를 보고 나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낙담과 절망을 체험한 적도 있었다. 하루가 멀다고 변덕을 부리는 내 마음을 다잡고 목적지를 향해 조금씩 앞으로 나갔다. 앞산을 넘어야 먼 산에 도달할 수 있다. 앞산을 넘을 때는 먼 산을 보지 말자. 오히려 먼 산은 나에게 그저 두렵고 절망적인 생각만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낮은 능선으로 이루어진 앞산을 넘다 보면 높은 능선으로 된 먼 산도 넘을 수 있다. 처음부터 높이 뛰어오를 수 없으며, 한 걸음에 멀리 갈 수 없다. 드디어 수능시험(당시는 학력고사)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시험장을 나오는 날, 불안감이 엄습해서 그날 일 년 동안 끊었던 술을 마셨다. 이제 결과는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내 인생의 다섯 번째 뉴스는 지금의 내가 교수로 있는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에 입학한 것이다. 꿈에 그리던 대학에 들어왔지만 이제부터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과 함께 자유분방한 대학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고시 공부를 하러 대학에 들어왔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과 너무 간극이 있어서 심각한 고민과 함께 다시 방황의 늪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강한 동질감과 함께 동료의식을 느꼈던 당시의 교육공학과 삼수생들과 함께 학교 주변의 술집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어렵게 대학에 들어온 점, 공고 출신이라는 점,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하지 못하다는 점 등 매일 인생을 논하고 젊음을 논하면서 한 잔 술에 다시 빠지기 시작했다. 다시 방황은 시작되었지만 문제는 대학 4년 동안 버틸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이었다. 다행히 1학년 1학기 등록금은 성적 우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등록금의 반액만 내면 되었지만 앞으로가 걱정이었다. 우선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곳이 빌딩 야간 경비였다. 낮에는 학교 가고 밤에만 빌딩에 와서 밤새 근무하는 아르바이트다. 그렇게 시작한 빌딩 경비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과외를 시작했다. 대학 학비는 무조건 일등을 하지 않으면 전액 학비 면제 장학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이판사판으로 공부를 했다. 공부가 재미있어서 한 것이 아니라 학비를 안 내기 위해서 공부를 했다. 과외를 시작해서 한 때는 2-3군데 한꺼번에 과외를 해서 꽤나 돈도 벌었지만, 그 돈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서 보고 싶은 책을 샀다. 그런데 문제는 과외도 언제나 계속되는 게 아니었다. 거의 모든 아르바이트가 끊겨서 밥 한 번 사 먹을 돈, 심지어 동전 하나 없이 그야말로 무일푼이었던 적도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버스나 지하철을 타려고 호주머니를 뒤져 보니 학교 갈 토큰이나 돈이 없었던 적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대학을 왜 다니는 것이며, 대학을 졸업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갑자기 한없이 작아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그날은 학교를 가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았다.
전 《엘르》지 편집장이 대필자와 함께 쓴 자전 에세이, ‘잠수복과 나비’를 쓴 장도미니크 보비. 그는 ‘로크인 신드롬’이라는 병에 걸려, 지능은 그대로지만 온몸이 마비된 저자가 20여만 번 눈까풀을 깜박거리는 것을 대필 작가가 받아서 쓴 책이 바로 ‘잠수복과 나비’다. 앞만 보고 달려오다 어느 날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전신마비 병에 걸렸을 때 병에 걸리기 이전과 병에 걸린 이후는 그야말로 희비쌍곡선이 교차하는 교차점이 아닐까. 보비가 우연히 등대를 발견한 것은 길을 잃은 덕분이다. 보비가 글을 눈까풀이라도 깜빡이면서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위기 덕분이다. 일류는 이류 덕분이고, 고귀함은 고생함 덕분이다. 길을 잃어도 희망을 놓지 않으면 절대로 절망하지 않는다. 돈 한 푼 없었던 마음의 상처가 언젠가는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는 상급을 기약할 것이라고 믿었다. 만신창이가 되어도 사는 길은 있다고 사는 길은 있다고 생각했다. 넘어진 곳에서 다시 대학을 처음 들어올 때의 초심을 붙잡고 다시 일어서자고 다짐했다. 가장 절망적인 때가 가장 희망적인 때이고, 어두움에 질식할 것 같을 때가 샛별이 나타날 때다. 희망이 늦을 수는 있지만, 없을 수는 없다. 희망은 정직한 절망 후에 느리게 다가온다. 정직한 절망만이 간절한 희망을 낳는다. 별은 멀리 있어야 아름답게 빛나 보인다. 축복도 조금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오히려 인생의 보약으로 다가온다. 늦게 주어지는 축복이 더욱 아름다운 축복이다. 내일의 희망이 있으면 오늘의 절망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장 비극적인 일은 꿈과 희망을 실현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실현하고자 하는 꿈과 희망이 없는 것이다. 절망 중에서도 마음속에 태양을 품고 온기를 느끼자. 바른 길로 이끄는 상처의 표지판’을 긍정하며 내일의 희망을 향해 훨훨 나는 나비가 되어 하늘을 날아오르는 자유를 찾을 수 있는 그날까지 묵묵히 내 길을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