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내 인생의 10대 뉴스(2)
꿈길로 가는 한 가지 방법,
온몸으로 두드리다 몸이 끌리는 길이 바로 내가 걸어갈 길이다
내 인생의 여섯 번째 뉴스는 지금의 나로 하여금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만들었던 고시공부를 포기하고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돌아온 캠퍼스는 여전히 젊음과 낭만이 곳곳에서 숨 쉬고 있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고시공부를 하든지 아니면 잘 알지도 못하는 교육공학을 공부할 것인지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게 되었다. 고시를 합격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길인가? 내가 하지 않으면 마음이 아픈 일, 내가 하면 신나는 일이 무엇인가? 내 안에 잠자고 있는 재능이 원하는 길인가? 나를 탕아의 구렁텅이에서 건져 올린 계기와 그로 인해 대학에 들어온 사연이 담긴 고시 공부 관련 책들을 모두 불살라버리기까지 포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내면에서 울려 퍼지는 두드림의 강도는 더욱 강하게만 느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저 책 읽고 공부하는 삶을 향한 두드림의 강도는 더욱 세차게만 느껴졌다. 공부를 통해서 내가 진정 꾸는 꿈은 무엇인가? 하루에도 수십 번 질문을 던졌다. 그 고민의 끝자락에서 어느 날 밤, 고시 책을 모두 불살라버렸다.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꿈의 원동력이 날아가고 새로운 엔진을 장착한 것이다. 그 이후로 무작정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가면서 이제까지 너무 모르고 살아왔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고시 포기는 또 다른 삶의 선택을 의미했다. 고시 포기가 위대한 선택을 낳은 것이다. 그렇게 오랜 고민과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 끝에 나는 책을 잡고 밤을 새워가면서 읽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읽고 싶은 책을 붙잡고 무작정 읽기 시작했다.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고 즐거웠다. 무엇을 먹을 것인지 보다 어떤 책을 읽은 것인지가 더 고민되기 시작했다. 미래에 대한 꿈은 없었다. 그저 원 없이 공부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 길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운 좋게도 지금의 김종량 총장님이 연구실을 내주었다. 연구실에서 숙식을 하면서 밤새워 책을 읽었다. 대학원 시절부터 오랫동안 지켜온 나의 일주일은 '월화수목금금금'이었다. 금요일을 세 번 가졌다. 황금을 캐는 주말, 적막이 감도는 가운데 정적을 깨는 소리는 오로지 책장을 넘기는 소리였다. 앞서 공부한 사람들의 학문적 업적에 멍안히 침을 흘리기도 했지만, 나도 그런 사람처럼 될 수 있다는 오기 어린 자신감으로 무장했다. 침을 흘리지 말고 땀을 흘리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책을 읽으면서 무릎을 치고 방 안을 왔다 갔다 했다. 새벽녘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대학원 시절은 흘러가고 있었다.
운명의 장난인지 교육분야 행정고시를 보기 위해 ‘교육’이란 말이 들어가는 학과를 찾다가 우연히 교육공학과를 알지도 모른 채 선택했지만, 결국 우여곡절 끝에 고시를 포기하고 나는 지금 교육공학과 교수로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다. 우연한 선택이었지만 그 우연이 교육공학과와의 인연을 만들었고, 다시 그 인연은 이제 내 삶의 필연으로 자리 잡게 된 인생역전의 스토리가 지금은 나의 히스토리가 되고 있다는 게 너무도 신기하고 경이로울 뿐이다. 역시 삶은 곡선의 굴곡과 궤적을 그리면서 저마다의 역사를 만들어간다고 생각했다. 틀린 길은 없다. 다만 풍경이 다를 뿐이다. 내가 걸어가는 길에는 내 삶의 역사적 흔적이 담긴 길이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처음부터 꿈에 그리던 길을 발견하고 직선으로 달려갈 수 없다. 이런저런 길을 헤매다 보면 내가 정말 간절히 꿈꾸던 길은 나타난다. 방황하는 곡선의 궤적이 방향을 잡아준다. 방황하는 곡선이 방향을 잡으면 직선으로 달려간다. 직선보다 곡선이 길어야 한다. 처음부터 직선으로 달려가다 넘어지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 발레는 아름답지만 발은 아름답지 않다. 강철 나비, 강수진의 발레는 아름답지만 그녀의 발은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발일지도 모른다. 발의 치열함이 발레의 아름다움을 가져온다! 곡선의 휘어짐 속에서 뛰어오르고 내딛는 발레의 아름다운 춤 동작은 온몸을 던진 고통이 승화되어 나오는 것이다. ‘직선’은 ‘곡선’을 이길 수 없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의 근원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에서 나온다. 개울 바닥에 돌이 없다면 시냇물은 노래를 부르지 않을 것이다. 칼 퍼킨스의 말이다. 돌이 만든 굴곡과 장애물이 시냇물로 하여금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게 만든 것이다.
내 인생의 일곱 번째 뉴스는 교육공학을 더 깊게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떠난 것이다. 유학을 간다는 것이 내게는 불가능해 보이는 꿈이었다. 우선 나에게 유학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능력이 없다. 둘째로 영어로 수업을 듣고 쓸 수 있는 영어실력이 없다. 그래서 나는 유학을 가지 말라는 말인가? 안 되는 이유를 찾고 자기 합리화나 변명을 늘어놓기보다 되는 방법을 찾았다. 유학생활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때 가서 고민하면 되지 않는가. 먼 길을 가기도 전에 길을 가면서 벌어질 일들을 미리 앞당겨서 고민해봐야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은 은퇴하신 허운나 전 한국정보통신대학교 총장님이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 재직 시절에 당신의 미국 지도교수를 소개해주시면서 플로리다 주립대학교로 가서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전액 장학금에 약간의 생활비까지 준다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가슴이 뛰었다. 석사 논문을 서둘러 마치고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유학 가기 전에 결혼한 집사람은 나중에 합류했다. 꿈에 그리던 미국 유학길, 긴 시간 비행기를 타고 미국 플로리다 주의 도시, 탈라하시라는 작은 공항에 도착했다. 폭염과 엄청난 습도, 수시로 쏟아지는 소나기. 견디기 어려운 기상여건이 불안한 내 가슴을 엄습했다. 지도교수, 모건(Robert M. Morgan) 박사님을 만났다. 첫 대면하자 내게 해주신 말씀, 아직도 기억이 생생했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영만!(What can I do for you? Yeong-Mahn!) 상식적으로 하는 미국 사람들의 인사지만 시골 할아버지 같은 인상이지만 보이지 않는 강한 카리스마가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파란만장한 미국 유학생활, 그 역동적인 한편의 스토리는 본문에서 하기로 하고 여운을 남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했던 유학시절, 모건 박사님의 전폭적인 후원과 아낌없는 사랑으로 교육공학으로 시작한 공부 여정에 일단락을 지었다. 유학시절에서 보고 느낀 점은 본문에서 다시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내가 그토록 존경했던 모건 박사님과의 마지막 전화 통화 내용을 생각하면서 내 인생의 일곱 번째 뉴스를 마칠까 한다. 오랜만에 박사학위 지도교수님이신 Robert M. Morgan 박사님에게 전화를 했다. 수첩을 뒤적이다 보니 핸드폰 번호가 있었다. 사우스 캐롤라이나 대학의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딸내미가 전화를 받았다. 지금은 주무시고 계시니 앞으로 4시간 후면 통화가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지난번 모건 박사님이 암으로 투병 중이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믿어지지 않아서 그동안 전화를 하지 않았다. 2009년 1월 미국에 도착해서 이것저것 하느냐고 또 잊어 먹고 있다가 갑자기 전화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4시간 후인 저녁 8시에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다. 모건 박사님이 직접 받으셨다. 목소리가 예전과는 다르게 힘이 없어 보였고 목이 무척이나 편찮아 보이셨다. “영만, 정말 오래간만이야. 내가 암으로 투병 중인 줄은 알아? 의사가 한 달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는데 아직도 살고 있어.” 이일을 어쩌랴 ㅠㅠ. 나는 할 말을 잃고 한참 동안 모건 박사님의 유언 같은 목소리를 들으면서 어안이 벙벙해지고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영만, 내 나이 이제 90인데 난 후회 없이 살았어. 나는 너를 제자로 키워낸 일을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생각해. 너처럼 훌륭한 제자도 키워냈고, 또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일을 해왔는데 이제 죽어도 큰 후회가 없어. 내가 목이 아파서 더 이상 얘기를 못하겠다. 한국에 돌아가면 내가 아는 지인들에게 안부 전해줘. 영만 안녕~~~~~~~~~~.” 어쩌면 이게 지도교수와의 마지막 통화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과 그토록 카리스마 넘치면서 인자하셨던 모건 박사님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나도 말문을 잊어버렸다.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더 이상 말하기 힘들다고 하시면서 마지막 작별인사를 건네고 전화를 끊으셨다. 나는 이 분을 위해서 앞으로 무엇을 해야 될 것인가? 그토록 제자를 아껴주시고 많은 것을 배려해주신 내 인생의 영원한 멘토이셨는데.... 이게 마지막이었다. 이제 모건 박사님은 하늘나라에서 그동안 길러낸 수많은 제자들을 지켜보고 계실 것이다. 그분을 위해서 그분이 베풀어 주신 스승의 은혜를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돌려주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체험과 개념의 경계에서 창조의 꽃이 핀다:
체험 없는 개념은 관념이고 개념 없는 체험은 위험하다!
내 인생의 여덟 번째 뉴스는 유학을 마치고 삼성인력개발원에 입사한 것이다. 박사학위를 마치고 사실은 미국 연구소에서 공부를 더 하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여건상 귀국하려는 계획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삼성에서 연수단이 플로리다 주립대학교로 파견되어 같이 일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때 삼성 연수단 연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강의하면서 지도교수님을 도와드린 일이 있는데 그때 삼성 연수단과 자주 만나서 얘기를 하다가 삼성 인력개발원으로 취업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삼성에 입사하면서 박사과정까지 배웠던 지식을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갖게 되었다. 7시 출근, 4시 퇴근이라는 소위 74제도의 전격적 시행으로 출근 시간 맞추기가 참으로 힘들었지만 그런대로 빠르게 적응해나갔다. 교육현장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고민들을 들어보고 어떻게 현실을 바꿔 나갈 수 있을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모색하면서 오히려 내가 더 많이 배운 것 같다. 현장에 가야 현실을 만날 수 있고, 현실 속에 진실이 숨어 있다.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현장으로 내려가야 된다. 현장을 무대로 탄생되지 않는 지식은 관념의 파편일 수 있다. 아무리 위해한 사상이라도 내가 직접 실천해보지 않는 이상 나의 지식이 되기 어렵다. 가슴으로 느끼고 머리로 깨달은 바를 몸으로 실천해보는 가운데 나의 지식으로 체화시킬 수 있다. 현장에서 배운 실천적 지식이야말로 살아 있는 지식이다. 집 짓는 순서와는 반대로 집을 그리는 현실적 실천력이 상실된 교육의 허구성을 깨달았으며, 교육학과 교육, 경영학과 경영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살아가고 있음을 몸소 깨닫는 소중한 체험이었다.
총체적 교육 현상 또는 경영 현상으로서의 실천 현장과 이를 설명하고 이해하기 위해 탄생한 교육학과 경영학은 깊이 탐구하면 탐구할수록 현실과 거리가 먼 강단 학문을 탄생시킬 가능성이 많다는 점도 깨달았다. 지식은 논리적 설명력도 지녀야 되지만 감성적 설득력도 지녀야 된다. 감성적 설득력은 직접 현장에서 실천해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다. 지식에 열정과 용기가 추가될 때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다양한 현장 경험을 통해서 내가 갖고 있는 보잘것없는 지식에 열정과 깨달음을 추가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다면 확실한 나의 주관을 다져나가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현실은 교과서 지식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박사 지식이 현실 변화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다는 사실, 그리고 책대로 현실은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도 뼈저리게 깨달았다. ‘박사’(博士)의 ‘박’(博)은 ‘넓다’, ‘크다’, ‘많다’를 의미하지만, 얇을 ‘박’(薄)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현장 경험을 통해서 깨달았다. 시행착오 끝에 깨달은 교훈은 그대로 나의 소중한 체험적 지식이 되었다. 학습은 남다른 도전과 창조, 성공과 실패 속에서 소중한 교훈을 체득하는 과정이다. 박사과정까지 습득한 지식보다 박사 후 삼성에서 체험하면서 온몸으로 체득한 지식이 더없이 소중하다. 역시 가장 값진 깨달음의 실천을 통한 인식이라는 사실과 실천 없는 인식의 반복은 현실논리와 거리가 먼 관념적 허구의 집을 구축할 수 있다는 깨달음은 삼성그룹에 배웠던 가장 소중한 체험이었다. 삼성에서 일했던 5년간의 체험은 체험 없는 개념은 관념이고, 개념 없는 체험은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배운 고마운 스승이었다.
내 인생의 아홉 번 번째 뉴스는 안동대학교 대학교수로 재직하다 모교로 옮긴 것이다. 삼성에서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대학교수가 되어 안동대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예정된 길이기도 했지만 삼성에 입사하면서 다짐했던 최소한 현장 경험을 쌓은 후에 기회가 되면 대학으로 옮겨야 되겠다고 다짐했던 약속을 무사히 지키고 이제 대학 강단에 서게 된 것이다. 가르친다는 것의 본질은 무엇인가? 스승으로서의 교수가 가져야 될 마음 자세와 가야 될 길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묻고 또 물었다. 그동안 나를 가르쳐 준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 교수님들, 특히 김종량 총장님과 허운나 전 정보통신대학교 총장님을 비롯하여 미국의 모건 교수님에게 배운 바를 실천하기로 했다. 당신들이 베풀어 주신 학은에 보답하는 길은 나의 제자들에게 그 은혜를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강단에 선다는 설렘으로 시작한 안동대학교 교수로서 나는 삼성에서 그동안 실험해본 다양한 아이디어를 정리해보기로 했다. 새벽까지 책을 읽었던 학부와 대학원, 그리고 유학시절의 하루 일과를 삼성에 취업하면서 정상적인 시간으로 되돌렸지만, 안동대학에 재직하면서 다시 새벽 5시까지 책을 읽고 9시에 다시 출근하는 일과를 시작했다. 밤 열두 시까지 책을 읽고 글을 쓰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대운동장으로 달리기도 했다. 샤워를 하고 다시 책상에 앉아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무조건 하루에 A4용지 한 장 이상의 분량의 글을 써서 홈페이지에 올리는 생활을 반복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집중력은 한줄기 빛으로 바위를 가를 정도로 정신이 맑아지고 거침없이 글이 써졌다. “경험은 좋은 글을 쓰는 작가들의 안주인”이라는 지식채널의 말이 생각났다. 그렇게 해서 책을 서너 권 쓰고 나면서부터 본격적인 저술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안동에서의 2년 반 교수생활을 마치고 청춘의 고뇌와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모교인 한양대학교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삼성에서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강의하며 현장의 변화와 혁신을 모색했던 경험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에 소중한 체험으로 작용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어렵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설상가상의 위기가 계속되었던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평택화력발전소에서 극심한 몸살을 앓을 정도로 방황을 한 다음 들어간 한양대학교, 그리고 먼 타국 땅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다시 삼성에서 5년의 현장체험을 하고 난 다음 대학교수가 된 나를 되돌아보았다. 먼 길을 돌아온 기분이지만 어디 가서 잠깐 쉬었다가 돌아온 기분이었다. 그렇게 신나게 공부하면서 가르치고 연구하며 재미있게 책을 쓸 수 있는 나의 길을 찾기 위해 먼 길을 돌아왔지만 안동대학교 재직 시절은 참으로 행복한 시절이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맛보는 보람이었습니다. 굳이 일만 시간 법칙을 인용하지 않아도 돌이켜 보면 나도 근 10년은 한 우물을 판 것 같습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줄기차게 달려온 것 같다. 새벽녘이 되면서 주체할 수 없이 마구 솟아오르는 학문적 아이디어를 쉴 사이 없이 키보드를 두드려가면서 글을 썼던 전투적 글쓰기의 시간이었다. 그때의 추억은 지금 생각해도 심야에 울려 퍼지는 깨달음의 경작이었다. 얼마나 심하게 쉴 사이 없이 글을 썼는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가락에 아플 지경이었다. 그동안 줄기차게 달려온 속도의 페달을 잠시 멈추고 실전 경험을 이론화하기 시작했던 안동에서의 2년 반은 내 인생의 또 다른 의미의 역사였다. 안동대학교에서의 경험은 가르치고 배우며 연구하는 보람과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 삶인지를 각성케 해준 깨달음의 이정표였다. 편안한 동쪽, 안동에서의 교수생활을 마감하고 다시 모교로 돌아와 공부하면서 글을 쓰고 후배들을 가르치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그동안 겪은 체험적 상상력으로 일독할 책이 아니라 중독될 수 있는 책을 쓰기 위해 그리움으로 세상을 그리고 있다. 고난과 고뇌, 시련과 역경으로 점철된 긴 곡선의 인생 여정이었지만, 거기에 담긴 삶의 얼룩을 아름다운 무늬가 담긴 책으로 담아내는 노력을 계속한다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가슴이 뛰고 잠이 오지 않는다. 그게 꿈을 먹고사는 즐거움이 아닐까.
내 인생의 열 번 번째 뉴스는 2007년 4월 11일 분당 수서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교통사고입니다.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라 죽음의 문턱까지 가서 사경을 헤매다 구사일생한 끔찍한 교통사고였다. 연구실에서 늦게까지 연구하다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집으로 가는 도중에 분당 수서 고속도로에서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았다. 순간 정신을 잃고 병원으로 실려 왔다. 한참 만에 정신을 차려보니 온몸으로 다가오는 통증은 견딜 수 없었고 도대체 이 난국이 어떻게 벌어진 일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좌우의 갈비뼈가 거의 다 부러져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왼쪽 팔도 부러졌습니다. 목을 둘러싼 두툼한 보호대가 신경에 더 이상의 충격이 가지 않도록 나를 꽉 조이고 있었다. 뭔가를 더 했다가는 전신마비가 될지도 모를, 중태 중의 중태였다. 직선으로 고속 질주하다 한 순간 정신 줄을 놓고 있다가 일어난 끔찍한 사고였다. 삶의 여유로운 곡선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촉급한 직선으로 바뀌면서 삶의 곳곳에 이런 사건과 사고의 위험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전력질주할 필요와 시기도 있지만 멈추고 서서 속도보다는 각도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른이 될수록 앞으로 달리는 속도보다 주변을 살펴보는 각도가 소중함을 깨달아야 한다. 삶은 속도보다 각도와 밀도가 중요하다. 속도를 줄여야 삶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각도가 넓어지고 매 순간 느끼는 행복한 밀도감이 높아진다. 삶의 밀도는 매 순간마다 느끼는 삶의 의미심장한 강도다.
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사람이 정신이 나갔다가 정신이 들면 물어보는 두 가지 질문이 있다. “여기가 어디야?” “내가 왜 여기 있지?” 정신이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면 정신 차리고 물어보는 질문이 바로 인간과 삶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여기가 어디야?”라는 질문은 나의 현재 위치를 물어보는 질문이다. 내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 모를 때 밑도 끝도 없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거나 잘못된 판단에 근거해서 허황된 조치를 내릴 수 있다. 두 번째 “내가 왜 여기 있지?”라는 질문은 어떻게 해서 여기로 왔는지 이유를 물어보거나, 여기에 오게 된 배경이나 사연을 물어보는 질문이다. 지금 왜 여기 있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존재 이유를 모르는 사람이다. 내가 여기 존재해야 되는 이유가 불문 명하거나 이해가 되지 않을 때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는 일보다 존재 이유와 관계없는 또는 존재 이유를 망각하는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다. “여기가 어디야?”라는 질문과 “내가 왜 여기 있지? “라는 질문은 단순하지만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는 질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정신이 멀쩡한 상태에서는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정신이 나갔다가 들어와야 비로소 정신 차리고 자신의 위치정보와 존재 이유를 물어보는 게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정신 나가기 전에 정신 차리고 수시로 물어보자. “여기가 어디야?”라는 질문과 “내가 왜 여기 있지? “라는 질문은 정신 차리고도 언제나 수시로 던져야 진정한 어른으로 성숙할 수 있다.
삶은 사건과 사고가 씨줄과 날줄로 엮여서 만들어가는
흔적과 얼룩의 합작품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삶을 10가지 뉴스로 정리해 보았다. 곡선으로 살아온 흔적 속에 생긴 상처는 어느새 아름다운 추억을 담고 있는 흉터로 바뀌었다. 즐겁고 행복했던 추억보다 시련과 역경을 견디면서 깨달은 교훈이 먼저 생각난다. ‘주역(周易)’에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는 사자성어가 나온다. ‘만물은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하게 마련이라는 말이다. 즉, 극도로 흥성하면 반드시 쇠미하게 된다는 의미다. 세상의 모든 것은 흥망성쇠(興亡盛衰)를 되풀이한다. 지금 오름세를 타고 승승장구(乘勝長驅)한다고 자만하지 말 것이며, 역경을 만나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고 할지라도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말라는 말이다. 순조로운 상황에서는 역경에 대비하고,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어려움이 겹치는 상황에서는 도약의 전기가 가까이 오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바닥은 희망의 터전이며, 정체는 도약의 발판을 의미한다. 지금 바닥을 기고 있거나 뒹굴고 있다고 좌절하지 말자. 바닥에 기어봐야 걸을 수 있고, 걸을 수 있어야 달릴 수 있다. 기기도 전에 걸으려고 하다가 큰 코 다칠 수 있다. 걷기도 전에 달리려다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바닥은 결국 나중에 걷고 달리는데 필요한 내공을 연마하는 희망의 터전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으면 살아날 길은 있다. 절망의 극은 희망이고, 희망의 극은 다시 절망이다. 절망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원망할 수도 있고, 희망의 끈을 잡고 있으면서도 급하게 갈망할 수도 있다. 절망도 희망도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오지 않는다. 절망의 순간도 서서히 곡선의 여정을 그리면서 다가왔을 뿐이고, 희망의 여정도 꿈과 비전에 대한 간절함이 스며들면서 곡선의 궤적으로 천천히 다가온 것이다.
나는 40여 년을 살아오면서 우여곡절(迂餘曲折)을 거듭했고,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인생역전을 거듭해왔다. 끝도 없이 추락하는 바닥에서 좌절과 절망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시기가 있었는가 하면 한 없이 올라가는 성공체험도 맛보았다. 그때마다 여러 번의 갈림길에서 선택을 해야 했고, 또 다른 길을 포기해야만 했다. 선택은 곧 또 다른 것을 포기함을 의미한다. 즉 포기함으로써 또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있다. 포기하지 않고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없다. 선택이 없는 포기는 무의미하지만, 선택이 동반되는 포기는 의미 있는 변화를 동반한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포기하고 선택하는 삶의 여정을 살아왔으며, 앞으로 살아갈 것인가? 로버트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함으로써 이미 많은 사람들이 걸어간 길을 포기해야 했다. 포기함으로써 선택한 출발점부터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의 여정이 함께 했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하면 재미있고 즐거운 삶을 만들어가는 어려운 선택을 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좌절과 절망을 안겨주는 장애물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꿈틀거리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꿈은 처음부터 명료하게 보이지 않는다. 꿈은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겠다는 자신과의 다짐과 약속에서 출발한다. 지금 이대로의 삶이 재미가 없고 의미심장하게 다가오지 않는 데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살아가다가는 영원히 가슴 뛰는 삶을 살아갈 수 없다. 삶에서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 산다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의 문제만 선택의 문제다.
내 인생의 10대 뉴스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았지만, 2007년도 교통사고 이후 직선으로 달리다 깨달은 삶의 곡선 위에서 그동안 참으로 많은 스토리를 만들어 왔다. 살다 보면 일정한 목적의식을 갖고 내가 의도적으로 일으킨 사건(事件)과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생각지도 못하게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사고(事故)가 씨줄과 날줄로 엮여 삶의 얼룩과 무늬를 만든다. 삶은 사건과 사고의 얼룩과 흔적이 만들어나가는 한 편의 파노라마이기도 하고 긴장과 갈등을 겪다가 맞이하는 감동적인 드라마이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만들어가는 드라마의 주연 배우다. 배우는 부단히 자신의 삶의 어제보다 나은 삶이 될 수 있도록 애쓰는 사람이다. 무엇을 성취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배웠는지가 사람을 어제와 다른 제3의 사람으로 부단히 변신시키는 원동력이다. 그래서 10가지 뉴스를 정리한 다음 그 후의 내 삶의 드라마틱했던 감동적인 뉴스 두 가지를 더 추가로 정리해보려고 한다. 나는 2013년 10월 사하라 사막 250Km 마라톤에 도전한 적이 있다. 평소 마라톤을 한 경력은 있지만,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과 그것도 사막에서 이루어지는 250Km의 사하라 레이스는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홍콩의 영화감독 왕가위가 말하지 않았던가요.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충분할 만큼 완벽한 때는 없다.” 그렇다. 목적의식을 갖고 어느 정도 준비가 되면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행동하지 않고 완벽한 ‘때’를 기다리다 몸에 ‘때’만 낀다. 한 번도 만나본적이 없는 사하라,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도전 무대가 아닐 수 없다. 끝을 알 수 없는 6박 7일간의 250Km 사막 레이스, 간단한 레이스 안내와 함께 드디어 첫날 목표 거리인 40Km의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매 10Km마다 정해진 컷오프 타임 이내에 통과해야 다음 10Km를 갈 수 있다. 10Km의 거리도 직접 걷거나 달려봐야 어느 정도의 거리인지를 체감할 수 있다. 《아프리카인》이라는 책의 주인공 르 클레지오가 킬로미터로 거리를 계산하지 않고 직접 걸어서 걸리는 시간으로 거리를 몸으로 느끼듯이 사막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가까운 거리라고 할지라도 목적지도 내 몸을 움직여 이동하지 않고는 가야 할 거리는 줄어들지 않는다.
사막 레이스는 사투 끝에 스며드는 오르가슴이다. 작렬하는 폭염을 등지고 누구도 밟아보지 못한 모래사장에 내 발자국이 찍히는 순간의 촉감, 비워도 무겁게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를 온몸으로 지고 가면서도 인생의 무게는 이것보다 더 무겁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 때 찾아오는 이유 없는 경건함, 막막한 사막 위를 걸으며 오늘 가야 될 거리를 두 발로 좁혀 나가는 성취감,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야 된다는 부담감과 온몸을 파고드는 고통 속의 희열이 교차될 때의 알 수 없는 희열, 폭염을 뚫고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비 오듯 쏟아지는 땀방울이 휘발되는 느낌에서 내가 살아 있다는 경이로운 기적을 실감하게 된다. 두 손으로 배낭을 들어 올려 생긴 틈새 사이로 사막의 모래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그때 순간적인 시원함을 느끼는 순간이 바로 행복이다. 행복은 추상명사가 아니다. 행복은 내가 매일매일 체험하는 보통명사이고, 지금 이 순간 온몸으로 느끼는 동사다. 행복은 다름이 아니라 지금 내가 여기서 온몸으로 느끼는 감사의 시간이고, 극한의 결핍 속에 충족되는 작은 만족이다. 별이 쏟아지는 적막한 밤에 땀으로 범벅이 된 온몸을 사막에 드러낸 채 마시는 한 모금의 소주가 내 몸속으로 스며들 때 느끼는 황홀감이 바로 행복이다. 함민복 시인의 ‘비정한 길’이라는 시에 보면 “어찌 보면 몸을 흔들며/자신의 몸속에 든 길을/길 위에 털어놓는 것 같다./자신이 걸어온 길인/몸의 발자국/숨을 멈추고서야/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을 거나/길은 유서/몸은 붓”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나 역시 사하라에서 내 몸속에 든 길을 사하라 사막 위에 털어놓으며 온몸을 힘겹게 흔들며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몸의 발자국을 새겨 넣었는지도 모르겠다. 속도를 높여 앞만 보고 달리다 어느 순간 속도보다 삶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각도가 소중하며, 매 순간 펼쳐지는 삶의 모든 장면에서 찾는 의미의 밀도가 훨씬 의미심장하게 다가옴을 알게 되었다. 저기로 가본 사람만이 지금 여기의 삶이 소중함을 깨우칠 수 있다. 저기 사하라의 광활한 사막을 밟아본 사람만이 지금 여기의 삶이 얼마나 안이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삶인지를 뉘우칠 수 있다. 낯선 사하라와의 마주침이 색다른 깨우침을 주고 전에 느끼지 못했던 뉘우침을 던져주며, 인생의 가르침을 준다.
삶은 위험을 통해서만이 성숙해지고 진보한다. 모험이 부족하면 좋은 어른이 될 수 없다고 하지 않는가. 삶에서 가장 안전한 보험은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한 색다른 체험이다. 삶은 본래 위험하고 힘든 것이다. 힘들어야 이전과 다른 방법으로 힘을 쓰기 시작한다. 이전과 다른 방법으로 힘을 쓸 때 새로운 힘이 생긴다. 힘든 체험을 많이 해본 사람일수록 남다른 힘을 갖고 있다. 그 힘이 또 다른 시련과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주는 것이다. 세상에는 사하라 사막에서 마라톤을 뛰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사하라 사막에서 레이스를 펼치면서 힘든 상황을 극복해본 사람은 사하라를 온몸으로 체험한 사람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사하라를 머리로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사하라에서 체험한 미완의 레이스를 모아 엮은 책, 《울고 싶을 땐 사하라로 떠나라》는 내 삶의 미완성(美完成) 작품으로 남았다. 사하라 레이스는 비록 미완성(未完成)으로 끝났지만 생각지도 못한 경이로운 도전 체험을 즐겼던 아름다운 미완성이었다. 나는 그 미완성의 끝에서 또 다른 완성을 준비하고 있다. 오늘의 미완성을 디딤돌로 삼아 또 다른 미완성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내일은 더 멋진 도전을 꿈꾸고 있다. 도전을 멈추는 어른은 성장도 거기서 멈춘다. 어른이 될수록 틀에 박힌 일상에 매몰되어 하루를 살아가다 늙어버린다. 가슴 뛰는 꿈 대신에 후회와 미련이 자리 잡을수록 더 빨리 늙어간다. 나는 사하라 사막이 단순히 모래사막이 아니라 인생 사막임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사하라가 전해주는 인생 사막은 바로 서막, 막막, 적막, 그리고 주막이다.
사막(沙漠)에서 배우는 인생 사막(四幕),
인생 사막(沙漠)을 건너는 네 가지 방법, 사막(砂漠)에 답이 있다!
①사막은 서막(序幕)이다. 사막은 언제나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서막이다.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치는 끝 지점이 다음 날 새롭게 시작하는 출발점이다. 피곤한 어제였지만 아침이면 상쾌한 기분으로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서막이 기다리고 있다. 사막에는 시작과 끝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시작하면서 끝이 생기고 끝에서 언제나 다시 시작한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나이고 내가 곧 길인 곳이 사막이다. 사막에는 정해져 있는 길이 없다. 내가 가면 언제나 새로운 길이 시작된다. 그 길은 언제나 설레는 서막이다. 설레는 서막을 여는 심정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한 주를 시작하며 한 달을 시작하면 일 년이 바뀌고 인생이 바뀐다. 시작하는 방법은 오랜 연구 끝에 찾는 게 아니다. 시작은 그냥 시작하는 것이다. 다시 출발하고 싶은 사람, 사막에 가서 인생의 서막을 경험해보면 어떨까?
②사막은 막막(寞寞)하다. 사막은 가도 가도 막막하고 주변을 둘러보아도 삭막(朔漠) 하기 그지없다. 끝없이 펼쳐지는 사막, 하지만 끝은 반드시 있다. 끝이 없는 것은 막연함이지 사막의 끝은 아니다. 사막 레이스도 처음에는 막막하지만 해가 저물면서 그날 레이스의 끝을 만난다. 끝은 끝에만 있고 끝까지 가는 사람만이 끝과 진한 포옹을 할 수 있다. 난생처음 추진하는 일, 평상시보다 난도가 높은 과제, 이제까지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 도전하는 일일수록 처음에는 막막하다. 사막이 막막한 이유는 출발하기 전부터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목적지를 끌어당겨서 지금 여기서 미리 고민하기 때문이다. 앞산을 넘지 않고 먼 산만 바라보면 막막해진다. 먼 산을 넘으려면 지금 앞산부터 넘으십시오. 막막함은 사라지고 다음 산을 넘기 위한 도전정신으로 무장된다. 지금 시작한 작은 발걸음이 언젠가는 막막했던 목적지에 나를 데려다준다.
③사막은 적막(寂寞)이다. 사막의 낮은 막막(寞寞)하지만 밤은 적막하다. 걸어도 얼마나 걸어야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을지 막막한 사막, 밤이 되면 사막은 짙은 어둠에 묻힌 채 밤하늘의 별만이 반짝일 뿐이다. 그 누구에게 부탁해도, 그 어디에 호소해도 들려오는 반응은 고요함 속에 직면하는 적막감이다. 적막감이 적적함과 쓸쓸함으로 빠지지 않고 고독과 어울리면 주변을 서성거리지 않고 내면을 응시하기 시작한다. 새로움을 창조하는 사람에게 적막은 장막이 아니다. 오히려 전대미문의 창조를 꿈꾸는 사람에게 적막은 장벽이 아니라 새벽에 맞이하는 천지개벽의 시간이다. 고독해야 위대한 창작의 꽃이 핀다. 세상의 모든 창작품은 시끄러운 일상을 뒤로하고 적막한 시간과 장소에서 고독으로 피워낸 꽃이다. 소음으로 가득 찬 세상을 등지고 사막에서 맞이하는 적막한 밤, 오직 나와 침묵 속에서 대면하는 위대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뭔가를 창조하고 싶은 사람, 바쁜 일상을 내려놓고 잠시 자신과 대면하는 적막한 시간을 가질 때 인생 사막은 더 이상 황량하지만은 않다.
④사막에도 주막(酒幕)이 있다. 주막은 술 파는 주막이 아니다. 사막에는 오아시스라는 주막이 있다. 목마른 자에게 한 모금의 물은 꿀맛보다 맛있다. 심한 갈증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한 방울의 물은 더없이 소중한 갈증 해소 제다. 오랜 길을 걸으면서 피곤한 사람에게 주막에서 마시는 한 잔의 술은 그 어떤 에너지 충전제보다 강력한 피로회복제다. 마찬가지로 극한의 결핍 상황에서는 작은 만족도 경이로운 감동으로 다가온다. 칠흑 같은 어둠 끝에 맞이하는 새벽과 오랜 사투 끝에 문제 해결의 단서는 심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와 같다. 인생의 다른 맛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사막에 가서 오아시스를 만나보자. 뙤약볕을 맞으며 사투를 벌이다 만난 사막의 오아시스는 타오르는 목마름 끝에 만나는 주막과도 같다. 우리는 너무 풍요로워졌지만 동시에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으며, 부족함을 모르고 즉시 충족이 가능하지만 여전히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허덕이고 있다. 지금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극한의 상황에 자신을 몰아넣어 보자. 거기서는 사소한 것에서도 경이로운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사하라 사막 마라톤에 도전하고 나서 다음 도전 목표로 정한 곳이 바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였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오르는 감동을 온몸으로 겪어보는 체험은 내 삶의 또 하나의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가보기 전에는 진면목을 볼 수 없다. 가서 봐야 몸으로 느낄 수 있다. 가봐야 다른 곳도 가서 보려고 애를 쓴다.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는 사진으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그림과 영상, 이미지가 넘쳐난다. 그냥 앉아서 이미지를 보는 것과 실제로 가서 보는 것에는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그냥 앉아서 보는 것은 두 눈으로 보이는 것을 보고 머리로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에 반해 가서 보는 것은 두 눈으로 확인하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를 맡으며, 손으로 만지고, 입으로 먹어보고, 가슴으로 느끼며, 머리로 생각하면서 온몸 또는 오감을 총동원하여 체험해보는 것이다. 보는 것은 가보는 것에 비해 극히 일부분만 보는 것이고 그렇게 본 것은 마치 본질을 보았거나 전부를 보았다고 착각하는 순간 문제는 심각해진다. 다르게 보려면 가봐야 한다. 시선(視線)의 차이는 동선(動線)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여기서 동선(動線)은 실제로 발걸음이 움직이며 남긴 족적(足跡)이다. 발걸음이 바뀌어야 체험의 깊이와 넓이가 바뀌며, 결국 그것이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셈이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에 보면 앉아서 보는 것과 가보는 것의 극명한 차이점을 아주 멋지게 표현하고 있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To see the world, things dangerous to come to, to see behind walls, to draw closer, to find each other and to feel. That this is the purpose of life).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봤던 히말라야의 웅장한 면모나 안나푸르나의 신비로운 모습을 직접 멀리서 보기도 하고 지근거리에서 바라보기도 했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면서 동경했던 안나푸르나의 모습을 눈앞에서 바라보면서 그 웅장한 위용에 한동안 말을 잃었고 눈이 멀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구름에 가려 희미하게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은 선명하게 봉우리를 드러내고 하늘을 찌를 듯한 위용으로 우뚝 서 있다. 그 면모가 마치 그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고 세상을 굽어보는 강자의 여유와 함께 감출 수 없는 카리스마로 보였다. 그리고 무수한 세월을 견뎌내면서도 변하지 않는 명산의 위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일출과 함께 드러나는 붉게 물든 정상의 모습은 뜨거운 불길에 몸을 담근 쇳덩어리 같았고, 만년설의 옷을 입고고 춥지도 않은지 떨지도 않고 어찌 저리 한결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이 귓전을 스쳤다. 4130m 고지에서 바라본 히말라야 14좌 중의 하나인 안나푸르나는 실제로 8091m, 그러니 안나푸르나를 실제로 가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걸어온 만큼은 더 가야 직접 대면할 수 있다. 그건 평범한 산행을 하는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다. 여전히 그 신비의 안나푸르나에 근접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서머싯 몸의 대표작, 『달과 6펜스』라는 소설처럼, ‘6펜스’의 힘으로 근접할 수 없는 ‘달’의 세계가 바로 안나푸르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아름다움은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위험함이라고 했을까.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은 위험함을 무릅쓰고 사투 끝에 피워낸 성취결과다. 위험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안나푸르나가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도 위험한 곳에 위치해서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른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일을 나답게 살아가는 사람:
아름다움은 나다움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결국 어제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고 나답게 살기 위해 나에게 어울리는 일을 찾아 끝없는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어른은 어리석은 아이가 환골탈태하면서 어제와 다른 모습으로 거듭난 결과 보여주는 인간다운 면모다. 어른이 될수록 더욱 원숙해지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일을 찾아 혼신의 힘을 다해 몰입하면서 아름다운 면모를 가꾸어나가는 여행자다. 어른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여섯 가지로 정리해보면서 내 삶의 드라마이자 파노라마의 막을 내릴까 한다.
아름다움은 어루만짐이다.
아름다운 사람은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생각하면서 어루만져주는 사람이다. 아름다운 사람은 측은지심이 강해서 역지사지(易地思之) 입장에서 타인의 아픔을 온몸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아름다운 사람은 타인의 아픔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사람이다.
아름다움은 앓음 다움이다.
아름다운 사람은 아픔을 극복하고 보여주는 인간다운 면모가 있는 사람이다. 아름다움은 앓음다움이다. 앓고 난 사람이 보여주는 인간다움에서 아름다움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다. 아파본 사람이 아픈 사람을 이해해주는 마음 역시 아름다운 마음이다.
아름다움은 알음다움이다.
아름다운 사람은 뭔가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사람이다. 아름다움은 그래서 알음다움에서 비롯된 말이다. 사물의 본질과 정수를 제대로 파악해내는 사람이 그 사물의 아름다움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아름다운 사람은 대강 대충 앎을 추구하지 않고 집요하게 파고들어 마침내 본질을 꿰뚫어 볼 줄 아는 사람이다.
아름다움은 사람다움이다
타인을 배려해주고 존중해주는 인간적 사람,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여주는 겸손한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이다. 아름다운 마음이 아름다운 몸을 결정하고, 아름다운 몸이 다시 아름다운 마음을 만들어간다.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면서 사람의 ‘ㅁ’이 사람의 ‘ㅇ’으로 바뀌면서 아름다움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움은 어울림이다
일생일대의 과제는 나에게 어울리는 일을 찾는 것이다. 어울리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이다. 어울리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는 사람은 표정도 몸짓도 부자연스럽고 거추장스럽다. 자신이 하면 딱 어울리는 일을 해야 세상에 울림을 줄 수 있다. 어울림에서 아름다움이 탄생하고 어울려야 더 아름다운 울림을 줄 수 있다.
아름다움은 나다움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나답게 살아가는 사람, 가장 멋진 아름다움은 그래서 나다움에서 비롯된다. 나다움을 드러낼 수 있는 일을 찾아 열정적으로 몰입하고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