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비고츠키의 사회역사적 관점에 비추어 본 책 쓰기의 본질을 생각해보다
책 쓰기는 칠전팔기의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이어지는 필살기다
다음 글은 비고츠키의 《마인드 인 소사이어티》와 《관계의 교육학, 비고츠키》 두 권의 책을 스터디하면서 읽고 느낀 점을 박동섭 교수의 《레프 비고츠키》를 참고로 읽으면서 책 쓰기에 대입해서 비고츠키의 사회역사적 심리학적 관점을 생각해본 글이다.
지금 키보드 위의 자판을 두드리며 머릿속의 생각은 단어를 배열하면서 한 문장을 쓴 다음 마침표를 찍고 있다. 한 문장이 완성되기 위해서 우선 컴퓨터라는 도구를 활용, 생각한 글을 자판을 두드리며 적확한 단어를 찾아 일정한 논리체계로 배열해야 한다. 우선 당장 의문이 드는 것은 한 문장에 담긴 생각은 과연 어디서 유래된 생각인가? 전적으로 나의 독창적인 생각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나와 다른 세계에 살아가는 사람이 쓴 글이나 책을 읽고 생긴 생각인가? 그리고 나는 지금 컴퓨터가 놓인 책상과 앉아서 편안하게 글을 쓰게 만들어준 의자의 도움 없이 자판을 두드리며 머릿속 생각을 하얀 한글 워드프로세서를 통해 컴퓨터라는 도구의 힘을 빌리지 않고 한 문장을 완성할 수 있을까? 특히 문장 속에 담긴 내 생각은 이제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다양한 상황에서 낯선 마주침을 통해 얻은 깨우침의 사회역사적 산물이라면 내가 쓰는 모든 글이나 책도 나의 독자적인 노력으로 이루어진 전문성의 산물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창작은 창작과정에 관여되는 다양한 도구로 매개된 사유의 축적물이자 창작 과정의 원료로 작용하는 느낌이나 생각을 잉태시킨 사회역사적 합작품이다.
책 쓰기는 지금까지의 삶을 사회역사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인간은 주위의 도구와 타인의 협력이 없으면 세상을 살아가기 힘든 존재”(박동섭, 2016, xiii-xiv)라는 주장은 러시아 심리학자 레프 비고츠키(Lev Vygotsky)의 핵심 주장이다. 예를 들어 내가 한 권의 책을 쓰는 활동도 한 사람만의 독자적인 능력을 독립된 공간에서 수행하는 개별적 수행이나 외로운 사투의 산물이 아니다. 오히려 책을 쓰는 활동은 책을 쓰도록 도와주는 수많은 협력자들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주고받으며 만들어가는 상호작용의 합작품이다. 우선 책을 쓰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한다. 글짓기로 글을 축적되어야 일정한 논리체계와 구조로 엮어서 책을 완성한다. 글을 쓰려면 글감이 필요하다. 글감은 주로 작가의 영감에서 비롯된다. 작가의 영감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지 않는다. 작가의 직간접적인 경험의 깊이와 넓이가 영감의 수준을 결정한다. 작가가 지금까지 경험한 경계(움벨트)를 넘어서는 경험을 통해 낯선 사람이나 환경과 마주침을 통해 깨우침을 얼마나 얻었는지, 즉 작가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은 인간관계의 깊이와 넓이가 글감의 사회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원천이다.
작가의 글쓰기 상상력은 결국 작가가 지닌 직간접적 경험이 글쓰기의 원료로 얼마나 빈번하게 연결되느냐의 문제다. 글쓰기 상상력은 발상이 아니라 연상인 이유다. 연결될 글감이 많을수록 다양한 방식으로 재료를 연결시켜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감이 풍부하다고 글을 바로 쓸 수 없다. 글감은 언어를 매개로 문장으로 표현된다. 아무리 글감이 풍부하고 생각이 독특하다고 해도 독특한 생각을 전달할 적확한 언어로 구체적으로 매개되지 않는다면 글의 해상도는 흐릿해지고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다. 나아가 똑같은 개념이라고 할지라도 일상생활에서 별 다른 의문 없이 사용하는 일상 언어, 예를 들면 사랑이나 행복의 의미를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다 어느 순간 이런 개념의 철학적 개념 분석을 통해 새로운 의미로 받아들이는 깨달음이 생긴다.
동일한 개념일지라도 그것이 품고 있는 심오한 의미를 일상적 삶에서 겪는 다양한 애환이나 문제를 적확하게 풀어내는 개념 사용 능력을 갖게 될 때, 그 사람이 언어를 매개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수준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랍게 발전하게 된다. 언어 사용 능력의 발달은 고등정신 능력 발달을 좌우하는 핵심 동인으로 작용한다는 게 비고츠키의 일관된 주장이다. 이전과 다른 주장을 논리적이면서도 설득력 있게 펼치려면 이전과 다른 언어 사용 방식을 부단히 배우는 수밖에 없다. 기존 언어 사용 방식을 부정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언어를 사용할 때 사고 역시 통념에 갇히게 되고 고정관념에 젖어 살 수밖에 없다.
글을 짓거나 책을 쓰는 모든 활동은 작가나 저자의 외로운 노력으로 전개되는 독립적인 과정이 아니다. 내가 뭔가를 쓴다는 의미는 쓸 수 있는 기반이나 조건을 갖춘 상태에서 머릿속에서 표류하는 산만한 생각을 언어를 매개로 일정한 논리체계로 정리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생각도 고정 불변한 상태로 머릿속에 쌓여있는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글을 쓰는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다른 생각과 짝짓기를 시도하면서 다른 생각으로 잉태되고 출산되는 역동적인 흐름이다. 생각이 고정 불변하는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유동하는 역동적인 흐름이라면 글짓기나 책 쓰기도 사전에 철저하게 기획된 일정한 절차나 프로세스를 따라가면서 빈 공간을 메우는 기능 연습이나 연마의 산물이 아니다.
아직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근접발달영역(ZPD: Zone of Proximal Development)’을 넘어서는 잠재적 발달 영역으로 근접하기 위한,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 내가 머물렀던 영역과 경계 너머의 세계로 넘어서려는 노력을 통해 나의 인식체계가 무너지는 통렬한 아픔을 경험하는 과정이 책 쓰기다. 책 쓰기는 단순히 내가 살아온 경험의 회고록을 쓰는 게 아니다. 과거의 경험이 과거의 세계에 머물러 존재하지 않고 책 쓰는 작가의 해석적 노력에 의해 역사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이 책 쓰기다. 사회역사적 관점을 띠는 비고츠키의 심리학적 접근이 의의를 갖게 되는 이유도 파편화된 경험적 흔적으로 산재하는 개별적 추억을 지금 여기의 시각과 관점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오늘의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회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과정을 통해서 거듭나고 있는지를 깨닫게 해 주기 때문이다.
책 쓰기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변증법적 과정이다
이런 점에서 책을 쓰는 행위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격동의 삶을 통해 작가가 맺어온 인간적 관계에 대한 사회역사적 해석의 문제다. 이 말은 책 쓰는 요령이나 기술을 따로 배운 다음 책을 쓰는 게 아니라 책을 쓰려는 저자의 삶이 어떤 희로애락을 담고 있는지, 저자가 되려는 사람이 어떤 인간적 관계 맺음을 맺으면서 여기까지 살아왔는지를 사회역사적으로 해명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책이라는 부산물이 나온다는 이야기다. 삶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설명과 해석의 텍스트다. 내가 살아가는 삶을 다른 사람의 삶과 비교할 수 없다. 매 순간 벌어지는 일이 발생하는 상황적 맥락에서 해석되는 삶의 의미도 다를 뿐만 아니라 해석의 주체가 어떤 관점으로 이해하려고 발버둥 치는지 조차도 천차만별이다. 모든 사람의 삶의 그 자체가 절대적이며 구체적인 특수함과 고유함을 지니고 있다. 똑같은 경험을 했어도 누가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으며, 그 당시의 느낌과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는지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이해된다. 경험에 대한 ‘해석’이 다르면 경험이 품고 있는 의미나 거기서 배운 교훈에 대한 ‘해설’도 다르고 경험적으로 직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도 달라진다. 책 쓰기는 과거의 경험을 탐문하면서 그 경험이 담고 있는 의미를 지금 여기의 상황에서 사회역사적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을 남김없이 담아내려는 애쓰기다.
비고츠키의 《마인드 인 소사이어티》에 따르면 점진적 인지발달을 거부한다. 오히려 비고츠키는 아동발달을 변증법적 과정으로 이해한다. 책을 쓰는 과정도 변증법적 과정이다. 책을 쓰는 과정은 일정한 기술을 체계적으로 익혀서 필요한 능력을 점진적으로 축적한 다음 쓰는 활동이 아니다. 변증법적 과정은 사전에 구획한 계획이나 체계적인 절차 또는 방법을 일정한 논리로 따라가는 순차적이고 알고리듬적인 과정 자체를 거부한다. 글을 짓거나 책을 쓰는 과정도 사전에 책 쓰기 기술이나 방법을 체계적으로 배우며 필요한 능력을 축적한 다음, 책을 쓰는 과정이나 단계별 필요한 기술을 순차적으로 꺼내서 활용하는 기능적 능력을 발휘하는 전문성 개발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책을 쓰는 과정은 비고츠키가 말한 바와 같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변증법적 과정이다. 변증법적 과정으로서의 책 쓰기는 책을 쓰는 과정에 동원되거나 관여되는 도구나 장비, 책을 쓰는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생각, 그 생각의 원천으로 작용하는 다른 사람의 글이나 말, 책을 쓰고 있는 저자가 만났던 복잡한 인간관계가 산발적이면서도 급작스럽게 만나고 부딪히며 서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과정이다. 변증법적 과정으로서의 책을 쓰는 과정은 느닷없이 떠오르는 생각이 난반사로 뻗어나가다 과거의 경험과 연결되어 다른 생각으로 발전되는 연상 작용이 일어나다가 갑자기 파국과 단절을 맞이하며 생각이 막히는 과정이 일정한 주기 없이 왔다 갔다 하는 질적 변형의 과정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흐름이다.
책 쓰기는 나와 다른 세계에서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을 욕망하는 과정이다
책을 쓰는 능력은 오로지 책을 쓰는 과정에서 스스로 위기의식을 품고 온몸으로 밀고 나갈 때 생긴다. 책 쓰기 관련 책을 사전에 읽었거나 책 쓰기 관련 능력을 교육을 통해 배웠다고 해서 책을 바로 쓸 수 없다. 책은 어떻게 쓰는지는 책을 써보지 않고서는 영원히 알 수 없는 수수께끼다. 수수께끼가 완전히 해소되어 더 이상 궁금증이나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다면 사람은 거기서 탐험이나 탐구를 멈춘다. 아직 모르는 분야가 존재하고, 그것을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는 가정이 성립할 때 앎은 끊임없이 전개된다. 책을 써본 경험이 있다고 해서 책을 어떻게 쓰는지 알았다고도 장담할 수 없다. 책을 쓰면 쓸수록 책을 어떻게 쓰는 것인지는 영원히 알 수 없는 미지의 수수께끼가 존재한다.
그 수수께끼 영역에 도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며 매일 조금씩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책을 한 권도 안 써본 사람도 어느 정도 스스로 노력해서 책을 쓸 수는 있다. 다만 책의 수준이 문제 될 뿐이다. 책을 보다 잘 쓰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으로 책을 써본 전문 코치의 도움을 받아 이제껏 도달해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으로 자신의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비고츠키가 말하는 근접발달영역(ZPD: Zone of Proximal Development)도 결국 현재 능력 수준을 아직 한 번도 도달해보지 못한 잠재적 발달 영역으로 가기 위해 전문가의 집중적인 도움이 필요한 일종의 중간 가교(架橋)다. 근접발달영역은 책을 이전보다 잘 써보려는 배우는 사람의 노력과 배우는 사람의 책 쓰기 능력을 지금보다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가르치는 사람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이 교차하면서 다양한 도구와 환경이 역동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사회역사적 체험의 축적 공간이다.
책 쓰고 싶고 지금보다 한 단계 자신의 능력을 심화시키고 싶은 욕구를 촉발시키는 추동력은 자기 삶을 불멸의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오늘도 안간힘을 쓰면서 애쓰는 작가로서의 스승이 몸으로 증명할 때 생긴다. “’배우는 것에 대한 욕구’는 ‘배우는 것에 대한 욕구’를 실제로 살고 있는 교사로부터 밖에 배울 수 없다(박동섭, 2016, p.98). 책을 쓰고 싶은 욕구도 책이라는 매개체가 존재하지 않을 때는 생기지 않는다. 책이라는 지적 자극제가 세상에 존재할 때 비로소 책을 쓰고 싶은 욕구가 꿈틀거린다. 욕구는 본래부터 내가 갖고 있었던 심리적 촉발점이 아니라 욕구를 자극하는 외재적 실체가 출현할 때 비로소 꿈틀거리는 감정적 자극의 발로다. 책도 책 나름이다. 내가 직면한 삶과 비슷하거나 비슷한 삶 속에서 겪고 있는 애환이나 문제의식이 공감될 때 그 책은 나로 하여금 책을 읽게 만들고 결국 그 책을 넘어서는 나만의 문제의식이 담긴 내 책을 쓰고 싶은 욕구가 발동된다.
이런 점에서 배우는 것에 대한 욕구는 배우는 것에 대한 욕구를 책으로 구현시킨 모든 작가야 말로 내 삶을 이전과 다르게 살아가라고 부단히 욕망하게 만드는 스승이다. 나와 다른 세계에서 다른 생각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기록된 책을 읽어야 되는 이유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생각이나 상상을 하는 사람들의 삶은 도대체 어떤 과정을 통해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추체험함으로써 간접적으로 그런 사람들의 삶으로 들어가 보는 과정이 책 읽기다. 모든 읽기는 쓰기를 지향하고 욕망한다. 읽기가 쓰기로 연결되지 않으면 읽음으로써 생긴 깨달음은 내 삶의 일부로 녹아들지 않는다.
책 쓰기는 복수의 인연들이 관여되는 역동적인 상호작용 과정이다
비고츠키에 따르면 책을 쓰는 과정은 “생각한다는 것은 기억하는 게 아니라 기억한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라는 관점에 상응한다. 생각하는 것은 과거에 겪었던 경험을 그냥 기억하는 게 아니라 내 몸을 관통하며 남긴 느낌이나 감정의 흔적을 연결시켜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이 내 삶에 던져주는 시사점이 무엇인지를 반추하고 성찰하는 집요한 노력이다. 뭔가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모래알처럼 산만하게 퍼져 있는 사건이나 사고 경험을 일정한 논리체계나 구조적인 틀로 엮어서 새로운 의미로 태어날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책을 쓰는 과정은 새로운 통찰이나 교훈을 발상하는 과정이 아니라 이제까지 겪었던 다양한 경험적 흔적을 파고들어 그때마다 내 몸으로 직접 깨달은 삶의 교훈이나 통찰을 연결시켜 상상력을 발휘하는 과정이다. 책을 쓰는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원인들이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주고받으면서 예측할 수 없는 결과로 만들어낸다.
강신주의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에 보면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는 세 가지 접근이 나온다. 첫째는 인과설(因果說)이다. 단 한 가지 원인(原因)이 결과(結果)를 만들어낸다는 입장이다. 인과설은 하나의 원인을 강조하고 그것이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입장이다. 두 번째
인연설(因緣說)이다. 복수의 인연(因緣) 중에서 특별히 하나를 가장 영향력 있는 원인(原因)이라고 가정하는 입장이다. 하나의 원인이 많은 조건(緣)에 따라 다르게 변화되는 과정을 중시한다. 인연설은 인(因)과 연(緣)을 동시에 강조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셋째, 연기설(緣起說)이다. 어떤 결과를 만들어낸 원인을 주목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 복수의 인연(因緣)들이 마주쳐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다양한 존재가 어떤 인연(因緣)緣을 만들어낼지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인연설은 복수의 연(緣)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책 쓰기도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는 세 가지 입장에 대입해보면 재미있는 해석을 할 수 있다. 인과설에 따르는 책 쓰기는 예를 들면 오로지 책을 쓰려는 작가의 능력, 자세와 태도 등이 책을 작품으로 완성하는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강조한다. 비고츠키가 비판하는 단선적 인과설의 한계다. 두 번째 인연설에 따르는 책 쓰기는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책 쓰기 결과물은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때는 책을 쓰는 외생적 변수, 예를 들면 책을 쓰는 도구나 부실하거나 책을 내주는 출판사가 부실함이 책을 생각대로 출간할 수 없게 만드는 주범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은 책 쓰기 과정에 관여되는 다른 변수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특정한 원인이 다른 원인에 비해 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책 쓰는 과정에 관여되는 다른 변수들의 영향력이 유명무실하다는 게 아니다. 이런 점에서 책 쓰기는 그 자체가 수많은 변수들이 융복합적으로 관여되는 연기설에 비추어 이해할 때 보다 현실적으로 와닿는다. 책 쓰기에 대한 연기설은 책 쓰는 과정에 대한 비고츠키의 사회역사적 관점과 일맥상통한다. 책을 쓰는 과정은 작가나 저자의 독자적인 능력으로 사투를 벌이는 외로운 노력이 아니라 책 쓰는 과정에 관여되는 인간적이고 물질적인 변수들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의 합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