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始作) 하지 않으면 시작(詩作)도 되지 않는다
‘실력’은 ‘실패’ 속에서 피는 열매다!
실패는 뜻밖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연상작용의 원천이다
공업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용접기능사 자격증을 몇 번의 실패 체험 끝에 딴 적이 있다. 첫 번째 용접기능사 시험 날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시험에 임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실수로 온도조절을 잘 못해서 철판에 구멍이 뚫어져버렸다. 이미 합격은 물 건너 간 셈이다. 시험에 떨어졌음을 직감한 순간, 용접봉을 녹여서 철판에 구멍을 더 크게 뚫어버렸다. 철판을 생각하면 어느 순간부터 보름달이 연상된다. 철판과 보름달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지만 철판 용접을 하다가 철판에 구멍을 크게 뚫어보면서 용접기능사 시험에 실패해본 사람에게 철판과 보름달은 깊은 연관이 있다. 철판에 구멍을 뚫어본 사람만이 철판과 보름달을 연결시켜 글을 쓰거나 연상을 통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용접 기능사 시험은 비록 실패했지만 덕분에 철판과 보름달을 연결시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소중한 깨달음을 얻은 셈이다. 상상력은 체험적 상상력이어야 창조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상’으로 끝나는 말, 예를 들면 공상(空想), 허상(虛想), 망상(妄想), 몽상(夢想), 환상(喚想), 상상(想像) 중에서 힘 력(力)자가 붙는 말은 상상력(想像力) 뿐이다. 체험적 상상력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창조적 변화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실패는 뚯 밖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작용한다. 2012년도 사하라 사막 울트라 마라톤에 도전한 경험이 있다. 6박 7일 동안 하루에 40Km 거리를 제한된 시간 내에 달리는 극한 마라톤인 셈이다. 안타깝게 3일째 되는 날 120Km 지점에서 모래 언덕을 오르다 탈진 상태가 되어 레이스를 도중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사하라 울트라 마라톤에 도전하기 위해 아파트 34층을 배낭 10Kg을 짊어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연습도 하고 한양대학교와 분당 사이를 주말에 왕복하는 달리기 연습도 했었다. 체력은 문제없다고 생각했지만 전날 음식을 거의 못 먹은 탓으로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달린 게 패인으로 작용했다. 비록 마라톤 완주에 실패했지만 덕분에 색다른 체험적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는 말을 절대로 쓰지 마라.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는 말을 믿고 달리다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달았다. 한계는 책상에 알 수 없고, 한계에 몸으로 도전해본 사람만 알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옳다고 믿는 신념도 잘못된 통념이 될 수 있음을 실패를 통해서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구겨진 종이비행기가 멀리 날아간다
주름은 마치 구겨진 종이와 같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삶이 많이 구겨진다. 나의 의지대로 되지 않을 때 바깥의 뜻하지 않는 힘에 굴복당할 때도 있고, 멀쩡하게 걸어가던 사람이 느닷없이 나타나 장애물에 의해 넘어질 수도 있다. 우여곡절의 삶을 살다가 겹겹이 쌓이는 구구절절한 사연이 구겨진 종이처럼 내 몸에 얼룩으로 남는다. 종이가 많이 구겨질수록 정석대로 접은 비행기보다 멀리 날아간다. 우여곡절이 많은 구겨진 종이일수록 원하는 방향으로 멀리 날아간다. 똑바로 접은 비행기는 내 마음대로 날릴 수 없지만 종이를 구겨서 만든 종이비행기는 내 의지와 방향대로 멀리 날아간다. 시련과 역경을 경험하면서 나도 모르게 내 몸에 각인된 다양한 주름은 세상을 살아가는 밑거름이 된다. 그만큼 세상의 흐름을 타고 나의 주체적 의지대로 험난한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내력(耐力)이 생긴다.
힘든 세상을 살아오면서 내 몸에 생긴 주름이 안으로 굽어지면서 그 안에 내가 겪은 숱한 삶의 애환이 사연으로 쌓인다. 주름이 안으로 생겨서 의미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함축된다. 그게 바로 시사점(implication)이나 암시(暗示)다. 주름(pli)이 안(im)으로 생겨서 내포되거나 함축된 의미, 즉 함의(含意)다. 반대로 그 주름의 의미를 겉으로 드러내 놓고 의미를 따져보는 게 설명(explication)이다. 주름이 안으로 접히면서 의미를 품고 있는 시사점이나 그 주름을 펼쳐보면서 주름에 내포된 의미를 따져보는 설명은 모두 한 사람이 이름값을 하면서 만들어온 삶의 역사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행위다. 안으로 품고 있는 주름의 시사점은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사람은 인생의 ‘주름’과 ‘씨름’하면서 ‘나름’의 의미를 만들어가며 자기 ‘이름’ 값을 하면서 살아간다. 인생의 고비마다 ‘먹구름’이 낄 때도 있고, ‘시름시름’ 앓아가면서 힘든 삶과 사투를 벌이지만 여전히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아서 공허할 때가 많다. 그러다가 갑자기 누군가의 ‘부름’을 받고 ‘심부름’을 하거나 한 시대의 ‘흐름’을 타고 ‘소름’ 끼칠 정도로 일이 잘 풀리면서 승승장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인생은 ‘모름’의 바다이며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 일들이 ‘고름’처럼 우리들을 괴롭히며 아픔을 얼룩으로 남긴다. ‘한시름’ 놨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 고드름이 뚝 떨어지듯 절망과 좌절의 주름이 나도 모르게 늘어만 간다. 내가 겪은 모든 주름의 흔적은 ‘밑거름’이 될 수 있고 용오름처럼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상승기류를 타며 자기 존재를 ‘아름’ 답게 드러냄으로써 한 편의 화양연화(花樣年華)와 같은 ‘필름’으로 남기기도 한다.
열심히 매진하고 몰입하다가도 갑자기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거나 ‘게으름’ 피우고 싶어서 거들먹거리는 시간도 많을 때가 있다. 타는 ‘목마름’으로 뭔가를 갈구하다가도 수단과 목적이 구분되지 않고, 뭐가 뭔지 혼돈스러울 때 ‘푸르스름’하거나 ‘누르스름’하며 ‘거무스름’하게 인생이 흑백논리나 양자택일로 구분되지 않는 경우도 많이 생긴다. 하나의 잣대로 ‘판가름’ 하기 어려운 경우다. 겉으로 보기에는 ‘허름’하게 보여도 내면으로 축적한 인생의 ‘주름’은 그 누구보다도 ‘아름’ 다운 사람이 많다. 이런 모든 직간접적인 경험의 축적이 ‘주름’으로 생기면서 한 사람의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내 삶은 실수의 백과사전이었어요. 실수의 박물관이었죠”(22쪽). 보르헤스와 인터뷰한 내용을 쓰는 《보르헤스의 말》이라는 책에 나오는 말이다. 실수와 실패의 얼룩과 무늬가 씨줄과 날줄로 엮이는 가운데 다양한 주름이 생기고, 그 주름이 바로 한 사람의 이름값을 한다고 생각한다.
넘어져 봐야 다른 기회가 보인다
돼지는 목뼈 구조상 일정한 각도 이상 고개를 들 수 없어서 평생 땅만 보고 사는 슬픈 짐승이다. 그런데 돼지가 하늘을 볼 방법을 발견했다. 어느 날 돼지가 발을 잘 못 디뎌서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그 덕분에 난생처음으로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돼지가 하늘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넘어지는 것이다. 넘어져 봐야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색다른 가능성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실패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볼 수 없었던 색다른 가능성을 볼 낯선 기회와 무대를 마련해준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볼 수 없었던 색다른 기회를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볼 수 있다. 넘어져야 신세계를 볼 수 있다. 세상에는 땅만 있는 것이 아니라 푸른 하늘도 있다. 성공의 오르막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패의 내리막길도 있다. 실패의 내리막길로 내려 가봐야 다시 성공의 오르막길을 오를 수 있다.
실패로부터 배우는 사람과 조직은 실패를 견디고 일어설 수 있다.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여정 속에서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일종의 자양 강장제다. 인간은 실패를 통해서 성장하는 동물이지만 비슷한 실패를 반복해서는 성장할 수 없다. 실패를 딛고 일어선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실패에 임하는 자세와 태도가 남다르다. 누구나 넘어질 수 있다. 넘어지는 것은 나의 잘못으로 넘어질 수도 있고 남의 잘못으로 넘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넘어지고 나서 일어서지 않는 것은 철저하게 나의 잘못이다. 넘어지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 넘어지고 나서 일어서지 않는 것이 실패다.
실패해봐야 내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사람은 실패하면 실패 경험을 복기하면서 다음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비판적으로 따져보고 물어본다. "성공은 그릇이 가득 차는 것이고, 실패는 그릇을 쏟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성공은 가득히 넘치는 물을 즐기는 도취임에 반하여, 실패는 빈 그릇 그 자체에 대한 냉정한 성찰입니다. 저는 비록 그릇을 깨뜨린 축에 속합니다만, 성공에 의해서는 대개 그 지위가 커지고, 실패에 의해서는 자주 그 사람이 커진다는 역설을 믿고 싶습니다." 신영복 교수님의 실패에 대한 성찰은 우리들의 성공을 무색하게 만든다. '빈 그릇 자체에 대한 냉정한 성찰'이야말로 색다른 가능성의 그릇을 채우려는 몸부림이다.
사람은 오로지 실패를 통해서 자기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실패를 해봐야 실패에 대한 냉정한 성찰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잘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실패는 색다른 자기 혁신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다. 이 세상의 모든 혁신은 모두 실패를 먹고 자란 나무이며 줄기이자 가지이고 꽃이며 열매다. 성공의 뒤안길에 흐르는 실패의 얼룩이 아름다운 혁신의 무늬로 나타난다. 수없이 깨뜨리고 깨진 흔적이 깨달음의 무늬로 탄생한다. 불확실한 세계에 도전해본 '모험'과 '탐험'을 직접 해본 '체험'이 없는 사람은 '위험'이 닥쳐오면 금방 '시험'에 들어 곤경이 빠지기 쉽다. 가장 안전한 '보험'은 다양한 실패 '체험'을 하면서 온몸으로 깨달은 삶의 지혜다. 실력은 실패 체험으로 깨달은 지혜가 온몸에 각인된 결과로 살아 숨 쉬는 저력(底力)이다.
시작(始作) 하지 않으면 시작(詩作)도 되지 않는다
남다른 실력을 쌓는 사람은 남과 비교하지 않고 어제의 나와 비교한다. 남보다 잘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전보다 잘하려고 노력한다. 경쟁상대를 밖에 두지 않고 안에 둔다. 가장 위대한 승리자는 남과의 경쟁에서 이긴 사람이 아니라 자신과의 경쟁에서 이긴 사람이다. 남다른 실력을 쌓는 사람은 어제와 다른 문제와 만나고 어제와 다른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같은 일을 반복해도 어제와 다른 질문을 던져 어제와 다른 답을 찾아 나선다. 세상을 향해 던지는 질문을 바꿔야 내가 얻을 수 있는 답이 바뀐다. 어제와 색다른 문제를 만나야 어제와 다른 답을 얻을 수 있다. 문제없는 삶, 문제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어제와 같은 삶을 반복하는 사람이다.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사람도 일으키고 삶도 일으킨다. 색다른 문제와 만나는 사람, 전대미문의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남다른 실력을 쌓아 위대한 성취를 이루는 사람이다. 위대한 성취의 뒤안길에는 모색하고 실험하면서 겪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의 아픔이 서려 있고 실망과 실패, 좌절과 절망의 그림자가 숨어 있다.
실패할까 봐 걱정만 하고 아무 일도 못하는 사람은 타석에 들어서 아웃될까 봐 아예 타석에 들어가지 않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을. 야구에서 안타를 치기 위해서는 우선 타석에 들어서서 삼진 아웃도 당해보고 땅볼 아웃도 당해봐야 아웃되지 않는 새로운 방법을 몸소 깨달을 수 있음을. 색다른 방법은 책상에 앉아서 생각해내는 대안이 아니라 실제 몸을 던져 실행하는 가운데 우연히 부각되는 묘안이다. 법은 내 마음대로 만들 수 없지만 방법은 내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 방법은 책상에 앉아서 머리로 구상하는 게 아니라 직접 실천하는 가운데 우연히 부각되는 색다른 대안이다. 뭔가를 가장 확실히 배우는 방법은 성공체험을 모방하고 실제로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하는 노력보다 실패를 몸소 체험해보고 다음 기회에는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가능성을 성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방법이다.
성공의 반대는 실패가 아니라 ‘시도하지 않음’이며, 시도하지 않으면 멋진 성공도 교훈적인 실패도 체험할 수 없다. 시작(詩作)도 시작(始作)해야 가능하다. 한 편의 시를 창작하는 일도 무수한 실패를 밥 먹듯이 하다가 어느 순간 영감이 떠오르면서 완성하는 지난한 작업이다. 시작하고 시도해봐야 안 되는 방법을 몸으로 익히고 되는 방안도 문득 떠오른다. 색다른 시행착오가 판단 착오를 줄여준다. 판단 착오를 줄이려면 어제와 다른 시행착오를 경험해봐야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시작하기도 전에 너무 오랫동안 계획을 세우거나 준비를 하다 실기(失期)한다. “모든 것의 시작은 위험하다. 그러나 무엇을 막론하고,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163쪽).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I》에 나오는 말이다. 뭔가를 시작하지 않거나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시작하지 않고 시작하지 않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시작하는 방법은 그냥 시작하는 것이다. 안 되면 이전과 다르게 시도하면 색다른 시작으로 놀라운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
위대한 성취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
위대한 성취는 위대한 실패에서 나온다. 트위터 본사에 가면 "내일은 더 멋진 실수를 하자. (Let's make better mistake.)"는 문구가 걸려 있다. '더 좋은 실수'라는 말은 오늘과 비슷하거나 같은 실수가 아니라 이전에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색다른 실수나 실패를 하자는 말이다. 색다른 실패는 색다른 도전을 했다는 증거다. 색다른 도전이 색다른 실패를 낳으며, 색다른 실패라야 색다른 실력을 쌓을 수 있다! 남다른 실력을 쌓으려거든 남다른 실패를 해봐야 한다. 진짜 '실력'은 '실수'나 '실패'로부터 쌓인다. 같은 '실수'나 '실패'는 '실망'을 가져다주지만 색다른 도전을 하다가 경험하는 '실수'나 '실패'는 색다른 학습을 가져오며, 색다른 학습은 이전과는 다른 '실력'과 '실적'을 만들어준다. 비슷한 실패를 반복하는 사람과 조직에는 학습이 발생하지 않으며 희망이 없다.
혁신을 통해 정상에 오른 사람은 모두 정상이 아니다. 정상에 오른 사람은 비정상이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 무수한 도전과 실패 속에서 색다른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바로 정상에 오른 비정상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혁신은 비정상적인 방법, 비합리적이고 비체계적인 전략 속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단 분명한 목적의식과 불굴의 의지, 그리고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인내와 끈기가 마침내 혁신의 불꽃을 피운다.'실수'나 '실패'했다고 '실망'은 하되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언제나 '희망'의 끈을 붙잡아야 한다. 걸림돌에 넘어졌다고 절망하고 좌절하기보다 걸림돌도 디딤돌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희망과 용기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걸림돌과 디딤돌은 같은 돌이다.
'1-29-300 법칙' 또는 '하인리히 법칙'이라고 있다. 한 번의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사태는 29번의 사고가 누적되어 나타난 것이며, 29번의 사고는 300번의 자질구레한 사건을 내버려 둔 결과 발생한다는 이야기다. 한 번의 심각한 사태는 29번의 사고를 방치 또는 간과한 결과이며, 29번의 사고는 300번의 조짐이나 징후를 무시해서 발생한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한 번의 심각한 사태도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증해준다. '1-29-300 법칙'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혁신의 원리를 배울 수 있다. 한 번의 위대한 성취(1)는 작은 성공체험(29)의 누적의 결과이며, 29번의 작은 성공체험은 매일매일 반복되는 진지한 실천(300)의 결과다. 한 번의 위대한 혁신적 성취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29번의 성공체험을 맛보아야 하며, 29번의 성공체험은 300번의 작은 실천을 진지하게 반복해야 비로소 탄생한다.
위대함은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하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저절로'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저절로' 되는 일은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저절로' 되는 유일한 방법은 진지한 실천을 반복하는 것이다. 실천하는 손이 생각하는 머리보다 위대하다. 손은 마음의 칼이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손과 발을 움직여 실천하는 것이다. 전문가적 식견과 안목, 독창적인 노하우와 능수능란한 스킬은 오로지 진지한 실천을 반복한 결과 축적되는 능력이다. 달인이 되는 유일한 비결은 반복 연습이다. 우선 달인은 일에 임하는 마음 자세가 다르다. 자신이 자기 분야의 최고라는 자부심을 품고 있지만, 자만심에 물들지 않기 위해 항상 초보자의 마음, 겸손한 마음으로 전력투구하려는 자세를 잃지 않는다. 자신도 모르게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손과 발이 '저절로' 움직이는 달인의 경지에 오르기 위한 유일한 비결은 연습도 실전처럼 '제대로' 수행하는 수밖에 없다. '제대로' 해야 '저절로' 된다.
- 이 글은 카이스트 실패 연구소 7월호 칼럼에 게재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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