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덕분에 이루어진 인생입니다
생일을 뒤집어 일생을 돌이켜 봅니다. 모두가 덕분에 이루어진 인생입니다
19??년대 충북 음성에서 한 여름의 끝자락에 세상 구경을 시작한 한 사람이 있습니다. 태어나 얼마 동안 살았는지 모르지만 아버지는 먼저 지금 여기서의 삶을 마감하고 하늘나라로 갔다는 전설만 들었을 뿐, 그 사람에게는 아버지 얼굴을 봤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한적한 시골 모퉁이 어느 집에서 자연이라는 인생학교를 다니며 수렵과 어로, 채취와 농경생활을 즐기며 생태학적 상상력을 몸으로 익혔습니다.
머리의 언어보다 몸의 언어로 사계절의 흐름을 배우며 홀어머니의 갸륵한 정성으로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 한 어린 소년은 일찍부터 축구 선수로 초등학교를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자랍니다. 극심한 가난 덕분인지 맨발로 축구를 하다 난생처음 신어본 축구화를 신었을 때, 그 운동화로 공을 찼을 때 내 몸에 각인된 첫 번째 신체적 기억은 영원이 잊을 수 없는 감각적 언어로 각인되었습니다. 일찍부터 내 몸은 축구화와 축구공, 그리고 운동장에서 단련된 숱한 시련과 역경의 주름이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언어적 비늘로 작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저마다의 주름으로 다양한 시름을 겪으며 자기 이름을 만들어갑니다.
“나 하나는 수도의 전부다”라는 공허한 슬로건으로 매일 아침 일조점호로 시작하는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은 내 운명의 서곡을 알려는 신호탄이기도 했습니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공부시켜 주는 것은 물론이고 졸업 후 취업까지 시켜준다는 감언이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가정의 형편은 회색빛 청춘을 보내며 극심한 방황의 곡선 여정을 체험하게 만듭니다. 물음표의 곡선을 아무리 던져도 직선의 느낌표는 여전히 오리무중인 상태, 적응 자체가 목표이고 졸업이 원대한 꿈인 시절, 고2 때 마지막 희망인 어머니도 영원히 볼 수 없는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반복되는 음주와 구타, 무기정학과 방탕으로 얼룩진 시기를 안간힘으로 버티면서 우여곡절과 파란만장한 고등학교 시절을 간신히 마칩니다. 졸업 후 평택화력발전소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방탕과 방랑, 그리고 방황의 끝자락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을 살아내는 유일한 낙과 희망의 원천을 술에서 찾았지만 취할수록 내가 원하는 세상을 취하기 어려웠습니다. 운명의 작란(作亂)은 말 그대로 난동을 일으키는 사건과 사고 속에서 자랍니다. 우연한 기회에 잡은 공고생의 고시 합격 수기집을 읽고 불온한 꿈을 품기 시작합니다. 고시공부로 밑바닥 인생을 뒤집어보겠다는 잘 못된 꿈을 품습니다.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는 생소했지만 나의 학력고사 점수로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진학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9년의 한전 의무복무 기간을 마치지 못하고 내 인생의 최대 결단과 선택을 하면서 고단한 인생의 연속선상에서 곧 추락하고도 남을 나도 모르는 웅비의 날개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고달픈 시험, 고시(考試)는 나를 행복한 길로 인도할 수 없는 쓰라린 고시(苦試)였습니다. 입신양명을 위해 품었던 잘 못된 꿈을 꾸기 전에 깨기로 결정합니다. 꿈꾸기 전에 꿈 깨야 되는 이유를 일찍 알았습니다. 관념적 꿈의 언어는 꿈의 목적지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몸으로 꾸는 꿈의 언어가 꿈의 목적지로 데려다줍니다.
고시를 포기하고 행복하게 공부하는 맛을 알았습니다. 읽고 싶었던 책을 다각적인 방향으로 읽어내는 과정에서 한 인생 선배님의 조언과 배려와 도움은 힘든 대학시절을 겪어낼 수 있는 원동력을 넘어 추동력으로 작용했고, 그 시절 만난 스승의 학은(學恩)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내 인생의 버팀목이 됩니다. 걸림돌에 넘어져 한탄도 해보았지만 결국 지나고 나면 그 걸림돌도 나에게 디딤돌이라는 선물로 되돌아와 미지의 세계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각종 법률용어로 얼룩진 언어적 비늘은 서서히 문사철을 비롯, 사유체계를 건축하는 새로운 개념어로 언어적 비늘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학비를 내지 않는 방법은 무조건 과수석을 하는 방법밖에 없어서 공부를 죽기 살기로 합니다. 공부가 재미있어서 하게 된 게 아닙니다. 생존 차원에서 공부에 매진하고 몰입하다 공부를 평생 업으로 삼는 대학교수가 되는 운명의 작란을 몸으로 겪어봅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근근이 벌어 석사까지 미친 듯이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떠 보면 학교 갈 토큰조차 없을 때도 잠시 절망하고 공부하는 길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도 해보았지만 욕파불능(欲罷不能)의 길로 나를 매진하게 만든 근원적인 마력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교육공학이라는 학문적 컬러는 누가 어떤 방법으로 공부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언어로 무장하게 만듭니다. 학습자를 행복하게 만드는 교육공학이 되기 위해 교육공학 밖에서 교육공학을 사랑하는 언어를 다른 인문사회과학적 사유에서 배웁니다.
사람은 사람을 만나 이전과 다른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만남은 한 인간이 운명조차 바꾸는 혁명이 되는 이유입니다. 사람과의 마주침은 스침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스며듬으로 심장을 파고들어 경이로운 기적이 시작되는 깨우침을 낳습니다. 좁은 문 안에서 좌정관천의 눈으로 세상을 살아가다 갑자기 열리는 가능성의 문이 내 능력을 능가하게 만들어주는 기회의 문입니다. 존경하는 스승님 덕분에 유학까지 가서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학위 자체보다는 학위를 받는 과정에서 세상을 다르게 살아갈 수 있는 보석 같은 깨달음을 얻습니다. 경계를 넘나드는 독서와 쓰기를 통해 지성의 폐활량은 복잡한 문제도 서두르지 않고 풀어낼 수 있는 지적 인내심의 언어를 내 몸에 각인시켜줍니다. 다양한 사유 실험으로 무장한 개념 체계는 나의 신념을 만들어가는 소중한 원료로 작용합니다.
체력이 부실해서 공부하다 쓰러진 아픈 경험 덕분에 90년대 초 운동을 시작합니다. 몸에 주는 작은 상처가 누적되면서 근육도 생기고 유산소 운동으로 기초 체력도 다지면서 공부와 운동은 유학시절을 버티게 만든 쌍두마차입니다. 습관의 무서운 기적을 매일 체험하면서 12시까지 아르바이를 하고 새벽 5시까지 공부하다 잠시 눈을 붙이고 다시 학교에 가는 생활을 반복해도 버틸 수 있는 힘을 길러나갑니다. 땀은 근육이 흘리는 눈물이라는 문학적 언어도 이 시절부터 몸이 토해낸 깨달음의 얼룩이자 무늬였습니다. 박사 지도교수님의 극진한 배려와 무한 응원 덕분에 박사 학위를 받고 삼성 그룹에 93년 말에 입사하면서 책상공부보다 더 소중한 배움의 이면을 깨닫습니다.
이론적 지식의 가치도 소중하지만 그것이 격전의 현장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통제할 수 없는 현실적 장애물을 만나며 일어나는 복잡한 결과는 이론적 원천의 재고는 물론 이론 자체를 새롭게 수정할 수밖에 없는 계기를 만들어 줍니다. 석사(碩士)는 석학 석사가 아니고 돌 석(石) 자를 쓰는 석사(石士)이고 박사(博士)는 천박한 박사(薄士)일 수 있다는 현장 체험적 결과는 학문적 언어가 신체성을 매개로 새롭게 변신하는 혁명적인 기반을 마련해줍니다. 등에 땀이 흐르는 긴장과 패배감은 자신감을 상실하게 만들었지만 어디서도 배울 수 없는 소중한 몸의 언어를 매개로 축적하는 실천적 지혜(Phronesis, Practical Wisdom)를 배우는 계기가 됩니다.
1995년 삼성 재직 시절 첫 책을 내고 98년까지 5년간의 현장 체험을 하면서 책과 논문을 추가로 더 쓸 수 있는 출발점을 마련했기에 안동대학교 2.5년 재직 시절에도 지칠 줄 모르는 글과 책을 쓸 수 있는 기반을 다집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운동하고 글을 쓰는 단순한 대학교수 생활을 시작하면서 긴 방황 끝에 찾은 인생의 방향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삶의 근원을 제대로 찾았다는 확신을 점차 갖게 됩니다. 읽고 쓰고 가르치고 연구하며 나로 인해 다른 사람과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켜 가는 삶은 애초부터 내가 꿈꾸던 길이 아니었습니다. 아예 꿈은 나에게 사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버티고 견뎌내는 삶이 그날 그날 내가 해야 될 숙제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숙제의 언어는 축제의 언어로 바뀌어갑니다. 남에게 배운 개념어지만 나의 체험적 깨달음과 신념을 추가해서 나만의 언어를 하나씩 개발해나갑니다.
2001년 꿈에도 없었던 모교로 자리를 옮기면서 절치부심하며 교회의 새벽 타종 소리를 들으며 공부했던 연구실에서 남은 인생을 보낼 수 있는 행운을 잡습니다. 학부와 석사, 그리고 박사과정까지 공부하면서 저는 사람 덕분에 오늘의 사람으로 거듭난 행복한 사람입니다. 저에게 소중한 삶의 교훈을 몸소 가르쳐주시고 인생의 방향을 가리켜 주신 스승님은 물론 인생의 소중한 선후배 여러분이 없었다면 오늘의 저는 존재할 수도 없었습니다. 박용후 대표와 공저로 쓴 《언어를 디자인하라》가 저의 95번째 작품입니다. 책으로 배운 수많은 언어적 상처와 몸으로 겪은 체험적 깨달음의 합작품이 다작을 낳는 기반으로 작용합니다. 오늘도 제 몸을 관통해서 지나가는 언어적 깨달음의 상처를 보듬으며 또 다른 삶의 신기원을 열어갑니다. 살아있는 동안 더 치열하게 고뇌하면서 심장박동을 가속화시키는 작은 족적을 남겨보려고 오늘도 활자의 바다를 건너며 몸으로 책을 읽고 실천하는 삶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오늘 한 사람이 태어난 날, 오늘의 저를 세상에 보내주신 부모님과 탕아를 버리지 않고 사람 앞에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경이로운 일을 하게 만들어준 모든 스승님,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과 인생의 동반자들에게 함께 꾸는 꿈의 경이로운 기적을 믿습니다. 내가 세상으로 던져진 의미가 헛되지 않도록 살아내며 깨닫는 삶의 의미를 더해가겠습니다. 사람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경이로운 업(業)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겠다는 다짐을 남깁니다. 변함없이 노력해야 오늘과 다른 삶으로 변화될 수 있음을 몸으로 증거 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살아있음에, 살아낼 수 있음에, 작은 파뿌리 하나 내리고 위험하지만 심장 뛰는 삶을 살아내겠습니다.
새벽이슬 한 방울에 풀잎이 휘어지고, 흩날리는 바람에 나뭇잎이 떨고 있어도 나의 작은 소망으로 억수같이 쏟아지는 소낙비를 막을 재간이 없습니다. 비수같이 꽂히는 가을바람이 선뜻 다가온 듯 어느 사이 시원한 바람이 겨울로 향하는 꿈을 싣고 지나갑니다. 뜨겁게 사랑했던 지난 여름의 열정을 가을의 전령사가 다가오기 전에 냉정함으로 식혀봅니다. 하지만 여전히 뭔지는 모르지만 미지를 향한 호기심의 물음표는 멈추지 않고 심장을 뛰게 만듭니다.
영어 이름 You Young Man처럼 영원한 영맨으로 언어를 벼리고 벼리면서 몸은 늙어가지만 생각을 낡아빠지지 않도록 더 낮은 자세로 공부하고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며 살아내겠습니다.
2022.8.28.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