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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나에게 꽂힌 ‘꽃’입니다

당신은 나에게 꽂힌 ‘꽃’입니다


벌새는 1초에 90번이나

제 몸을 쳐서

공중에 부동자세로 서고

파도는 하루에 70만 번이나

제 몸을 쳐서 소리를 낸다


나는 하루에 몇 번이나

내 몸을 쳐서 시를 쓰나(그대를 생각하나)

-천양희의 ‘벌새가 사는 법’ 전문, ( )안의 문장은 필자가 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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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벌새처럼 1초에 90번

파도처럼 하루에 70만 번

제 몸을 쳐서 소리를 내지만

나는 하루에 몇 번이나

내 심장을 쳐서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의미심장한 당신에게 꽂혔습니다


당신은 나를 잊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당신을 잃지 않기 위해

함께 보낸 그리운 시간의 추억에 붙들려

하루에도 수십 번 몸부림치며

스며드는 생각에 꽂혀 있습니다


당신은 돌아오지 않는 시간처럼

등을 돌려 등지고 살아가는 악연에 연연하지만

나는 등 대고 함께 가꾼 인연의 등대에 꽂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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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우리 사이가

서산에 짙게 깔린 어둠의 장막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서산으로 넘어가는 노을을 함께 바라보며

우리가 바라면서 함께 본 미지의 이미지에 꽂혔습니다


당신은 꽃이 지었다고 나에게 전해주는

찬란한 슬픔의 뒤안길이

우리들의 과거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꽃이 진 자리에 남은 꽃의 그리운 여운에 꽂혔습니다


당신은 먹구름을 보면서 어둔 미래를 생각하지만

나는 먹구름이 품고 있는 희망의 햇빛을 그리며

그림자 안에서도 그리움에 젖어

뭔가를 그리고 있는 정체가

당신이라는 사실에 꽂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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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눈길을 보면서도

눈물을 흘리며 눈총을 쏘지만

나는 눈길에 담긴 따뜻한 당신의 마음에

눈 맞아본 번갯불 같은 전율감에 꽂혔습니다


당신은 매달리고 시달리며 살아온 인생을

시답지 않게 생각하지만

나는 시달려본 인생이야말로

언제든지 시로 달릴 수 있게 만드는

내공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가르침에 꽂혔습니다


당신과 헤어지는 길목에서 발목을 잡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끝나는 곳이 또 다른 시작이고

그 시작은 또 다른 시련을 이겨내려는

시험이라는 깨달음에 꽂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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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나에게 물먹었다고 생각하고

이제 모든 관계는 물 건너갔다고 좌절하지만

나는 물먹는 일도 때로는 물처럼 사는

한 가지 방법이라는 깨우침에 꽂혔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걸어가는 길이

온통 자갈밭이라고 불평하지만

물속에서 숨죽이며 기다리는 돌멩이 없이는

흐르는 시냇물도 한 곡조의 노래를

연주할 수 없다는 사실에 나는 꽂혔습니다


당신은 함께 만든 추억의 페이지에

바람 잘 날 없었다고 말하지만

나는 바람 잘 날 겨를도 없이 보낸 힘든 시간 덕분에

힘이 들어가서 바람도 가고 싶은 곳으로

잘 나간다는 정문일침에 꽂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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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흔들리며 피어야 진짜 꽃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진짜 꽃은 바람에게만 흔들리지 않고

꽃을 유혹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흔들려봐야

세상을 뒤흔들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에 꽂혔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우리 사이의 주인공이 아니라고 원망하지만

나는 숱한 배경 속에서도 당신을 전경에 드러날 수 있도록

공을 들여야 세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상식에 꽂혔습니다


당신은 먼 산을 바라보다 눈이 멀었다고 하지만

나는 당신에게 한눈에 반해서

아직도 하얀 밤을 지새우며

뜬 눈으로 잠을 설치는 와중에

내린 눈이 피운 눈꽃에 꽂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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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새벽도 새 벽이라고 하고

뜨겁게 불태운 만큼 속도 태웠다고 하지만

나는 새벽은 절벽이 잉태한 새 벽이라서

속상하고 속 터져도 속도보다

우리가 함께 보내면서 순간순간 느낀

삶의 밀도감에서 진정한 행복이

터져 나온다는 뉘우침에 꽂혔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꽃이지만

나는 당신에게 꽂혔습니다

여전히 나는 당신에게 다가서서

‘다가섬’에 가려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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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생태학자 유영만, 한양대학교 교수


사람이 사람을 만나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는 삶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몸으로 겪은 체험과 책으로 배운 개념의 절묘한 만남과 관계에 대한 깨달음을 배웠다. 체험이 없는 개념은 관념이고, 개념이 없는 체험을 위험할 수 있다는 통찰에서 개념과 체험을 융복합, 새로운 창작의 문을 여는 방법을 몸으로 익히고 있다.


낯선 곳에서 만나는 우연한 경험과 마주침으로 색다른 깨우침을 얻는 배움을 사랑한다. 앎으로 삶을 재단하기보다 삶으로 앎을 증명하며 어제와 다르게 살아보려고 오늘도 안간힘을 쓰는 지식생태(生態)학자다. 책상머리에서 머리로 조립한 지식으로 지시하기보다 격전의 현장에서 몸으로 깨달은 체험적 지혜로 지휘하는 삶을 추구한다. 언어가 부실하면 사고도 미천해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낯선 경험을 색다르게 표현하기 위해 언어의 연금술사로 변신하고 있다.


삶으로 앎을 만드는 과정에서 철학자의 주장보다 문제의식이 주는 긴장감에 전율하는 경험을 낯선 언어를 사용하여 어제와 다르게 표현하는 과정을 즐긴다. 비루한 삶이지만 익숙한 일상을 시인의 눈으로 바라보며 똑같은 현상에서도 비상하는 상상력을 언어로 낚아채는 공부에 관심이 많다. 오늘도 뜨거운 체험의 모루 위에서 틀에 박힌 언어를 갈고 닦고 벼리면서 잠자는 사고를 흔들어 깨우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언어를 디자인하라》, 《폼 잡지 말고 플랫폼 잡아라》, 《아이러니스트》, 《부자의 1원칙, 몸에 투자하라》,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 《체인지體仁智》, 《공부는 망치다》, 《생각지도 못한 생각지도》, 《곡선으로 승부하라》, 《울고 싶을 땐 사하라로 떠나라》, 《브리꼴레르》 등 저서와, 《하던 대로나 잘 하라고》 《빙산이 녹고 있다고》 등 역서를 포함해서 총 90여권의 저역서를 출간하며 다양한 사유를 실험하고 읽으면서 쓰고 쓰면서 강연하는 지적 탈주를 거듭하고 있다.


이메일: u010000@hanyang.ac.kr

유튜브: www.youtube.com/kecologist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knowledge_ecolog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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