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기억의 저편에서 파고드는 두드림이다
처마 끝에 매달려 생의 찬가를 암송하는 빗방울,
초연한 척 흔들리다 흘리는 눈물에도
버티다가 마침내 추락하며 절규하는
위태로운 희망의 견딜 수 없는 순간들
시선의 바깥에서 넘을 수 없는 담을 치고
안을 애처롭게 들여다보는 문풍지,
혹한에 눈물겨워 밤을 지새우며
알 수 없는 서러움으로 울먹거리는 서글픔의 떨림들
와인 잔에 위태롭게 매달려
흐느적거리며 전신을 애무하던 속 깊은 사연,
추락하기 싫은 몸짓으로
아래로 서서히 흐르는 회한의 눈물들
청명한 늦가을 나뭇가지 끝에서
맨몸으로 서성거리는 빗방울을 맞으면서도
내복도 입지 않고 버티는 마지막 감,
덜떨어지지 않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의 흔적들
방금 떨어뜨린 사과를 생각하다
상념에 젖은 사과나무의 어설픈 후회,
바람을 타고 날아든 알 수 없는 항거와
엉뚱한 의미의 무자비한 파장들
땅바닥에 엎드려 간신히 몸을 일으키다
지나가는 바람에 멱살을 잡힌 이름 모를 야생화,
서로를 은밀히 용서하다 뒤흔들리는
풀잎의 처절한 안간힘의 무늬들
질퍽한 오후 흐릿한 안갯속을 뚫고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타는 생선,
비린내가 품고 있는 마지막 소식의
허망한 사연들과 끝을 모르고 타들어가는 목마름
절망도 하기 전에 느닷없이 출몰하는 노곤함,
포기를 재촉하지만 그래도 버텨보겠다며
마지막 사투를 벌이는 팔뚝근육의
어쩔 수 없는 몸부림의 얼룩들
겨울밤 보름달에 스며든 구름 한 점,
밤을 끌고 가다가 소리 없는 절창에 한 눈 팔다
적막을 깨고 하늘로 퍼지는 산만한 그리움 조각들,
꽃 속에 스며든 꿀벌의 발자국 소리,
허공에 실려 가다 쪼그려 앉아있고
빗줄기에 가로막혀 길을 잃고 방황하던
시끄러운 고요함의 산만한 목소리들
가을하늘을 들어 올리며 날갯짓하던 잠자리,
하늘 가장자리로 날아오르던 뜬구름을 만나
초저녁 창문에 얼룩으로 그려낸
춥고 배고픈 어두운 빛의 그림자들
지나가던 지네의 수많은 발놀림에 놀란 개미,
앞으로 내딛는 첫 번째 발놀림에
의문을 품고 던진 질문에
가던 길을 멈춰 선 지네의 놀라운 깨달음들
얼음 속을 흐르면서도 얼어 죽지 않은 시냇물,
가던 길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부르던
노랫가락에서 느끼는 돌부리의 소리 없는 아우성들
천둥과 번개가 뒤섞여 반죽된 인생 반주,
눈물에 빗물을 타서 희석시키더니
날리던 눈발에게 황급하게 전해주는
다급한 사연의 애달픈 입김들
폭염에도 지치지 않고 돌아가던 선풍기 날개,
하염없이 쏟아내는 힘겨운 하소연에 침묵하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고달픈 신발의 느닷없는 절룩거림
그림자도 버린 채 뙤약볕의 축제가 펼쳐지는 소금밭,
전생의 죄과를 짊어지고 파도가 밀려오다
하얀 거품에 세월의 아픔을 가득 품고
뭍으로 오다가 퍼붓고 돌아가는 좌절의 희망가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덜컹거리던 소리도
침묵으로 삭혀버리는 허전한 달구지,
가시밭길 걸으며 신발도 신지 않고
군말 없이 오늘도 안으로 삭히는 안쓰러운 진저리들
허공에 삶의 그물을 던져놓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거미,
어둠의 장막을 뚫고 내리꽂는 소낙비에
미동으로 대답하며 밤하늘을 바라보다
꽁무니로 항변하는 참을 수 없는 세월의 흐느낌들
일상 다반사(茶飯事)와 시한부(時限附) 인생에
호기심의 질문을 던져 궁금해하는 물음표,
물음의 욕구와 기쁨 앞에서 몸을 떨지 않는 것
마침표를 미리 찍어놓고 졸고 있는 시간에게
낮에도 숨어서 떠 있는 반달이 물어본다
경멸과 괄시의 싸늘한 시선들이
뿜어내는 메아리는 누구를 위한 외침인지
불현듯 밝아오는 가로등의 뒤안길,
세상과 얼마나 맞짱 떠야 여기를 떠나지 않아도 되는지
먼동이 터오기도 전에 맑은 정신으로 눈뜨고
낯선 시선에게 물어봐도 여전히 흐느끼며
구름 속의 달을 바라보는 저녁 불빛의 몸짓들
새벽에 일어나 새 벽을 맞이하며
하얀 백지가 품고 있는 절망의 절벽도 마다하지 않고
그것이 뿜어내는 무언의 광채에 간신히 차린 정신,
아직도 서성이는 씨줄의 희망과 날줄의 절망들
다가오는 한 해에게 나지막하게 다가서서
한 해의 끝자락에서
또 한 해의 시작을 작곡한다
계절이 바뀌고 한 해가 저물어가도
지나가는 바람이 아직도 품고 있는 사랑했던 기억들,
못 견디게 외로운 날
느닷없이 배달 오는 적막 속에 감추고
오늘도 살아내야 사라지지 않는다는
응어리의 외침들 벗 삼아
당신과 부둥켜안고 또 한 해를 두드려본다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한양대학교 교수
사람이 사람을 만나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는 삶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몸으로 겪은 체험과 책으로 배운 개념의 절묘한 만남과 관계에 대한 깨달음을 배웠다. 체험이 없는 개념은 관념이고, 개념이 없는 체험을 위험할 수 있다는 통찰에서 개념과 체험을 융복합, 새로운 창작의 문을 여는 방법을 몸으로 익히고 있다.
낯선 곳에서 만나는 우연한 경험과 마주침으로 색다른 깨우침을 얻는 배움을 사랑한다. 앎으로 삶을 재단하기보다 삶으로 앎을 증명하며 어제와 다르게 살아보려고 오늘도 안간힘을 쓰는 지식생태(生態)학자다. 책상머리에서 머리로 조립한 지식으로 지시하기보다 격전의 현장에서 몸으로 깨달은 체험적 지혜로 지휘하는 삶을 추구한다. 언어가 부실하면 사고도 미천해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낯선 경험을 색다르게 표현하기 위해 언어의 연금술사로 변신하고 있다.
삶으로 앎을 만드는 과정에서 철학자의 주장보다 문제의식이 주는 긴장감에 전율하는 경험을 낯선 언어를 사용하여 어제와 다르게 표현하는 과정을 즐긴다. 비루한 삶이지만 익숙한 일상을 시인의 눈으로 바라보며 똑같은 현상에서도 비상하는 상상력을 언어로 낚아채는 공부에 관심이 많다. 오늘도 뜨거운 체험의 모루 위에서 틀에 박힌 언어를 갈고 닦고 벼리면서 잠자는 사고를 흔들어 깨우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언어를 디자인하라》, 《폼 잡지 말고 플랫폼 잡아라》, 《아이러니스트》, 《부자의 1원칙, 몸에 투자하라》,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 《체인지體仁智》, 《공부는 망치다》, 《생각지도 못한 생각지도》, 《곡선으로 승부하라》, 《울고 싶을 땐 사하라로 떠나라》, 《브리꼴레르》 등 저서와, 《하던 대로나 잘 하라고》 《빙산이 녹고 있다고》 등 역서를 포함해서 총 90여권의 저역서를 출간하며 다양한 사유를 실험하고 읽으면서 쓰고 쓰면서 강연하는 지적 탈주를 거듭하고 있다.
이메일: u010000@hanyang.ac.kr
유튜브: www.youtube.com/kecologist
브런치: https://brunch.co.kr/@kecologist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knowledge_ecologist